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무서운 까닭 [JES]
9·11테러 후 인도 등 아시아인 증오범죄 피해
영화에서 아랍인을 인도인 등으로 묘사 영향
지난 2004년 2월께 영화평론가 강한섭 교수가 어느 주간지에 쓴 <반지의 제왕>기고문이 논란이 됐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은연 중에 보여주는 유색 인종에 대한 불온한 경향성에 대해 강 교수와 블로거들 사이에 나타나는 묘한 간극이 그것이었습니다. 당시 강 교수의 글과 그 글에 과잉반응하는 네티즌들의 모습을 보고 썼던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강교수는 영화가 우리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고 반면 몇몇 블로거들은 ‘우리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거냐’는 식의 불쾌한 반응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모르겠습니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의식을 좌지우지 한다니. 도대체 우리 수준을 뭘로 보는 거냐’는 몇몇 블로거들의 생각은 의외로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일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머릿속에 담겨지는 정보들을 얼마나 왜곡시키는지에 대한 극명한 예가 바로 몇 년전에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속에 묻혀 조용히 잊혀져버리고 말았죠.

미국에서 9·11테러가 벌어지고 며칠 뒤인 16일. 이슬람 교도가 살해당하는 소위 ‘증오범죄(hate crime)’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렸죠. 그런데 주의깊게 살펴볼 것이 초기 증오범죄의 피해자 대부분이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9·11 테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엉뚱한 동남아시아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거죠. 왜 그랬을까요?

좀 길기는 합니다만. 그 원인을 후세인 이비쉬(미국-아랍 반차별위원회 대변인)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후세인 이비쉬 인터뷰 전문

할리우드의 아랍인 묘사와 9·11 이후 증오 범죄의 추세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랍계 미국인과 이슬람 신자 말고도 심한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미국인 시크교도들입니다. 인도에서 온 시크교도 중 최소한 2명이 살해당했고.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을 하겠다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들 중 다수가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요?
시크교도의 방식. 특히 시크교도 남성의 외양 때문이었습니다. 남성 시크교도는 보통 머리에 터번을 쓰고 다니고 턱수염을 기릅니다. 피부색도 상당히 가무잡잡한 편이구요. 사실 아랍인처럼 보이는 건 아닙니다. 아시아인들에게 친숙한 사람이라면 시크교도와 아랍인을 혼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크교도는 할리우드에서 묘사된 아랍인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아랍인처럼 생겼죠. 사실 영화에서 인도나 파키스탄의 배우가 아랍인 악당으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실제로 아랍인들은 칼을 차고 다니지도 않고 피부색이 그렇게 거무스름하지도 않기 때문에(실제로는 백인에 더 가깝다) 할리우드의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도·파키스탄·동남아시아 배우들이 아랍인으로 나오는 것이죠.

시크교도를 보고 아랍인과 혼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할리우드식 아랍인의 외모에 익숙해져 있을 때 뿐입니다. 따라서 애리조나 주의 주유소 주인인 35세의 발비어 싱소디가 총에 맞아 살해당한 경우는 증오범죄 이면의 동기와 생각이 할리우드의 이미지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범행 후 체포된 가해자는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을 한 거라고 소리쳤습니다.

폭력에 대한 욕구와 그 이미지가 함께 결합되었고. 그 이미지 때문에 아랍 세계와는 한참 떨어져 있고 전혀 다른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인도의 남성을 아랍인으로 혼동해서 살해한 겁니다. 할리우드가 아랍인을 묘사한 방식 때문이죠.

우리는 미국 영화를 통해 한국의 모습을 접하게 됩니다. 아랍 세계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이러한 거대 문화산업에 의해 아프리카·남아메리카·중앙 아메리카·동아시아·남아시아·인도·아랍·이란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형화되어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죠.
by 100명 2006. 11. 15. 0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