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은 항상 바쁘다고만 한다. 그럼 난 바본가?

올해도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뭘 했는지 모르겠다. 내년에도 바쁘게 살 것이다. 그러나 뭘 했는지도 모르게 바쁘기는 싫다. 내년엔 나도 일정관리, ‘시(時)테크’에 도전해볼까?

시간은 한정돼 있다. 시간은 돈 주고 살 수 없다. 시간은 저축이나 저장을 할 수 없다. 시간은 내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시간은 항상 흘러가고 있다. 시간은 한 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관리해야 한다, 고 대형서점의 ‘시간관리’라 명명된 책장에 꽂혀 있는 수십 종의 책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1년은 12달. 1달은 30일. 1주일은 7일. 1일은 24시간. 평균수명으로 어림잡아 한 사람의 인간이 쓸 수 있는 시간은 약 20만 시간이라고 한다. 평균보다 오래 사는 사람도 있고, 일찍 죽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공평한 건 여기까지다. 이 공평한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공평하지 않은 결과가 도출된다.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하고도 여유가 있고, 어떤 사람은 허둥지둥 바쁘기만 하고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관리 어쩌구, 저쩌구 하는 책들 사이에서 가장 충격적인 제목의 책은 <바보들은 항상 바쁘다고만 한다>이다. 그럼 나는 바보란 말인가? 이제까지 바보처럼 살았단 말인가? 이렇게 살면 앞으로도 바보로 살 것이란 말인가? 연초에 마련한 2006년 다이어리가 초반 몇 장을 제외하고는 휑하게 남아 있고, 새로 구입한 2007년 다이어리도 그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그래서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싶은 당신에게 ‘바보 탈출’의 비법을 공개한다.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30년간 시간관리 지침서로 이용한 그 책!”으로 홍보하는 <시간을 지배하는 절대법칙>을 우선 살펴보자. 마흔일곱 살에 42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빌 클린턴은 그 바쁜 업무일정에도 불구하고 색소폰 연주, 골프, 조깅, 미식축구 관람, 그리고 부적절한 연예까지 했던, 시테크에 능한 사람이었으니 이 책을 믿어볼 만도 하다. 저자인 앨런 라킨은 하버드 MBA 출신으로 개인의 시간관리에 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시간관리 컨설턴트라고 한다. 그는 ‘시간은 곧 인생’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지만 시간의 주인이 되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가 하는 일은 시간관리와 인생목표(Life Goals)를 도와주는 컨설턴트로,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지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흥미롭게 살려는 인생목표를 찾도록 도와준다.

죽은 시간 살리기, 자투리 시간 이용하기, 시간도둑 잡기 등 1분이라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는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소위 플래너라고 불리는 일정관리 전문 다이어리를 보면 1년을 365일로 나누는 게 아니라, 하루를 24시간, 1시간도 10분 단위로 나눠 빈틈없이 시간을 관리하라고 권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앨런 라킨의 관점에서 보면 일주일 168시간, 하루 24시간 기록하는 것은 오히려 시간 낭비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 10분만 계획하고, 만족의 가치가 높은 ‘프라임 타임’ 관리만 잘하라고 말한다. 전 FILM2.0 기자였던 K씨는 2년 전 고가의 플래너 세트를 선물 받고 나서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본 영화, 읽은 책, 만난 사람, 그리고 점심으로 먹은 5천 원짜리 김치찌개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결국 포기했다. “기록을 위한 기록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고 계획하는 습관 자체가 붙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상위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한 번 밀리기 시작하니까 방학숙제처럼 해치워야 하는 스트레스가 됐다”고 실패 이유를 말한다.

허둥지둥 살지 않으려면 계획하고, 정리하는 보조도구가 필요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멋진 플래너를 쓴다고 해서, 친구가 예쁜 다이어리를 채워간다고 해서 그게 자신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도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그 기능을 자기 것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가, 기록의 양과 질, 접근성 등이 용이한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우선 자신이 필기형인지, 디지털형인지를 따져보자. 필기형은 종이에 펜으로 쓰는 것이 편하고, 필기를 하면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사람으로 달력, 탁상용 달력, 다이어리 등을 이용한다. 일정이 단순하고 한 장소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사람은 탁상용 달력을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벽걸이형 달력은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다이어리는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부피와 무게를 고려해야 하며 언제 어디서나 곧바로 펼 수 있게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분실 위험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단점.

디지털형은 필기보다는 타이핑이 편하고 기계와 친한 사람에게 편하다. 날짜, 요일, 시간대별로 일정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은 디지털형을 쓸 경우 재정리, 검색 등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배터리 체크, 접속가능 지역 체크 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점검해야 한다. PC용 유료 일정관리 소프트웨어, PDA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따로 프로그램이나 기계를 마련하지 않아도 휴대전화 하나만 잘 써도 웬만한 스케줄링은 걱정 없다. 휴대전화가 시계를 대신하는 것처럼 잘만 쓰면 다이어리도 대신할 수 있다. 웹상에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경우라면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또 네이버 미니 캘린더 위젯 (http://desktop.naver.com/section/widget/view.jsp?page=1&seq=23) 등의 무료 일정관리 프로그램, 웹 플랭클린 플래너(www.plandays.com), 플랜플러스(www.planplus.co.kr) 등 보다 전문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자연의 변화를 근거로 먹고 자고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계가 발명되기 전엔 특정 시간에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없었다. 기원전 200년 전, 로마의 시인 플라우스투스는 이렇게 한탄한 바 있다. “나의 하루를 조각조각 자르는 저 광장의 해시계여! 처음 저걸 가져온 자가 누구였더냐?” 먼 옛날, 속 편하게 살던 시인이 하던 말이니 지금의 세상에선 유효하지 않은 말일 수도 있다. 우리에겐 3백 년 전 “시간은 돈이다”라는 금언을 남기고, 그 역시 그렇게 살았던, 그래서 결국 그의 이름까지 딴 다이어리를 탄생시킨 벤자민 프랭클린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1분 1초를 절약하고, 다이어리는 물론 가계부, 차계부까지 쓴다고 해서 다가오는 2007년이 완전히 알차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관리는 두 번째로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라.

by 100명 2006. 12. 28.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