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 1천만 관객? 가당찮다

기사입력 2008-07-27 09:00

‘놈놈놈’ 1천만 관객? 가당찮다

【서울=뉴시스】

◇이문원의 문화비평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 ‘놈놈놈’)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개봉 4일 만에 810여개 스크린에서 219만 명을 끌어 모았다. 사상 5번째 1000만 관객 동원 기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거대제작비로 신 장르 개척→해외영화제 찬사→싹쓸이 개봉 공식이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 ‘괴물’과 일치한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1000만 불가론’도 퍼지고 있다. 일단 관객반응이 신통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기대감이 너무 커서인지 인터넷 게시판은 온통 실망스럽다는 평가 투성이다. 평단 반응도 미지근하다. ‘시도는 칭찬받을 만해도 실행은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개봉 초반부터 이런 네거티브 반응이 쏟아지는 데 과연 1000만까지 롱런할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다.

실제로 ‘놈놈놈’은 여러 가지 면에서 ‘1000만 영화’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위 분석처럼 영화 퀄리티 탓만은 아니다. 퀄리티 떨어져도 1000만에 이른 영화들도 있다. ‘실미도’는 애초부터 실망스럽다는 평가였고, ‘태극기 휘날리며’도 평가가 양분됐다. ‘놈놈놈’과 아주 유사하게 ‘시도는 칭찬받을 만해도 실행은 떨어진다’로 갔다. 비록 1000만에는 못 미쳤지만, 퀄리티 논쟁을 일으키며 그 근처까지 간 ‘디워’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놈놈놈’은 어디서 ‘1000만 영화’로부터 멀어진 걸까. 여기서 ‘1000만 영화 공식’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000만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사회 이슈화’다. 영화 또는 문화적 이슈 한계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돌아볼 만한 화두를 던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목표로는 영화와 별 관계없는 프로그램·보도영역에까지 영화가 언급되어야 한다.

‘실미도’는 북파공작원 이슈를 터뜨리며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까지 진출했다. 인민군가 삽입으로 해묵은 이적성 논란도 함께 불렀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당연히 남북갈등에 대한 조망을 일으켰고, 초대형 규모를 통해 ‘한국영화도 할 수 있다’ 캐치프레이즈를 날렸다. ‘왕의 남자’는 극중 갈등구조가 당시 노무현 정권의 정치상황과 맞물린다는 분석이 일며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중장년 남성층을 자극했다. 젊은층에선 바이섹슈얼에 대한 이슈를 일으켰다. ‘괴물’은 ‘한국영화도 할 수 있다’를 토대로 반미설정 논란을 터뜨렸다.

위 나열에서 공통된 부분은 ‘정치적 이슈’의 보유 여부다. 사회적 대의로 불릴 수 있는 부분도 종종 첨가됐다. ‘놈놈놈’에는 이것이 없다. 일제강점기 설정임에도 반일감정까지도 스무드하게 넘어가버린다. 대형 규모이긴 하지만, 전년도에 이미 300억짜리 폭탄 ‘디워’가 나와 어딘지 싱겁다. 특수효과 기술을 개발했다든가 하는 이슈도 없어 ‘한국영화도 할 수 있다’에서 멀어진다. ‘놈놈놈’과 관련해 9시뉴스나 TV다큐멘터리에서 다뤄줄 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 어느 미디어건 ‘문화’란의 ‘영화’ 꼭지 넘어 ‘놈놈놈’이 다뤄진 경우는 없다.

두 번째 조건으로는, 주동인물의 서민층 설정을 강조하는 작업이 있다. 나아가 사회하류층까지도 가줘야 효과가 제대로 나온다. ‘실미도’는 사회하류층 출신 죄수들이 주인공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서민 가정의 형제, ‘왕의 남자’는 시대상황상 최하위 계층이었던 광대, ‘괴물’ 역시 서민 가정 설정으로 맞췄다.

이런 설정의 효과는 명백하다. 관객층과의 정서적 일체감 형성이 쉬워진다. 1000만까지 가려면 느긋한 대학생, 활기 넘치는 직장 새내기 세대 정도 모아선 안 된다. 영화를 잘 안 보러 다니는 일반 대중까지도 끌어와야 한다. 이들 중 절대다수가 자신의 ‘서민성’을 확신하며 산다. 그리고 이들은 서민층 인물이 거대권력에 의해 핍박받고 희생당하는 설정을 즐긴다. 어떤 의미에선 ‘한의 정서’ 일종이다. 이런 식의 계급적 일체감을 쉽게 주면, 관객은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크게 느낀다.

‘놈놈놈’엔 이런 요소가 없다. 부유층과의 대비가 없으니 서민성이 드러날 일도 없고, 거대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부분도 거의 없다. 그저 모두 특이한 인물이고, 기괴했던 시대에 독특한 결정을 내리고 사는 인물들일뿐이다.

세 번째 조건으로는, 강하고 선이 분명한 내러티브가 있다. 1000만 관객 완성을 위해 후발로 덧붙여지는 비고정 관객층, 즉 ‘500만 이후의 관객층’은 영화에 있어 ‘이야기’를 가장 중시 여긴다. 내러티브가 성긴 영화에 대해 ‘내용이 없다’든가 ‘화면만 요란하다’는 평가를 쉽게 내린다. 내용에 대한 홍보에서 단순하게 확 끌리는 부분이 없으면 애초 극장까지도 안 온다. ‘놈놈놈’은 이런 면에서도 불리하다. 제작규모에 대한 부담 탓인지 별달리 내러티브적 요소가 중요치 않은 소재임에도 이것저것 만들어 끼워 넣긴 했지만, 여전히 선이 분명한 느낌은 못 주고, 홍보 과정에서도 이를 어필하지 못했다.

마지막 조건은 첫 번째 조건, 즉 ‘정치적 이슈 보유’에 종속되는 부분이다. 일단 정치적 이슈를 넣으려면 무조건 좌파적 성향을 기저에 까는 것이 좋다. 이러면 초반 고정 관객층에게서 호감을 산다. 어차피 고정 관객층은 20,30대 젊은 층이다. 중고생 관람가로 등급이 나왔을 때 특히 좌파적 성향은 도움이 된다. 전교조 교사의 관람유도 등으로 학생층을 집중시킬 수 있다. 개봉 후 진보 대 보수 갈등을 야기시켜 논란 마케팅으로 이끄는 데에도 역시 좋다. 우파적 성향을 깔면 논란 자체가 잘 안 일어난다. 물론 정치적 이슈가 실종된 ‘놈놈놈’에겐 아예 해당되는 부분이 없는 이야기다.

이렇듯 ‘1000만 관객’이란 복잡한 전략과 과정을 거쳐야 탄생되는 선이다. 단순히 영화 잘 만들었다고 나오는 선이 아니다. 퀄리티 마케팅으로 나오는 선은 ‘살인의 추억’, ‘추격자’ 등의 500만이고, 여기에 절묘하게 라인업까지 맞아떨어져 ‘아무것도 볼 것이 없을 때’ 혼자 독주하며 나오는 선이 최고선이 ‘타짜’, ‘미녀는 괴로워’ 등의 700만 전후다. ‘디워’를 제외하고, 퀄리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 500만을 넘으려면 히트작 속편이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보면 ‘놈놈놈’은 사실 500만 선도 위태로워야 정상이긴 하다. 그나마 ‘괴물 공식’이라는 ‘거대제작비로 신 장르 개척→해외영화제 찬사→싹쓸이 개봉’ 라인을 맞춰줘 초반 흥행몰이가 거셌을 뿐이다. 이렇게까지 ‘1000만 조건’을 전혀 맞춰주고 있지 못하는 영화가 700만 손익분기점을 잡아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무모한 일이다.

물론 ‘놈놈놈’이 잘 되면 좋다. 한국영화계 전체로 보아서도 좋다. 분위기를 이어 ‘님은 먼 곳에’, ‘신기전’까지 성공시키고 가을흥행으로 넘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단순히 ‘좋은 영화 만들면 관객은 온다’는 신앙으로 이 정도 규모 영화를 기획하는 일은 ‘놈놈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시장은 강하게 베팅하는 개척자의 것이라지만, 그건 규모라든가 장르 개척, 방향성 등의 문제이지 ‘속성’을 베팅해선 될 게 없다.

지금 시장 상황에선 그런 종류의 베팅이 산업 전체로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 따위 ‘속성’에나 신경 쓰다보면 한국영화가 악화일로에 놓여 시장붕괴에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오손 웰즈의 유명한 멘트로 답해줄 수밖에 없다. “제한의 부재는 상상력의 적이다.” 현존하는 가장 값비싼 예술 장르를 다룬다는 건 원래 이 정도로는 어렵다.
by 100명 2008. 7. 27. 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