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25m서 둥근 금속물체 발견"
다이버 신고 … 문화재청 수색 중
"몽고군이 빠뜨려" 이야기 전해와
왜군이 훔친 감은사 대종일 수도
잠수경력 28년째인 베테랑 다이버 김기창(54·경북 포항시 문덕동)씨가 동해바다 깊은 곳에서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금속물체를 발견한 것은 1년쯤 전의 일이다. 분실된 어구를 찾느라 포항시 양포항 인근 바다로 들어간 김씨의 눈앞에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수심 25m쯤의 해저에서였다.
김씨는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바다 밑에 누워 있었다”며 “당시엔 선박에 달린 연기 나가는 원통형 환기구인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입구는 자신의 키보다도 더 컸다. 물체를 더듬었더니 두께는 한 뼘이 넘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외관은 깨끗한 편이었으나 머리 쪽은 부식되고 이물질이 많이 붙어 있어 물체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 몇 달 뒤 TV에서 우연히 황룡사 대종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자신이 바닷속에서 보고 만진 게 바로 대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자료를 뒤적이는 동안 김씨의 직감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는 아예 배를 한 척 구입하고 800만원짜리 수중카메라까지 마련했다. 자신의 눈으로 대종의 실체를 확인한 뒤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처음 금속물체를 발견한 좌표를 알 길이 없었다. 김씨는 지난달 8일 “반드시 대종을 찾아달라”며 문화재청에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알렸다.
신고를 접수한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김씨의 진술이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문화재청은 탐사선을 동원해 경주와 포항의 경계지역인 양포항 앞바다에서 수중탐사에 들어갔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1일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황룡사 대종이나 감은사 대종을 둘러싼 이야기가 전해 오는 것을 감안하면 유물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과연 김씨가 본 물체는 무엇일까. 최 시장이 말한 대로 경주 감포 앞바다에 수장된 대종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전해져 온다.
하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경덕왕 13년(754년)에 주조된 높이 3m9㎝, 무게 108t의 황룡사 대종이다. 고려 숙종 때 한 차례 다시 주조됐다. 역사적 기록은 이게 전부다.
유홍준(64) 명지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대종 이야기를 언급했다. 1235년 경주의 황룡사 구층탑을 불태운 몽고군이 황룡사 대종을 원나라로 가져갈 계획을 세웠다. 대종은 에밀레종보다 무게가 5배 이상일 정도로 컸다. 이 작전은 바닷길이 아니고는 운반이 불가능해 대종을 뗏목에 싣고 강에 띄워 바닷가로 운반하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바닷가에 거의 다 왔을 때 그만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대종은 물살에 실려 동해바다 어딘가에 가라앉았고 이후 이 하천을 대종천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주시 이채경(52) 학예연구사는 “흥미로운 수장 사연은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하나는 감은사 대종이다. 감은사는 경주시 양북면에 있었던 절로 지금 절터에는 탑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대종을 훔쳐 어선에 싣고 일본으로 운반하려다 심한 파도로 배가 침몰하면서 감포 앞바다에 수장됐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를 바탕으로 1980년대에는 문화재관리국이, 97년에는 해군이 각각 문무왕릉 주변 해저를 탐사했지만 대종을 찾는 데 실패했다.
이번 세 번째 탐사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중순부터 신고자 김씨가 지목한 주변 사방 1㎞ 해역을 차례로 전문 잠수부 4명이 번갈아 가며 조사하고 있다. 사이드스캐너소나란 장비로 해저 촬영도 병행하고 있다. 문환석(52) 수중발굴과장은 “지금은 19t급 탐사선이 동원되고 있지만 유물의 존재가 확인되면 290t급 발굴전용선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발굴 해역의 바닷속 지형이 2∼3m 높이의 돌기둥이 산재한 데다 해저 시야가 1m도 안 나와 샅샅이 수색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탐사선 씨뮤즈호를 탄 연구소 홍광희 주무관은 “최근엔 바다 기상까지 나빠 장기간 탐사가 불가피하다”며 “아예 못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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