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직장인 대부분은 ‘출근시간은 있지만, 퇴근시간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장, 부장 같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면 그의 퇴근시간은 전체 팀이나 부서의 퇴근시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최종 신문 제작 마감시간이 자정 경인 신문사의 특성상 퇴근을 일찍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으로 자리가 높아질수록 책임이 커지고, 그래서 그 책임 때문에 제작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유의 출퇴근 문화에도 조금씩 변화가 오고 있기는 합니다.
권한 위임(empowerment)을 통해서입니다. 편집국장이 그날 당직 부국장에게 지면 제작의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면 국장이 매일 자정까지 사무실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부장도 당직 차장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면 퇴근시간이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권한 위임은 리더가 상당한 자신감과 능력을 갖췄을 때 가능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내 부하를 나 못지않은 판단력과 능력을 갖추도록 키워놓아야 하고, 설사 그 부하가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다가 실수하더라도 내가 기꺼이 그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책임을 지겠다’는 소신과 철학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런 권한 위임은 그 부하 직원으로 하여금 ‘시킨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수동적 조직원’이 아니라, ‘내 일을 내가 찾아서 하는 능동적 리더’로 자라나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2007년 10월 당시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2013년 현재는 SK텔레콤 고문)의 조찬 강연을 듣고 느낀 바가 적지 않아, 아래와 같은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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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남 “몸만 나오는 직원들 많아…‘머리’도 출근시켜야”
“연애 결혼한 부부는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하는데 부모가 정해 준 결혼은 잘못되면 ‘엄마 탓’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회사 직원들도 ‘내 일은 사장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 것’이란 생각이 들도록 해야 회사가 발전합니다.”
조정남(사진) SK텔레콤 부회장은 10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통일IT포럼’ 초청으로 ‘기업의 환경 변화와 SK 경영법’이란 주제로 열린 조찬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 부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이고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일부 중소기업 사장은 직원이 자발적 아이디어를 내면 ‘네가 뭘 아느냐’고 무시하는데, 그러면 사장 머리 쓰는 범위까지밖에 회사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몸’만 가지고 출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만드는 ‘머리’도 함께 회사에 나올 수 있어야 그 기업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조 부회장은 또 “최고경영자(CEO) 1명의 최대 능력이 20이라면 혼자 밤새워 일해도 20의 결과밖에 얻을 수 없지만 자신과 비슷한 능력의 부하직원이 5명만 있으면 100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그런 5명을 만들거나 스카우트해 오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CEO는 직원들이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도 했다.
그는 SK텔레콤의 대표적 성공 마케팅인 ‘2002 월드컵 길거리 응원’을 회고하며 “당시 한국 대 미국 경기를 세종로에서 응원하려 했으나 주한 미국대사관이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바람에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행사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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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7년 10월11일자 B4면>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저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발제를 했습니다.
▼월급쟁이 42년차인 CEO의 경영노하우-“직원들이 몸뿐 아니라 머리도 들고 출근하게 하라”(4,5매+얼굴사진)=SK그룹의 산증인 중 1명인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의 ‘통일IT포럼’ 조찬 강연 내용. “직원들 100명 중 96명쯤은 몸만 출근해서 아무 아이디어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일부 중소기업 사장들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네가 뭘 아냐’며 묵살하는데 그러면 회사는 사장의 머리 쓰는 범위까지밖에 발전 못한다”고 조언. 자발적이고 의욕적으로 직원들이 스스로 아이디어 내며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주는 것이 CEO의 역할이라는 것. 조 부회장은 “월급쟁이 42년째지만 간부급이 된 뒤 오후6시 넘겨 퇴근한 것은 100일이 안 된다.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부하직원 5명을 길러내는 게 리더의 역할이지 리더가 모든 걸 다하려 하면 한계가 있다”고 소개. SK텔레콤의 대표적 성공마케팅인 월드컵 길거리응원도 젊은 직원들의 자발적 아이디어에서 나왔는데 당시 한국-미국전을 앞두고 광화문에서 행사를 하려 하자 주미 대사관 측이 “미국이 이기면 주한 대사관의 안전 문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항의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장소를 옮긴 일화도 공개.
“월급쟁이 42년째지만 간부급이 된 뒤 오후6시 넘겨 퇴근한 것은 100일이 안 된다.”
저는 처음에 이 문장을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제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100일도 안 된다”라고요. 그런데 정반대로 ‘간부급이 된 이후 20여 년 동안 정시 퇴근을 안 한 경우가 100일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만큼 능력 있는 부하직원을 5명을 길러냈다는 것입니다. 교육시키거나 아니면 스카우트를 통해서요. 그런 부하직원을 길러내는 게 리더나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희 회사 안에 계신 몇몇 선배들은 “누군 6시에 퇴근하기 싫어서 안 하니, 그러고 싶어도 못하는 직종이나 직업이 한국 사회에는 너무 많다. 불필요한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의견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장이 기사에는 반영되지 못했습니다.ㅠㅠ
저도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져 가면서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솔선수범이나 헌신’ 못지않게 ‘후배들을 믿고 일찍 퇴근하는 자신감이나 용기’도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 쉽지 않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라도 제 자신의 능력부터 더 키워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