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합의문 ‘숨은 폭탄조항’ 많다
[한겨레 2007-04-04 08:27]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미국산 쇠고기뿐만 아니라 인근 캐나다나 멕시코의 쇠고기도 미국산으로 둔갑해 들어올 수 있게 되는 등 협정 합의문에 드러나지 않은 독소조항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단 관계자는 3일 “지난 2일 타결된 협정문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원산지 기준을 미국 요구대로 도축국으로 합의했다”며 “우리가 맺은 역대 자유무역협정에서는 사육국 기준이었는데 이번에 처음 도축국 기준으로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캐나다·멕시코에서 태어나 기른 소도 도축만 미국에서 하면 미국은 해당 쇠고기를 관세 혜택을 받으면서 한국에 팔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섬유의 경우 원사부터 직물·재단·봉제까지 모두 같은 나라에서 가공해야 한다는 원산지 기준을 적용하면서 쇠고기·돼지고기에는 전혀 반대 잣대를 한국에 요구한 셈이다.

박상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미국·캐나다·멕시코는 지리적으로 연결돼 있어 소값 변동에 따라 타이슨푸드 같은 거대 식육 가공업체들이 캐나다산이나 멕시코산 소들을 미국에 들여와 유통시키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미국이 광우병 안전지대가 되고 인근국에서 새롭게 광우병이 발병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미국의 검역체계에 참여해 정밀 검사하지 않는 한 앞으로 안전한 쇠고기가 들어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또 섬유의 수출을 늘리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의 위생검역 절차를 미국 요구대로 간소화하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섬유부문은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에 불과하다. <한겨레>가 입수한 협상단의 내부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스콧 퀴전버리 섬유분과 수석협상관은 장관급 협상 마지막날이던 지난달 30일 “미국산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 한국이 위생검역 절차를 완화시켜주면 한국이 원하는 쪽으로 섬유 개방안을 좀더 개선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다음날 미국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별도의 위해성 평가를 생략하는 등 미국이 원하는 6개 항목 가운데 5가지를 ‘원칙적으로 내용에 대해 이해를 같이하고 문안의 세부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협상단 관계자는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받아주지 않았고, 협정문에는 본문이든 부속서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면서도 “자유무역 협정문과는 무관한 별도의 문서 형태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당국이 예고 없이 한국의 섬유 수출업체를 방문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미국 협상단의 요청도 관철됐다. 애초 우리 쪽 협상단은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경우 사전에 고지를 하지 않으면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버텼다. 그러나 미국의 계속된 압박에 ‘사전에 고지를 해서는 조사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때에는 현장조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협정문에 명시했다.

자동차에서도 한국은 즉시철폐 품목을 따내고자 미국이 막판에 들고 나온 신속 분쟁해결 절차와 ‘스냅백’(위반 판정 때 관세혜택 폐지) 제도를 받아들였다. 신속 분쟁해결 절차는 일반 분쟁해결 절차보다 중재기간이 절반 이상 짧다. 또 일반 절차의 경우엔 위반 판정 때 해당 행위를 시정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신속 절차의 경우엔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한다.

by 100명 2007. 4. 4.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