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한국산 멀티플렉스' 대륙에 둥지 틀다
[중앙일보 2007-04-02 21:35]

[중앙일보 주정완] 중국 상하이 중심가에서 동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다닝(大寧) 쇼핑센터. 한국의 CGV와 중국의 상잉(上影)그룹이 합작으로 세운 멀티플렉스 상잉CGV가 한창 영업 중이다.

이곳에서 유일한 한국 직원인 박철완(34) 점장은 지난해 10월 극장 개관을 기념해 한국영화제를 열었다 난생 처음 경찰서 신세를 졌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왕의 남자' 포스터를 경품으로 나눠줬는데 나중에 고객들끼리 심한 몸싸움이 생겨 현지 경찰의 호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와 이준기에 대한 중국 관객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당시 '왕의 남자'에는 객석이 꽉 차고 보조 의자까지 가져와야 할 정도로 관객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왕의 남자'의 인기는 '불법 DVD의 천국'으로 불리는 중국에서도 극장의 큰 화면을 선호하는 관객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상하이처럼 소득 수준이 높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은 매년 30~40%씩 늘어나고 있다. 현재 중국은 13억 인구에 1300개 극장(3000개 상영관)뿐이다. 그나마 지난해 70개 극장(300개 상영관)이 늘어난 결과다. 4800만 명이 사는 한국에 2000개 가까운 상영관이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엔 고급 멀티플렉스가 30개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영화계가 중국 극장 사업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물론 상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CGV는 상하이 1호점(6개관)을 거점으로 중국 시장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뒤 주요 대도시 위주로 극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메가박스도 6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 합작 멀티플렉스 1호점(8개관), 연말에 베이징 싼리툰(三里屯)에 2호점(8개관)을 잇따라 열기로 했다. MK픽처스는 올 1월 정저우(鄭州)에 '동방명강'이란 이름의 합작 멀티플렉스 1호점(6개관)을 세웠고, 내년 말에는 5개 점포, 45개 관까지 늘릴 계획이다.

CGV 중국본부의 임종길 본부장은 "한국 극장가는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상영관 수도 곧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새로운 돌파구와 미래 성장 동력의 축을 찾기 위해 중국 진출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극장들은 중국 관객을 사로잡는 최대 경쟁력으로 서비스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다. 상잉CGV의 박 점장은 이를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가 없다. 매표소와 상영관.영사실을 수시로 돌아보며 직원들의 서비스 상태를 점검, 필요에 따라 격려도 하고 야단도 친다. 한국식 친절 서비스를 중국 직원들의 몸에 배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직원이 파견 나와 두 달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웃는 법, 인사하는 법, 티켓과 잔돈을 공손히 건네주는 법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곳의 중국 직원 허웨이(何偉)는 "CGV에 들어와서 비로소 친절.서비스.예의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점장은 "중국에선 손님에게 잔돈을 집어던지는 것을 예사로 생각한다. 적어도 CGV에선 그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교육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의 결과 CGV는 상하이 극장가에서 설립 5개월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호텔처럼 별의 개수로 극장의 등급을 매기는 중국에서 최고급을 뜻하는 별 다섯 개도 받았다. 이미 지난해 중국 100대 극장에 포함됐고, 조만간 30대 극장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상하이 네티즌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평가에선 극장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중국 극장가에선 규제가 심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상영작을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는 게 대표적이다. '왕의 남자'의 경우 끝내 중국에서 정식 개봉을 하지 못했다. 반란과 동성애라는 민감한 소재로 인해 중국 당국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중 합작으로 세운 극장이라도 한국 영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CGV의 임 본부장은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불법 DVD가 인기를 끄는 것"이라며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개최 등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영화산업의 주변 환경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7. 4. 3. 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