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무것도 아닌 선진교통문화
1982년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켈링은 뉴욕의 한 평범한 마을이 어느 한 아이가 장난삼아 돌을 던져 빈집의 유리창을 깬 것을 방치해 결국 그 집은 아이들의 장난대상이 되어 모든 유리창이 깨지고 그 파편들이 거리로 나왔지만 아이들을 나무라는 사람도, 그 파편을 치우자는 사람도 없었고 또다시 아이들은 주인 없는 빈 집에 돌을 던지고 파편이 거리에 흩어지는 악순환이 되어 결국은 빈민가가 되어버렸다는 얘기에 빗대어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기초질서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사소한 것이라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고 지키지 않을 때 더 큰 공동의 질서가 위협받는 것이다. 교통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느끼는,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하는 기초적인 교통질서들의 위반이 큰 대형 참사를 낳고 거리의 무질서를 낳는다.
사람들은 거리의 불법 주차된 차량, 난폭운전, 신호위반 등의 무질서를 보면서 혀를 차며 ‘저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자신의 앞에서 그런 것을 보거나 그로인해 자신의 통행에 불편이나 위협이 되면 흥분하며 종종 시비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누구나 위에서 말한 기초교통질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는 것에 혀를 차고 흥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초교통질서에 대해 잘 알면서도 왜 우리의 교통문화가 선진화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멀었다며 한숨만 쉬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을 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자신은 남이 지키지 않는 것에 한탄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단속에라도 걸리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단속한 경찰관의 면허증 제시요구에 면허증을 던져버린다. 교통사고라도 나면 일단 큰 소리 먼저 치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충고랍시고 한다. 이런 우리 자신이 남이 지키지 않는다고 흥분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교통법규를 잘 지키라고 훈계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선진교통문화로 가는 길이 사람들이 우리는 안 된다고 말 할 만큼 그리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멀리 신호가 파란불이 들어왔을 때 지나가려고 속력을 내기보다 ‘다음 신호에 가면 되지’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사람. 조금 빨리 가려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고 무단횡단을 하기보다 조금 늦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금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자신의 실수를 덮어보려 큰 소리 치기보다 미안하다 고개 숙일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이고 이러한 마음의 여유가 선진교통문화의 근본이다.
세상엔 완벽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교통질서 지킴이도 없다. 누구나 실수 한번쯤 하듯이 교통질서도 한번쯤 어길 수 있다. 단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남보다 좀 더 지키려는 사람이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닐까.
지극히 원론적인 얘길지도 모르지만 선진교통문화로 가는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다. 모든 문제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히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을 따지고 들어가면 근본적인 문제는 언제나 하나가 아닐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한국인의 고질병이라는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선진교통문화로 가는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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