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이벤트에 속타는 문화예술계

기사입력 2008-06-19 16:41 |최종수정2008-06-19 19:51


"무슨 행사가 이렇게 많은지 사람들이 TV, 인터넷, 길거리로 다 몰려간 것 같아요."

올해 들어 선거, 촛불집회, 유로2008, 월드컵 예선 등 각종 대형 이벤트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문화 소비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사람들이 광장과 인터넷, TV 앞으로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문화 소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특히 대형 이벤트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주요 문화 소비 계층인 젊은 층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게다가 8월부터는 온 국민 관심이 집중되는 베이징올림픽까지 열린다.

문화 소비 성수기라고 하는 각급 학교 방학시즌에 열리기 때문에 올해는 여름방학 특수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문화예술계로서는 대형 스포츠 행사와 사회적 이슈 등 각종 악재 때문에 시름이 더욱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 촛불집회에 관객 뺏기는 공연계 '울상'

= "세종문화회관 공연 대신 광화문 촛불집회를 선택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0일 '아지기'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이 '구글'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그는 개인적 소신으로 세종문화회관 블루맨그룹 공연 티켓 S석(9만원)을 포기하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촛불시위가 절정을 이룬 10일 개막한 이 공연은 흥행에 실패했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퍼포먼스그룹이 한국 뮤대에 최초로 올린 공연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집회 중심지인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바람에 '직격탄'을 맞았다.

블루맨 제작진 K씨는 "공연 시기를 잘못 정한 것 같다"며 "유료 관객 수가 1000명도 채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촛불집회 여파로 매일 밤 세종문화회관 야외 중앙계단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 '별밤 축제' 관객도 눈에 띄게 줄었으며 공연 2회가 취소됐다. 세종로 교통이 통제되던 10일 남성혼성 아카펠라그룹 '피버'와 13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공연도 무산된 바 있다.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와 관람객들도 교통 통제와 혼잡으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7일 대극장에서 공연한 그룹 '시크릿 가든' 제작진은 차량을 인근 경희궁에 대기시켜 놓고 악기를 들고 걸어다녀야 했다.

블루맨그룹뿐만 아니라 뮤지컬 '컴퍼니'와 '줌데렐라' 등 다른 공연들도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

한 극장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회적 이슈와 시위로 공연들이 죽을 쑤고 있다"며 "공연계 전반이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 한산한 극장가, 속타는 충무로

= 충무로는 하반기 한국 영화 기대작 3편을 모두 7월에 개봉하기로 했다. 프랑스 칸영화제에 초대됐던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17일 스타트를 끊고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와 곽경택ㆍ안권태 감독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각각 24일, 31일 개봉한다. 대형 스포츠 축제인 유로2008 축구(6월)와 베이징올림픽(8월)을 피하다보니 개봉이 같은 달에 몰렸다.

충무로는 지난해 11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첫 고통을 겪은 데 이어 올해도 관객 감소가 이어지며 속을 태우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관객 수는 전년 대비 3.2% 감소했다. 한국 영화는 같은 기간 17.5%나 하락했다.

멀티플렉스극장 관계자는 "최근 심야 상영 올빼미족이 유로2008 쪽으로 많이 옮겨갔다"며 "극장을 가는 이유가 영화를 보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인데 젊은 관객 상당수가 '극장' 대신 '광장'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8월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이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통상 영화 개봉일 선정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고려하는 것이 올림픽이고 그 다음이 월드컵"이라며 "중국 관련 영화가 아닌 이상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출판가

= 사람들 시선이 TV와 인터넷에 쏠리면서 책이 외면받고 있다.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어 고전하고 있는 출판계는 베이징올림픽 등 각종 변수 때문에 더욱 허덕이고 있다.

특히 중소형 출판사들은 타격이 더 크다. 도서출판 아라크네 김연홍 대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20%가량 줄었다"며 "이런 추세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경영 계획을 세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출판사들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방학이 시작되는 7월은 성수기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하는데 올해는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8월에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때문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올림픽이 도서 판매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어 더 걱정"이라며 "신규 투자를 줄이고 직원 충원도 미루는 등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y 100명 2008. 6. 20.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