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과학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문화 예절은 그대로다. 작은 배려가 부족해 많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기도 한다. 특히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그에 따른 소음 스트레스도 많아졌다.
◇조용한 출근길, 지하철에선 아침 드라마 소리가
경기도 분당에 사는 직장인 신모(26·여)씨는 최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짜증나는 일을 겪었다. 옆자리에 앉은 30대 후반의 남자가 DMB전화의 스피커를 켜놓고 열심히 아침 드라마를 봤다. 40분쯤 되는 출근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싶었지만 날카롭게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책을 덮었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하는 생각에 눈을 감고 기다렸지만 옆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DMB를 봤고, 참다못한 신씨는 조용히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럿이 함께 개그 프로그램 보면서 ‘깔깔깔’
3일 오후 서울 반포동에서 잠실까지 버스를 타고 가던 대학생 이모(25)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고교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4명이 버스에 오르더니 최신형 DMB폰으로 개그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보면서 크게 웃고 떠들었다. 유재석 박명수 등 출연자들의 목소리가 꽤 멀리 떨어져 앉았던 이씨의 귀에까지 또렷이 들렸다.
이씨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스피커를 이용해 DMB를 보거나 휴대전화·휴대용 게임기 등으로 시끄러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자주 본다”며 “그럴 때마다 일일이 소리를 줄여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워 그냥 참거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곤 한다”고 말했다.
◇기술은 자꾸 발달하는데…매너는 어디로?
DMB전화나 MP3 플레이어·휴대용 게임기·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등 개인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가 발달해 대중화 됐지만 사용자들의 예절의식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원치않는 소음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글이 이어진다.
‘김**’라는 네티즌은 지난해 11월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자신이 겪은 일을 올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 스피커로 소리를 크게 틀어놓은 채 채널을 이러저리 바꾸며 DMB를 보길래 “이어폰으로 들으시죠”라고 했다가 “아무도 뭐라고 안하는데 왜 혼자 그래요?”라고 쏘아붙여 오히려 민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출퇴근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에서 짧게나마 눈을 붙이면서 피곤을 달래는데 소수의 배려 없는 사람들 때문에 하루종일 기분이 씁쓸했다”고 밝혔다.
‘옆사람 MP3 플레이어 음악 소리가 이어폰 밖으로 다 새어 나와 거슬렸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장시간 통화하는 사람이 많아 짜증난다’ ‘휴대폰 벨소리나 키소리가 시끄러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크게 소리내 게임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등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용자들을 성토하는 댓글이 200여개 달렸다.
◇이어폰 두고 와서, 잃어버려서, 우월감 때문에…‘無매너족’ 이유도 가지각색
외부 스피커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건 아닌데 깜박 잊고 이어폰을 두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DMB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28)씨는 “가끔 깜박 잊고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할 수 없이 소리를 아주 작게 해 놓고 DMB 방송을 본다”면서 “요즘 기술이 좋아지면서 DMB전화나 멀티미디어 기기에 달린 스피커 성능이 좋아진 것도 소음 피해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폰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리모콘이나 통화 등의 부가기능 때문에 전용 이어폰을 제공하는 DMB폰이 많은데 실수로 잃어버리면 다시 서비스센터에 가서 사야 한다”며 “시간을 내 다시 구입하기 어려워 그냥 외부 스피커를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신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無매너족’을 부추긴다. DMB전화를 사용하는 대학생 이모(23·여)씨는 “남들보다 좋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 때도 있다”면서 “가끔은 공공장소에서 ‘나 이런 거 본다’는 우월감 때문에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폰 소음, 피로감 높인다는데…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배명진 교수(소리공학연구소 소장)는 지난해 11월 이어폰 소음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MP3 플레이어나 DMB전화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심한 소음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팀은 시판 중인 이어폰 17개를 대상으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파형과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cm 거리에서 대역폭 평균 3000Hz, 75cm 거리에서 1000Hz, 100cm 일 때 800Hz로 나타났다. 사람 귀에 잘 들리는 소리는 3500Hz 대역인데 이보다 낮아지면 소리 크기는 작아지지만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음이 된다고 배 교수팀은 밝혔다. 따라서 이어폰에서 멀어질수록 소리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들리지 않고, 귀의 피로감만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법으로 규제하자” vs “스스로 매너 지킵시다”
외부 스피커 소음이나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성토가 이어지면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네티즌은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스스로 에티켓을 지킬 수준이 안된다면 강제로라도 규제를 해야 한다”면서 “공공장소에서 스피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적인 규제 보다는 스스로 조심하자는 의견이 더 많다. 네티즌 ‘김**’는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에 따른 문화도 성숙했으면 좋겠다”면서 “법제화 이전에 스스로 기술 발달에 걸맞는 상식을 갖춘 사용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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