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만든 ‘부동산 6억 기준’ 가격 오른 현실과 동떨어져 11년된 근로소득세 과표구간 물가·임금인상 전혀 고려안해 21일 오전 런던 다우닝 가(街) 11번지 영국 총리 관저. 차기 총리 내정자인 브라운(Gordon Brown) 재무장관이 나오면서 빨간색 서류가방을 치켜들었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은 그의 두툼한 가방 안에는 올해 영국 예산안이 담겨 있었다.
의회 의사당에 온 브라운 장관이 가방에서 예산안 관련 연설원고를 꺼내 읽어내려 갈 때, 야당인 보수당뿐 아니라 여당인 노동당 의원들까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내년 4월부터 소득세 기본세율을 현행 22%에서 20%로, 법인세율은 30%에서 28%로 각각 2%포인트 인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재무장관 재임 10년간 ‘소리 없이 세금 뜯어간다(Taxing by stealth)’는 비판을 받아온 브라운 장관이 발표한 것이다.
◆영국 등 법인세 인하 경쟁
영국 정부가 감세로 방향을 돌린 것은, 최근 EU(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 세금인하 경쟁이 확산되면서 “부자와 기업을 외국으로 내쫓는 조세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영국에 본사를 둔 한 식품회사가 법인세율이 낮은 스위스로 옮겨갔고,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과 가수 믹 재거가 네덜란드에 세금 회피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해 논란이 일었다.
유럽에선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등이 법인세율을 최근 인하했거나 인하를 추진 중이고,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가 낮춘 데 이어 일본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법인세율을 1%포인트 내리면 세수가 1조5000억원 줄고, 그 혜택은 주로 대기업에만 집중되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우리나라 법인세율(최고 25%)이 OECD 평균 수준(26.7%)보다 낮기에 내릴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우리의 주요 경쟁 상대국인 홍콩, 싱가포르보다는 우리 법인세율이 아직 높기 때문에 낮출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10년 묵은 세금제도 고수하는 한국
우리 정부가 손대기를 거부하는 것은 법인세뿐만이 아니다. 근로자·자영업자들이 내는 소득세의 과표(課標) 기준이나 종부세·양도세를 중과하는 부동산가격 기준은 10년이 다 되도록 손대지 않고 있다. 그동안의 물가나 임금상승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옛날 기준 그대로여서, 실질소득에 비해 무거운 세금을 내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예컨대 근로소득세를 매기는 과표구간은 11년째 유지되고 있어,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과표가 4000만~8000만원 구간(세율 26%)에 속하는 근로자는 5만명에서 26만명으로 5배 이상으로 급증했고, 과표가 8000만원 이상(35%)인 근로자도 7000명에서 5만3000명으로 7배로 늘었다.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는 “세율 체계를 오랜 기간 조정하지 않아 소득증가율보다 세금증가율이 더 커지게 됐다”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물가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소득세 부담이 생기지 않도록 물가연동제를 실시하거나 2~3년에 한 번씩 과표구간을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세 부과 기준 및 종부세 부과 기준으로 쓰이는‘부동산가격 6억원’기준은 외환위기 직후 부동산가격이 매우 낮았던 지난 1999년에 도입돼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전국 아파트값이 136.82% 급등함에 따라 6억원은 양도세나 종부세를 중과하는 기준으로 삼기엔 비현실적인것이 됐다.
예컨대 6억원을 기준으로 보유세 부담은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지난 1년 동안 집값이 똑같이 1억원이 올랐더라도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상승한 A아파트 거주자는 재산세가 99만원에서 108만9000원(재산세 10% 세금 상한 적용)으로 늘어나는 반면,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오른 B아파트 거주자는 올해부터 종부세까지 부담하게 돼 지난해 124만원보다 무려 65% 늘어난 204만원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주용철 세무사).
아주대 현진권 교수는“우리 정부가 좀 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돌아보면서 구닥다리 같은 조세제도를 고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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