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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우리 문화를 고사시킨다 문화산업정책이 시장논리에 개방되면 폐해 측량 어려워
한미FTA를 통해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로선 협정 내용조차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다. 당초 정부는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었다. 그것이 완전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손뼉도 맞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정부의 거짓말이 지켜지기 위해선 미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미국은 대놓고 쇠고기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가 미국에게 드러내놓고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한 것이다. 자국민을 속여가면서까지 저자세로 일관한 정부를 보면 한미FTA의 내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전에 그룹 <자우림>의 김윤아는 지금처럼 상품논리가 득세한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문화계가 모두 망하고 말 것이라는 탄식을 했었다. 만약 김윤아의 주장이 맞다면 어쩌면 한미FTA는 우리나라의 문화계를 망하게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미FTA는 상품논리의 전면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한미FTA의 내용이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더 강하다면, 즉 매우 강력한 시장화 개방을 담고 있다면 문화계엔 상품논리의 쓰나미가 닥친다. 그 경우 지금도 충분히 상품논리에 고사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성장잠재력은 위축될 것이다.
문화 부문에서 정확히 어떤 내용의 협상이 오고 가는 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개시하면서 쇠고기 문제와 함께 국민들에게 한 거짓말인 스크린쿼터 문제를 보면 어떻게 될 지 짐작할 수 있다.
한미FTA로 스크린쿼터가 삭감된 사태의 본질은 이것이다. ‘국가의 문화 정책이 시장에 맡겨짐.’ 즉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규제를 풀고 시장경쟁, 시장선택을 강화, 영화산업정책을 무력화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소비자 선택에 맡겨지는 것이 바로 시장화, 상품논리의 전면화다.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는 사태를 일컬어 소비자 혜택 확대, 소비자 후생 증진이라고 한다. 한미FTA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한미FTA 추진자들은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소비자의 이익은 극대화된다고 주장한다.
한미FTA는 소비자 선택에 대한 규제나 산업정책을 불공정무역, 사적 재산권에 대한 몰수라고 규정한다. 스크린쿼터는 미국 영화자본에 대한 불공정무역이고 미국 영화자본이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사적 재산권을 국가정책으로 몰수한 것이다. 소비자 선택에 맡겨서 소비자들의 자유 선택으로 장사가 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가정책으로 영업, 즉 이익극대화를 방해받아선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국가 정책과 재산권(이익)이 충돌할 경우 재산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한미FTA다. 이것을 위해 투자자에게 쥐어준 무기가 ‘투자자 국가소송제도’다. 이것은 강력한 시장화를 의미한다.
세계 문화콘텐츠산업 국가별 점유율은 미국이 40.9%로 압도적 1위고,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우리나라는 1.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문화 후진국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지식 분야 경쟁력이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문화산업정책이 시장논리에 개방되면 그 폐해를 측량키 어렵다. 시장선택은 소비자의 선호와 이윤이 기준이다. 이윤이 없는 것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소비자 선택이 없는 것도 시장에서 퇴출된다. 아예 발전할 가능성을 원천봉쇄당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미 발전한 선진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후진국의 문화는 시장선택과 상관없이 보호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시장논리는 이런 보호를 용납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특정 부문이 보호로 성장할 경우 타 부문, 타 국가 투자자의 수익을 국가가 몰수한 셈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유로운 선택에 문화에 맡겨진다면 당장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부문은 고사할 위험이 크다. 그런 식으로 수익 절대화 논리가 지배한다면, 결국 <자우림> 김윤아의 주장처럼 문화적 창조성은 위축된다.
90년대 이래 시장화의 폐해를 시정해야 할 시점에 참여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는 시장과 상극이다. 우리나라는 문화는 물론이려니와 문화산업도 아직 유치부문이다. 한미FTA로 그것이 완전 거세될 우려가 있다.
미국이 세계 영화시장의 8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데도 우리 영화산업이 경쟁력이 있다며 자유경쟁하라는 정부다. 문화부문 전체로 보면 미국의 점유율은 40%대에 불과하다. 우리 관료들 감각으로 보면 정말 만만한 상대인 셈이다. 어디까지 열 셈인지 걱정스럽다. 우리 통상경제관료들이 나라를 다 들어먹을 작정인 것으로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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