위기의 K-팝 한류 “콘텐츠 다양화 노력 외 출구 없다”
지난달 21일 오전, 일본의 대형 음반 매장 타워레코드 도쿄 시부야점. 그룹 2PM이 일본 현지 가수들에게도 ‘꿈의 무대’인 도쿄돔 공연을 전 석 매진시킨 이 날, 일본 내 한류의 전진기지였던 이 매장 1층에서 가장 크게 홍보되고 있던 아티스트는 일본의 5인조 걸그룹 ‘모모이로 클로버Z’ 였다. 10년 만에 새 앨범 ‘더 넥스트 데이(The Next Day)’를 발표하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영국의 노장 데이비드 보위의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몇 년 전만해도 이 매장 1층 전체가 K-팝 앨범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 매장에서 K-팝 코너는 4층 내 일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간 앨범 판매 순위 차트에도 K-팝 스타는 없었다. DVD차트 상위권에 지드래곤과 빅뱅 등의 이름이 보였지만 기타 차트에서 K-팝 스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지에서 체감한 K-팝의 인기는 생각보다 싸늘했다.
한때 한국 드라마 홍보 현수막이 줄이어 매달려 있었던 TBS(도쿄방송) 본사 앞에도 한류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지난해 한류의 지속 기간에 대해 9개 국 현지인 36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4년 이내’라고 답변했다.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K-팝 한류의 가장 큰 물줄기는 아이돌 그룹 중심의 세련된 댄스 음악이다. 그러나 한류의 원천인 국내 음악시장에서도 이들의 음악은 예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의 5월 셋째 주(5월 13일~19일) 차트에 이름을 올린 아이돌은 걸그룹 포미닛과 시크릿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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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한류의 일본 내 전진기지인 대형 음반 매장 타워레코드 도쿄 시부야점.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
대중음악 공인음악 차트인 가온차트를 만드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최광호 사무국장은 “차트 집계 이래 아이돌들이 이렇게 차트에서 힘을 못 쓰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은 획일화된 아이돌 음악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풍미했던 홍콩 영화가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기록적인 수준의 몰락의 길을 걸은 이유는 무분별한 자기복제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과거 홍콩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기복제에 따른 콘텐츠의 획일화가 현재 K-팝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꼽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이돌 그룹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와 조용필 등 기존 가수들의 활약은 아이돌들의 정형화된 스타일에 질린 대중의 반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아이돌들의 과도한 자기복제는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며 “여기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신인 아이돌들의 무분별한 일본 진출도 위기를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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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레코드 도쿄 시부야점 매장 내 모습. 정진영기자/123@heraldcorp.com |
전문가들은 원론적이지만 콘텐츠 다양화를 위한 자구 노력 외엔 해결책이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
서 평론가는 “K-팝의 해외 진출은 대형기획사들이 음악의 질적인 수준을 높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이들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안주하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에프엑스나 샤이니 등 몇몇 그룹들이 기존의 아이돌 음악과 비교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음악적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콘텐츠의 다양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최 사무국장 또한 “일본 내 K-팝 바람이 예전 같이 않은 이유도 결국 질적으로 향상된 콘텐츠의 생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일본에서도 K-팝 아이돌 음악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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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레코드 도쿄 시부야점 매장 내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