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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한국영화 ‘입소문 지수’
사례 하나. 25일 현재 총 7749명이 참여한 영화 ‘라디오 스타’의 네티즌 평점은 9.22(네이버·10점 만점). 관람 전 평점은 8.42였지만 개봉 이후 더 높아졌다. 네이버 영화부문에 오른 역대 상영작 676편 중 1위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8일 개봉했던 이 영화의 첫 주말 관객 수는 15만684명.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은 폭증했고, 전체 관객 수에서 첫 주말 관객 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10%에도 못 미쳤다. 입소문이 흥행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경우다.
사례 둘. 지난해 3월 16일 개봉했던 지진희·문소리 주연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최종 관객 수는 58만8467명. 이 중 60%에 가까운 28만141명이 첫 주말 이 영화를 관람했고 이후 관객 수는 급감했다. 도발적 포즈의 여교수 포스터에 홀려 이 영화를 찾았던 관객 상당수는 ‘사기 마케팅’이라고 비난했고, 2438명이 참여한 네티즌 평점은 3.06으로 총 676편 중 673위였다. 개봉 이전 네티즌이 기대했던 이 영화의 관람 전 평점은 6.54였다.
‘첫주 성적에 올인’ 과열 마케팅
영화 별로면 첫주만 관객 몰리고 영화 괜찮으면 저절로 입소문나
영화 마케팅 과장 논란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요즘, 본지는 2006년 개봉한 한국영화 110편의 흥행성적을 전수 조사해 ‘입소문 지수’를 만들었다. 바로 최종 관객 수를 첫 주말 관객 수로 나눈 것<표>. 지수가 클수록 입소문을 타고 뒷심을 발휘하는 영화들이다.
첫 주에만 ‘반짝’한 영화 1위는 권상우·유지태 주연의 누아르 ‘야수’(1.70)였고,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1.96),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10), 정우성·전지현 주연의 ‘데이지’(2.15)가 뒤를 이었다. 상위 9편의 예외 없는 공통점은 관람 전 평점에 비해 관람 후 평점이 곤두박질했다는 것.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는 뜻이다. 10위인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경우에만 관람 전 평점(6.96)보다 관람 후 평점(7.49)이 소폭 상승했다.
반대로 뒤로 갈수록 뒷심이 붙은 영화 톱 10을 꼽아보면, 1위에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10.60), 2위는 ‘미녀는 괴로워’(8.06·상영 중), 최동훈 감독의 ‘타짜’(7.28), ‘괴물’(6.42) 순이었다. 대체로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입소문을 일으켰고, 상영 후반부로 갈수록 흥행에 탄력을 받은 경우다. 첫 주에만 ‘반짝’한 영화 10편의 네티즌 평균 평점은 5.99에 불과했지만, ‘뒷심 영화’ 10편의 평균 평점은 8.63에 달했다.
개봉 첫 주말 흥행성적은 최근의 한국영화 시장에서 그 영화의 운명을 결정한다. 일주일에도 대여섯 편의 새 영화가 개봉하는 현실에서, 냉정한 극장들은 관객이 찾지 않는 영화의 간판을 바로 내려버리기 때문이다. 첫 주 흥행에 성공하면 오히려 스크린 수가 늘어날 수도 있지만(‘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의 경우), 그렇지 않은 영화의 경우 제작비가 50억원이 넘는 상업영화라도 2~3주를 버티기 힘들다. 이런 가혹한 배급과 상영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영화사는 ‘과장 마케팅’ 유혹에 흔들리기 일쑤. 첫 주 이후 흥행성적이 곤두박질한 모든 영화에 ‘허풍 마케팅’ 혐의를 두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상위 톱 10에 오른 영화들의 제목은 막연한 의심이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영화 마케터는 “영화가 별로일 경우, 무조건 첫 주에 최대 관객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무리한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어차피 영화가 개봉하면 그 다음부터는 관객이 급감할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고백했다.
물론 작가주의 영화나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적 현실에서 일방적으로 마케팅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이 멜로 드라마로 포장되거나,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로맨틱 코미디로 소개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제작 현장은 ‘질’보다 ‘포장’에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영진위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한국영화 평균제작비는 40억2000만원. 특이한 점은 실제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간 순제작비는 그 전년보다 1억5000만원 줄었지만, 마케팅비용은 1억8000만원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순제작비가 감소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영화의 질적 완성도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화진흥위원회 김미현 팀장은 “큰 폭으로 증가한 상업영화 마케팅 비용은 관객의 다양한 영화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상업영화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부담으로 작용한다”면서 “산업 내부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입소문 지수는
한 영화의 최종 관객 수를 첫 주말(금~일) 관객 수로 나눈 것. 지수가 높을수록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아 입소문으로 이어지면서 장기상영으로 이어진 경우다. 반면 낮을수록 둘째 주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or.kr)의 자료를 바탕으로 2006년 개봉한 한국영화 110편을 전수 조사했다. 이 중 지면에는 상위 톱10과 하위 톱10을 싣는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는 전국 극장의 93%인 1665개 스크린이 가입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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