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13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 인근 회센터가 텅 비어 있다.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고객이 끊기다시피 했다(왼쪽). 부산 민락동 선착장은 어선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고기잡이를 포기한 어선들이다. > > 동영상은 joongang.co.kr [인천=안성식 기자, 부산=송봉근 기자]

금요일인 지난 11일 오후 7시30분 인천시 항동 연안부두 횟집거리 일대. 얼마 전 같으면 주말 휴일을 앞두고 서울과 수도권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거릴 시간이건만 수십 곳 늘어선 횟집들은 텅 비어 있었다. 절반은 손님이 아예 없었고, 나머지도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몇 안 되는 손님조차 금세 자리를 떴다. 한 횟집에서 일행 3명과 모둠회 한 접시를 먹은 뒤 30여 분 만에 일어난 김홍규(60)씨는 "손님이 우리 팀밖에 없다 보니 분위기가 썰렁해 회를 즐기며 얘기를 나눌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후 10시가 되자 대부분의 횟집이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금·토요일이면 밤 12시 넘어서까지 영업을 하던 얼마 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서 광주회집을 운영하는 정경숙(57·여)씨는 "오늘 하루 종일 세 팀밖에 못 받았다"며 "매상이 예전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장사가 안 돼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들끼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 6시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밀레니엄 회센터. 횟감을 파는 가게 30여 곳이 모인 이곳 역시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주인 없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손님이 오지 않아 주인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함양상회를 운영하는 김갑자(59·여)씨는 "어제는 전어 1㎏을 판 게 전부고, 오늘도 한두 손님밖에 없었다"며 "오늘 이 시간까지 마수걸이를 못한 집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근처 민락동 수협위판장 부둣가에서는 활어 도매상 천근수(63)씨가 점원 한 명과 함께 대형 수조에서 뜰채로 연신 죽은 물고기를 건져냈다. 그는 "횟집들이 장사가 안 된다며 사 가지 않아 보관만 하다가 생선을 죽여 내보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종업원들 일자리 잃고, 식자재상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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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오염수 유출소식에서 비롯된 수산물 오염 우려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달 초 방사능이 기준치의 2만 배를 넘는 오염수가 유출됐다고 일본 도쿄전력이 발표하는 등 소비자를 불안케 하는 소식이 끊이지 않아서다. 횟집은 손님 얼굴을 보기 어렵게 됐다. 그러면서 횟감을 공급하는 도매상이 타격을 받았고, 어민들은 일손을 놨다. 횟집에 곁들이 찬거리를 공급하는 식자재상 역시 전전긍긍이다.

 견디다 못한 횟집들은 인력을 줄이고 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횟집거리 주인들은 "상당수 점포가 4~5명이던 직원을 1~2명만 남겼다"고 말했다. 인천 연안부두의 한 노래방 주인은 "횟집이 텅 비자 노래방 손님도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이 지역 주점들도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불꽃축제 특수마저 사라질까 우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일대 상인들은 수산물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부산불꽃축제'(10월 25~26일) 특수마저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 매년 10월 말 광안대교 일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는 이 지역 매상을 가장 많이 올려 주는 행사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이철욱 민락회촌상가번영회장은 "예년에는 9월이면 우리 가게처럼 광안대교가 보이는 횟집은 예약이 끝났다"며 "그러나 올해는 대부분의 횟집이 한두 건 예약에 그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수산물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지역 경제가 흔들릴 지경"이라며 탄식했다.

 소비가 줄어 생선값은 뚝 떨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품 1㎏에 4350원이던 고등어 전국 평균 도매가는 최근 2880원으로 3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오징어는 31%, 갈치는 20% 값이 떨어졌다. 수산물 값이 폭락하면서 어민들은 고기잡이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잡아다 팔아 봐야 배 기름값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13일 부산 민락동 선착장은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은 어선들로 가득했다. 김수환(68) 민락어촌계장은 "잡아 와도 안 팔려 200여 척의 어선이 거의 조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횟집과 수산업 종사자들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국산은 안전하다'며 메뉴에 횟감 원산지 표기를 해 놓아도 가게에 와서 메뉴를 들춰 보는 고객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연안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방사능 오염 우려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선 후쿠시마 바닷물은 한반도 근해로 오지 않고 대부분 하와이 쪽으로 흘러간다. 또 부경대 장영수 수산과학대학장은 "국내 물고기들은 일본으로 가지 않고, 일본 물고기도 한국에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수산물 방사능 검사에서 아직 기준치 이상 방사능이 나온 적도 없다.

 그래도 소비자 불안은 여전하다. 이로 인해 어부에서 횟집, 주변 상권에 이르기까지 모두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지난달 노량진수산시장과 서울역 등지에서 "우리 수산물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행사를 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해수부 관계자는 "수산물 외면은 순전히 소비자들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방사능 검사를 철저히 하고 과학적으로 우리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것 말고는 정부가 취할 수단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범정부 차원 수산물 안전성 홍보 필요

 수산업 종사자들은 "대책을 마련하려는 정부 의지가 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수산물 도매업체인 인천 막내수산 이승부(61)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수산물 공급·유통사업자들이 무너질 수 있다"며 "이들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사업자금을 긴급 지원하고, 한편으로 해수부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수산물 안전성 알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by 100명 2013. 10. 14. 08:20


내달 돌아오는 만기 채무 4200억원

금감원이 23일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로 동양증권에 대해 점검에 들어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을지로 동양 사옥. [오종택 기자]

기대했던 '추석 선물'은 없었다. 오리온그룹은 23일 오전 자금난을 겪고 있는 동양그룹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오리온그룹과 (담철곤 회장, 이화경 부회장 등) 대주주들은 동양그룹에 대한 지원 의사가 없으며 추후에도 지원 계획이 없다”는 두 줄짜리 보도자료를 통해서였다.

 지난 9일 뿌리가 같은 오리온에 '지원 신호'를 보낸 지 2주일 만에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다. 현재현(64) 동양 회장은 손아래 동서인 담철곤(58) 오리온 회장 측에 오너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었다. 두 사람은 고(故)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사위다. 동양은 1957년 동양시멘트를 모태로 설립돼 건설·금융·레저·제과 등으로 사업을 키웠고, 오리온은 2011년 계열 분리됐다.

추석 때 가족들 모여 논의했지만

 고 이양구 회장의 부인인 이관희(84) 서남재단 이사장은 추석 연휴 중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이혜경(61) 동양 부회장과 이화경(57) 오리온 부회장 자매 가족과 함께 동양그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오리온 주식 2.66%(1600억원 상당)를 동양네트웍스에 무상대여 형태로 지원한 상태였다.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동양의 채무는 회사채 2250억원, 기업어음(CP) 7870억원, 전자단기사채 2560억원 등 총 1조2680억원이다. 다음 달에만 4200억원을 막아야 한다.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는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아 다음 달 말부터는 계열 금융사인 동양증권을 통한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그룹 안팎에서 '10월 위기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화경 부회장 등이 보유한 오리온 지분 14.49%(8000억원 상당)를 담보로 동양이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 신용을 보강(보증)해 달라는 것이 동양 측의 구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리온 담보 댔다간 경영권 위협

 핏줄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하기엔 담 회장 일가도 난감한 처지였다. 지분을 담보로 내놨다가 회사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정성훈 교보증권 연구원은 “주식 담보 대출을 빼고 담 회장 일가가 담보 가능한 주식은 120만9269주(20.26%)”라며 “오리온에 심각한 경영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오리온이 그룹 차원에서 동양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계열 분리가 끝난 마당에 담 회장 등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어서다.

담 회장 부부는 이날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가슴에 평생 안고 갈 빚이 될 것이고, 어떤 비난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경영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독립 경영을 위해 (지원 불가) 결정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동양과 동양네트웍스·동양시멘트 등 주요 계열사는 이날 주식시장에서 하한가로 마감했다. 금융당국은 동양그룹에 대한 자산 건전성 점검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을 통한 동양그룹 회사채·CP 투자자는 4만9000여 명이며, 대부분 개인투자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발행 금리는 연 7~7.9%로 정기예금 평균(연 2.75%)의 3배 수준이었다.

동양그룹 계열사 줄줄이 하한가


 다만 금감원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 약정 녹취록을 조사한 바로는 판매 때 투자자에게 동양의 신용등급과 재무상황이 안 좋다는 걸 알려줘 불완전 판매라고 보기 어렵다”며 “확실한 결론은 점검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 은행들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그룹의 채무는 대부분이 회사채나 CP이고, 아직 채권 만기 상환을 못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38위(공기업 제외)인 동양이 위기에 몰린 것은 주력인 건설·시멘트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부터다. 자원개발 업체인 골든오일, 한일합섬 등을 인수했지만 이들도 동반 부진에 허덕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3분기 680%였던 그룹의 부채비율이 1년 만에 1200%를 넘어섰다.

삼척 화력발전소 지분 매각 추진

 현 회장은 지난해 말 경영개선 로드맵을 내놨다. 제2의 창업까지 거론하며 “금융 빼고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팔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2013년 상반기까지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2조원대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였다. 지난 9개월간 동양은 레미콘 공장과 선박, 폐열 발전소, 오리온 주식 등을 처분해 5000억원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회생 관건도 속도다. 현재로선 동양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안은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 현금을 손에 쥐는 것뿐이다. 동양은 '성장엔진'으로 삼고 있는 삼척 화력발전소(동양파워)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동양매직과 레미콘 공장 추가 매각 등을 더해 1조원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동양 관계자는 “유동성 확보를 위한 가능한 모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9. 24. 07:31

[경인방송 조현진 기자]

(앵커)

대기업 KT가 빈 사무실을 세놓는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KT 건물에 세든 영세업체에 '임대료 폭탄'을 부과해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갑의 횡포', KT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현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KT 인천 연수지점 건물에 세들어 카드결제단말기 설치 영업소를 운영하는 A 밴사.

2006년부터 8년 넘도록 3층 사무실 약 200㎡를 빌려쓰고 있습니다.

월 임대료는 130만 원.

다음 달(10월)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둔 A 밴사는 건물주인 KT로부터 황당한 공문을 받았습니다.

임대면적 중 약 80㎡가 그 동안 누락됐으니

계약을 갱신하려면 두 배 많은 270만 원을 내라는 겁니다.

'임대료 폭탄' 통보를 받은 임차업체는 울며 겨자먹기로

재개약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오갈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A 밴사 대표 이 모(49) 씨]

"그냥 나가라는 거에요. 갈 데가 없잖아요. 나가라는데. 자기네들이 정상적으로 받는 거고 법적 검토 끝내고 받는 거라고 하기 때문에..."

재계약 조건이 갑자기 달라진 건 지난 해 말 KT 인천자산센터가 설립됐기 때문입니다.

KT 자산센터는 지점 건물의 임대관리를 전담하는 조직입니다.

통신업만 해온 KT가 임대사업에 뛰어들면서

간과했던 부분을 바로잡다 보니 생긴 잡음이라고 KT 측은 반박합니다.

[인터뷰/KT 인천자산센터 관계자]

"이번에 계산을 하다보니까 누락된 면적을 현실화를 시킨 거죠. 예전에 비해서..."

임대사업에서마저 수익 올리기에 급급한 대기업.

임차인들은 "힘 없는 영세기업에게 부리는 '갑의 횡포'"라며 울분을 토합니다.

경인방송 조현진입니다.

by 100명 2013. 9. 11. 07:20

고대 성서(AP=연합뉴스 자료사진)

(애틀랜타=연합뉴스) 김재현 특파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을 위한 여론몰이에 총력전을 펴는 가운데 미국에서 때아닌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이 시리아 현 정권 붕괴는 물론 서방의 멸망, 나아가 인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종말론의 근거가 되는 대목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이 담긴 이사야서 17장이다.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다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의 예언서 17장에 "보라, 다마스쿠스는 이제 성읍이 아니라 폐허더미가 되리라"(1절), "그날 사람들은 창조주를 바라보리라"(7절)라고 적었다.

또 "수많은 민족과 사람들이 성난 바다처럼 포효하고 떨쳐 일어나지만 주께서 꾸짖어 폭풍 앞의 방랑초처럼 쫓겨나 흩어지리라"(12장~13장), "저녁때에 공포가 엄습하고 아침이 되기 전 그 민족들은 사라지고 없으리. 이것이 약탈하는 자들의 운명이다"(14장)라고 썼다.

그의 예언을 시리아 현 상황에 적용하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가 미국의 공습을 받고 잿더미로 변하지만 시리아를 공격한 미국 등 서방 세계도 신의 응징으로 멸망을 면치 못한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 연장선에서 시리아 공습을 인류 종말에 벌어질 전쟁, 즉 아마겟돈의 시작으로 보는 해석도 나오면서 '말세'의 우려를 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시리아의 긴장 고조로 예언서 판매가 늘고 있다고 유력 일간지인 USA투데이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인터넷에서는 구약성경 구절을 중동의 상황과 결부시키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점치는 예언서와 목회자들의 설교가 관심을 끌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도 "예언된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다"는 한 블로거의 주장을 전하는 등 다른 유력 매체도 시리아에 관한 구약의 예언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의 성회'의 개리 크리스토파로 목사는 일간 플로리다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시리아 사태가 예언서와 관련해 우리가 지금 실제 목도하는 상황일 수 있지만 그런 가정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성경 해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약은 예수 탄생을 예언한 것이기에 시리아 사태를 들어 종말을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에 따르면 무디신학교의 찰리 다이어 교수는 "다마스쿠스는 이사야서 예언대로 기원전 7, 8세기에 파괴됐다"며 "그로부터 100년 후 예레미야 선지자도 다마스쿠스의 몰락을 예언했지만 이는 바벨론 왕에 의해 성취됐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9. 10. 15:41

"새하얀 모시 적삼에 붉은 점을 찍은 것 같은 고운 자태"

"붉은점모시나비"의 이름에 담긴 의미다. 그러나 같은 나비를 보고도 서양에서는 다른 이름을 생각해 냈다. "Apollo Butterfly"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인 아폴로(Apollo)에서 따온 것인데 반투명한 흰색 날개 위의 붉은 점을 보고 태양을 떠올린 듯싶다.

"태양 나비" "강렬한 붉은색" 이름의 어감과 빛깔의 분위기 탓에 무더운 기후를 좋아할 것 같지만, 그런 선입견과 달리 이 나비는 추운 곳을 선호하는 한지성(寒地性) 곤충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추위를 견디는 능력만 놓고 본다면 감히 신(神의) 이름을 사용해도 불경스럽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자세한 생활사와 생체능력은 최근에야 부분적으로 자세히 밝혀지고 있다.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라는 민간 곤충연구소가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 7년째 붉은점모시나비의 증식 연구를 진행하면서 밝혀낸 사실들은 매우 특이하고 놀랍다.

붉은점모시나비는 5월에 교미하고 6월 전후로 산란을 마치고 죽어 버린다. 여느 나비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후부터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나비는 얼마 후 알에서 깨어나 다시 애벌레-번데기-성충의 단계를 거치면서 1년에 몇 번씩 번식하지만 붉은점모시나비는 6개월 이상 알 상태로 있으면서 초겨울을 맞이한다. 이후 겨울이 깊어가는 12월에 부화해 애벌레 상태로 한겨울을 맞이한다. 추위에 맞서면서도 조금씩 성장해 늦은 봄 번데기를 거쳐 5월 중.하순 성충으로 부화하는데 알에서 다시 알 상태로 한살이 하는데 꼬박 1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다. 호랑나비가 1년에 3번, 배추흰나비가 4~5번 번식하는 것에 비하면 더뎌도 너~무 더딘 편이다.

번데기나 알 상태로 겨울을 나는 일반 나비와 달리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추위에 견디는 능력은 탁월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홀로세생태보전연구소가 연구한 결과 알 상태로는 영하 47.2도까지 견디고 1령의 애벌레상태로도 영하 35도의 강추위에도 살아남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밤나방이 영하 12~13도, 배추좀나방이 영하 7~8도를 견디는 것에 비하면 가히 놀랄만한 능력이다.

추위에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건 이 나비가 가지고 있는 내동결(Antifreezing) 물질 때문이다. 보통의 곤충이 기껏 1~2종만 가진 것에 반해 이 나비에게는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4종류의 내동결 물질이 있다고 한다. 추위에 견디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다른 나비와 달리 1년에 1번만 번식하는 게 아닌가 추정된다.

이 나비의 독특한 생태는 먹이활동에서도 확인된다. 애벌레 단계에서는 "기린초"라는 식물만 먹고 자란다. 그런데 성충이 되면 먹이 식물이 바뀌어서 "엉겅퀴"나 "쥐오줌풀" 같은 식물의 꿀을 빨아 먹고 산다. 이 때문에 먹이식물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 이 나비의 생존이 좌우되곤 한다.

1년에 1번밖에 번식하지 못하는데다 특이한 먹이 습성,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이 나비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멸종위기종으로 귀하게 대접받고 있다. 게다가 추위에 견디는 탁월한 능력이 오히려 최근에 진행되는 지구온난화에 더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폭넓게 분포하던 붉은점모시나비는 지난 2002년에 단 10곳에서만 관찰되었고, 다시 9년 뒤인 2011년엔 단 3곳에서만 확인됐다. 기후 온난화도 문제지만 인간에 의한 희생이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개설과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됐고, 아름답고 귀한 만큼 과도한 채집이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나비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이 나비에 대한 표본 수요가 많아 불법 채집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나비 날개의 붉은 점이 일본 국기의 태양을 연상시킨다며 일본인들이 더 이 나비에 집착한다고 한다.

현재 남한에서 이 나비의 최대 서식지는 강원도 삼척이다. 지난 2002년 처음 이 서식지가 확인됐는데 2004년 모니터링 결과 316개체가 확인됐다. 그러나 이곳에 붉은점모시나비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개체 수는 해마다 줄어들었다. 2007년엔 153마리, 2009년엔 80마리, 급기야 2010년엔 31마리까지 급감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이곳의 개체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병행했다. 우선 서식지 환경을 개선했는데 주변 토지를 임차해 농약이 살포되지 않게 하고 애벌레 먹이식물인 기린초와 성충의 먹이식물인 엉겅퀴를 대량으로 식재하고 관리했다. 동시에 인공으로 증식시킨 나비를 해마다 방사했다. 2011년에 암수 10쌍, 2012년 암수 20쌍, 그리고 올해는 암수 30쌍을 이곳에 풀어줬다. 나비 불법 채집을 막기 위해 감시 초소를 설치하고 감시 인력도 배치했다.

다행히 노력의 결과로 줄었던 개체 수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39마리, 올해는 168마리까지 이곳에서 관찰됐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이 사업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 강원도내 다른 지역까지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보다 다양한 서식지가 확보돼야 이 나비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동안의 연구로 인공증식 방법도 알아냈고, 서식지 환경 개선 사업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추가 사업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인간의 욕심이다. 일부 탐욕스런 사람들의 불법 채집을 막지 못한다면 아무리 개체수를 많이 늘여도 멸종 위기의 꼬리표는 떼기 어려울 것이다. 여린 생명체로 영하 30-40도의 추위도 충분히 이겨내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 인간의 탐욕은 한겨울의 그 매서운 혹한보다 더 가혹한가 보다.

by 100명 2013. 6. 13. 07:29



▲ 학원이 빼앗은 꿈

[엑스포츠뉴스=대중문화부] '학원이 빼앗은 꿈'사진이 공개됐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학원이 빼앗은 꿈'란 제목으로 사진 한 장이 게재됐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한 초등학생이 '내가 가 보고 싶은 곳과 그 곳에 가 보고 싶은 까닭을 이곳에 글로 쓰세요'라는 질문에 답을 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학생은 '저는 우주를 보고싶지만, 하지만 전 못 갑니다. 왜냐하면 영어도 가야 되고 피아노도 가야 되고 미술도 가야 되요. 그리고 우주선도 없고 그래서 못 갑니다"라고 답했다.

우주에 가고 싶어도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한창 상상하며 꿈 꿀 나이에 학원에 가야 한다는 현실에 적응한 초등학생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by 100명 2013. 5. 28. 07:32


ㆍ아베 집권 후 더 깊어지는 본토와의 갈등

일본의 남쪽 끝에 위치한 오키나와(繩沖)와 일본 본토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간의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사고가 잦은 미군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 배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주권회복 기념일’ 개최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중·일 갈등 영향으로 미국 의존 심리가 높아지면서 본토의 우익들은 ‘매국노’ 등 거친 언사를 써가며 ‘오키나와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열패감에 빠진 오키나와 현지에선 ‘독립론’이 불거지고 있으며, 깊어진 갈등의 틈을 타고 중국이 오키나와 영유권을 거론하는 심상치 않은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익 월간지 ‘세이론(正論)’은 최근호(6월호)에서 ‘미·일동맹의 적을 용서하지 말라’는 제목의 오키나와 특집기사를 실었다. 후텐마(普天間) 등 오키나와 미군기지 일대에서 벌어지는 반대운동이 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과 공갈 수준으로 과격한 데다 현지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반미’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후텐마 기지 게이트 앞에서 연일 기지 반대 활동가들이 메가폰으로 미군 승용차에 고함을 지르거나, 아예 차 유리창 안으로 메가폰을 집어넣고 협박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사고가 잦은 미군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에 대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자체 조사를 통해 벽신문을 제작하도록 한 중학교 수업을 소개하며 “의무교육 현장에서 소름끼치는 (반미) 세뇌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본토 우익들의 시선은 아베 정권 등장 이후 더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 1월27일 도쿄 긴자에서 열린 미군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 배치 반대집회에 참석한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우익단체 회원들은 “매국노” “일본에서 꺼지라”고 고함을 쏟아냈다. 중·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미집회를 여는 것은 미·일동맹에 찬물을 끼얹는 매국행위라는 논리다. 우익들이 모여드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오키나와의 좌익들이 중국의 공작원이며 중국 정부로부터 활동자금을 받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비방이 쏟아지고 있다.

제주도보다 조금 큰 2276.49㎢에 140만명이 거주하는 오키나와는 메이지(明治) 시대인 1879년 일본에 병합됐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지상전을 치르면서 10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종전 후엔 일본 본토를 대신해 1972년까지 미군정의 지배를 받았고, 전체 주일 미군기지의 74%가 배치돼 있다.

전후 질서의 모순이 집약된 오키나와에 대해 과거 일본인들의 시선에는 온기가 있었으나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냉랭해지고 있다.

특히 보수·우익인 아베 총리의 집권 이후 오키나와에 대한 ‘푸대접’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느낀다. 특히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주권회복의 날’ 행사에서 아베 총리 등 참가자들이 일왕 앞에서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것은 오키나와인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4월28일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돼 일본이 점령체제에서 벗어났지만 대신 오키나와가 1972년까지 미군정 통치를 받게 된 ‘굴욕의 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덴노헤이카 반자이”란 외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인들에게 강요된 집단자살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대만 어선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 조업을 인정하기로 한 일·대만 어업협정도 오키나와현과의 사전협의 없이 진행했다. 뒤늦게 결과를 전해들은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지사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심히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말 북한 미사일 발사위협에 대비하겠다며 오스프리 12대를 추가 배치하기로 하자 주민들은 “지지율이 높아지니 오키나와는 무시해도 되는 거냐”며 반발했다.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이런 푸대접을 받느니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자는 주장들이 강해지고 있다. ‘류큐(옛 오키나와 이름)독립론’을 주장해온 마쓰시마 야스가쓰(松島泰勝) 류코쿠대학 교수(50)가 주도하는 류큐독립론 연구회가 오키나와 반환 41주년인 오는 15일 발족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일본 오키나와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오키나와의 시선은 단순하지 않다. 현지 언론인 류큐타임스는 지난 10일자에 “일본 정부는 중국에 항의하고 나섰지만, 과거 일본이 무력으로 오키나와를 병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오키나와의 반응은 중국 비판 일변도는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by 100명 2013. 5. 13. 07:48
 


"수심 25m서 둥근 금속물체 발견"

다이버 신고 … 문화재청 수색 중

"몽고군이 빠뜨려" 이야기 전해와

왜군이 훔친 감은사 대종일 수도

잠수경력 28년째인 베테랑 다이버 김기창(54·경북 포항시 문덕동)씨가 동해바다 깊은 곳에서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금속물체를 발견한 것은 1년쯤 전의 일이다. 분실된 어구를 찾느라 포항시 양포항 인근 바다로 들어간 김씨의 눈앞에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수심 25m쯤의 해저에서였다.


김씨는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바다 밑에 누워 있었다”며 “당시엔 선박에 달린 연기 나가는 원통형 환기구인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입구는 자신의 키보다도 더 컸다. 물체를 더듬었더니 두께는 한 뼘이 넘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외관은 깨끗한 편이었으나 머리 쪽은 부식되고 이물질이 많이 붙어 있어 물체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 몇 달 뒤 TV에서 우연히 황룡사 대종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자신이 바닷속에서 보고 만진 게 바로 대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자료를 뒤적이는 동안 김씨의 직감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는 아예 배를 한 척 구입하고 800만원짜리 수중카메라까지 마련했다. 자신의 눈으로 대종의 실체를 확인한 뒤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처음 금속물체를 발견한 좌표를 알 길이 없었다. 김씨는 지난달 8일 “반드시 대종을 찾아달라”며 문화재청에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알렸다.

 신고를 접수한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김씨의 진술이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문화재청은 탐사선을 동원해 경주와 포항의 경계지역인 양포항 앞바다에서 수중탐사에 들어갔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1일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황룡사 대종이나 감은사 대종을 둘러싼 이야기가 전해 오는 것을 감안하면 유물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과연 김씨가 본 물체는 무엇일까. 최 시장이 말한 대로 경주 감포 앞바다에 수장된 대종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전해져 온다.

 하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경덕왕 13년(754년)에 주조된 높이 3m9㎝, 무게 108t의 황룡사 대종이다. 고려 숙종 때 한 차례 다시 주조됐다. 역사적 기록은 이게 전부다.

유홍준(64)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대종 이야기를 언급했다. 1235년 경주의 황룡사 구층탑을 불태운 몽고군이 황룡사 대종을 원나라로 가져갈 계획을 세웠다. 대종은 에밀레종보다 무게가 5배 이상일 정도로 컸다. 이 작전은 바닷길이 아니고는 운반이 불가능해 대종을 뗏목에 싣고 강에 띄워 바닷가로 운반하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바닷가에 거의 다 왔을 때 그만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대종은 물살에 실려 동해바다 어딘가에 가라앉았고 이후 이 하천을 대종천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주시 이채경(52) 학예연구사는 “흥미로운 수장 사연은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하나는 감은사 대종이다. 감은사는 경주시 양북면에 있었던 절로 지금 절터에는 탑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대종을 훔쳐 어선에 싣고 일본으로 운반하려다 심한 파도로 배가 침몰하면서 감포 앞바다에 수장됐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를 바탕으로 1980년대에는 문화재관리국이, 97년에는 해군이 각각 문무왕릉 주변 해저를 탐사했지만 대종을 찾는 데 실패했다.

 이번 세 번째 탐사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중순부터 신고자 김씨가 지목한 주변 사방 1㎞ 해역을 차례로 전문 잠수부 4명이 번갈아 가며 조사하고 있다. 사이드스캐너소나란 장비로 해저 촬영도 병행하고 있다. 문환석(52) 수중발굴과장은 “지금은 19t급 탐사선이 동원되고 있지만 유물의 존재가 확인되면 290t급 발굴전용선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발굴 해역의 바닷속 지형이 2∼3m 높이의 돌기둥이 산재한 데다 해저 시야가 1m도 안 나와 샅샅이 수색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탐사선 씨뮤즈호를 탄 연구소 홍광희 주무관은 “최근엔 바다 기상까지 나빠 장기간 탐사가 불가피하다”며 “아예 못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5. 3. 09:02

(경산=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남편이 신병을 비관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지 3일만에 부인도 같은 장소에서 뛰어내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2일 오전 5시 20분께 경북 경산시 모 아파트에서 김모(53·여)씨가 화단에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3시 30분께 남편의 발인을 앞두고 장례비를 마련하겠다며 장례식장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아파트로 찾아나섰다가 숨진 김씨를 발견했다.

김씨 남편(57)은 지난달 29일 오후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가족들은 빈소를 마련해 상을 치르던 중이었다.

김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알려졌다.

경찰은 숨진 김씨가 지병이 있는 데다 남편의 장례비 문제 등으로 고민했다는 유족의 말을 토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자세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by 100명 2013. 5. 3. 07:31

[오늘의 세상] 지안(集安: 서기 3~427년 고구려 首都) '고구려 박물관'의 역사 왜곡… 고구려史 뭉개고 발해史는 지워

[지안박물관, 고구려 전문 박물관으로 어제 재개관]

-동북공정 강화

"漢 무제가 현토군에 고구려현 설치, 中原에 융합" 옌볜 지역은 말갈족 영역으로

-모순 노출

지도에 남쪽 경계는 한강 유역, 옌볜은 고구려땅 아니라면서 고구려城 그려 넣기도

-集安 고구려碑

8각 유리상자 안에 넣어놓고 1m 떨어져서만 볼 수 있게… 확대경 써도 碑文 판독 어려워

지린성 지안·창바이안용현 특파원


"고구려가 조선족(한민족)의 조상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중국의 나라였네요."

1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의 '지안 박물관'. 이날 고구려 전문 박물관으로 신축 재개관한 박물관 6개 전시실을 관람한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개관 당일 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본 결과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 같은 노골적 표현은 없었다. 그러나 동행한 국내 전문가는 "'동북공정'이 무서운 건 고구려사(史)를 자연스럽게 중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지안 박물관을 통해 더 교묘하고 세밀하게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안은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 425년간 고구려 수도였던 곳이다.

안내원 "고구려족은 中 소수민족"

(위 사진부터 반시계방향) 내부 사진촬영도 기록도 금지한 지안박물관 -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의 인민정부청사 앞에 세워진 지안박물관 입구. 1일 고구려 전문 박물관으로 신축 재개관했으며,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박물관 측은 내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전시물 내용을 기록하는 것까지 엄격하게 통제했다. /지안시 청사 앞에 고구려 상징 '三足烏' 동상 -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인민정부청사 앞에 1일 고구려를 상징하는‘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동상이 서 있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려고 하고 있다. /발해 벽돌탑인 '영광탑' 안내판엔 "당나라 風格을 갖고 있다" - 탑 안내판에“모양과 구조는 당나라 때의 현장탑과 비슷하며 당나라의 풍격을 갖고 있다”고 적혀 있다. 중국 지린성 창바이(長白)에 있는 발해 시기 벽돌탑인 영광탑(靈光塔). /지안·창바이=안용현 특파원

지안시 인민정부 청사 앞에는 고구려 상징인 '삼족오(三足烏·태양에 산다는 세 발 까마귀)' 동상이 서 있다. 안내판엔 "태양조(太陽鳥·삼족오)는 중국 고대 전설에 등장한다. 고구려 벽화의 삼족오는 고구려 민족과 중원(中原·중국을 지칭) 민족이 동일하게 태양조를 숭배했다는 의미"라고 적혀 있다. 한 시민은 "2년 전까지는 '고구려족(族)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문구가 있었다"며 "한국과 북한의 반대가 심해 이를 삭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일, 한·일 간 역사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경 쓴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박물관 안에 있는 안내판과 지도에는 고구려가 한(漢)·당(唐)의 영향을 받아 중원에 '융합'됐다는 내용만 가득했다. 한 관람객이 "고구려와 조선(한반도)의 관계는 뭐냐"고 물었다. 전시관 안내원은 "고구려와 한반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구려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답했다.

고구려와 발해 연결 고리 제거

고구려 영역도에는 지금의 옌볜(延邊) 일대를 고구려 영토에서 제외하고 해당 지역을 말갈족 영역으로 구분했다. 국내 전문가는 "고구려에서 말갈을 뺀 것은 고구려와 발해가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없애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발해는 고구려 지배층과 말갈 피지배층으로 이뤄진 국가였다. 고구려에서 말갈이 없어지면 고구려와 발해의 연관성도 그만큼 약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린성 창바이(長白)에 있는 발해 벽돌탑인 '영광탑'의 안내판에는 "당나라 발해 시기에 쌓았다. 모양과 구조가 시안(西安)의 당나라 때 현장탑과 비슷하다"고 써놨다. 그러나 박물관의 고구려 산성(山城) 지도에선 옌볜 지역에 고구려 산성이 두 곳 있는 것으로 표시했다. 옌볜 일대가 고구려 땅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고구려성을 그려 넣은 오류를 저지른 셈이다. 고구려 영토의 남쪽 경계는 한강 유역이라고 했지만 지도상 압록강 이남에는 어떤 유적도 표시하지 않았다.

박물관 전시는 일관되게 중원과 고구려의 '결합'을 강조했다. 입구에서부터 "한 무제가 현토군에 고구려현을 설치했다"고 적었다. 관련 지도는 현토군이 고구려로 성장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현토군을 밀어내면서 성장한 국가라는 게 전공 학자 대부분의 일치된 견해다. 안내판처럼 '고구려족과 중원 각 민족의 융합'을 통해 성장하지 않았다. 수(隋)·당과 대전(大戰)을 벌여 이들을 물리친 사실은 박물관에 어떤 설명도 없었다.

박물관은 또 "고구려 왕과 귀족은 당나라 관리 복장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는 "고구려는 망할 때까지 독자적 관등 체계를 유지했다"면서 "이곳 박물관에도 소형(小兄)·대형(大兄) 등 고구려의 독특한 관직이 적힌 기와 조각이 전시돼 있다"고 말했다.

현존 최고(最古) 고구려 비석으로 추정되는 '지안 고구려비'는 박물관 1층 로비 가운데 있었다. 8각 유리 상자에 넣어 성인 허리 높이의 전시대에 올려놓았다. 1m 밖에서 관람하게 돼 있어 비문(碑文)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석 실물을 처음 접한 국내 학자들이 확대경까지 동원해 글자를 판독하려고 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지안(集安) 박물관

425년간 고구려 수도였던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에 지어진 고구려 박물관. 중국은 2003년 이른바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시기에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3년 전 완공됐으나 내부 보완을 거쳐 1일 재개관했다.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이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추진한 동북 지역 연구 프로젝트.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2002년부터 5년간 진행했다. 지금은 ‘역사 왜곡’ 영역을 벗어나 일반 중국인의 상식을 바꾸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한반도 통일 등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비한 중국의 역사적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있다.
by 100명 2013. 5. 2. 07:51

中 신장자치구 또 유혈충돌… 21명 사망



테러조직 검거 과정서 총격전… 경찰-공무원 15명, 조직원 6명 숨져

2009년 7월 이후 최대 인명 피해

[동아일보]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에서 23일 경찰과 테러조직 간 무력충돌로 21명이 숨졌다.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2009년 7월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 규모다.

관영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반경 우루무치 서남쪽 변경 카스(喀什·영문명 카슈가르) 지역 바추(巴楚) 현 써리부야(色力布亞) 진에서 경찰과 테러조직이 충돌해 경찰과 지방공무원 15명이 숨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폭도 6명을 사살하고 8명을 체포했다.

이번 사건은 지방공무원 3명이 한 민가에서 의심스러운 인물과 도검류 등을 발견해 파출소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테러조직은 출동한 공무원과 경찰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통신은 이들이 테러를 모의해 오던 조직이라고 밝혔다.

숨진 경찰과 공무원은 △위구르족 10명 △한족 3명 △몽고족 2명이다. 폭도들이 어느 민족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위구르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인 만큼 폭도 대부분이 위구르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화통신은 이 사건을 ‘테러사건’으로 규정했지만 신장 지역에서 지속된 위구르족과 한족 간의 민족 분규로 보인다. 2009년 7월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족이 한족을 무차별 습격했을 때 약 200명이 숨졌다. 중국 정부는 신장 지역의 치안력을 대폭 강화해 민족 분규 발생을 막아왔다. 하지만 △2012년 3월 카스 지역에서 20명 △2011년 7월 허톈(和田) 지역에서 18명이 유혈폭동으로 숨지는 등 위구르족이 많은 난장(南疆·톈산 산맥 이남) 지역에서는 민족분규가 계속돼 왔다.

중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위구르족 독립 세력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암약하는 탈레반, 알카에다 조직과 협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프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인종 언어 종교 등이 비슷한 위구르인들은 신장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by 100명 2013. 4. 25. 15:42

카라지치, 30일 이후 유고전범재판소 인계

지난 92년~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 청소' 대학살을 주도한 라도반 카라지치의 신병이 30일 혹은 31일 이후 유고국제전범재판소(ICTY)에 인계될 것으로 AFP 통신이 27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카라지치의 변호사 스베토자르 부야치치는 현지 일간 베체르녜 노보스티와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부야치치 변호사는 앞서 21일 체포된 카라지치의 ICTY로 신병인도에 대한 이의신청을 25일 제기했다.

하지만 부야치치 변호사는 이의신청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계속 언급을 회피했다.

이의신청이 수리될 경우 세르비아 법무장관이 최종적인 신병인도를 명령을 내리기 전 3명의 판사로 이뤄진 세르비아 전범재판소의 소위원회가 사흘 이내에 이를 심사해 가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편 세르비아의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전 총리는 이날 재판의 공정성이 보장돼 있지만 않다며 ICTY를 비판했다.

by 100명 2008. 7. 28. 23:33
태안 앞바다서 고려청자 또 무더기 발견
 
 충남 태안군 앞바다 마도에서 대접과 접시, 잔 같은 고려청자(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 515점이 발굴됐다. 이곳은 지난해 고려청자 운반선과 최고급 사자 모양 향로 등 고려청자 2만2000여 점이 발견돼 화제를 모은 대섬 앞바다에서 10km 떨어진 곳이다. 문화재청은 25일 “이번에 발견된 청자는 지난해 왕실에서 쓰던 청자에 비해 수준은 떨어지지만 이곳이 고려 수도 개경을 가기 위해 청자운반선이 꼭 거쳐야 하는 곳이고 조류와 물길이 빨라 선박이 많이 침몰했다는 기록이 있어 내년에 더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y 100명 2008. 7. 26. 21:37

세계최초 어린 ‘타르보사우르스’화석 발견

기사입력 2008-07-24 11:27


[서울신문 나우뉴스]공룡의 성장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어린 공룡화석이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하야시바라자연박물관(林原自然科学博物館)은 “몽골 고비사막의 백악기 후기(약 7000만 년 전)지층에서 5세정도로 추정되는 ‘타르보사우르스’(Tarbosaurus)의 전신골격화석을 발견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어린 공룡의 전신골격 화석이 이처럼 양호한 상태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린공룡의 화석이 드문 것은 뼈가 작고 약해서 화석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타르보사우르스는 ‘무서운 도마뱀’(terrifying lizard)이라는 의미로 티라노사우르스의 아시아계 조상에 해당하는 육식공룡이다. 주로 중앙아시아에 살았으며 수명은 25~28세, 몸길이는 약 12m정도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 화석은 하야시바라자연박물관과 몽골 과학아카데미의 공동조사에서 발견된 것으로 목과 꼬리부분의 손상을 제외한 전신의 약 80%가 완벽히 보존된 상태다.

박물관측은 앞으로의 연구계획에 대해 “이번 화석의 각 부위를 성체와 비교해 타르보사우르스가 자라면서 체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by 100명 2008. 7. 26. 13:21

정교한 일제시대 기와도로 확인

기사입력 2008-07-21 17:25 |최종수정2008-07-21 17:48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옛 동대문야구장서 발굴..재료는 조선기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시대 훈련도감 건물 기와를 뜯어 20세기 초반에 일제가 만든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매장문화전문조사기관인 (재)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은 서울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를 건립할 예정인 옛 동대문야구장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훈련도감 분원 중 하나인 하도감(下都監)과 관련 있는 건물터 5곳과 함께 조사지역 북쪽에서 '기와 도로'를 찾아냈다고 21일 밝혔다.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가 확인된 이 기와 도로는 사람이 다니던 길인 보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보도시설에는 기와 대신 석재가 사용되기도 했으며, 일정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벚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단은 "원래 이곳에는 하도감이 있다가 폐기된 뒤에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연못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재료는 전부 조선시대 기와인 점으로 볼 때, 이 기와들를 재활용해 연못으로 통하는 보도를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나아가 옛 야구장 부지에서는 건물터 5곳과 공방 관련 시설 2곳 등이 확인됐다.

이 건물터들 중 1-4호로 명명한 4곳은 같은 시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를 뒷받침하듯 건물들은 모두 동서 방향을 장축으로 두었으며 건물 방향은 남향이었다.

1호와 2호 건물터는 각각 정면 5칸, 측면 3칸(14.1 x 4.9m)과 정면 6칸 측면 2칸(12.9 x 3.5m)으로 규모가 꽤 컸다.

조사단을 이 건물군(郡)이 훈련도감 분원인 하도감 흔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이와함께 동대문운동장 일대에서는 식민지시대 각종 일본 도자기가 수습됐으며, 그 중 상당수에서 명문이 확인됐다.

어떤 도자기 뚜껑에는 'MADE IN SETO JAPAN'이라 적혀 있는가 하면, '三國屋'(삼국옥) '總督府醫院'(총독부의원)과 같은 명문 도자기도 발견됐다.
by 100명 2008. 7. 21. 21:08

인간의 뇌, 착하게 태어난다

기사입력 2008-07-15 10:18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장 데세트 교수가 이끈 연구에서 어린이들이 동정심과 도덕을 타고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13일 해외 언론들이 보도 했다.

연구팀은 7살에서 12살까지의 어린이 17명(남자 어린이는 총 8명)을 대상으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fMRI를 이용해 뇌를 스캔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두 가지다. 우연한 사고 때문에 사람이 고통을 받는 장면을 담은 것이 하나이며 다른 한 종류에는 상대의 발을 밟는 식으로 일부러 고통을 유발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우연한 사고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어린이들의 뇌중에서 통증 과정과 연관된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동정심 즉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지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 계획적으로 상대방에게 통증을 유발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도덕적 판단과 연관된 뇌 부위를 활성화시켰다. “13명의 아이는 상황이 공정하지 못하고 저런 행동을 왜 하는지 질문을 했다”고 연구팀은 말했다.

이번 연구는 좋은 보살핌이나 양육과는 무관하게, 동정심과 도덕심이 인간의 뇌에 내장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연구팀의 평가이다. 또한 이런 실험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사진 : 시카고 대학교의 보도자료. 누군가 고통을 받을 때 어린이들의 뇌에서도 통증 과정과 관련된 부위가 활성화되었으며, 아래와 같이 계획적인 통증 유발 애니메이션은 도덕적 판단 영역의 활성화를 유발했다.)
by 100명 2008. 7. 15. 13:06

한글 망향詩 적힌 찻잔…400년만에 일본서 귀향

기사입력 2008-07-14 11:40


[CBS국제부 최한태 기자]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이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한글 시(詩)에 담아 만든 찻잔이 400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아사히신문은 한글로 망향(望鄕) 시를 적은 에도(江戶)시대의 녹차 찻잔이 400년만에 바다를 건너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될 예정이라고 14일 보도했다.

화제의 이 찻잔은 직경 약 13센티미터 높이 약 11센티미터로, 일본의 한 고미술 수집가 유족이 소유하고 있던 것.

이것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데려온 도공이 하기城(現 야마구치현)에서 가마를 만들어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17세기 초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찻잔은 지난 83년 당시 70세로 작고한 교토에 사는 고미술 수집가 후지이 타카아키씨가 살아있을 때 교토국립박물관에 맡겨놓은 것으로, 유족인 부인 후지이 야에(86)씨와 아들이 한국에 기증하기로 결심한 것.

유족들은 "한일 교류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증의 중개역할을 한 교토국립박물관의 오노 요시히로씨는 "한글이 적힌 찻잔은 일본에는 다른 사례가 없어 의미있다"고 말했다.

이 찻잔은 17일 유족인 부인과 차남 케이씨(58)가 가지고 한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by 100명 2008. 7. 14. 14:33

풍납토성 백제우물서 토기만 215점 출토

기사입력 2008-07-13 08:30 |최종수정2008-07-13 08:56

풍납토성 우물 토기만 215점 (서울=연합뉴스) 한신대박물관이 조사 중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시대 우물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백제시대 지표면을 기준으로 최하층 바닥까지 전체 깊이는 4m였으며,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은 위쪽은 타원형에 가까운 방형이며, 그 아래쪽은 각 변 길이 1.2m인 정방형으로 드러났다. 상층 2m 가량은 석축이며 그 아래 70㎝ 가량은 나무판재를 짜서 축조했다. 이곳에서는 완형 토기만 215점이 수습됐다. << 문화부 기사참조, 한신대박물관 제공 >>

바닥부위 1㎥ 가득 채워

풍납토성 우물 토기만 215점 (서울=연합뉴스) 한신대박물관이 조사 중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시대 우물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백제시대 지표면을 기준으로 최하층 바닥까지 전체 깊이는 4m였으며,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은 위쪽은 타원형에 가까운 방형이며, 그 아래쪽은 각 변 길이 1.2m인 정방형으로 드러났다. 상층 2m 가량은 석축이며 그 아래 70㎝ 가량은 나무판재를 짜서 축조했다. 이곳에서는 완형 토기만 215점이 수습됐다. << 문화부 기사참조, 한신대박물관 제공 >>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드러난 한성백제시대 우물 한 곳에서만 모두 215점에 이르는 완형 토기가 출토됐다.

유적 정비 차원에서 서울시 의뢰로 이곳을 발굴 중인 한신대박물관은 우물에 대한 내부 조사를 완료한 결과 이런 기록적인 숫자의 백제시대 토기를 수습했다고 13일 밝혔다.

풍납토성 우물 토기만 215점 (서울=연합뉴스) 한신대박물관이 조사 중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시대 우물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백제시대 지표면을 기준으로 최하층 바닥까지 전체 깊이는 4m였으며,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은 위쪽은 타원형에 가까운 방형이며, 그 아래쪽은 각 변 길이 1.2m인 정방형으로 드러났다. 상층 2m 가량은 석축이며 그 아래 70㎝ 가량은 나무판재를 짜서 축조했다. 이곳에서는 완형 토기만 215점이 수습됐다. << 문화부 기사참조, 한신대박물관 제공 >>

조사 결과 이 우물은 백제시대 지표면을 기준으로 최하층 바닥까지 전체 깊이는 4m였으며,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은 위쪽은 타원형에 가까운 방형이며, 그 아래쪽은 각 변 길이 1.2m인 정방형으로 드러났다.

지표면에서 1m 가량 내려간 지점에서 시작해 아래쪽으로 2m 가량 이어지는 우물 벽면은 강돌이나 깬돌을 이용해 단단하게 쌓았으며, 다시 그 아래 높이 70㎝ 가량 되는 벽면은 나무판재를 짜서 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풍납토성 백제우물 바닥 출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신대박물관이 조사 중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시대 우물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백제시대 지표면을 기준으로 최하층 바닥까지 전체 깊이는 4m였으며,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은 위쪽은 타원형에 가까운 방형이며, 그 아래쪽은 각 변 길이 1.2m인 정방형으로 드러났다. 상층 2m 가량은 석축이며 그 아래 70㎝ 가량은 나무판재를 짜서 축조했다. 이곳에서는 완형 토기만 215점이 수습됐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이 중 토기는 공교롭게도 나무곽이 위치하는 층위(부피 1.008㎥)에서만 차곡차곡, 그리고 빼곡히 모두 4겹으로 포개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 위 석곽(石槨) 부분에는 대형 판돌 등으로 메웠다.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교수는 "모든 토기는 약속이나 한 듯이 주둥이 쪽을 일부러 깨뜨린 흔적이 발견되며, 종류로는 호(壺.항아리)와 병(甁)이 압도적"이라면서 "이들 토기가 제작된 중심 연대는 한성백제 말기인 5세기 초반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풍납토성 백제우물 바닥 출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신대박물관이 조사 중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시대 우물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백제시대 지표면을 기준으로 최하층 바닥까지 전체 깊이는 4m였으며,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은 위쪽은 타원형에 가까운 방형이며, 그 아래쪽은 각 변 길이 1.2m인 정방형으로 드러났다. 상층 2m 가량은 석축이며 그 아래 70㎝ 가량은 나무판재를 짜서 축조했다. 이곳에서는 완형 토기만 215점이 수습됐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이 우물 인접 지점에 위치한 196호 유구(遺構)는 바닥까지 조사한 결과 한 변 길이 10m 가량 되는 방형 창고 건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뒷받침하 듯 이곳에서는 유약을 바른 이른바 대형 시유도기(施釉陶器)가 무려 20점 가량 출토됐으며, 그 외 다른 저장용으로 생각되는 토기가 무수하게 확인됐다.
by 100명 2008. 7. 14. 07:39

세계 최고(最古) 피라미드 `사카라'

기사입력 2008-07-09 09:15
by 100명 2008. 7. 10. 13:14

중국 토담집 투러우 세계유산 지정

기사입력 2008-07-09 01:23 |최종수정2008-07-09 10:15


[중앙일보 최형규] 중국 푸젠(福建)성의 전통 토담 가옥인 투러우(土樓)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998년 문화유산 신청을 한 지 10년 만이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캐나다 퀘백에서 제32차 연례 총회를 열어 보존상태가 좋은 투러우 46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했다고 AFP통신과 중국 신화사통신이 7일 보도했다.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은 만리장성 등 모두 36개로 늘어났다.

심사위원회 측은 투러우의 큰 규모와 정교하고 독특한 건축양식, 강한 내구성 및 창의성을 들어 세계문화유산 가치가 충분하다고 심사결과를 밝혔다. 투러우는 기초를 돌로 사용하고 윗부분은 흙으로 쌓아 올린 원형이나 사각형 가옥이다. 규모는 내부 거주 인원수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보통 직경 66m~31m, 높이 20여m에 달한다. 가장 큰 것은 가옥 내부에 384개의 방이 있고 모두 800여 명까지 거주가 가능하다. 송(宋)·명(明)·청(淸)대에는 주로 씨족 형태로 집단 거주해 투러우 한 채가 하나의 씨족 마을을 형성했다. 사방이 흙벽이며 지진 규모 7까지 견딜 정도로 견고해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 목적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푸젠성 전역에는 약 3000여 채가 남아 있으며, 그 밖에 난징(南靖)·화안(華安)현 등 세 곳에도 산재해 있다. 대부분 집단으로 10여 채씩 보존돼 있는데, 푸젠성 융딩(永定)현 추시(初溪)촌에 있는 투러우는 6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도 있다.

이달 2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32차 회의 기간 중에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투러우 외에도 태국과 소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캄보디아의 프레아 비헤아르 힌두사원, 말레이시아의 과거 무역전통을 간직한 도시 말라카와 조지타운, 파푸아뉴기니의 1만년 된 습지 경작지, 18~19세기 초 탈주 노예들이 숨었던 모리셔스의 노예 은신처 등이 있다. 또 고대 중동의 나바테아 문명을 보여주는 사우디아라비아 알 히즈르 유적, 1913년께 말 편자 모양으로 배치해 지은 베를린의 주택단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인 만투아와 사비오네타, 산마리노의 13세기 도시 유적 등의 등재도 확정됐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가 1972년 정기총회에서 채택한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인류문명과 자연사에 있어 보존가치가 있는 유산에 대해 지정하고 있다. 문화유산·자연유산·복합유산으로 구분해 지정한다. 2008년 3월 현재 전 세계 141개국에서 851건이 지정돼 있다. 문화유산 660건, 자연유산 166건, 복합유산 25건이다. 한국은 종묘·석굴암·수원화성 등 7개 유적이 지정돼 있다.
by 100명 2008. 7. 9. 13:07

5억년전 초기 생명체 화석 발견돼

기사입력 2008-07-07 12:27


미국 버지니아 자연사 박물관은 무게가 2톤에 달하는 5억년전 초기 생명체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지구 최초 생명체인 시아노 박테리아가 퇴적되면서 생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의 화석이다. 지름은 1.5미터이며 약 5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견된 화석은 드물게 조각나지 않고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으며,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중에서 대형에 속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기억의 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은 과거의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by 100명 2008. 7. 7. 12:43

임진왜란 기록화 ‘순절도’ 45년만에 시민에 공개

기사입력 2008-07-03 16:23


[쿠키 사회] 임진왜란 당시 결사항전하는 모습이 담긴 ‘부산진순절도(보물 391호)’와 ‘동래부순절도(보물 392호)’ 진본이 45년만에 부산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부산박물관은 11일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부산진순절도’와 ‘동래부순절도’ 진본을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3일 밝혔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첨사 정발 장군과 송상헌 동래부사가 병사 및 백성들과 함께 왜적에 맞서 결사항전하는 모습을 묘사한 2점의 순절도는 1760년 동래부의 화원 변박이 그린 전쟁기록화로 각각 가로 96㎝, 세로 145㎝ 크기다.

이 그림들은 숙종 35년(1709)에 제작된 원본이 채색이 바래자 영조 36년(1760)에 화원 변박이 베껴 그린 것으로 동래 안락서원에 보관돼 있다가 1963년 기증형식으로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으로 옮겨졌었다.
by 100명 2008. 7. 3. 17:16

43년만의 ‘백제의 미소’, 되찾기까지...

기사입력 2008-07-03 15:37 |최종수정2008-07-03 16:37


[한겨레]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면서 문화재의 참멋을 잃지 않는 불상 보호 방안을 고민 중” 문화재청

 43년 만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을 왜 ‘백제의 미소’라 부르는 걸까?”라는 물음에 7월의 햇살을 받은 3개의 불상이 한껏 머금은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보호각이 철거된 뒤 자연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낸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1959년 4월 발견된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6세기 말~7세기 초에 조각된 유물로 추정된다. 어림잡아 천오백살 이상의 나이다. 이 마애불은 입체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양각인데다, 용현계곡 벼랑 바위 면에 자리 잡아 자연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그 세월을 견뎌왔으니 제아무리 단단한 화강암이라 하여도 상당부분 풍화가 진척되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1965년 불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보호각을 설치했다. 그러나 풍화작용 등을 막으려 설치했다는 이 전각은 비바람뿐만 아니라 햇빛까지 차단해 이때부터 `백제의 미소’는 보호각 그늘 아래 감추어진다. 불상에 전등을 비춰가며 그 미소를 찾아보려던 관람객들은 불상 들머리에 설치된 안내판의 사진으로나 그 아름다움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보호각은 백제의 미소만 가린 것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통풍과 채광을 막자 내부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어 이 역시 불상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서산시는 지난 2005년 11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보호각 벽면을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마무리된 2006년 3월 전각 내부가 드러나자 다시 한 번 `백제의 미소‘가 되살아날 것인가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빗물이 직접 불상에 닿는 것을 막으려 전각 지붕을 남겨둔 탓에 햇빛은 불상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2006년 3월 28일 <한겨레> 보도)

 보호각 벽면 철거 당시 서산시는 1-2년 동안 불상의 풍화 상태 등 보존 상태를 지켜본 뒤 지붕철거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시와 문화재청은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 5월 중순께 불상 표면 백화와 이끼 등을 세척하고, 6월 말까지 불상 주변에 발생한 일부 균열부분을 강화처리 해 긴급 보수작업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43년 만에 백제의 미소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전부는 아니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은 필연적으로 현 세대의 향유와 미래세대를 위한 보존- 두 기둥 위에 설 수밖에 없다. 1500년 전에 조성된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보며 얻은 감동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야 하는 숙제가 남은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면서 문화재의 참멋을 잃지 않는 불상 보호 방안을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서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 [한겨레21] “노통과 맞장 뜨던 검사들 다 어디 갔습니까?”

by 100명 2008. 7. 3. 17:05

옹관 깨뜨려 축조한 옹곽묘 첫 발견

기사입력 2008-07-03 06:50 |최종수정2008-07-03 09:21

옹관 조각으로 만든 옹곽묘 (서울=연합뉴스) 옹관(饔棺)을 깨뜨려 조각을 낸 뒤 벽돌이나 돌처럼 차곡차곡 쌓아 무덤방을 축조한 고분이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전남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사적 456호)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옹곽묘(甕槨墓)로 명명한 이런 무덤은 8호(사진)를 비롯해 3기가 보고됐다. 옹관 조각은 무덤방 네 벽면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사용됐다. 특히 벽면에 사용된 옹관 조각 중 상당수는 △ 모양으로 발견된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 유적서 3곳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대형 장독을 연상케 하는 옹관(饔棺)을 깨뜨려 조각을 낸 뒤 벽돌이나 돌처럼 차곡차곡 쌓아 무덤방을 축조한 고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조사를 시작한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사적 456호)에 대해 올해 2차 발굴을 실시한 결과 가마 2기와 그와 관련된 유적 3기, 그리고 5세기 중반 이후 7세기 초반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 10기를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옹관 조각으로 만든 옹곽묘 (서울=연합뉴스) 옹관(饔棺)을 깨뜨려 조각을 낸 뒤 벽돌이나 돌처럼 차곡차곡 쌓아 무덤방을 축조한 고분이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전남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사적 456호)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옹곽묘(甕槨墓)로 명명한 이런 무덤은 1호(사진)를 비롯해 3기가 보고됐다. 옹관 조각은 무덤방 네 벽면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사용됐다. 특히 벽면에 사용된 옹관 조각 중 상당수는 △ 모양으로 발견된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이 중 고분은 축조 방식이나 재료로 볼 때 추정 옹관묘가 1기, 석실분(石室墳)이 4기, 석곽묘(石槨墓)가 2기, 그리고 옹관 조각들을 이용해 무덤방을 만든 이른바 옹곽묘(甕槨墓)가 3기로 각각 드러났다.

연구소 이종훈 학예실장은 "우리나라 고분에서 옹곽묘가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오량동 유적 일대가 석재를 구하기 힘든 반면, 옹관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이를 깨뜨려 무덤을 쌓는 데 활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이들 무덤에서 옹관 조각은 무덤방 네 벽면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사용됐다. 특히 벽면에 사용된 옹관 조각 중 상당수는 △ 모양으로 발견됐다.

8호 옹곽묘 바닥에서는 금으로 만든 귀걸이 1점도 발견됐다.

옹곽묘 출토 금제 귀걸이 (서울=연합뉴스) 옹관(饔棺)을 깨뜨려 조각을 낸 뒤 벽돌이나 돌처럼 차곡차곡 쌓아 무덤방을 축조한 고분이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전남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사적 456호)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3기가 한꺼번에 확인됐다. 옹곽묘(甕槨墓)로 명명한 이런 무덤 중 8호분에서는 금제 귀걸이 1점이 수습됐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오량동 유적은 지난 2001년 민간업자가 분묘공원을 조성하는 공사를 하다가 무수한 옹관 파편과 가마 유적이 노출됨으로써 시굴조사 및 본격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그 결과 이 일대에는 모두 19기에 이르는 가마 유적이 분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동신대박물관이 이 중 5곳을 전면 발굴한 결과 대형 옹관을 굽던 가마일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 가마들이 옹관 가마라는 추정은 그 내부에서 무수한 옹관 파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마 구조라든가 규모로 볼 때 옹관을 굽던 시설로 보기는 힘들며, 옹관 파편은 단순히 옹관 바닥이나 벽면을 쌓는 데 사용한 건축 부재라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이에 연구소는 올해 조사에서 이런 논쟁 해명에 중점을 두고 가마터 2곳을 발굴한 결과, 2곳 모두 구릉 경사면과 직각을 이루는 방향으로 장축(길이 10m, 폭 1m50㎝ 안팎)을 마련한 오름가마(등요<登窯>)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내부에서 역시 다량의 옹관 조각을 일반 다른 토기 서너 점과 함께 수습했을 뿐, 이곳이 옹관을 굽던 곳인지 여부는 확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주 오량동 가마 (서울=연합뉴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전남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사적 456호)에서 확인된 가마터 중 2호 연소부. 구조로 볼 때 오름가마로 밝혀졌다. << 문화부 기사참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

이 가마들은 단면 형태가 완만한 U자형을 이루며, 불을 지피는 입구쪽 가까운 공간인 연소부(燃燒部)와 토기를 넣어 굽는 공간인 소성부(燒成部) 사이에는 턱을 마련한 구조임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by 100명 2008. 7. 3. 17:05

호빗 존재 부정하는 왜소한 인류의 유골

기사입력 2008-07-02 09:27
by 100명 2008. 7. 3. 08:38

경당지구 유적 목탑지 아닌 우물인 듯(종합)

기사입력 2008-06-30 15:04 |최종수정2008-06-30 16:29

경당지구 유적 목탑지 아닌 우물인 듯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30일 서울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현장에서 열린 현장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한신대 박물관(책임조사원 권오영)의 안내로 한변 10m, 깊이 3m 이상 되는 규모로 방형(方形) 수혈(竪穴.구덩이)을 판 다음 나무 판재와 깬돌, 자갈을 이용해 우물 모양으로 축조한 특수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zjin@yna.co.kr

석축ㆍ목축 혼합, 토기 등 다량 출토

경당지구 유적 목탑지 아닌 우물인 듯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한신대 박물관(책임조사원 권오영)이 30일 서울 풍납토성 경당지구 내의 한성백제시대 목탑터로 추정되는 206호 유구에 대한 추가조사 진행결과 한변 10m, 깊이 3m 이상 되는 규모로 방형(方形) 수혈(竪穴.구덩이)을 판 다음 나무 판재와 깬돌, 자갈을 이용해 우물 모양으로 축조한 특수시설임으로 확인한 유적 안에 수많은 토기가 쌓여 있다.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불교사원의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던 서울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적은 제사용 건물과 관련된 특수 우물일 가능성이 한층 더 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 의뢰로 8년만에 경당지구 발굴조사를 재개한 한신대박물관(책임조사원 권오영)은 지난 4월29일 제1차 지도위원회에서 한성백제시대 목탑터로 추정한 206호 유구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변 10m, 깊이 3m50㎝ 이상 되는 규모로 방형(方形) 수혈(竪穴.구덩이)을 판 다음 나무 판재와 깬돌, 자갈을 이용해 우물 모양으로 축조한 특수시설임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물들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적'에 대한 제2차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가 열린 30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현장에전시된 발굴 유물들. zjin@yna.co.kr

이 방형 수혈은 지표면에서 3m 가량 깊이까지는 석축을 이용했으나, 그 아래 바닥쪽 부분에서는 사방 벽면을 나무 판재를 이용해 상자처럼 짠 것으로 밝혀졌다. 석축은 총 27단이 확인됐으며, 목축은 현재까지 4개 판재층이 드러났다.

이 시설물이 우물로 최종 확인될 경우, 풍납토성 일대에서 두 번째로 확인되는 한성백제시대 우물이 된다. 지난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풍납토성 동쪽 성벽 외곽 인접 지점인 풍납동 410번지 일대 동산ㆍ대진연립아파트 건설 예정지를 발굴한 결과 순전히 목곽으로만 짠 한성백제시대 우물이 확인된 적이 있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전문도기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적'에 대한 제2차 지도위원회 및 한신대 박물관(권오영 책임조사위원)의 현장설명회가 열린 30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현장에 전시된 중국제 시유도기(施釉陶器)와 전문도기(錢文陶器). 시유도기란 유약을 바른 도기를 말하며, 전문도기는 그 일종으로서 표면에 전문(錢文), 즉, 동전 모양 무늬를 잔뜩 새겨 넣은 도기를 말한다. zjin@yna.co.kr

이번에 경당지구에서 확인된 추정 우물터 아래쪽, 특히 목곽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무수한 토기가 켜켜이 쌓인 채 확인되고 있다. 이날 현재까지 이런 토기층은 4개 층이 확인됐지만 추정 우물터는 아직까지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발굴작업을 지휘한 권오영 교수는 "우물일 가능성이 크지만, 바닥 구조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용도를 확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선각문토기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적'에 대한 제2차 지도위원회 및 한신대 박물관(권오영 책임조사위원)의 현장설명회가 열린 30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현장에 전시된 '선각문토기' 유물. zjin@yna.co.kr

이 수혈 출토 유물 중 토기는 완형으로 복원된 것만 120점 이상을 헤아리며, "출토 상태로 볼 때 깨뜨려 넣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의식에 따라 정성 들여 쌓아 올리는 식으로 안치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이들 토기는 종류로 볼 때 호(壺)와 병(甁)이 압도적이며, 나아가 그 주둥이는 대체로 일부러 깬 상태로 확인된다"고 권 교수는 덧붙였다.

이런 토기 중 일부에서는 용과 같은 동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있는가 하면, 바닥에 십(十) 자형 마크를 새긴 장군도 발견됐다. 이 중 장군은 지금까지는 영산강 유역에서만 집중적으로 출토된다고 보고된 유물인 까닭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장군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적'에 대한 제2차 지도위원회 및 한신대 박물관(권오영 책임조사위원)의 현장설명회가 열린 30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현장에 전시된 '장군' 유물. zjin@yna.co.kr

한편 8년 전 조사에서 중국제 시유도기(施釉陶器)와 전문도기(錢文陶器)를 다수 출토한 196호 유구에서는 이번 추가 조사에서도 이런 도기를 다량으로 쏟아냈다. 시유도기란 유약을 바른 도기를 말하며, 전문도기는 그 일종으로서 표면에 전문(錢文), 즉, 동전 모양 무늬를 잔뜩 새겨 넣은 도기를 말한다.

196호에서는 전문도기만 완형으로 6점을 출토한 바 있으며 이번에 추가로 수습된 유물까지 합친다면 총수량은 10점 이상을 헤아릴 전망이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기대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풍납토성 경당지구 유적'에 대한 제2차 지도위원회 및 한신대 박물관(권오영 책임조사위원)의 현장설명회가 열린 30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현장에 전시된 '원통형 기대(器臺. 제사에 사용한 그릇받침대)'. '기대'의 원형을 복원한 결과 높이가 70㎝ 이상으로 드러나, 종래 이 부문 최대로 기록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 출토 백제 기대(높이 67㎝)를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zjin@yna.co.kr

나아가 평면 타원형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217, 218, 220 및 222호 유적을 조사한 결과 드러난 원통형 기대(器臺. 제사에 사용한 그릇받침대) 조각들을 접합해 원형을 복원한 결과 높이가 70㎝ 이상으로 드러나, 종래 이 부문 최대로 기록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 출토 백제 기대(높이 67㎝)를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당지구 뿐만 아니라 풍납토성 일대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유적 전체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격인 44호 건물지는 종래에는 동서와 남북 길이 각각 13-14m 정도에 이르는 규모만 드러났으나, 이번 추가 조사 결과 동서, 남북 길이 모두 최소 18m인 초대형 건물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 교수는 종묘와 같은 제사 건물터로 추정되는 44호 건물지가 "조사대상 지역 바깥으로 뻗어있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 44호 건물지는 "축조공정에서 지표면을 파낸 다음, 다른 흙을 채우는 되메우기 기법을 3회 정도 반복하는 방식으로 축조했으며, 벽 안쪽에는 기둥 3개를 세트로 해서 세웠음을 알 수 있었다"고 권 교수는 말했다.
by 100명 2008. 6. 30. 18:05

파리시내서 7000년전 유물 무더기 발견

기사입력 2008-06-28 14:48


[서울신문 나우뉴스]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약 7000년 전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 뉴스 전문채널 ‘프랑스 24’는 “파리 시내의 한 공사현장에서 7000년 전 유적지가 발견됐다.”고 26일 보도했다.

프랑스 24 방송국 바로 앞에 있는 공사구역에서 발견된 이 유적지에는 7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무기와 도구 등이 3000점 이상 묻혀있었다.

발굴을 맡은 프랑스 고고학 연구팀은 “공사현장 밑 불과 4m 지점에서 유적지가 발견됐다.”며 “부싯돌과 화살촉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사냥을 하던 사람들의 정착지였을 것” 이라고 추측했다.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베네틱트 수피는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하는 유목민이 살았을 것”이라며 “세느강 근처 충적토에 있는 부싯돌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번에 발굴된 유적지는 파리 시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발굴 작업으로 인해 공사는 중단된 상태며 발굴은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by 100명 2008. 6. 28. 22:52

대구지하철 참사 때 불 탄 전동차 11량, 고철로 매각

기사입력 2008-06-27 02:48 |최종수정2008-06-27 07:35

26일 대구시 동구 대림동 대구지하철안심차량기지에 보관 되어있던 불에 탄 전동차가 매각이 되어 트레일러로 실려지고 있다. /이재우 기자 jw@chosun.com

지난 2003년 192명의 희생자를 낸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불에 탄 전동차 11량이 매각돼 고철로 재활용된다.

대구지하철공사는 당시 불에 탄 전동차 12량 중 11량을 지난 12일 입찰을 통해 서울의 한 고철업체에 2억1000만원에 매각했다고 26일 밝혔다.

불에 탄 전동차 11량은 지금까지 안심차량기지에, 나머지 1량은 대구시 동구 팔공산 아래에 건설 중인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안전교육용으로 각각 보관해 왔다.

매각된 전동차 11량 중 3량이 지난 24일 트레일러에 실려 고철로 재활용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의 고철처리 작업장으로 옮겨진 것을 시작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운송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지난 25일 밤 전동차 운반을 하던 업체측이 전동차에 씌어져 있던 덮개를 벗겨내는 바람에 불에 탄 전동차의 흉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대구지하철공사 차량팀 성경식(成景植·47) 과장은 "업체측이 덮개가 바람에 날리는 등 운송에 불편을 느껴 벗겨 버린 것 같다"며 "추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덮개를 잘 덮도록 당부했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8. 6. 27. 20:32

부여 정림사지, 백제시대 가람 드러나

기사입력 2008-06-27 16:17

부여 정림사지, 백제시대 가람 드러나

【서울=뉴시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17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부여 정림사지 정비 사업을 위한 사전 발굴조사에서 와적(瓦積)기단의 강당지와 회랑지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백제시대 가람구조를 명확히 밝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1942년부터 3년간 행해진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조사와 충남대학교박물관을 중심으로 1979년부터 1992년까지 6차례 걸쳐 이뤄진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사적 제301호 부여 정림사지의 연지·중문·회랑 ·강당지, 우물, 와요지 등이 확인돼 가람구조의 전체 윤곽이 드러났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사는 백제시대와 고려시대 유구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시기별 가람구조의 구분이 모호했다. 정림사지에 대한 연구와 정비 복원에 혼란이 있었다.

이에 따라 이뤄진 올해 조사에서는 백제시대 강당(동서너비 40m, 남북길이 16m), 회랑지, 석축배수로와 강당지 서편으로 별도의 건물지가 새롭게 확인됐다. 이를 통해 강당지 좌우에 별도 건물지가 강당지와 나란히 위치하고 남쪽으로 와적기단의 회랑이 배치되는 가람구조임이 드러났다. 북·동회랑지의 적심석군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부여문화재 연구소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백제시대와 고려시대 가람구조 및 축조기법을 규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발굴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백제시대의 가람구조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재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by 100명 2008. 6. 27. 20:31

'동의보감' 등 6건 보물 지정 예고

기사입력 2008-06-27 14:42

'동의보감' 등 6건 보물 지정 예고

【서울=뉴시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27일 허준의 ‘동의보감’, ‘영천 은해사 순치 3년명 금고’,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 ‘청자 양각 연판문 접시’ 등 총 5건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또 ‘영주 가흥리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221호인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에 추가 지정 될 예정이다.

‘동의보감’은 허준 등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들을 모아 집성한 것이다. 1613년에 내의원목활자본으로 간행된 이 책은 모두 25권으로 구성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다. 국내에 남아있는 동의보감 초간본(목활자본)은 전본이 드물어 희소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영천 은해사 순치 3년명 금고’는 규모와 장식성, 예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646년 수도사 금고로 만들어졌으며 17세기 전반기 금고의 면모를 알려준다.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중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3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보살상 안에서는 10종 194점에 이르는 복장유물이 함께 있다. 이 중에는 1007년 총지사에서 간행한 목판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보협인다라니경’ 등 고려시대의 전적류들이 포함돼 있다.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은 도난당한 충남 유형문화재 제34호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에서 수습된 복장유물이다. 경전·다라니 등의 인쇄자료와 발원문, 필사자료 등 다양한 전적류, 고려 말에 제작된 복식과 각종 직물류, 팔엽통 등으로 이뤄졌다.

‘청자 양각 연판문 접시’는 12세기경 강진 사당리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형·문양·유색 등 전체적인 제작수법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고려 시대 청자 접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편, 보물 제931호 ‘조선태조왕이성계상’은 ‘조선태조어진’으로 명칭 변경한다.
by 100명 2008. 6. 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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