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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디지털 표준화, 출발선에 서다 |
2007-01-02 11:42:28 / 주성철 기자 |
충무로에 디지털시네마 시대가 구체화되고 있다. 디지털시네마 시스템 구축을 위한 한국형 기술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것.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영화산업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디지털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한국 디지털시네마 기술 권고안인 ‘디지털시네마 가이드라인 버전 1.0’을 마련, 지난 12월 21일 CGV강변11에서 시연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선 행사 참여자들에게 테스트베드와 워킹그룹의 운영을 통해 만들어진 ‘디지털시네마 품질관리 매뉴얼: 버전 1.0’이 제작, 배포됐다. 이는 ‘디지털시네마 환경에서의 컬러 품질관리’라는 주제 하에 촬영, 후반작업, 상영을 아우르는 품질관리 매뉴얼로써 앞으로 계속될 기나긴 작업의 첫 번째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영진위 측은 “국내 디지털시네마 전문가들의 빈틈없는 테스트와 연구를 통해 얻어낸 ‘디지털시네마 품질관리 매뉴얼 버전 1.0’을 통해 영화현장에서 좀 더 쉽고 정확하게 디지털시네마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시네마 테스트베드 구축 등 한국영화 재도약을 목표로, 영진위가 문화관광부와 함께 2005년 말 ‘D-Cinema 비전 2010’ 계획을 발표한 지 1년여 만의 일이다. 현재 세계 디지털시네마 업계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화두는 '표준화'다. 이제 디지털시네마의 해상도 기준을 2K 혹은 4K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과거 필름규격을 16mm 혹은 35mm로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미국영화를 해상도 문제로 한국에서 상영할 수 없거나, 특정 업체의 디지털장비로만 상영하게 될지도 모를 호환성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미 1년 전 DCI(Digital Cinema Initiative)가 디지털시네마 기술사양 버전 1.0을 발표하면서 메이저 제작사들을 중심으로 시장 중심적 디지털시네마 환경 구축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이번 영진위의 가이드라인도 DCI의 기술 권고안을 일부 포함하고 있지만 한국적 상황 역시 일부 담고 있다. 가령 2006년 3월 국내 최초의 디지털시네마 배급 사례로 기록된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은 CJ CGV를 통해 할리우드 권고안인 2K가 아닌 1.3K급으로 상영됐다. 2K에 비하면 화질의 만족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용량 문제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당장 현실화하기 힘든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린트가 아닌 통신 네트워크를 통한 영화전송이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실험으로 기록될 만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디지털시네마의 상영기준은 해상도 1.3K 이상, 즉 2K나 4K의 해상도로 제작되고 인크립션(Encryption)된 압축 동영상(Wavelet, MPEG2-HD, JPEG-2000)을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2K 이상, 4K급까지 디지털시네마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입장이지만 한국을 비롯 유럽이나 중국의 경우 여러 현실을 감안해 그보다 낮은 HD급이나 2K급 미만도 논의대상에 넣자는 입장이다. 그리고 미국, 일본에 비해 아직 한국은 디지털 프로젝터를 직접 생산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영진위 영상기술지원센터의 정병각 소장은 이번 가이드라인 버전 1.0 발표에 대해 “분명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들은 DCI 기준을 따르겠지만 세계적으로 그에 따르지 못하는 영화들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의 이번 버전은 DCI 기준을 최대한 수용하고 있지만, 충분히 그것과 병행되는 별개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시네마에 있어 영화의 다양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디지털시네마에 있어 앞으로의 혼선을 줄이고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끌어내자는 의도”라고 말했다. 또한 이날 행사에는 소니 HDW-F900과 HDC-F950은 물론 최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버지와 마리와 나> 등의 영화에서 사용된 바이퍼 카메라 등 다양한 촬영장비들과 서로 다른 필름, 각기 다른 조건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공개하고 직접 비교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같은 모델을 두고 다양한 환경에서 촬영된 영상, 그리고 최종 구현 시의 컬러비교까지 향후 디지털시네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각적 만족도와 차이점을 미리 확인해볼 수 있었다. 디지털시네마 추진 소위원회 위원인 박현철 촬영감독은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상영 시 의도와 달라지는 경우에 대비하고, 창작자가 애초에 원하는 영상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이 그러한 단초를 제공해줄 것”이라 말했다. 덧붙여 영진위 영상기술부 오병걸 실장은 “최종적으로는 필름으로 작업하던 스탭들이 똑같이 필름 다루듯 디지털시네마 역시 자연스럽게 품질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와야 한다”며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이론적인 수식과 측정방법들이 비로소 기초적 단계이긴 하지만 커다란 윤곽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계속 다양한 시도가 다양한 각도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디지털시네마의 큰 장점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영화 배급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스크린당 약 200만 원의 프린트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종영 후엔 필름을 소각해야 하기에 심각한 환경적 문제도 안고 있다. 디지털시네마는 초기 네트워크 및 플랫폼 비용, 디지털영상 장비 투자 등의 비용이 막대하게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필름보다 획기적으로 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로 최적화된 영상을 구현할 때 얻을 수 있는 화질의 만족도는 고스란히 관객들이 체감할 수 있다. 고객만족이라는 관점에서도 디지털시네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셈이다. 메가박스 전 영사실장이었던 영사예술인협회 장영욱 실장은 “영화는 만들어진 대로 보여야 한다. 최상의 영상구현, 그것이 바로 영화관의 존재이유”라고 전제한 뒤 “기존 필름 기반의 극장 설계기준과 디지털 기반의 극장 설계기준의 차이점을 비교, 기술적으로 타당한 설계기준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현철 촬영감독 역시 “배급팀 얘기를 들어보면 HD 영화들이 영사가 아닌 사운드상의 문제 때문에 디지털 상영을 못한 경우도 있었다”며 “촬영, 배급, 상영 사이에서 일관성 있게 호환이 이뤄지는 기준 마련이 시급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혼란스런 디지털시네마 구축 환경 속에서 영진위의 가이드라인 발표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물론 산적한 과제는 많다. 디지털시네마 환경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장비가 디지털 프로젝터와 서버라고 할 때 미국의 크리스티와 아비카, 일본의 NEC 등이 이미 장비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 여전히 열악한 국내 제작환경 여건은 원소스를 후반작업을 거쳐 상영에 이르기까지 최고 품질로 유지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 디지털시네마의 핵심 부분인 배급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보안 관련 기술 검증체계를 확보하고 불법유출 문제 원천봉쇄 등 콘텐츠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앞으로 계속될 가이드라인의 버전업과 한국적 표준화에 대한 인식은, 디지털이 여전히 혁명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의 테크놀로지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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