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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정오, 노란 볍씨가 우박과 함께 남대문 앞 인도와 차로에 떨어졌다. 화가 난 농민들은 40㎏짜리 쌀가마니를 뜯어 허공을 향해 볍씨를 쏟아냈다. 이날 새벽 전북 정읍에서 조달된 볍씨는 서울 도심 도로 위에 흩어졌다 사흘째를 맞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고위급 협상에서 민감한 분야인 농업 분야가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체결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쌀 100포대를 들고 기습 시위를 하는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한미FTA 체결 저지하는 시민단체의 집회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미FTA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이날 기습 시위는 지난 송아지·돼지 등을 동반한 두 차례의 '가축 시위'에 이어 세번째 '현물 시위'인 셈이다. 이날 비대위 관계자 30여명은 12시 5분 남대문에서 광화문 방면 보도에 쌀포대 100개를 쌓은 뒤 일부를 열어, 보도와 차로에 볍씨를 뿌렸다. 이들은 "한미FTA 중단하라"고 외쳤고, '한미FTA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버려진 볍씨 위에 뿌렸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시위대를 에워싸며 철수를 촉구했다. 일부 화가 난 농민들이 경찰을 향해 볍씨를 뿌리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참가자들은 10여분간 기습시위를 진행한 뒤 포대를 버리고 현장을 떠났다. 남겨진 볍씨는 중구청에 의해 압수됐다. 익명을 요구한 고아무개(51·전북 고창)씨는 "미국 쌀 시장이 개방되면, 우리 쌀은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날 기습 시위의 배경을 밝혔다. 이어 "싸다는 이유로 남의 나라 쌀을 먹게 될 상황이다, 차라리 우리 쌀을 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포기, 막퍼주기 협상"... 협상장 밖의 한미FTA 반대 목소리
'죽어도 쌀시장은 내주지 않겠다'던 김영삼 정부는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쌀시장의 문을 열어줬다. 2002년 한중간 마늘협상에서는 이면합의 파문으로,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2005년에는 쌀 재협상 관련 이면합의로 국회에서 국정조사까지 열렸다.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도 쌀시장은 협상 의제가 아니었음에도 미국측이 쇠고기와 함께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가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약속했지만, 고위급 회담 막바지에 미국측의 압박까지 가해지면서 생존권에 대한 불안은 농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비대위는 이날 기습 시위에 앞서 오전 10시 30분, 협상이 진행 중인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는 농업 부문에서는 내줘도 너무 많은 것을 내준, 그야말로 농업포기협상"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협상 막바지에 이른 지금 한국 정부는 '쌀과 쇠고기'를 제외하고, 돼지고기, 과수 등 모든 분야를 사실상 포기했다"며 "쌀과 쇠고기마저 이면합의를 통해 개방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면합의가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가 이미 국민들 몰래 쌀과 쇠고기를 맞바꾼 것"이라며 "농림부와 외통부의 공식 입장을 요청했지만, 외통부는 '협상이 끝난 다음주에나 가능하다'는 수상한 답변으로 얼버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기어이 민심을 외면한다면,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석자들은 항의서한 전달을 위해 협상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 병력이 이를 저지해 양측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인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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