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반영한 한국 영화 일대기-영화에 우리의 어제와 오늘이 있다 ②

기사입력 2008-06-17 12:06


● 6·25 전쟁으로 얼룩진 1950년대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이 두 동강 난 비극의 시작이었다. 6·25 전쟁은 당시 패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단 정책에 의해 발발한 전쟁으로, 우리 국민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재앙이 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만큼 이 전쟁은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정치·군사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쳤으며, 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지옥 같은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양국에 뿌리 내린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가족들을 생이별시킨 이산가족의 비극을 초래했다. 문제는 남북이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비극이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6·25 전쟁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먼저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은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눠야만 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당시 종군기자였던 이태의 관점에서 그려낸다. 이 영화는 빨치산 토벌전에 희생당한 남부군 2만 명의 희생을 통해 군사력에 제압당한 민족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흑수선>(2001)은 6·25 전쟁이 남긴 비전향 장기수와 거제포로수용소를 영화 속으로 끌어왔다. 영화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포로들의 폭동과 탈출 등을 토대로 현재의 사건과 접목시켜 이념 문제를 파고 들어간다. <웰컴 투 동막골>(2005)은 6·25 전쟁을 비교적 밝은 관점에서 조명한다. 한국전쟁이 극에 달하던 1950년 11월, 강원도 동막골에서 우연히 만난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이 점차 어우러져 국경을 초월해 화해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또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는 한국전쟁 이후 갈라진 한반도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살풀이로 표현해 낸다. 마지막으로 <태극기 휘날리며>(2003)는 전쟁이 갈라놓은 형제의 아픔을 묘사한다. 이 작품은 전쟁에 휘말린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이념을 초월하는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그 밖에 1950년대는 <역도산>(2004)과 <바람의 파이터>(2004)의 시대이기도 했다. 주먹 하나로 일본 열도에 돌풍을 일으킨 역도산과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은 2차 대전 패배 후 실의에 빠진 일본에 희망을 안겨준 인물로 기록돼 있다. 안영윤 기자

<남부군>(1990).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말. 당시 종군기자였던 이태가 겪은 지옥 같은 경험을 이야기로 구성했다. 당시 빨치산을 제압하던 가혹했던 상황이 묘사된다.

<웰컴 투 동막골>(2005).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도 접근할 수 없었던 강원도 두메산골 동막골을 배경으로 공존할 수 없었던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의 단합과 화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흑수선>(2001). 연쇄살인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건이 1950년대 거제포로수용소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을 토대로 거대한 역사적 비밀을 파헤친다.

● 1960~70년대 본격 경제 개발 시기

1960년대는 군홧발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기였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당시 박정희 육군 소장은 군사독재를 시작했고,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는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된다. 이후 10·26 사건을 수사하던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군사 반란 사건을 일으킨다. 이른바 12·12 사태다.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들은 대개 베트남 전쟁 파병, 10·26 사건, 새마을 운동 등 군사, 정치, 경제적 이슈와 얽혀 있다. <하얀 전쟁>(1992)은 베트남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마찬가지로 <알포인트>(2004)는 미스터리 사건에서 파생되는 군인들의 불안과 고통을 보여주며 전쟁에 내던져진 젊은이들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님은 먼곳에>(2008)는 베트남에 파병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 속으로 뛰어든 한 여인의 절절한 사연을 그릴 예정이다. 한편 <잘 살아보세> (2006)는 1970년대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됐던 산아제한 정책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고고 70>(2008)은 70년대 통행금지 시절, 당시의 살벌한 감시와 억압을 열정으로 돌파한 밴드의 밤 문화를 보여줄 예정이다.

열악했던 노동환경과 사회 부조리에 절규하며 분신한 전태일을 다룬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박광수 감독은 “전태일의 분신에서 불붙은 얼굴이 있어야 (관객들에게) 감정이 전달될 수 있다”며 당시 처절했던 상황을 회상한다.

1978년 유신 정권 말 폭압적인 교내 풍경을 묘사한 <말죽거리 잔혹사>(2004)는 당시 학생들을 억누르던 교사들의 교육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10·26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그때그 사람들>(2004)은 ‘그때’ 현장에 있었던 ‘그 사람들’의 상황을 재구성해 블랙 코미디로 사태를 풍자한다. 지용진 기자

<하얀 전쟁>(1992). 한국 최초로 베트남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한 이 영화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후유증을 겪으며 살아가는 퇴역 군인의 삶을 통해 전쟁의 악몽과 혼란을 보여준다.

<잘 살아보세>(2006). 1970년대 국가사업의 일환인 가족계획(츌산율 저하)을 다룬 영화로 당시 부부의 잠자리조차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했전 발상이 웃음을 유도한다.

<그때 그 사람들>(2004). 10·26사건을 재구성한 임상수 감독의 문제작.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지만, 상황이나 심리 묘사는 가공한 픽션이다.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라 이 사건의 관계자의 고소로 영화의 일부 장면이 삭제되기도 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기

1980년대는 ‘금기’란 단어와 맞서 싸우던 시기였다. 가장 먼저 드러난 사건은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와 계엄군에 맞서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도시 자체를 고립시킨 채 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무차별 살상을 행했던 그 당시의 처참함이 영화 <화려한 휴가>(2007)에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전면적으로 그날의 실상을 상세하게 다룬 작품이 <화려한 휴가>라면 <박하사탕>(1999)과 <꽃잎>(1996)에서는 개인의 아픔을 통해 어두웠던 시대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후 전두환의 5공화국이 출범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넘쳐났고 정부는 3S정책으로 교란작전을 펼쳤다. 이 시기에 창단된 프로야구 팀은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슈퍼스타 감사용>(2004)은 당시 만년 꼴찌팀 삼미슈퍼스타즈의 투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실존하는 야구선수들과 컬러TV, 비디오 등 시대를 상징하는 제품들이 등장해 당시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선 정권에 대한 불만과 민주화 실현에 대한 욕구가 넘쳐났다. 사회과학 서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또는 데모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저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자율성’은 통제당하고 ‘금기’라는 단어만 전면에 배치됐다.

시대의 탄압에 맞서 젊은이들 사이에선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시위 현장을 중심으로 등장하던 노래패와 민중가요가 널리 확산됐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던 독립 영화는 민중의 아픔을 스크린에 투영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헌법 개정이 있기까지 전 국민의 안면을 따갑게 만들던 대기 중의 최루탄 가스가 슬며시 사그라들면서 1988년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됐다.

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끝날 때 즈음 탈주범 지강헌의 인질극이 벌어졌고 이 희대의 사건은 영화 <홀리데이>(2005)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 시절의 대중문화와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은 <품행제로>(2002)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80년 초 달동네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해적, 디스코왕 되다> (2002)와 같은 작품도 있다. 1986년부터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살인의 추억> (2003)이란 수작의 모티프가 됐다. 정지원 기자

<꽃잎>(1996). 폭풍이 몰고 간 듯 고요해진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 어린 소녀(이정현)가 홀로 앉아 빤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신이 나가버린 소녀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당시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나타낸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했지만 달동네 사람들은 어렵기 짝이 없었다. ‘빈티’나는 옷차림에 ‘퍼세식’화장실의 변을 퍼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놈 목소리>. 실제 납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 보여주고 있는 영화. 용의주도한 범인에 의해 농락당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는 부모들의 참담한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찬다. 당시 일어났던 사건의 실제 범인 목소리를 영화에 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by 100명 2008. 6. 17. 1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