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시골길… 추억의 '천막극장' 떴다

CGVㆍ경기영상위 오지순회'나눔의 영화관'

어르신 "을매만에 영화귀경…"

관람료 대신 달걀 한 꾸러미

주민들 입모아 "고마운 손님"

"이기 토종달기 난 알(유정란)이라니. 안에 비아리(병아리) 들언지 모르니 조심히 드슈야.(이게 토종닭이 낳은 계란이니, 안에 병아리가 들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 드세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한 탄광마을. 한 아주머니가 '영화관람료'라며 토종닭이 낳은 달걀 한 꾸러미(10알)를 꺼냈다. 건네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번진다.

극장이라곤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골마을에 소박한 영화관이 차려졌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영화를 틀어준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어귀에 있는 마을회관에 남녀노소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뒷짐 지고 섰던 어르신들도 스크린에 불빛이 들어오고 영사기가 소음을 내며 돌아가자 "영화귀경이 을매 만이냐"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국 관객 1억명, 서울 관객 5000만명 시대다. 8000원(주말 기준)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관람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손쉽게 찾는 문화생활 중 하나지만 아직도 전국에는 가까운 극장이 없어 1년에 한 번도 '극장 구경' 가기 힘든 곳이 부지기수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극장 하나당 스크린 수가 대여섯 개씩 되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지어지는 것과 대조적인 풍경이다. 이른바 '컬처 디바이드(문화격차)'.

멀티플렉스 CGV 인천점의 박노찬(36) 영사실장은 시골에서의 영화상영 경험으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CGV가 사회공헌활동의 하나로 시작한 '나눔의 영화관' 행사를 통해 지난해부터 강원도 산골마을을 다니며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시네마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영사기사 일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감동 받아보기는 처음이에요. 대도시 멀티플렉스에서 일하다 보면 좁은 영사실에서 기계적으로 영화만 틀어줄 뿐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웃는지, 우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틀어주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경기영상위원회가 마련한 '이동영화관-사랑방극장' 행사팀을 따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마을을 찾아가 봤다. 이날 마을 복지회관에서 상영한 작품은 영화 '괴물'. 전국적으로 1300만명이나 본 영화라지만 백학마을에선 이 영화를 봤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부 김진희(47) 씨는 "TV에서 '괴물'이 잘된 영화라고 그래서 꼭 보고 싶었다"며 반가워했다.

거동이 불편한 정점혜(76) 할아버지는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은 노부인의 손을 꼭 잡고 복지회관을 찾았다. 영화가 끝난 뒤 "뭔 얘긴지 못 알아듣겠다"며 멋쩍어하던 정 할아버지는 "(영화를) 생전 안 봤지. 보려면 서울꺼정 나가야 돼. 앞으로도 많이 해주면 좋겠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처럼 작은 마을을 다니며 영화를 상영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경기영상위원회 영상사업팀 이안숙 과장은 "스피커 등 음향장비, 프로젝터 등을 구입하는 데 1500만원 정도 들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한 번 장비를 구입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 비용은 덜 드는 편이다.

그런데도 선뜻 이런 행사에 발 벗고 나서는 단체는 많지 않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마룡1리 조순행 이장은 "서울 사람들이야 주말마다 극장에도 가고 하지만, 여기서는 신작 영화 한 번 보려면 아이들하고 계획 잡아서 왕복 몇 시간 걸리는 서울까지 나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면서 "이런 시골동네, 읍면에 좋은 영화를 많이 틀어주면 정말 좋겠다. 영화 틀어주는 사람들한테 꼭 좀 전해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by 100명 2007. 3. 23.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