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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한 할리우드 영화 `300`을 보면서 든 생각 한 토막. "왜 페르시아 군대가 쓴 하얀 철가면이 몽골 사람처럼 보일까?" |
영화 본 관객은 아시겠지만 스파르타 300명 군대를 덮치는 페르시아 100만 대군 중 일부가 무섭게 생긴 하얀 철가면을 쓴 탓이다. 그것도 넓고 펑퍼짐한 코, 상대적으로 큰 머리와 작은 키를 갖춘, 그래서 어느 인종인지 대번 알 수 있는.
가면 뿐만이 아니다. 영화속 옛 페르시아 군대는 코끼리까지 동원하고, 폭약 같은 암수를 쓰며,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는 걸로 그려졌다. 이는 마치 삼국지 만화 `창천항로`에서 중원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오랑캐들이 매번 등장할 때마다 그려지는 그 모습과 대동소이하다. 한마디로 정통 육탄전이라는 정도를 걷는 스파르타 군대에 비해, 페르시아는 신비의 꼼수를 쓰는 미개하지만 무섭기는 한 모략꾼이라는 이미지.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이 이 영화에 `버럭` 화를 낸 것도 당연하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도 이같은 흑백논리가 가능하다. 판타지 영화 속성상 살벌하게 생긴,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악의 무리가 정확히 어느 인종인지는 불분명하나, 분명한 건 이 피터 잭슨 감독 영화의 착한 주인공들 즉 간달프, 아르웬, 아라곤 등의 선한 무리는 여러 모로 보아 확실히 백인종 계열이었다는 것.
지지난해 LA의 인종차별을 고발한 수작 `크래쉬`에서도 생뚱맞은 대사가 나와 일부 한국관객은 찝찝한 실소를 날려야 했다.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난 한 동양인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달라는 장면. 그 급박한 상황에서 돈을 밝히는 `이상하고 이해못할` 동양인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한 것까지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 여자친구가 그 동양인 남자에게 "조진구!"라고 한국이름을 쓰느냔 말이다.
또 있다. 팀 버튼의 황홀한 판타지 `빅피쉬`. 영화에서 허풍선이 아버지의 이상하고 기묘한 경험담의 대표주자였던 샴쌍동이 자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차대전도 있고, 2차대전도 있는데, 하필 한국전쟁을 골라 또 하필 그 샴쌍동이 자매를 한국 아니면 중국사람으로 그린 이유가 뭘까. 파란 눈보다는 갈색 눈이 더 `이상하고 신비한` 탓일까.
맷 데이먼의 재미난 지적 스릴러 `본 슈프리머시` 초반 인도추격전에선 더 기가 막힌 대사가 나온다. 극중 `나쁜 놈`이 우리의 현대 EF소나타를 타고 `좋은 놈` 본(맷 데이먼)을 추격하는데 이 차를 보고 제이슨 본이 한마디 한다. "놈도 이상하고, 차도 이상하고.." 영화초반 혹시 현대차의 앞서가는 PPL이었나 하는 기대가 한순간에 싹 가시는 순간이다.
결국 이같은 동양인에 대한 묘사는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할리우드 아니 서양인들의 뿌리깊은 편견 내지 세계관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유라시아 대륙을 뒤흔든 징키스칸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과 호들갑스러운 비난. 또한 역사적으로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나(서양) 아니면 이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질 자 없다는 그 오만방자함.
서양인들의 이같은 몹쓸 생각은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배우는 동양무술, `킬빌`의 우마 서먼이 냅다 선보인 일본검술에 대한 일방적 짝사랑-보랏빛 판타지와도 결국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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