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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스전문 채널 CNN이 지난 5일 오후 1시(미국시간 4일 밤 11시)부터 찬·반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종군위안부 관련 설문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6일 낮까지만 해도 55%대 45%의 비율로 찬성쪽이 많았으나 이날 저녁부터 상황이 역전되자 일본 측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거나 CNN 측이 광고를 위한 낚시성 조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설문 내용은 “Should Japan apologize again for its World War II military brothels? (일본은 2차대전 중 군대위안소에 대해 다시 사과를 해야 하는가?)”이다.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단순히 ‘Yes’나 ‘NO’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9일 오전 11시 현재 인터넷 투표에 참가한 네티즌은 무려 304만 6천여명. 찬반 비율은 23%대 77%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국네티즌들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지난 6일의 일처럼 하루나절에 갑자기 찬반비율이 뒤바뀌었다는 점, 투표시작 나흘 만에 참가자가 300만명을 넘어섰다는 점 등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결국 이 문제와 관련 있는 국가나 국민, 또는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집단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처음 이틀 동안 찬성비율이 높다가 갑자기 반대비율이 높아진 것은 순수한 네티즌의 참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지난 며칠 동안 뉴욕타임즈나 LA타임즈 등이 일본의 아베 총리가 군대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회가 결의안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일본은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보도하면서 사설로 비판한 것을 제외하면 미국 언론들이 거의 침묵을 지켜왔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참여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CNN의 즉석 인터넷조사는 매번 신뢰성 문제 때문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6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이 적합한가”라는 설문조사에서도 찬성이 90%를 넘어섰고, 2005년 8월의 “일제가 2차대전 희생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가”라는 조사에서는 반대가 무려 99%로 나타났다. 한국네티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런 조사결과를 두고 CNN측은 인터넷투표가 과학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투표에 참가한 네티즌들의 의견만을 반영할 뿐 일반의 여론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네티즌들은 “번번이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데도 무엇 때문에 이런 즉석 여론조사를 하느냐”며 CNN쪽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CNN의 이 같은 여론조사를 계속 실시하고 있는 데는 한일 두나라 네티즌의 감정을 자극시켜 클릭수를 높임으로써 광고수익을 올리려는 저의가 깔려있다고 꼬집고 있다. 이른바 ‘낚시성 여론조사’라는 주장이다. CNN은 이런 방법으로 큰 재미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CNN 조사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이나 메신저, 미니홈피 방명록 등에는 CNN 사이트의 주소와 투표방법을 소개하면서 투표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일본에서도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한국의 추격이 시작되고 있다”며 네티즌들의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언론들은 “한국과 일본 네티즌들이 인터넷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모든 상황은 CNN이 의도(?)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처럼 양쪽의 싸움으로 재미 보는 것은 CNN이라고 하겠다.
신뢰성이 실종된 인터넷 설문조사
포털사이트나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인터넷 설문조사는 매우 편리하다. 찬·반을 가리는 경우는 바로 결과를 알 수 있어서 네티즌들이 손쉽게 참가한다. 그러나 CNN의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특정집단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한꺼번에 참여할 경우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설문 제안자가 질문 자체를 갖고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이번 CNN 조사에 서 제시된 질문 가운데 “다시 사과를 해야 하는가”라는 대목이 그렇다. 일본은 그동안 한번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는데도 ‘공식적인 사과’를 했던 것으로 오인케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답변자로서는 “굳이 또 한번 사과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넷 설문조사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취약점은 조사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응답자들은 표본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한 사람들이어서 대표성이 전혀 없다. 중복으로 응답할 가능성도 높다.
CNN의 조사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실시되고 인터넷설문조사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조사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아울러 조사결과를 맹신해서도 안 된다. 아날로그방식에 익숙해 있는 기성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디지털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마저 오늘날의 디지털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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