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의 딜레마에 빠지다
미국 내 메가플렉스 극장의 영향과 유사
2006-08-09 오후 3:08:16
[ 안효원 기자]
영진위에서 발간하는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 2006년 7/8월 합본호.
▲ 영진위에서 발간하는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 2006년 7/8월 합본호.

<괴물>의 620개 스크린 개봉은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비판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한 영화가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은 지난해 겨울 <태풍>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 <투사부일체>, <한반도> 등이 전국 1/3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하면서 비판의 목소리 날로 커지고 있는데, 이런 배급방식은 멀티플렉스의 양적 확대와 배급사와의 연계로 가능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 영화산업 내 배급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 메가플렉스 극장이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끈다. 「미국 내 메가플렉스 극장이 영화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4일(금)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안정숙, 이하 ‘영진위’)에서 발간한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 2006년 7/8월 합본호에 실렸다.

각종 편의시설과 14개 이상의 스크린을 갖춘 미국의 메가플렉스는 1995년 달라스(텍사스)에 위치한 극장체인 AMC의 그랜드24에서 출발했다. TV, DVD 등 다른 매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극장주와 배급업자 간의 생존전략으로 등장한 메가플렉스는 미국 내 극장구조 개편뿐 아니라 영화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메가플렉스의 등장으로 미국 극장산업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극장업체들의 과도한 경쟁과 투자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내 스크린 수를 57%까지 증가시켜 3만 7000개 넘는 스크린이 생겨나게 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티켓 판매량은 20% 증가에 멈췄고, 2000년에 접어들어 2,000여개의 스크린이 문을 닫고, 1만 2,000여개의 스크린은 합병을 통해 주인이 바뀌었다.

메가플렉스가 증가하면서 영화들은 주말 첫주에 승행수익의 대부분을 기대하는 히트 앤 런(hit and run) 방식에 맞추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는 대사나 플롯 중심의 영화가 아닌 순간적인 관객몰이를 위한 자극적인 볼거리 위주의 영화를 말한다. 배급업자들과 극장주들은 스크린의 긴장과 스릴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를 선호하게 되면서 흥행작 위주의 제작과 상영이 유행하게 된다.

미국의 이런 상황은 한국 영화산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작년의 멀티플렉스 증가추세는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새로 개관한 주요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스크린 수가 100개를 훌쩍 넘었다. 영진위 보고서에 의하면 “폐관되는 극장들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말 경에는 전국 스크린 수가 1,700개~1,80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 봉준호 감독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마이너리티 쿼터제’의 필요성을 제시해 관심을 끌었다. 봉 감독은 “다양한 소수 취향의 영화들에 대해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된다고 전부터 영화인들이 주장을 해왔다”며, “전체적으로 스크린쿼터제를 보호하는 맥락 아래 그 부분도 같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작은 영화 의무 상영 일수’를 말하는 것으로 영화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던 의견이다. 마이너리티 쿼터제와 프린트 벌수 제한은 분명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이너리티 쿼터제가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의 당의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멀티플렉스의 성장은 영화산업 구조의 불균형이라는 문제점
을 함께 가져왔다.

마이너리티 쿼터제가 배급사와 극장, 특히 멀티플렉스의 동의를 얻어 ‘실현될 수 있는가’가의 문제의 핵심이다. 극장이 느끼는 스크린 쿼터제와 마이너리티 쿼터제의 부담은 다르다.

<왕의 남자>나 <괴물>과 같은 흥행이 잘되는 한국영화가 있다면 극장 입장에서 스크린쿼터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번 3대 멀티플렉스 대표가 모여 ‘스크린쿼터 자율 준수’를 약속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극장 운영과 직접 관계되는 것으로 많은 극장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멀티플렉스의 경우 자신의 계열사에서 만든 영화를 배급, 상영하며 배급력을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 한국영화의 상황을 볼 때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더 요원해 보인다.

정부에서도 마이너리티 쿼터제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영진위 관계자 또한 “마이너리티 쿼터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구체적인 정책 수립, 극장계의 반발 등 현실적인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2월 28일 ‘한국영화산업 구조 합리화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공정거래법 제23조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등을 적용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추진위는 상영부문에 편중된 수익구조, 투자제작부문의 마이너스 수익률, 와이드 릴리즈에 따른 소수영화의 스크린 독점현상 심화, 제작시스템 개선문제, 투자ㆍ배급ㆍ상영을 포괄하는 수직계열화된 기업의 독점적 지위 확보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12월 결성된 단체이다.

신고내용은 공정거래법 23조 제1항 거래조건 차별행위(부율차별),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일방적인 영화관람료 할인 및 그로인한 손해 강요, 일방적, 차별적인 종영결정 및 이를 통한 부율(제작사와 극장의 관람수익 분배 비율) 하향 조정 강요, 극장내 광고의 일방적 비용전가 행위, 상영영화 관객수 파악 방해 행위, 수익정산의 지연 등이었다.

유창서 영화인회의 사무국장은 “얼마 전 멀티플렉스와 극장협회 인사들을 만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하고, 공정위 제소를 취하했다”며 “현재 극장측과 구체적인 협의 테이블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영화산업의 불균형적인 구조로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양측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동전20067-8월합본호.pdf
by 100명 2006. 8. 10. 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