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철옹성에 틈새를 뚫는 전방위 공세 스폰지의 사례로 본 작은 영화 수입사들의 생존 전략
[필름 2.0 2007-03-21 19:00]

지난 한 해 영화 수입사 스폰지는 총 57편의 작품을 개봉해 70~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설립된 2002년, 5억의 매출을 올린 지 5년 만의 일이다. 작은 영화의 틈새시장을 연, 사실상의 첫 주자라 할 수 있는 스폰지의 성공사례를 통해 작은 영화 수입사들의 생존 전략과 시장 확대의 가능성을 엿본다.

배우 장첸이 김기덕 감독의 <숨>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날. 영화수입사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장첸과 만난 자리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파리에서 줄리엣 비노시가 주연인 신작 <레드 벌룬>을 찍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부리나케 제작사인 프랑스의 '필름즈 디스트리뷰션'에 연락해 미팅 날짜를 잡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거래한 적이 없는 회사였다. 필름즈 디스트리뷰션은 여러 마켓을 통해 스폰지에 대해 “믿을 만하다”는 정보를 접했던 터라, 흔쾌히 <레드 벌룬>의 국내 판권을 넘겨줬다. 허우 샤오시엔의 전작 <쓰리 타임즈>와 줄리엣 비노시 주연의 <히든>을 수입한 회사라는 점도 판권 계약에 큰 이점이 됐다. 스폰지가 세계 유수의 마켓에서 돈독한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프랑스 제작사 셀룰로이드 드림의 경우에도 <5X2> <토니 타키타니> 등을 스폰지에 판매한 뒤부터 이 회사와 두터운 관계를 맺어왔다. 그 인연으로 셀룰로이드 드림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자신의 초기작 <퍼니 게임>을 리메이크하며, 그 영화에 나오미 왓츠가 출연한다”고 미리 알려주기도 했다.

이처럼 스폰지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제작사들의 신망을 얻게 된 데는 한국 내 시장조사 데이터, 개봉 후 정확한 수익정산, 첫 거래를 튼 감독의 작품에 대한 전폭적 지지, 한국 내 흥행성적 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력을 발판으로 2007년 스폰지의 예상 매출액이 100억 원 규모라 하니, 웬만한 메이저 영화사들도 부러워할 만한 대약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스폰지는 어떻게 시장 공략에 성공한 걸까.

신뢰를 구축하기까지

스페인 거대 제작사 소지텍의 경우 “스폰지와 거래하기 전까지 한국의 수입사들이 판권 구입 후 연락이 두절되거나, 허락 없이 불법 비디오를 출시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해 한국과 거래를 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소지텍은 스폰지가 홀리오 메뎀 감독의 <루시아>를 수입하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이에 대해 스폰지는 매주 시장상황과 수익정산에 관한 리포트를 빠뜨리지 않고 보내주며 조금씩 한국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루시아>의 수입가격을 책정하는 데 있어서 스폰지의 판단 잣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었다. 홀리오 메뎀 감독의 작품은 한국에서 거의 인지도가 없어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보다 높은 가격으로 살 수 없다고 설득해 20% 낮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괴물>급의 영화라 해도 "한국에선 단관 개봉해서 2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든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면 대개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례는 스폰지가 해외 화제작 수입선을 선점할 수 있는 비결이 다른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래 과정에서의 신뢰. 그리고 그 신뢰에 바탕을 둔 네트워킹의 힘인 셈이다.

단지 그뿐만은 아니다. 스폰지가 국내에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것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부터. 이 작품의 흥행성공 후 스폰지는 스타 감독이 된 이누도 잇신의 작품들을 연이어 소개했다. 이누도 잇신뿐만 아니라 스폰지를 거쳐 갔던 기타노 다케시, 빔 벤더스, 미셸 공드리 감독 등이 연출한 작품들 대부분을 구입했다. 옛날 작품의 경우 판권 구입가격이 싸 예산 부담은 적은 편이었다. 오는 15일 열리는 ‘빔 벤더스 특별전’ 역시 이러한 스폰지의 ‘감독 라이브러리 구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폰지는 한 번 인연을 맺은 감독들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보여줬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매조건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관객들에게는 스폰지라는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켜주는 계기도 됐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리스크를 줄여라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의 경우 <조제>가 재개봉하던 날 한국을 방문한 이누도 잇신 감독이 구입을 권유한 케이스다. 스폰지 관계자는 “막상 테이프로 봤는데 재미가 없더라. 흥행에 자신이 없어 개봉을 미루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메종 드 히미코>는 이것이 기우였음을 입증했다. 지난해 9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든 흥행작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사실 작품만 놓고 보면, 흥행 가능여부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작품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선구매하는 경우에 리스크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거꾸로 제작단계에서 미리 구매하는 것은 좋은 작품을 싼 값에 먼저 구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모험과 무리수가 야기할 위험을 상쇄하는 것은 역시 감독에 대한 믿음이다. 이 무형의 자산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실질적인 열쇠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왕에 수입한 영화를 유통시킬 때는 철저히 경제적인 접근을 한다. 이 단계에서 무리수란 있을 수 없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작품을 마케팅하고, 마케팅 비용을 간소화하는 과정이 뒤를 잇는다. 작품을 수입한 후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개봉시점과 개봉관 수, 마케팅 방법 등. 우선 단관 개봉을 할 영화인지, 10개 미만 정도로 개봉할 것인지, 와이드 릴리즈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스폰지는 2만 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판권 구입한 영화들은 대체로 단관 개봉했다. 하지만 "최근 판권가격이 높아져 5만 달러 미만의 영화들의 경우 단관 개봉하는 편"이라고 한다. 10만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구입한 작품의 경우 10개관 미만으로 개봉한다. 가장 고민되는 것은 바로 10만 달러에서 20만 달러 사이의 영화들. “이들은 와이드 릴리즈 하기도 애매하고 작게 개봉하기에도 버거운 영화”이기 때문.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이 그런 케이스였다. 결국 <수면의 과학>은 와이드 릴리즈라는 모험 대신, 10개 미만의 극장에서 개봉, 장기상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7주 만에 5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 한 번의 성공이었다.

<바벨>은 영국 배급사 서밋과의 오랜 신뢰에 힘입어 50만 달러에 산 영화. 작품의 지명도가 높아 판권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90~110개관에서 와이드 릴리즈 해야 했다. 보통 스폰지 영화의 경우 10개 미만에서 개봉되는 경우가 많아 광고가 거의 없었던 반면 “<바벨>은 영화사 봄에서 파견 근무를 와서 공동으로 마케팅을 진행한 작품"이었다. <바벨>의 경우 40만 명이 손익분기점으로, 현재 20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약간의 손해가 있지만 부가판권까지 생각하면 거의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정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와이드 릴리즈에는 늘 위험부담이 따른다. 올해 개봉할 오다기리 죠 주연의 <도쿄 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이하 <도쿄 타워>)는 와이드 릴리즈가 가능한 영화임에도 순차 개봉할 계획이다. 먼저 서울에서만 10개관 정도에서 상영한 뒤 반응이 좋으면 지방까지 확대하는 방식이다.

관객의 트렌드를 주시하라

스폰지 영화의 경우, 단관 개봉이 많아 작품당 마케팅 비용이 평균 1억 원을 넘지 않는다. 케이블 판권만 해도 3~4천만 원이고, 자체 제작한 DVD 수입까지 생각하면 극장 관객이 한 명도 안 들어도 본전은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정한 원칙이 '마케팅은 최대한 간소화'다. 대신 작품을 최대한 일찍 노출시키는 전략을 택한다. 예고편을 만들어 일찍 극장에 내보내고, 전단, 포스터 등을 제작한다. “우리는 한강 가서 낚시 안 한다. 고기가 있는 저수지를 찾아간다. 한강에 가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보장이 없다. 정해진 타깃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가능하면 관객들을 능동적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스폰지는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인 ‘스폰지 하우스’(http://cafe.naver.com/spongehouse)를 만들었다. 현재 2만 5천 명 이상이 가입한 이 카페야말로 스폰지 소식을 그 어떤 언론매체보다 빨리 알 수 있는 곳이다.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들에게 회원자격을 준다는 조성규 대표는 “한 번에 공지를 쪽지로 띄울 수도 있어, 마케팅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중소 수입사인 유레카 픽쳐스 (cafe.naver.com/eurekapic)와 필름포럼(cafe.naver.com/filmforum) 역시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스폰지로서는 자체 극장(스폰지 하우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안정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조성규 대표는 “작은 영화사들도 극장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게 쉽지 않다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임대해 재임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극장 운영뿐 아니라 DVD 제작까지 겸하고 있는 스폰지의 경우 수입, 배급, 극장, 부가판권 등이 수직계열화돼 있다. 조성규 대표는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독점구조를 낳았다면, 작은 영화의 수직계열화는 안정적인 상영공간과 수익모델"이라고 말한다.

극장이 있고, 영화제가 열리며, 특정 감독들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소개된다는 인식은 이 회사의 차별화된 브랜드 파워를 만드는 든든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시장을 돌파하는 중요한 원칙은 규모가 작다고 해서 다른 게 아니다. 관객 트렌드를 부지런히 좇는 것. “해외 영화제에서 대상 받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작품이 트렌디해야 한다. 에단 호크가 연출한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바로 샀다. 이 작품이야말로 트렌드에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이누도 잇신이 연출하고 일본 아이돌 그룹 아라시 전 멤버가 출연한 <노란 눈물>을 사려는 이유도 '팬덤 문화'가 이 시대의 트렌드 중 하나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개성 넘치는 감성과 연출, 비주얼을 선보이는 작가들도 스폰지가 눈독을 들이는 트렌드의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내년에 나오는 ‘아이폰’ 얘기를 벌써 하고 있지 않나. 애플은 더 이상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트렌드를 만드는 회사다.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몇 억을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

작은 영화 수입사들의 다양한 색깔 찾기

스폰지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작은 영화 수입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2005년 7월 설립된 유레카 픽쳐스가 있다. 주로 프린트 100~200개 정도를 제작하는 중간급의 영화와 소규모 개봉하는 아트영화 위주로 수입하는 회사다. 유레카 픽쳐스가 수입사로서 그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에 개봉된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 이른바 '낚시 마케팅'을 활용해 전국 160개관에서 개봉해 18억 5천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포스터와 예고편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영화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실제 영화는 잔혹하고 기괴했다. 영화 관람 뒤 극과 극의 반응이 나왔다. 그게 흥행 요인이 됐다. 제대로 관객들이 '낚인 것'이다." ‘메이저를 지향하는 인디영화사’를 표방하는 유레카 픽쳐스는 스폰지와 달리 와이드 릴리즈 개봉에 적극적이며 직배사와 정면으로 맞부딪칠 수 있는 다른 영화로 자신의 수익모델과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반면, 일본영화전용관을 표방하는 씨네콰논 코리아는 일본 씨네콰논 본사에서 제작되는 영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좀 더 사회적이고 진지한 작품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박치기!> <린다 린다 린다> <유레루> 등을 장기 상영해온 씨네콰논 코리아는 지금까지의 소규모 개봉에서 벗어나 <훌라걸스>를 쇼박스에 배급 대행을 맡겨 처음으로 70개관에서 상영했다. 프리비전의 이선희 실장은 "개봉관 수가 적어 전국 박스오피스 순위가 낮았다. 하지만 첫 주 토요일과 일요일 관객 수 차이가 없었다"고 말한다. 첫 주 토요일에 비해 일요일 관객이 줄어드는 대다수의 영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다행히 쇼박스도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타기까지 장기상영할 계획"이라며, "날이 갈수록 관객 수가 많아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스폰지와 유레카 픽쳐스, 씨네콰논 코리아, 영화사 진진, 씨네큐브뿐 아니라 최근 코랄픽쳐스, 거원시네마 등 작은 영화 수입사들의 목록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을 수입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자연히 판권가격도 올라갔다. 하지만 차별화된 다양한 방식으로 굳건한 시장의 벽에 나름의 틈새를 뚫으려는 시도가 더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를 갈구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 그 틈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사진 주성용
박혜영 기자

by 100명 2007. 3. 21.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