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역사상 최고 멍청했던 거래는?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고 말한다. 또, 기업하는 사람들은 신용위기, 경기 후퇴 등 모든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해 앞으로 어떤 사업을 펼칠 것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포브스닷컴은 이런 말들을 되새기며 지난 400년간의 비즈니스 역사에서 돈은 물론 미래의 좋은 기회까지 날려버린 최악의 거래들을 조사해봤다. 이런 최악의 실수들은 하이테크부터 부동산까지 산업 전 업종에서 골고루 나오고 있다. 이런 실수들은 대개 시장상황을 잘못 파악했거나, 장기적 안목없는 짧은 생각에서 비롯되거나 혹은 윤리의식의 실종 등에서 주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큰 실수들을 모았을 때 그 가치는 요즘의 시세로 환산하면 수조달러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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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큰 잘못된 거래 가운데 어떤 것들은 그 거래 이후의 미래에 대해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오기도 한다. 1626년 싸구려 장신구 몇 개에 뉴욕 맨해턴(당시에는 뉴 암스테르담으로 불림)을 넘긴 카나르씨 부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섬은 요즘 뉴욕인들로부터 “우주의 중심”이란 애칭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부동산회사의 평가에 따르면 맨해턴의 시장 가치는 무려 1조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또다른 ‘실수’는 이 맨해턴섬을 소유하고 있던 네덜란드가 남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인 수리남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영국으로 넘긴 것이다. 참고로 수리남의 국내총생산량은 고작 29억달러로, 1조 가치인 맨해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맨해턴을 헐값에 팔아넘긴 카나르씨 부족보다는 더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803년 나폴레옹은 신세계 정복과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런 나라들 가운데엔 당시 노예 반란의 중심지인 아이티가 포함돼 있었다. 나폴레옹은 아이티의 반란 진압에 집중하기 위해 미국에 있던 루이지애나땅을 팔 결심을 하게 된다. 원래는 항구도시인 뉴 올리온즈만 미국에 팔려고 했다가 당시 국토의 3분의 1에 달하는 루이지애나땅 전부를 팔아버린 것이다.

나폴레옹이 제안한 금액은 당시 1,500만달러(150억원). 1 에이커당 3센트의 헐값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금액으로 환산하면 2억8400만달러(약 2840억원). 그래도 헐값이다. 왜냐하면 이때 팔았던 루이지애나는 현재 미국의 15개주가 있고, 또 캐나다 2개주가 포함된 아주 광활한 땅이기 때문이다.


<지도위의 붉은색이 당시의 루이지애나로 전 미국면적의 3분의 1 가량이 되는 광활한 땅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 땅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부동산회사에 따르면 이것은 약 7500억달러(약 750조원)의 가치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땅을 팔면서까지 나폴레옹이 애지중지했던 아이티는 어떻게 됐을까? 아이티는 나폴레옹이 이 땅을 판지 1년도 되지 않아 독립이 되었다. (나폴레옹으로선 아이티에 좀 더 힘을 쏟으려고 미국땅까지 처분했건만 결국 아이티의 독립세력에게 지고 물러나고 만 것이다)
사실 어려운 시기에는 객관적으로 정확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다가 기회가 도처에 널려있는 시대에는 이런 큰 실수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950년대 중반 포드자동차는 큰 성공을 거뒀던 썬더버드(Thunderbird)를 주력 상품에서 내리고, 대신 경쟁사인 제너럴 모터스사의 잘나가는 모델은 올드 모빌(Oldsmobile)과 대적할 신모델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만든 모델이 바로 헨리 포드 창업자의 아들의 이름을 딴 에드셀(Edsel)이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에드셀모델은 자동차에 TV를 설치하는 등 각종 최신식 장비를 모두 갖다 부쳤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역사상 최악의 실패모델중 하나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포드자동차는 이 모델을 선보이면서 3가지 큰 실수를 범했다. 일단 전체적인 스타일이 여느 밋밋한 포드차와 다른 점이 없었고, 사이즈면에서도 당시 추세가 사이즈가 작은 콤팩트카로 가는 것이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너무 컸으며, 마지막으로 가격도 어중간하게 책정하는 바람에 소비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킨 것이었다. 결국 포드는 1959년 11월19일 에드셀모델 생산 중단을 선언했는데, 결국 이 사업으로 포드는 고스란히 3억5000만달러(당시 환율)를 날리고 말았다.

포드자동차는 이후 심기일전 재기할 수 있었으나 그때의 교훈은 아직도 남아있다.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켈러그MBA과정을 가르치고 있는 갈린스키교수는 “이것이야말로 시장을 분석할 때 어떤 시각을 갖추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본보기와 같다”며 “만약 사업을 할 때 소비자들의 요구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외부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사업을 벌인다면 거기서 만들어지는 상품의 실패확률은 그만큼 높다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미국경제를 호령했던 에너지기업 엔론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엔론은 막대한 손실을 숨기기위해 해외에 공장을 짓는가하면 투명한 회계 공개를 극력 꺼리는 전략을 펼쳤다. 급기야 애널리스트들은 2001년 들어 엔론이 수익도 없이 장부상으로만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을 알아채면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해 엔론은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엔론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고, 엔론의 핵심고위관료인 COO(CEO 바로 밑의 최고업무집행자) 제프리 스킬링, CFO(최고재무책임자) 앤드류 파스토씨 등은 사기와 내부거래 혐의 등으로 감옥행을 선고 받았다.

속임수와 과욕에 넘어가는 것도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엔론의 경우를 보면 이 말은 어느정도 맞는 얘기다. 사실 엔론은 이상한 사업에 투자하기전까지만해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등의 부동산 재산을 갖고 있던 합법적이고 건실한 에너지기업이었다. 하지만 엔론은 몰락했다. 엔론의 몰락은 노후자금까지 모두 회사의 쓸모없게 되어버린 주식에 투자해보린 수천명의 내부 엔론 직원들까지 감안했을 때 그것은 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엔론사태로 인해 더 많은 규제가 늘어나 그동안 정직하게 일했던 기업들에게 더 많은 규제가 늘어났다라는 것은 또 하나의 달갑지 않은 후폭풍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엔론 사태가 몰고 온 경제적 손실은 약 780억달러(약 7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뭐니뭐니해도 비즈니스 역사상 최악의 실수는 세계 금융을 주무르던 은행가들의 실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국연방준비이사회의 벤 버냉키의장의 경우 현금 유동성을 조절함으로써 경제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파워가 있다.

199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루퍼트 문델씨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정부의 금융정책 실패는 만성적인 디플레이션과 세계 경제의 불안정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문델은 “1920년대 후반 금값이 계속 올랐는데, 당시 주요 중앙 은행들은 금을 기축통화로 삼기보다는, 금값 안정화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결국 이 정책의 실패가 대공황, 나찌 반란, 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현 버냉키의장이나 많은 회사들은 그런 역사적인 멍청한 거래나 실수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by 100명 2008. 4. 30. 14:57

고객은 왕이기 때문에 왕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왕의 마음을 헤아려 그 뜻을 맞추어가는 것이 기업성공의 길이다. 다음 사례가 그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사례] McCormick의 실패

미국에서 100년 동안 100여 가지의 양념을 생산하여 왔던 McCormick 이라는 기업은 1980년 중반까지도 ‘Make the best. Someone will buy it (최상품을 만들어라, 누군가가 그것을 살 것이다.)’ 라는 좌우명으로 생산 지향적인 경영방법을 견지하여 왔다.
창시자의 이러한 좌우명에 맞춰 이 기업은 제품종류를 다양화하고 슈퍼마켓에서 소비자의 눈에 잘 띄도록 넓은 판매대에 진열하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판매된다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그 기업은 1980년과 1984년 사이에 매출이 20% 가량 하락하였고, 시장 점유율이 무려 40%까지 하락하였다. 이렇듯 시장판매에 실패한 이유는 이 기업이 소비자의 뜻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직장업무에 지친 맞벌이 주부들이 사용하기에 간편한 양념을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요리하기에 불편한 양념을 생산하였기 때문에 판매에서 실패한 것이다.

[사례] Levi Strauss, J.C.Penney의 실패담

미국에서 리바이스(Levi’s) 청바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유명도를 이용해 리바이스는 제품의 다양화를 위해 Levi’s 상표를 붙이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하고 청바지가 아닌 다른 종류의 바지, 고급자켓, 스키복 등의 제품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패작이었다.
소비자는 ‘Levi’s = 청바지라는 의식만 있을 뿐 Levi’s 이니까 자켓이나 스키복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
또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백화점인 J.C.Penney는 마진율과 품질이 좋고, 비싸면서도 고급스런 상품을 주로 취급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1us에 수천만 달러를 써 가면서 Fashions for people. No, not Saks, J.C.Penny (Saks는 최고급 백화점 이름임) 라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후에도 고급상품은 잘 팔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저가품 고객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Levi Strauss
회사와 J.C.Penney의 실패는 소비자는 왕, 소비자는 통치자 (consumer sovereignty) 라는 시대적 참뜻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가려서 듣는다. TV에서 보기 싫은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꺼 버린다.
이제는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고객의 마음을 유인하려는 노력보다 Domino 피자 회사와 같이 고객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 (Unmet needs) 를 찾아서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기업이 성공하는 길이 되었다.

3) 고객의 마음은 잡기 어려운 뜬 구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수만, 수십만 고객의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사례] Coke Classic, New Coke 이야기

펩시콜라에게 시장점유율을 빼앗긴 코카콜라는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새로운 맛의 콜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새로운 맛의 콜라, 기존 코카콜라, 펩시콜라에 대해 소비자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하여 콜라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채 200,000건에 달하는 콜라 맛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맛에 있어서 새 콜라가 기존 코카콜라 보다 월등하게 좋지만, 펩시보다는 맛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코카콜라 회사는 기존 콜라의 생산을 중단하고 새로운 콜라를 생산 , 시판하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기존 콜라를 찾았으며 시애틀에 한 소비자 단체에서는 옛날 콜라맛을 되돌려 달라는 소비자 운동까지 벌였다.
이에 코카콜라 회사는 기존 콜라를 Coke Classic, 새맛의 콜라를 New Coke라 하여 동시에 판매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Coke Classic New Coke보다 더 잘 팔렸으며 맛이 우월하다는 펩시보다도 코카콜라가 더 많은 매상을 올렸다. 마케팅에서는 알 길이 없는 고객의 마음을 Brand name and image affect taste (상품명과 이미지가 맛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표현한다.

고객이 없으면 마법사 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는 기술자도, 요령좋은 자금 담당자가 싼 자금을 끌어와도, 아무리 훌륭한 관리자가 있어도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는 없다. 또한 물건을 최신식 기술로 잘 만들어도 고객이 원치 않는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업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 실례를 몇가지 더 들어 보자.

[사례] DuPont사의 Kevlar 실패 이야기

DuPont
사는 화학기업의 제1인자이며 미국에서 10번째 안에 드는 큰 회사이다. 셀로판, 나이론을 발명한 유명한 이 회사는 또다시 철보다 5배 강하고, 무게는 철의 5분의 1밖에 안되는 신비의 물질 Kevlar를 발명하였다. 이것은 DuPont 연구소의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어떤 용도로 어디에 팔 것인가? 자동차 타이어 제조업계가 Kevlar의 주요 판매원이었다. Kevlar는 철보다 강하고 가벼운데다가 타이어 고무와 잘 접합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란 DuPont 5억 달러의 설비투자를 하여 Kevlar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자동차 소유자들이철로 짜여진 래디알 (steel-belted radial) 타이어를 더 선호하게 되면서 타이어 제조회사는 1년도 채 못되어 Kevlar 구입을 중단하고 다시 철을 사용하게 되었다.


Kevlar
DuPont사가 설립된 이래 가장 많이 투자한 제품이었지만 판매는 아직까지 부진하다. 이것은 주로 비행기, 방탄조끼, 테니스 라켓, 군인의 방탄모자 등에 사용되는데 투자에 비하여 수요가 아직 충분하지 못한 형편이다.
이 세계적인 기업이 주는 값비싼 교훈은 다음과 같다
.
제품을 발명하고 난 뒤 구매자를 찾으려고 동분서주 하지 말고 먼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라

4) 시청자는 우주인속을 모르겠어요 (작가 지나)

한때 TV 시청자들에게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모래시계작가 송지나씨도 시청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드라마 시청자는 우주인 같아 그 속을 잘 모르겠어요모래시계에서 자신은 강우석 검사를 멋진 사람으로 그렸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깡패역이 인기가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사례] 울워스의 고객심리 파악 실패

미국에서 쥐덫을 가장 많이 제조 , 판매하던울워스라는 회사는 종래의 나무로 된 쥐덫을 플라스틱으로 바꾸어 만들었다. 이 새로운 쥐덫은 모양도 더 좋았고, 쥐도 잘 잡히며 아주 위생적이었다. 값도 종래의 나무제품보다 약간 비싼 정도였다.
나무로 된 쥐덫은 잡힌 쥐와 쥐덫을 함께 버려 그 쥐덫을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플라스틱 쥐덫은 종래의 나무 쥐덫보다 약간 비싸지만 모양도 좋고 위생적이라 어쩐지 한번 쓰고 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이에 따라 소비자에게 잡힌 쥐만 버리고 쥐덫을 깨끗이 세척해야 하는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되었다
.
그러자 고객들은 점점 이 귀찮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종래의 나무 쥐덫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새롭고 질적으로 우수한 쥐덫은 팔리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표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
제품보다 고객을 더 사랑하라

(Love the Customer, not the product)

-
당신의 방식대로 드십시오.
(Have it your way,
버거킹
)

-
당신은 우리의 상관입니다
.
(You are the boss,
유나이티드 항공)

by 100명 2008. 4. 23. 09:50

즉석 두부기의 실패

** 투자 실패로 본 지역별 특성 **

중국에서 한국인들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도전과 패기의 정신으로
중국에 첫발을 디디게 되면서 접하게 되는 중국인들.
중국에 몇 년 상주하게 되면 소설책 한권 정도의 이야기 거리는
누구나 생길것입니다.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통신매체의 발달로 하여, 중국인의 상술과
중국인들과의 사업상에서 생기는 문제점등에 있어서 많은분들이
상당히 많은 이해와 정보를 가지고 중국을 접하게
됩니다만 그런데 중국에 들어와서 실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취득한 정보는 어설픈
것이 되어 버리고, 사업의 시작이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밑바탕에서
시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아직도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각 지역마다 확연히 다른 기업 인프라와
또 확연히 다른 현지인들의 기질 에 있다고 봅니다.
중국 전문가라는 말을 감히 사용못하고, 지역 전문가라는
말을 사용하고,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자고들 하는 것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산업별 전문가가
육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또한 엄청나게 넓은 중국의 극히 일부 지역만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고, 접해본 사업 분야도 한계가 있읍니다만, 저의 실제
경험과 주위의 기업가들의 경험을
종합하면 중국 사업에 있어서 지역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게 될것입니다.

먼저 우리 한국 기업들의 지역 선택의 잘못으로 사업이 실패한
사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례1 ( 즉석 두부기의 실패 )

즉석 두부기’ 다들 아실것입니다.
기계에다가 콩을 집어 넣으면, 자동으로 두부가 생산이 되고 비지와
두유가 같이 나옵니다.
중국 사람들 우리 한국사람 못지 않게 두부를 좋아 합니다.
재래시장에서 팔고 있는 대부분의 두부는 개인들이 가정에서
직접 맷돌로 콩을 갈아서
오랜 시간을 두고서 만든뒤 유통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중국 시장에서 한국제 즉석 두부기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이 설비를 구매할려고 한국으로
날아 왔습니다.
( 중국 사람들 돈이 된다 싶으면, 현금 싸들고들 찾아 옵니다.
그리고 제품도 없는데 예약금부터 냅니다. 정말 화끈하고 빠릅니다.
누가 이들을 만만디라 할수 있을지…)
포화된 한국 시장에서 그럭저럭 유지하던 설비 제조업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한달에 10대를 팔기가 어려웠는데, 한번 주문에
수십대를 주문하는 중국인도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중국 특수가 시작된 것입니다.

자 이런 현상이 생길 때 이것을 지켜보고 '그렇다면 중국에서 직접
설비를 만들어서팔아보자’ 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요.

한국에서 이 설비의 중국 수출 가격이 대당 700만원이라고 볼 때
무역 비용과, 중국수입 관세, 부과세등을 합하면 800만원선에서
중국에 도착이 될것으로
보여지는데, 이것을 중국에서 싼 인건비를 이용하여 생산을
할경우 한국 제조 원가의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합니다.
원가 경쟁력에서 한국산보다 앞서고, 수입 제반 비용이 들지 않으니
중국에서 만들기만 하면 한국에서 설비를 사가는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가지 않고 내 제품을 사겠지 하는 판단..
잘못된 판단도 아니고, 또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판단하에서 많은 한국 제조 업체들과 기술자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차리고, 생산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실패를 하여 철수를 하였고,
현재 존재하는 기업들도 하루, 하루가 어렵습니다.

제가 보는 실패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처음 이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시작할때만 하더라도 경쟁자는
한국의 제조 업체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을 하는 업체 대
중국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간의 경쟁만을 생각하였는데,
“아니 이럴 수가” 어느 틈에 중국기업들이 모방품을
쏟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하였던 별의별 제품이 나 나옵니다.
값비싼 기름 보일러는 아주 값싼 연탄 보일러로 대체를 하고,
외관을 중시되던 제품들이
대충 대충 제품만 만들수 있게끔 하여 시장에 쫙 깔립니다.
경쟁자가 중국 현지 기업들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과연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기업이 중국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수 있을까요?

즉석 두부기란 것이 제작하는데 있어서 아주 어려운 제품이 아닙니다.
도면만 있다면 왠만한 기계 공장에서는 충분히 제작이 가능한 설비입니다.
즉석 두부기 하나에만 목을 매단 한국회사와는 달리 중국 기업들은
기존 품목에 한 개를 추가한것이라서 이 제품이 잘 안팔려도
그렇게 대미지가 없습니다.
제품의 판매루트와 도매상, 그리고 소비자들과의 정보도 이들이 유리합니다.
제조 원가도 이들이 훨씬 값싸게 할수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점에서 불리하게 된것입니다.
모든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지역만 선택을 잘 하였더라도 하는 아쉬움을 가집니다.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이 자리를 잡은곳은 산동성의 청도와
연태, 위해 지역이고, 요녕성의
대련과 기타 우리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은 지역들입니다.
이들 지역의 특징은 중국에서는 나름대로 기계 제조업이 발달되었고,
청도나 대련의 경우 시장 규모도 적다고는 볼 수가 없는 지역입니다.
( 청도의 경우 광역시 형태로서 면적이 경기도와 비슷하고, 총 인구가
600만명 정도이고, 청도시내의 인구는 120-150만명 정도임)
한국의 중소 기업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 지역은 중국 전체를 놓고 볼 때 상업의 중심 위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교통편도 중국 전체를 놓고 볼때는 타 지역에서
쉽게 접근하기 힘들고,
도시의 지명도도 대단한 편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고( 특히 판매 부분) 기업적 환경도 유리하듯이
중국에서 이러한 지역은 북경 천진벨트와
상해 지역, 그리고 광주, 심천, 홍콩까지 연결되는 광주 지역,
이 세곳으로 나눌수 있을것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소득이 높고, 소비가 크며,
고급 제품들이 판매되는곳

그리고 전 중국 상대의 영업활동이 가능한 이들 지역에서
즉석 두부기를 직접 제작을 하여 판매를 하였다면, 지금쯤은
그 지역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지역은 너무 싼 제품도 팔리지를 않고, 설비의 외관도
조금은 중시를 하고체인점 영업도 활발한 곳입니다.
중국내에서 그래도 한국 시장과 가장 유사한 지역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체 시장이 워낙 크다는 것과 전 중국
상대의 영업이 가능하다는 것이겠지요.(물론 이들 지역에 자리를
잡을려면 청도나 대련 지역보다는 투자 비용이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도 상해 기차역 앞에는 낮익은 디자인의 즉석 두부기
선전 간판이 여기 저기 걸려 있습니다. 북경에서 방송되는 케이블 TV에는
즉석 두부기 체인점을 모집하는 광고가 요란합니다. 그 제품도
디자인이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군요.

중국 특수로 인하여 시작된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우리 기업이 차지하고 있어야할 자리에는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서 새롭게 번창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졸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by 100명 2008. 4. 16. 23:02

기내 휴대폰 사용 서비스 반응 "싸늘"

비행 중에 기내에서 휴대폰 통화를 가능케 하는 기내 통화 시범서비스가 올해들어 확산되고 있지만 기대와는 달리 승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고 인포메이션위크가 보도했다.

 에어프랑스가 최근 미국행 승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승객들의 대다수는 전화 이용자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으며, 그럴바엔 항공사가 기내 휴대폰 서비스를 아예 제공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답변했다.

에어프랑스는 에어버스 관계사 온에어가 개발한 기내 휴대폰 통화 시스템을 활용해 수개월 전부터 탑승객을 대상으로 시험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에어프랑스는 일부 비행기에 이 장치를 설치하고 승객들이 비행 중 휴대폰 사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소음 문제 외에도 서비스가 본격화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에어프랑스의 서비스는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는 GSM 표준 방식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또 비행중 통화 서비스의 과금 방식이 완전히 결정되지 않아 현재는 로밍 서비스 형식으로 각각 서비스 업체에게 로밍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항공기 내 휴대폰 사용은 항공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작동을 방해해 사고를 일으킨다는 안전상 이유로 엄격히 제한됐지만 현재는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세계 항공사들은 기내 휴대폰 사용 서비스를 시행을 앞당기기 위해 앞다퉈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by 100명 2008. 4. 9. 21:53

교훈이 될 만한 2007년의「실패한 기술들」

2007년 한 해 동안 다양한 기술적인 혁신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었다. 반면 언제나 그래왔듯이 2007년 한 해에도 다양한 실수 및 실패들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이 세상의 진리. 2007년 한 해 동안 기업용 기술 부문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실수, 실패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이번 해에는 특히 교훈이 될 만한 실패들이 많았던 해인 듯하다.

10. HD DVD와 블루레이, VHS와 베타멕스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다

대다수의 실수들은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예전의 실수를 또 반복할 경우 사람들의 참을성은 줄어들기 마련. 차세대 DVD 디스크간의 전쟁은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1세대 DVD는 한 가지 표준으로 통일돼 시중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차세대 DVD는 현재 HD DVD와 블루레이, 두 가지 포맷으로 나뉘어져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 2007년 이들 둘은 (욕심과 치열한 경쟁 심리 때문에) 각자 서로의 표준에 맞게 제작된 영화와 플레이어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 둘은 전혀 호환되지 않는다.

도시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타임워너는 현재 HD DVD편에 선 상태. 반면 소니, 디즈니, 애플, LG, 폭스는 블루레이 편에 섰다. 2005년 이 두 표준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수많은 회의들이 개최되었지만 서로 한 발짝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수십억달러의 잠재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시장을 서로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러한 소모적인 경쟁이 DVD가 나오기 한참 전인 비디오테이프 시절에도 있었다는 점.

1980년대에도 서로 호환되지 않는 두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경쟁하고 있었다. 하나는 VHS였고, 또 하나는 베타맥스라는 것이었다. 이 둘 간의 전쟁은 수년간 계속되었고, 결국 소니가 지지한 베타 맥스가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베타맥스 형식의 비디오 기기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다시 새로운 기기를 구입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이 전쟁은 기업용 기술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차세대 데이터 디스크(HD DVD 롬(Rom) vs. 블루레이 롬)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전이기 때문이다.

이들 디스크들은 최소 15GB에서 (이론적으로) 최대 100GB의 용량을 제공할 수 있다. 이들 디스크가 개발된다면, 대용량 파일 및 대용량 데이터들의 휴대성 향상에 큰 기여를 할 것이고, 데이터 테이프가 백업 표준으로 자리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9. 레드 플래그 리눅스, 리눅스의 승리가 아닌 일개 협상 칩으로 전락

2000년대 초만 해도 중국 정부는 근로자 소프트웨어에 대한 완벽한 통제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 또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 내에서 개발된 레드 플래그 리눅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당시 리눅스를 지지했던 독 셜스와 같은 인물들은 "레드 플래그가 (적어도 데스크톱 부문에서는) 리눅스 제품들 중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끌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중국 인구 및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표명 등을 고려했을 때 레드 플래그의 성공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는 하나의 음모에 불과했다.

실제로 레드 플래그 리눅스는 정부의 공개적인 지지의사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급격하게 확산되지 못했다. 불법 복제된 윈도우가 오히려 시장을 압도했다.

다만 필자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 시장에서 리눅스를 누를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것이 자유, 정의,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가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기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레드 플래그 리눅스가 중국 시장을 차지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이크로소프트로 하여금 라이선스 비용을 낮추고 보안 및 소스 코드 이슈에 대해 양보하게끔 만든 주요 요인이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리눅스는 중국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W3카운터의 조사에 의하면 2%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시장보다 오히려 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고 알려졌다.

8. 이베이와 스카이프의 잘못된 만남

2005~2006년 점점 더 많은 전문직들이 스카이프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카이프는 사용자 중 30%가 사업용으로 스카이프를 사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05년 가을, 이베이는 스카이프를 인수했다. 이베이의 결정에 많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두 회사 사이에는 시너지 효과를 낼만한 공통점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직도 동영상 통화나 국제 전화를 할 때 스카이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새롭게 출시된 스카이프에는 이전보다 향상된 기술을 눈에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05~2006년 혁신의 물결이 한바탕 일고 지나간 이후, 스카이프는 정체기에 들어선 것으로 비춰졌다.

반면 그 사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스코 등과 같은 회사들은 IP전화 및 통합 커뮤니케이션 부문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구어 냈다.

스카이프는 새로운 VoIP 표준 개발, 또는 UC-as-a-Service를 통한 새로운 시작 개척 등을 통해 통합 커뮤니케이션 부문의 절대적인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스카이프가 루슨트, 노텔, 지멘스, 또는 구글 등과 같은 기업에 인수되었다면 분명히 통합 커뮤니케이션 업계의 선두에 올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카이프는 조그마한 소비자 VoIP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의 위치에서 정체되어 있고, 이베이는 아직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7. 월스트리트저널, 사용자들에게 IT를 망치는 법을 가르치다

7월30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신의 IT 부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10가지"라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 기사는 사용자들이 다니는 IT 부서의 감시 또는 통제를 피해 허용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방법, 블록된 사이트를 방문하는 방법, 회사 정보를 오프라인에서 저장하는 방법, 불법 스마트폰을 통해 메일을 접속할 수 있는 방법 등 이 밖에도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필자는 이 기사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적은 적이 있다.

기사를 보며 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회사 데이터 센터에 침입하는 방법, 중요한 서버를 훔치는 법, 그리고 그것을 암시장에 개당 수천달러를 받고 파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2008년을 위해 아껴두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6. 해커들, 미 국방부(펜타곤) 이메일 서버에 침입하다

지난 6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국방부 공개 이메일 서버가 다수의 해커들에 의해 집중 공격 당했고 이를 발견한 즉시 이메일 서버를 차단시켰다고 발표 했다. 이 때문에 1,500여명의 국방부 직원들이 이메일에 접속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게이츠 장관의 이메일은 이때의 소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난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첨단 기술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은 발표가 나온 직후, 공격의 시발점이 중국이었고 중국군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다는 정보가 나돌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해킹 행위를 포함, 컴퓨터 시스템을 침입하는 그 어떤 범죄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며 즉각 이러한 소문들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하지만 9월에 폭스 뉴스는 공격의 주체가 중국이었음을 확인하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보도를 냈다.

국가 안보 담당 기자 제니퍼 그리피스는 "군 내부 정보에 의하면, 지난 6월 중국 정부와 연계된 중국 해커들이 미 국방부 컴퓨터에 침입, 기밀 정보나 계획 등을 입수하기 위해 국방부 소속 컴퓨터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방화벽을 지속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6월 공격은 국방부 장관의 정책 관련 사무실의 공개 이메일 계정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몇몇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폭스의 보도를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견고한 IT 보안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국방부이다. 만약 국방부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정보 자산들을 보호할 여력이 없다면, 이는 부실한 미국 정보 보안 능력을 보여주는 슬픈 예이거나 국방부의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두 가지 모두 사실일까 두렵다.

5. 지지부진한 802.11n 표준화 작업

무선 업체들이 차세대 무선 LAN 기술인 802.11n을 타깃으로 개발한 "pre-N", "Draft-N" 무선기기들을 출시하기 시작한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기존 버전의 무선 표준보다 더 넓은 범위의 그리고 더 높은 광대역 폭(최대 300bps)을 자랑하는 802.11n은 지금까지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널리 사용되어 왔던 802.11b와 802.11g는 네트워크 범위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광대역 폭이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802.11n 표준의 출시는 항상 거의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최종 버전 또한 성능 향상 이외에 기존의 드래프트 버전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당수의 소비자 기반 업체들은 이후 최종 버전이 나왔을 때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변경된 부분을 보충한다는 생각으로 기기들을 출시해 내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시스코, 자이러스(Xirrus)와 같은 규모 있는 기업들도 최종 버전이 나온 후 업그레이드 한다는 조건 하에 802.11n 표준에 적합한 기기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IEEE는 빠른 시일 안에 802.11n 표준을 승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관계자는 802.11n 표준의 승인은 2008년 말 또는 2009년 초로 미뤄졌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미 상당수의 pre-N 기기들이 시중에 출시된 가운데, 차세대 WLAN 표준이 될 802.11n이 뒤늦게 등장하게 될 경우, 심각한 호환성의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4. 3G를 포함하지 않은 아이폰

애플은 6월29일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았다. 비록 모바일 메시징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훌륭한 기업용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아이폰만의 독특한 장점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만은 사실이다.

예전에도 언급하였듯이, 아이폰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실제로 사용하기 편리한 웹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아이폰은 상하좌우 이동 기능 및 줌 기능을 통해 모바일용 또는 텍스트 형태의 웹 페이지가 아닌 컴퓨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반 웹 페이지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와이파이 모드 아이폰을 사용할 경우, 이러한 형태의 웹 페이지는 매우 훌륭한 아이폰의 장점이 된다. 그러나 일반 휴대 전화용 인터넷으로 아이폰의 기능을 즐길 경우, 그 장점은 반감된다. 아이폰은 AT&T의 보행자용 EDGE 네트워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AT&T의 3G 네트워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3G칩이 전력을 엄청 잡아먹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이는 애플의 실수였다.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능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AT&T CEO 랜달 스티븐슨은 2008년 3G 아이폰이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폰을 구매할 예정인 소비자들은 3G 아이폰이 출시되는 2008년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3. 썬, 자바 오픈 소스 개발은 이미 10년이나 늦은 듯

나는 1990년대 중반 크로스-플랫폼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자바를 소개하던 썬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 번의 작업으로 모든 곳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자랑하던 것 또한 말이다.

하지만 자바는 크로스-플랫폼이라는 이름의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개발자들은 "한 번의 작업으로 모든 곳에서 디버깅 하라" 는 슬로건을 내놓으며, 자바의 불안정성을 비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바는 기업 및 대형 웹 사이트에서 널리 사용되는 하나의 확고한 웹 기술로 자리 잡았다.

2006년 11월13일, 썬은 자바를 오픈 소스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뗐다. 2007년 8월 썬은 자바 클래스 라이브러리를 공개함으로써 자바 오픈 소스화의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매우 현명하고 인정받을만한 것이지만, 사실 5, 10년 전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현재 시점에서 자바의 오픈 소스화가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그리 크지 않다.

만약 자바가 더 일찍 오픈 소스화를 선언했더라면, 자바는 핵심 인터넷 플랫폼 표준으로 성장, 소규모 웹 서버들과 대형 웹 팜(farm)들을 하나의 웹 플랫폼으로 아우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바는 저사양 웹 개발 시장에서 PHP/아파치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루비(Ruby) 또한 점점 시장을 공략해 들어오고 있는 상태. 자바는 더 나은 표준과 최고의 라이브러리를 갖춘 가장 강력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썬이 자바를 더욱 빨리 오픈 소스화 시킨 후, 웹 플랫폼 중심의 하드웨어, 컨설팅, 및 트레이닝 부문의 사업을 더욱 강화했더라면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윈도우 비스타, 고전을 면치 못하다

윈도우 비스타는 윈도우 95 이래로 가장 활발한 홍보 활동을 펼친 덕분인지, 소비자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윈도우 비스타는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듯하다. 매우 창의적인 마케팅 기법들을 도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스타는 기업체들에 굳이 기존에 사용하던 윈도우 XP를 업그레이드 시킬 이유나 동기를 부여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애플리케이션 호환문제, 드라이브 문제, 그리고 유저 엑세스 컨트롤(User Access Control) 붕괴 등 출시 이후 등장한 악재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업그레이드를 더욱 꺼리게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출시부터 지금까지의 윈도우 비스타의 판매 실적이 윈도우 XP 출시 당시 실적보다 더 좋다고 밝히며, 윈도우 비스타의 활발한 판매가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익성 향상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자는 "2007년 윈도우 비스타의 등장에 대한 진실"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IT 컨설턴트 또는 IT 관리자들은 현재 윈도우 비스타를 외면하고 있고, 윈도우 비스타에 대한 IT 전문가들의 평가는 2007년을 지나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1. TJX, 4,500만명의 회원 기록이 해커들의 공격에 노출되었음을 밝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그리고 가장 큰 손실액을 기록할 보안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월17일 TJX는 자사 컴퓨터 시스템에 매우 치명적인 패턴의 공격이 가해져 고객 데이터들이 노출되었음을 발표했다.

TJX는 정밀 수사를 진행했고 수개월 후 정보 누설의 원인이 부실한 무선 네트워크에 있었음을 밝혀냄과 동시에, 4,570만명의 고객 계좌가 2년 사이 노출된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보안 사고로 인한 손실액은 총 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증거들이 속속 입수됨에 따라 이번 사고가 단순한 우발적인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닌, 금전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한 신개념 범죄집단의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인한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범죄자들은 은행을 턴다. 그곳이 바로 돈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유명한 도둑 윌리 서튼은 언젠가 말했다.

2007년 범죄자들은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디지털 시스템이야말로 가장 수지맞는 범행 타깃이고, 금전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돈을 훔치고 사람들의 신원을 도용할 수 있도록 치밀한 침입 시스템을 설계한 후 이를 범행에 이용하고 있다.

by 100명 2007. 12. 5. 11:02

신세계 I&C, 63억원 횡령 내부직원 등 고소

신세계 I&C의 내부 직원과 거래업체의 이사가 공모, 위조 발주서를 만들고 물품을 임의로 처분하는 등 약 63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세계 I&C는 내부 직원 김 모씨와 거래업체 김 모 이사를 위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이들은 위조 발주서를 만들어 물품을 수령한 후 임의로 처분했을뿐 아니라 물품 보관증을 허위로 작성해 자금을 융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I&C는 이들의 횡령사실이 회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by 100명 2007. 11. 19. 08:57

대우‘클라쎄’LG 특허기술 침해로 생산·판매 금지 처분

[쿠키 사회] 대우일렉트로닉스의 ‘클라쎄’ 세탁기 18개 모델이 LG전자의 ‘트롬’ 세탁기에 사용된 특허기술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생산 및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용헌)는 20일 LG전자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클라쎄 세탁기가 LG전자의 트롬 세탁기에 사용된 모터 관련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며 대우측을 상대로 낸 침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특허권과 관련한 본안 소송의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LG측이 문제삼은 기술을 적용한 클라쎄 18개 모델에 대한 생산 및 판매가 금지된다. 또 대우측의 대리점 및 창고 등에 보관된 해당 모델의 완성품과 반제품들에 대한 대우측의 점유권이 상실된다.

재판부는 “LG전자가 클라쎄에 쓰였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4개 특허기술중 하나인 ‘직결식 모터관련 기술’이 특허발명으로 인정되는데 이 기술이 클라쎄에 그대로 적용돼 특허권이 침해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LG측과 경쟁관계에 있는 대우가 클라쎄를 계속 제조 및 판매할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LG측의 피해가 예상돼 가처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직결식 모터 기술은 드럼 세탁기의 드럼 측면에 모터를 단단하게 결합시켜 세탁기의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기술이다. 드럼 세탁기는 전체 세탁기 시장의 50%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우측은 이 가운데 10∼20%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국내 전체 드럼 세탁기 판매량은 79만대였다.

by 100명 2007. 6. 20. 22:32
우리세대를 떠난 ‘인물’들(14)
독재자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1937-2006


스탈린 모방한 잔인한 독재자, 고졸 학벌의 교활한 기회주의 성격


사담 후세인의 자서전은 많이 발간되지 않지만 그는 수년간 정치학의 연구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도상국의 독재자의 한 타입으로, 30년이 넘도록 정치적 파워를 유지시켰고 스스로 파멸해 갔다.

▲ 전형적인 독재자의 길을 걸어온 사담 후세인은 교활하고 잔인한 수법으로 권력을 쥐고 많은 사람들을 처형하면서 이라크를 지배했다. 미.영연합군에 의해 체포된 그는 3년이 지난 작년 12월 3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평범하며 눈에 띄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본보기였던 스탈린은 의식적인 경쟁자 이상이었다. 그는 이미 근본, 기질, 방법까지 닮아있었다.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그는 다른 20 세기 전제 군주와는 달리 지적인 능력, 카리스마, 구세주 같은 헌신과 열정이 부족했다. 그는 단지 폭력적이고 잔인한 살인마였고 멍청하지만 교활한 기회주의자이자 회색분자였다.

사담은 그의 삼촌집에서 가까운 마을 Owja에서 태어났다. 소작인 아버지 후세인 알-마지드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떴고, 그의 어머니 사바는 세 번째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 전 자식을 돌볼 수 없었다. 의붓아버지 하산 이브라힘은 유목민의 전통에 따라 그를 엄하게 훈육했다.

징벌을 위해 막대기로 의붓 아들을 내리치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부터 후세인은 스탈린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에게 세상은 흉악하고 살아 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곳이었다. 파괴 당하기 전에 먼저 남을 파괴해야 하고 자신만을 믿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어린 시절의 고통은 그 자신뿐 아니라 전세계인을 고통으로 이끌었다. 스탈린처럼 그는 그의 감정을 냉정함의 두꺼운 벽 뒤에 숨겼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가 미워한 세상에 대한 탐욕스러운 복수심이 가득했다.

다른 아이들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 어린 사담은 쇠막대기를 기지고 다녔다. 후에 이유 없이 남을 공격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는 쇠를 뜨겁게 달궈 동물의 배를 찌르고 반을 가르기도 했다. 죽이는 행위는 친척들 사이에서 용기를 나타내는 표징과 같았다. 그는 양치기로 첫 살해를 저질렀다. 10대였던 사담은 친구들과 함께 성년의 증거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작은 마을은 20세기 독재자가 배워야 하는 모든 조건을 가르쳤다. 티크리트 마을은 수니파 무슬림의 중심지로 정통 수니파 아라비아인은 기껏해야 15% 밖에 안 되는 소수 민족이었지만 항상 이라크의 정치계를 지배해 왔다.

그는 군인이 아니었지만 나라를 장악하기 위해 티크리트인과 바트당원을 이용했다. 바티즘(Baathism)은 단일 아랍사회주의 국가를 건설을 목표로 하는 급진적 민족주의 교리이다. 광신적 애국 주의자로 5년간 투옥된 경험을 가진 삼촌의 강압에 의해 사담은 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에게 바트당은 도구에 불과했지 결코 사상의 기초는 아니었다. 그는 잔인할 뿐 아니라 극도로 기회주의적이었다. 이데올로기, 정치적 입장, 전략면에서 한쪽의 극단에서 또 다른 쪽의 극단으로 심하게 변덕을 부리기 일쑤였다.

1958년 이라크 총리의 자리에 오른 카림 카셈 장군 암살 시도에 동참하면서 사담은 본격적 활동에 들어갔다. 암살은 결국 실패했고 사담은 그 과정에서 다리에 총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영광스러운 행위라기보다 대담한 젊은 혁명가 사담에 대한 전설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1962년 이집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이로 법과 대학을 등록한 사담은 63년 바트당원에 의해 카셈정권이 타도된 이후 이라크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6개월간 정치적 혼란상태가 계속된 후 새로운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압둘 살람 아리프가 이라크의 새 지도자로 등극했다.

1964년 바트당이 권력을 잃자 사담은 다시 체포되었고 66년 옥중에서 사담은 바트당 부총재로 선출되었다. 사담은 대통령궁을 공격하는 제 1탱크에 타고 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같은 바트당원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가 이라크의 지도자로 등극하게 됐다. 사담은 ‘새 정부에서 특정 구 정권 인사들을 신속하게 축출해내는 작전의 책임자’ 였다고. 1969년 사담이 공식적으로 혁명지휘위원회(RCC)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실질적으로 알-바크르 정권내 서열 2위에 올랐다. RCC는 국내 정치 조직으로 대부분의 이라크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탱크를 몰고 들어가 정부를 전복하는 우리의 행보에 맞서는 자에게는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그는 점차적으로 군대의 힘에 의존해 갔다.

72년 사담은 이라크 내 석유회사들의 국유화 작업을 지휘했고 쿠르드족 자치법안을 고안, 실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라크 정부측이 일방적으로 실행한 이 법안에 따라 이라크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들의 자유가 상당부분 제한됐다. 쿠르드민주당(KDP)은 이 법안을 반대했고 결국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계 쿠르드족들을 상대로 잔혹한 공격을 감행했다.

1979년 오랜 기간에 걸쳐 권력을 다진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당시 알-바크르는 공식적으로 질병 때문에 하야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사담은 본인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약 4백 명의 바트당원들을 처형하며 바트당을 재정비 했다.

1980년 이라크와 이란 국경부근에서 일련의 사소한 충돌이 벌어져 결국엔 이라크 대 이란 전면전이 벌어졌다. UN에 따르면, 이라크는 81년과 84년 사이에 이란 병사들에게 화학가스와 신경가스를 살포했다고 발표했다. 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채 종결됐다. 같은 해 사담정권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군사 공격을 감행했고 화학무기 살포, 대규모 사형집행, 강제 재배치 등이 행해지면서 10여만 명이 희생됐다고 미 국무부가 발표했다. 1990년 이라크 군대가 주변국 쿠웨이트를 침공, 점령했다. 1991년 미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대를 몰아냈지만 이라크 정권교체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 사담은 휴전에 합의했고 이 협정에 따라 이라크는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 종결, 이라크 남부북부에 비행금지구역 설정, 경제제재 조치 등 다양한 조치를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받았다. 95년 UN이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이라크는 식량 및 생필품 수입을 위해 석유를 수출 할 수 있게 됐다. 사담이 다시 이라크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96년 이라크 군대는 쿠르드민주당(KDP)과 연합해 이라크 북부 비행금지구역에서 군사 작전을 개시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이라크 남부 방공시설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98년, UN은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내 화학, 생물학 무기 및 핵무기 존재 유무를 점검하는 사찰단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무기 사찰단을 이라크에서 철수시켰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군대는 4일간 공습을 감행했다. 또한 미의회는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고자 ‘이라크 해방법’을 통과시켰다. 2002년 사담과 부시 미국 대통령간의 설전이 계속돼 양국간의 군사적 대결이 발생할 처지에 놓였고 부시는 그 해 1월 연두교서에서 이란, 북한과 더불어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공공연히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한편 사담은 부시의 정책을 비난하고 10월 연설문에서 “피는 더 많은 피를 부를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의 붙잡음과 그의 실행 사이에서 어제 통과되는 3 년. 정보 소식통, 미군에서 내보를 따르는 2003년 12월에서는 그를 그의 생활이 시작되었었던 Tikrit의 가까이에 농장에 지하 피난에서 숨기는 찾아냈다. 그가 이라크 구금으로 옮겨지기 전에 내년의 중앙이었다, 7월 2004일에서 전직 대통령은 형사 입건을 듣는 법정에서 것처럼 보였다. 실행이 1982년에 Dujail의 Shia 작은 도시에 있는 대학살과 관련있을 조사로 진행하게 준비되어 있을 전에 통과되는 다른 년. 2005년 10월에서 열린 마지막에 예심 및 절차는 즉시 연기되었다. 2 달 더 이른 그의 법적인 팀을 자루에 넣었었던, 사담은 순결을 변론했다. Anfal 1988년 캠페인에 관하여 전쟁 범죄 책임에 두번째 예심은 8월 21일에 올해에 열었다. 그는 청원을 제출하는 것을 사절하고, 그의 더 이른 외관을 법정에서 성격을 나타낸, 까만 익살극의 에피소드는 법원에서 그의 중지 및 4 시간 그 분출하기 때문에 그의 마이크의 재판관 엇바꾸기와 더불어, 재발했다. 예심은 10월 11일에 연기되었다, 그러나 11월 5일에 법원은 유죄 평결의 아래 수교하고 죽음에 걸어서 사담을 선고했다.

1937년 4월28일 이라크 작은 마을 Owja 출생
2006년 12월30일 바그다드에서 사형집행(향년 69세)
유가족 부인 사이다, 아들 우데이와 쿠세이(2003년 미군에 의해 사망), 딸 세 명.

by 100명 2007. 5. 22. 07:49

브랜드 네임의 성공과 실패 사례


브랜드 네임을 훌륭하게 개발 완료후의 마케팅 시장 및 여러 환경의 변화로 개발된 브랜드 네임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실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는 브랜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브랜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자 지금부터 브랜드 네임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하여 브랜드의 성공 실패의 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부정연상 및 세계화에 부적절한 브랜드 네임으로 실패 사례

브랜드 네임 개발 시 글로벌 시장 진출을 하는 업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부정연상이다. 각 나라별로 언어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개발이 된 브랜드 네임은 부정연상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어민의 관여하여 부정연상에서 오는 위험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SK… (구)선경그룹은 영문표기에서 곤혹을 치렀다. ‘Sunk Young’의 발음이 ‘가라앉다, 타락하다, 젊은이…’ 등등의 부정연상이 되어 퇴폐집단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연상과 해석으로 인해 선경은 영문 이니셜 ‘SK’를 탄생 시켰다.


한화그룹… (구)한국 화학 그룹은 회사 명칭의 영어표기를 “Korea Explosive Group’으로 표기 한 부분이 외국인들에게는 “한국폭파테러집단” 또는 ‘화약 전문 제조회사’로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오해를 줄 수 있어 회사의 상호를 “한화”로 다시 개발 하였다.


제일제당… (구)제일제당의 영문 표기는 ‘Cheil Sugar & Corporation’이다. 제일의 영문 발음은 ‘감옥, 죄수’ 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 ‘Jaii’를 연상케 한다. 또한 ‘sugar’는 제당업계를 표현한 것이지만, 사탕수수농장의 ‘노예, 사양 산업, 공해산업, 당뇨병’ 등이 연상되기도 하기 때문에 제일제당은 영문 명칭을 포괄적인 명칭인 ‘Cheil Food & Chemicals’로 변경하였다. CJ 39쇼핑의 인수를 계기로 브랜드 아이덴티티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CJ’로 다시 태어났다.


LG… 과거 LG전자의 전신인 ‘(구)GOLD STAR’는 삼성의 TV 브랜드와 더불어 국내 TV 시장을 양분한다. 골드스타 브랜드만으로도 국내 TV 시장에서의 판매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으나 해외 수출 판로에는 ‘Gold Star’라는 영문 표기가 큰 장애가 되었다. 또한, ‘금성’의 소리 나는 한글 표기는 외국인들에게 의미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현재의 영문표기 ‘LG’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BIF… (구)보르네오 가구는 가구업체로서는 유명하다. 보르네오 가구가 해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처음 바이어들은 ‘Made In Indonesia’로 오해했다. 물론, 보르네오에서는 ‘보르네오’ 섬의 원목을 사용했다는 제품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보르네오가 인도네시아의 섬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보르네오는 ‘BIF’로 다시 태어났지만 보르네오 가구의 전 세계적 명성 이유로 쉽사리 보르네오 상호를 기각시키지 못하고 ‘보르네오’와 ‘BIF’를 같이 사용하는 브랜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브랜드 네임을 변경 후에 성공 사례


아가방… 아가방은 국내 유아용품 시장에서 선두업체이다. 아가방의 전신은 ‘보라유통산업’이다. 그 사명에서 유야용품 판매 회사임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유아용품 업체임을 인지 및 발음이 용이한 ‘아가방’이 탄생 한 것이다. 작은 유아용품 업체에서 브랜드 네임의 변경 후에 유아용품의 1인자가 된 것이다.


대상그룹, 청정원… 유기농법, 친환경 식품의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 화학조미료 성분 ‘MSG’를 이용하여 조미료를 제조하는 ‘미원’은 소비자들의 반응에 민감했다. 미원은 화학조미료 회사 미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동시에 자연 조미료 및 식품을 개발하려면 개별 브랜드 네임이 필요로 하였다. 이 기회에 미원은 그룹의 상호도 ‘대상’으로 변경하고 패밀리 브랜드 ‘청정원’을 개발하여 사용 하였다.

이에 화학조미료의 대명사인 미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한 일련의 노력으로 지금도 조미료 시장에서 선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레스포… 삼천리 자전거는 국내 최고의 자전거 제조업체이다. 현재 자전거 시장은 레저용품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과거에는 교통수단의 성격이 더 강하였다. 레저 스포츠의 발달로 레저 용품 시장으로서의 신규 사업 진입 시 ‘삼천리’ 브랜드 네임에서 오는 제품의 한정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다. 교통수단에서 벗어나 레저용품으로 거듭난 자전거 수요의 변동이 있다고 판단한 회사는 브랜드 네임을 ‘LESPO(레스포)’로 탄생시켰다. 현재 많은 소비자들은 과거의 삼천리 자전거보다는 종합 스포츠 레저용품의 대명사 ‘레스포’를 인식하고 있고 많은 소비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by 100명 2007. 1. 16. 09:11
아이튠즈 DRM 공개법으로 프랑스가 남긴 교훈「바람직한 DRM은?」
[ZDNet Korea 2006-07-28 08:00]

프랑스에서는 최근 온라인 뮤직 서비스로 다운로드되는 음악이 어느 MP3 플레이어에서도 재생 가능해야 한다고 하는 엄중한 호환성을 요구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그러나, 마치 프랑스의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와 같이 일견 잘 될 것 같았던 이 제안도 다양한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모든 것은 수개월 전에 프랑스 하원 법안이 통과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 법안은 간단하게 말하면, 프랑스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MS)에서 구입한 음악을 모든 MP3 플레이어상에서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마음에 드는 세르쥬 갱즈부르의 곡을 아이튠즈로 구입해도 재생하려면 아이팟, 아이튠즈, 혹은 아이튠즈로 작성한 CD가 필요하다. MP3 플레이어가 내장된 휴대전화를 구입해도 아이튠즈로 다운로드한 음악은 재생할 수 없다. 만일 아이팟의 인기가 없어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면, 구입한 갱즈부르의 곡은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된다. 프랑스의 의원들이나 소비자 그룹은 이러한 제약을 바꾸기 위해 법제화를 요구했던 것이다.

애플 '차라리 프랑스 시장에서 철수하겠다'

이 법안은 모든 온라인 뮤직 스토어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만, 애플컴퓨터가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표적이 된 것이다. 애플은 이 법안에 따르느니 프랑스의 iTMS를 폐쇄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격렬한 논의 끝에 법안의 내용은 큰폭으로 수정돼 7월 7일에 가결된 안에서는, 온라인 뮤직 스토어에 음악을 제공하는 레코드 회사나 아티스트가 승낙하면, 다운로드 음악의 호환성 보증 의무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바뀌었다. 결국은 프랑스의 관료들의 중개로 조정안이 작성될 것이다.

애플은 수정안에 대해서도 여전히 불만을 갖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프랑스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 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엄격한 호환성을 요구하는 음악을 iTMS의 진열대 안쪽으로 쫓아버리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법률에 대해 레코드 회사, 온라인 뮤직 스토어, 관료의 세력 다툼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아직은 갱즈부르의 'Les Incorruptibles'를 휴대전화로 들을 수 없다.

조금 기다려 달라! 이 방법도 별로 좋지는 않다.

디지털 저작권 보호 시스템의 발전

우선, 법제화하더라고 기술적으로 변화가 심한 분야를 자세한 것까지 규정하지 못할 것이고, 곧바로 시대에 뒤떨어져 버릴 것은 뻔하다. 비록 지금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제품이어도 몇 년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1990년대의 컴퓨서브나 AOL 등의 PC 통신 서비스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또한 다양한 플레이어와 호환되지 않는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탑재 형식이 혼재하는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 등장할 가능성은 많다. 이 솔루션은 프랑스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 아니 그 이상을 실현해 줄 것이다. 기기가 아니라 개인을 인증하는 시장에 근거한 디지털 저작권 보호 시스템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라면 소비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로 재생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저작권 보호 시스템의 이점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관료들의 중개는 필요없다. 즉, 영화나 노래, 사진을 온라인으로 배포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러한 콘텐츠의 배포 룰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유투브, 사진 공유 사이트, 개인 블로그 등 참가형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지금, 이 구조가 실현되면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DRM은 악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나 개인 프로그래머가 개방형 미디어 공유(Open Media Commons)라는 저작권 관리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는 콘텐츠 작성자의 권리와 콘텐츠 구입자의 이익 사이에서 공정한 조화를 잡는 DRM 시스템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과는 반대로, DRM은 모두 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아마 있을 것이다. 그 것은 단순하고 알기 쉽지만 공감할 수는 없다. 결국 DRM은 사용법은 잘못돼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고, 소유 콘텐츠의 이용 방법에 대해서 소비자의 혼란을 부르는 룰을 작성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제의 발단도 DRM는 악이라는 결정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DRM도 피할 수 없다. 콘텐츠 기업이 DRM을 직접 필요로 하지 않다고 해도, 정부는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어리석게도 DRM 해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타국과 협력해 각 기기마다 실장된 고유의 DRM을 대체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 투명성 높고 안전한 구조를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콘텐츠의 이용을 엄중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한 열쇠를 배포하고, 모든 기기로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다운로드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구조를 실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휴가 기간 중에만 샤키라의 앨범을 들을 권리를 구입할 수 있는 저작권 보호 시스템이 있으면 훌륭하다. 긴급 치료실의 의사가 전자 진료기록카드를 안전하게 체크할 수 있는 콘텐츠 보호 시스템도 필수다.

프랑스는 DRM을 법률로써 강제적으로 해제하려고 해 실패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프랑스의 실패로부터 배우고, 저작권의 보호를 소비자의 손에 맡기는 시스템의 실현에 주력 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고품질의 아이튠즈 서비스와 스스로 구입한 소중한 아이팟을 함께 사용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웹과 같은 개방적인 플랫폼이 출현하면서 소비자들은 정치가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머지않아 폐쇄적인 시스템에 등을 돌리지 않을까.

by 100명 2006. 7. 29. 21:25

''한누리 1호'' 위성발사 실패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팀이 제작한 초소형 인공위성 ‘한누리 1호’(HAUSAT-1·사진)가 발사에 실패했다.

27일 장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 발사체 ‘디네프르’(Dnepr)는 벨로루시의 인공위성 ‘벨카’(BELKA)와 한누리 1호 등 한국, 미국, 일본, 노르웨이 대학 및 공공기관의 초소형 인공위성 14개를 싣고 이날 오전 4시43분(한국시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쏘아올려졌으나 1분가량 뒤 발사장 남쪽 25㎞ 지점에 추락했다. 이로 인해 디네프르에 실린 한누리 1호 등 초소형 인공위성도 모두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네프르는 러시아의 ISC 코스모트라스사가 개발한 것으로, 당초 대륙간 미사일 발사용으로 만들어졌으나 군축과정에서 인공위성 발사용으로 개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측은 발사 실패 원인에 대해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발사체 결함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by 100명 2006. 7. 29. 20:29
왜 아이러브스쿨은 잊혀졌는가?


시대의 흐름을 놓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터넷 인적 커뮤니티의 변화는 동창 찾기라는 사회 트렌드가 점차 시들해져 가고 경쟁업체들이 개인 블로그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하는 시대로 가고 있었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어느 정도의 붐이 일어나면 반드시 식어버리고 대체 상품이 등장하는 사회 문화적 추세를 고려했을 때 아이러브스쿨의 경우는 큰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한 추세에 발빠르게 대응하여 아이러브스쿨의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개인 사용자 중심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이러브스쿨만이 가진 동창에 대한 컨텐츠를 충분히 독창적으로 활용하였다면 현재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아이러브스쿨도 뒤늦게나마 블로그를 도입하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따라가기에 급급한 전략이어서 이미 타 업체에 시장을 선점 당해 버렸기에 그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네티즌들이 프리첼이나 싸이월드의 커뮤니티와 미니홈피 등으로 이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 독창적인 리뉴얼이 반드시 필요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사이트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네티즌들의 새로운 관심을 끌 수 있는 동창 관련 컨텐츠에 집중하였다면 2000년만큼은 아닐지라도 동창 사이트로서의 확실한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만날 사람은 다 만났고, 찾고 싶은 사람을 찾고 나니 또 다른 욕구가 생겼는데 서비스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회사측 자체 결론 역시 이를 뒷받침 한다.



하지만 아이러브스쿨은 이미 확보한 거대한 고객수를 바탕으로 단기적인 수익사업에만 집착하는 등 일종의 따라하기 전략을 구사했으며, 결과적으로 사이트가 발전할 수 있는 큰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정체성을 잃은 사이트 운영


아이러브스쿨은 회원수가 증가율이 둔화되고 인기가 식어가자 초반의 동창 사이트라는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식 컨텐츠를 개설하기에 이른다. 종합 포털 사이트로서의 전반적인 리뉴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하게 포털 사이트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아이템을 뒤쫓아가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아이러브스쿨과 관련이 있을 법한 컨텐츠를 나름대로 내 놓았으나 그 역시 핵심적인 사이트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대표적으로 예로 임신/육아와 관련된 컨텐츠를 신설하고 심지어는 결혼 미팅 sector까지 추가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동창회 사이트인지, 종합 결혼/부인생활 정보 사이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일관성 없는 컨텐츠의 다양화와 확장을 시도하면서 유저들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회원자녀를 위한 교육서비스 실패를 들 수 있다. 이는 아이러브스쿨의 회원들의 사이트에 대한 충성도가 그들의 자녀들에게 승계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밖에 취업정보라던가, 대입상담, 게임과 운세 등 조금만 인기가 있는 컨텐츠다 싶으면 바로바로 뛰어들었지만 후발 주자로서 수익성을 얻은 것보다는 아이러브스쿨의 브랜드 정체성을 악화시켰고, 좋은 일을 한다는 취지로 추진한 ‘미아찾기 캠페인’ 등 공익사업 역시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발적으로 추진한 전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상의 모든 것들이 아이러브스쿨의 초창기 모습에서 훨씬 벗어나 있으며 동창 사이트도 아닌, 그렇다고 종합 포털 사이트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셔닝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던 것이다.

by 100명 2005. 2. 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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