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그 원년이 열린다
영화 복원의 세계
2007.01.23/박혜영 기자

영화 복원은 2006년의 화두이자 올해에도 이어질 주요한 사안 중 하나다. 지난 3년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한 한국영화는 총 31편이다. 훼손된 필름의 복원은 물론, 상영본이 없는 작품들을 상영용 프린트 필름으로 복사하는 작업까지 포함한다면 1천여 편에 달한다. 그중 8편의 작품이 영상자료원에서 주최하는 기획전 ‘1월의 주말의 명화-돌무지를 헤쳐 넘다’에서 공개된다. 이번에 상영될 작품은 양성평등 가족을 다룬 신상옥 감독의 <여성상위시대>, 한국 공포영화의 명작 <살인마>를 만든 이용민 감독의 <공포의 이중인간>, 심우섭 감독의 구봉서, 서영춘표 반공 코미디 <요절복통 일망타진>, 도금봉의 억척스런 연기가 인상적인 <또순이>, 이대근의 활극이 돋보이는 강대진 감독의 <석양의 10번가(빛을 마셔라)>, 김수용 감독의 반공 활극 <추격자>, 조선시대 배경의 통속 시대극 <화초기생>, 정창화 감독의 <돌무지> 등이다. 이번 상영전을 계기로 영상자료원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영화 복원의 현재와 공정 과정, 앞으로의 과제, 영화 복원의 장인들 등 영화 복원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어떤 면에서 한국영화사는 부재와 망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에 생긴 '의무 납본 제도'에 따르면 심의를 받은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의무적으로 필름과 시나리오, 각종 홍보자료를 제출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제도로 인해 1996년 이후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 영상자료원 아카이브에 보관되고, 필름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그 이전의 작품들은 체계적인 수집, 보관이 이뤄지지 않아 수많은 작품들이 소실되거나 훼손돼왔다. 그러던 중 90년대 후반 한국영화사 연구가 체계화되면서부터 영화사 한편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됐던 작품들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개인 소장품들, 외국에서 보관하고 있는 작품들이 조금씩 수집, 공개되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열녀문>도 해외에서 발굴돼 디지털 복원과정을 거쳐 일반 관객들에게 소개된 영화다. 이날 극장을 찾은 <열녀문>의 주인공 최은희는 “이 작품의 원판이 북한에 있어 다시 못 볼 줄 알았다.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느낌이다”라며 감회의 눈물을 쏟아냈다. 이처럼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수많은 한국영화 필름들이 발굴, 수집돼 한국영화사의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방치돼왔던 필름들의 상태가 그리 양호한 편은 아니다. 중간 중간 프레임이 찢겨져 나가거나, 일부 이미지나 사운드가 소실된 경우도 있다. 또한 자칫 무리해서 상영할 경우 그나마 힘들게 수집됐던 원본마저 훼손될 우려가 크다. 이를 위해 필름을 원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고, 장기적으로 더 이상의 훼손이 없도록 보관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발굴, 수집된 영화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복원의 문제 역시 더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과연 한국영화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될 영화 복원은 어떤 것인가.

영화 복원, 필름 보존 관리로 확대
1. 아날로그 방식의 광학 복원작업 중 필름 보수를 위해 초음파 스플라이싱 기계로 떨어져나간 프레임을 연결하고 있다.
2. 스플라이싱 테이프(필름용 테이프)로 프레임과 프레임의 이음매 작업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의 영화 복원은 유실 및 훼손으로 작품의 최초 완성본과 달라진 영화를 제작 당시의 상태에 가깝게 회복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화 복원은 필름 복사와 보관, 관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최초 오리지널 네가필름에서 여러 편의 프린트를 복사하다보면 자연히 오리지널 네가필름의 화질과 필름의 물리적인 품질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영화 복원은 가장 좋은 퀄리티의 보존용 필름을 얻기 위해 마스터포지티브필름으로 복사하거나 듀프네가필름(복사본)으로 복사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여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름이 산화되고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필름을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는 것도 필름 제작 당시의 상태를 유지해주는 작업이란 점에서 영화 복원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자원관리팀 장광헌 팀장은 영화 복원에 관한 개념이 보존, 관리로 옮아간 것은 90년대 초반이라고 말한다. “90년대 초반 보존용 필름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복원이란 개념이 처음 나왔다. 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오리지널 네가 중 4번째 네가에 문제가 있었다. 그걸 계기로 <서편제>의 마스터필름을 만들었다. 당시 89벌의 프린트를 뜨는 과정에서 더 이상의 오리지널 네가에 훼손이 생기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보존용 필름과 활용용 필름을 만들어내는 영화 복원의 개념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보존, 관리를 포함한 영화 복원업무는 영상자료원에서 전담해왔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편이었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해 복원 관련 장비를 구입하지 못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외부업체에 이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복원작업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유현목 감독의 1965년 작 <춘몽>이 유실된 사운드를 입혀 새롭게 복원되면서부터다. <춘몽>은 10여 분의 유실된 사운드 부분에 조성우 음악감독이 작곡한 음악을 입히고 기술적 복원을 거쳐 새롭게 탄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국영화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 속속 복원돼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어갔다. 영진위는 <로보트태권V>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주)신씨네와 ‘로보트태권V 1탄 복원을 위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한 후 훼손된 필름을 최대한 제작 당시의 상태에 가깝게 회복시키기 위해 14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작업 초반 시행착오도 많았다. 복원에 참여한 영진위 디지털영상팀 최남식 팀장은 “작업 초반 필름의 보관 상태를 살펴보니 스크래치가 많고, 색감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돌리다 끊어진 부분을 그냥 테이프로 붙여 놓은 곳 등 정말 당황스런 상태였다”고 밝힌 바 있다. 영상과 사운드를 복원하기 위해 1인당 하루 100프레임씩 6명의 인원이 투입돼 무려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또한 지난해 영상자료원은 양주남 감독의 1936년 작 <미몽>과 1963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을 복원해 한국영화사에 있어 귀중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미몽>은 2005년 중국으로부터 영사용 프린트 필름을 입수할 때부터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극영화로 화제의 중심에 섰고, 한국영화 마니아들로부터 각종 매스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뿐만 아니라 신상옥 감독의 <여성상위시대>, 정창화 감독의 <돌무지>, 최인규 감독의 <집없는 천사>, 서광재 감독의 <군용열차> 등도 복원됐다. 여기에 상영을 위해 만들어지는 활용용 필름을 위한 프린트 복사까지 합하면 1,300여 편이 넘는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영화 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올해 영상자료원은 2006년 예산에 비해 무려 10배가 상승한 11억의 복원 관련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아낼 수 있었다.

21세기의 문화 자산
1. 수평식 거치작업대에서 필름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음매를 보수하고 있다.
2. 스텐벡 기계를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가 동조돼 있는지 확인한다.


최근 복원이 큰 이슈가 된 것은 한국영화사에 대한 연구자들의 높은 관심에 기인한다. 영화연구자뿐 아니라 당대 시대상을 연구하려는 수많은 미시사가들에게 고전영화는 영감을 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특히 문서로만 확인 가능했던 영화들이 하나둘 복원됨으로써 한국영화사를 새롭게 기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수요의 증가에 따라 고전영화에 대한 발굴, 복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영상자료원 연구교육팀 김희윤 연구원은 “영화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감이 크다. 지난해 영상자료원에서 식민지기 영화 복원전이 열렸다. 아직 영화사에서 식민지기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복원된 작품을 통해 연구의 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지 않고 과거 영화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희윤 연구원은 “최인균 감독의 1941년 작 <집없는 천사>에서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는 마지막 내용을 문서로 접한 사람들이 이를 친일이니 반일이니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실제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것이 전시체제에 영화를 그렇게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협상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영화 복원은 보지 않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시대의 공기와 결을 잡아낼 수 있는 중요한 문화 자원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영화 복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역사의 재현이나 정보산업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필름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아카이브도 부상하고 있다. 세계 영화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한국의 경우에도 그 역사가 80년이 지났다. 영화뿐 아니라 영상 미디어의 제작이 늘어나고, 수용의 폭 자체도 넓어지다 보니 당대의 사료로서, 문화적 유산으로서 고전영화들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을 수집, 보전, 복원, 활용하는 곳이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카이브의 중요성은 2004년 영상자료원이 발굴한 기행기록영화 (이하 <한국>)을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한국>은 1899년부터 1901년까지 미국 여행가가 한국을 방문했던 당시 촬영한 기록물로 100여 년이 지난 영상물이다. 이 작품이 현존해 그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한국>을 복원, 보존 관리해온 전문 아카이브 ‘Elias Burton Holmes 유산보존위원회’의 힘이 컸다. 이렇듯 아카이브가 필름을 보존, 관리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경우 과거의 영화들이 당대의 역사와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필름 복원이 활성화된 데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열녀문>의 디지털 복원을 맡았던 DI 업체 HFR 옥임식 실장은 “상업 영화는 현상소에서 사고가 나면 복원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습득된 복원기술을 바탕으로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보통 디지털 복원의 경우 상업 영화 제작 시 사고가 난 부분을 메워주는 기능에 한정됐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복원을 위한 디지털 기술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상자료원 장광헌 팀장은 “DI가 들어오기 시작한 98년부터 영화 복원과정 중 마스터와 듀프를 만드는 게 일반화됐다”고 말한다. 이는 당시 스크린 수가 늘어난 현상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스크린이 늘어나 오리지널 네가 하나로 감당이 안 돼 듀프를 만들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즉 당시 디지털 기술과 극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필름 복원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복원, 이렇게 진행된다
1. 증류수세척기로 비교적 필름 상태가 양호할때 사용한다.
2. 보수작업이 끝난후 필름의 묵은 때를 제거하기 위해 화학세척기에 돌린다.


영화 복원의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작업공정 전반에 걸쳐 세심한 기술이 요구된다. 영화 복원작품을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필름의 상태다.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당장 훼손될 우려가 있는 작품부터 가장 먼저 복원작업에 들어간다. 그 다음, 좀 더 인지도가 있는 작품 중 활용가치와 보존가치가 높은 작품이 영화 복원의 대상이 된다. 먼저 필름 보관상태를 확인해 필름의 등급을 나눈다. 네거티브필름의 경우 보존형 필름을 만들어 3년 주기로 필름의 산화상태를 점검하고 훼손이 우려되는 작품에 한해 화학적인 약품을 투입할지 결정한다. 복원에는 오랜 필름 속 내용을 품질이 저하되기 전 새 필름으로 옮기는 아날로그 방식의 광학 복원과, 필름 내용을 디지털 데이터로 샘플링해 스크래치나 먼지제거, 입자조정, 색보정 등의 개선작업을 거친 후 디지털 데이터를 새 필름으로 레코딩하는 디지털 복원이 있다.

광학 복원의 경우 아날로그 방식이기 때문에 필름의 원상태를 보존하는 데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매체변환이 자유롭지 않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재복제작업을 해야 한다는 단점과 일일이 손으로 한 프레임씩 필름상태를 보수해야 해 전문적인 인력의 세밀한 손길이 요구되는 편이다. 또한 오랜 필름으로도 작업이 가능한 저속화된 인화, 현상장비가 별도로 필요하다. 디지털 복원의 경우 상황에 따라 유연한 복원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장비가 고가라 초기 투자비용이 높다. 특히 아직 디지털 복원 장비에 대한 품질 검증단계가 끝난 게 아니라 복원과정에 원형왜곡 및 유실 우려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처럼 디지털 복원은 원형보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편이라 보통 필름 복원의 경우 디지털 방식이라도 사전 아날로그 방식의 필름사전 보수작업을 꼼꼼히 거쳐야 한다.

광학 복원의 핵심 공정은 원본 필름을 인화기의 스프라켓(톱니바퀴)에 걸어 새 필름으로 인화하는 것이다. 영상자료원에는 이러한 인화기가 구비돼 있지 않아 주로 영진위에 작업을 의뢰해왔다. 하지만 장비 지원에 대한 요구가 지난해 국감에서 주요한 안건으로 떠오르며 예산이 증가돼 올 연말엔 인화기를 구입할 예정이다. 일반 상업 영화 필름과 달리 오래된 필름들은 훼손상태가 심하고 수축 등의 변형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인화기에 걸기에 앞서 상태점검 및 보수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태점검과 보수는 영상자료원에서 복원공정을 담당한 전문 직원이 일일이 손으로 매만진다. 복원 담당자가 하는 일은 먼저 필름에 대한 수축도 측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필름 수축도가 1% 이상, 즉 100개의 퍼포레이션 중 1개 이상이 수축되면 필름 가장자리에 천공돼 있는 일련의 구멍들인 퍼포레이션이 인화기 스프라켓에 걸리지 않아 인화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 전창근 감독의 1959년 작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은 오리지널 네가필름이 수축도 1% 이상으로 판정돼 국내에서 필름 복원이 가능한 장비를 갖춘 곳이 없어 해외 복원 전문현상소에 작업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상태다. 필름 및 퍼포레이션 보수와 필름 면이 부분적으로 찢어지거나 날카롭게 절단돼 있을 경우, 또는 퍼포레이션이 중간에 상하거나 유실된 경우에는 사전에 필름용 테이프(스플라이싱 테이프) 등을 이용해 보수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100분 기준에 필름상태가 중간 등급일 경우 한 편을 보수하는 데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3일이 걸린다. 물론 필름상태에 따라 작업시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보수작업을 수작업으로 끝낸 후에는 필름세척과정에 들어간다. 필름은 흡착력이 있어 공기 중의 먼지가 붙기 쉬워 2차 스크래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보수가 끝난 필름은 그 상태에 따라 증류소 세척기를 사용하거나 좀 더 지저분할 경우 안 보이는 부분까지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 화학 세척기를 돌린다. 세척을 실시한 후에야 외부 현상소로 필름이 출고돼 인화 및 현상작업을 실시하게 된다. 이러한 광학 복원이 끝난 후 좀 더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디지털 복원을 시작한다.

디지털로 접근하는 원본
DI 업체 HFR에서 디지털 복원이 한창이다. 디지털 공정을 통해 화면의 먼지와 떨림, 플리커, 스크래치를 없앤다.

디지털 복원을 위해서는 먼저 필름을 스캔해 디지털화된 데이터로 만들어 그 상태에 맞는 복원 프로세스를 계획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미지의 떨림을 개선하고 스크래치를 제거해 먼지 제거를 위한 안정적인 화면을 확보한다. 영상 이미지에 화면이 반짝반짝 튀는 증상인 플리커가 있을 경우 화면의 불안요소를 먼저 제거한 후 복원에 들어간다. 복원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손상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예산상의 이유로 전반적인 복원이 이뤄지기보다 상영에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기본적인 먼지 제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된 <열녀문>의 경우 완전 복원판이라기보다 디지털 공정 중 먼지만 제거해 상영된 경우다. 현재 영상자료원은 <열녀문>의 칸국제영화제 상영을 위해 플리커와 떨림, 스크래치를 없애는 등 완전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영화 복원과정은 광학 복원의 필름보수작업을 선행하되 각각의 작품마다 특수성을 고려해 이미지 처리과정을 달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 처리과정이 끝난 후 사운드 디지털 복원을 할 경우 여러 가지 필터링과 이펙트를 사용해 손상을 제거한다. 때론 유현목 감독의 <춘몽>처럼 소실된 사운드를 새롭게 창조해내기도 한다. 영상자료원 장광헌 팀장은 “실제 이미지와 사운드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복원 영역 밖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춘몽>은 원작과 전혀 다른 사운드가 입혀져 영화의 실제 상태를 되살리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복원에 있어 최대한 원작의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만큼 90년대 초반에는 심하게 훼손돼 불완전한 작품의 경우 복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라진 장면에 검은색 무지 화면을 넣거나 사운드가 없을 경우 자막을 넣는 식으로 복원을 진행해왔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처럼 대각선 모서리 이미지가 떨어져나간 경우 다른 프레임에서 같은 배경을 찾아 복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만능은 아니다. 데이터가 전혀 없으면 디지털 복원도 불가능하다. 가장 난감한 경우가 외국에서 수집돼 들어온 한국영화 중 외국어 더빙이 있는 경우다. 장광헌 팀장은 “홍콩에서 들여온 경우 80% 이상이 광동어로 더빙돼 있다. 이 경우 효과음만 살릴 것인지 대사만 다시 녹음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복원과정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사운드와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HFR 옥임식 실장 역시 “디지털 색보정을 할 때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의 영사시설로 영화가 상영됐을 때 하얀색은 약간 누런 색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이렇듯 그 영화의 내러티브와 근접한 색깔의 내러티브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원기술은 향후 더욱 발전하겠지만, 복원 담당자들은 원본의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영화 복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이렇게 한 편의 복원이 끝나면 다시 영상자료원으로 들어와 화면품질과 이미지, 사운드의 동조를 확인하고 필름 점검표를 작성해 재복원 여부를 결정한다. 재복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들 때 복원 결과물에 대한 정보를 아카이브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한다. 이렇게 입력된 작품들은 상영전, 교육사업, DVD 제작 등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돼 영화 복원과 아카이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인프라 구축 시급

이처럼 복원된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은 작품을 복원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복원된 작품에 대해 학술적으로 발표하고 그것을 연구화할 자료를 발간함으로써 복원된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상자료원 내에서도 복원의 전반적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영상자원관리팀과 연구팀의 업무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상자료원 김희윤 연구원은 “필름 복원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영화제에서 복원 상영된 작품들은 아카이빙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여는 첫 장이 됐다 할 수 있다. 올 1월에 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1월의 주말의 명화-돌무지를 헤쳐 넘다’도 필름 보존, 복원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목적에서 계획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는 보존, 복원에 기초한 아카이브를 운영할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영상자료원은 2005년 12월 ‘영화필름 복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2010년까지 복제가 시급한 보존용 흑백마스터 필름 복제 121편, 결손필름 복원 39편 등의 중장기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한 해당 결손필름 복원이 4~5편, 보존용 흑백마스터 필름 복제가 15~20편인 것을 감안한다면 2010년까지 작업해야 할 복원 분량은 꽤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복원 작품이 늘어남에 따라 전문 인력 양성은 더더욱 중요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영상자료원은 작년 하반기까지 시스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그래밍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완성된 매뉴얼은 아니지만 조금씩 업그레이드시켜나간다면 전문 인력 양성뿐 아니라 복원과정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등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복원과 관련된 장비 마련도 시급하다. 초기 장비구입이 많은 예산을 차지하지만 초기 비용만 감수한다면 향후 영화 복원과정에 드는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디지털시네마의 양적 증가에 따라 복원의 개념 역시 다시 한 번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영상자료원 장광헌 팀장은 “디지털화된 작품의 경우 복원이라기보다 복구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복구는 데이터에 배드 섹터가 생겨 소실될 경우 올바른 배열로 바꿔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시네마 복구를 위해서는 백업 시스템, 대용량 저장고, 원본디스크 저장장치 등이 필요하다. 영상자료원은 2월부터 디지털시네마 복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영상자료원은 높은 영상 퀄리티를 위해 <열녀문> <미몽>을 디지털로 재복원하고 있다. 영상자료원 복원실에서 영상자원관리팀 김영미 씨가 매만지고 있는 작품은 김기영 감독의 1979년 작 <느미>다. <느미>는 벙어리 벽돌농장 노무자인 느미라는 여자와 엘리트 사원 준태의 어긋난 사랑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내년에 열릴 김기영 감독 사후 10주기 특별전을 위해 벌써 보수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열녀문> <미몽> <느미>를 필두로 2007년은 영화 복원에 관한 최근 몇 년 동안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영화 복원의 원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영화의 사라진 미몽의 시간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by 100명 2007. 2. 2.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