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괴물' 흥행으로 내분 조짐



[OSEN=손남원 영화전문기자]한국 영화계에 내홍 조짐이 일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던 단결력이 조금씩 약해지는 중이다. 왜 그럴까.

서로 가는 길이 엇갈리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크린쿼터 축소를 압박해온 미국을 상대로 공동전선을 폈지만 영화계 안에는 제각각의 이익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CJ와 쇼박스, 롯데 등 재벌 그룹을 배경으로 둔 3대 배급사. 시네마서비스, LJ필름, 싸이더스FNH, MK픽처스, 청어람 등 어느 정도 배급력까지 갖춘 메이저 스튜디오. 편당 출연료 2억~5억원대 주연급 스타 집단과 소속 매니지먼트사들이 강자의 위치에 서있다.

이에 비해 1년에 한 두편을 찍고 그나마 평균 제작비에도 못미치는 작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영화사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라진다. 영화 스탭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4시간에 달하지만 연봉은 7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무명 연기자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연봉 1000만원을 꿈꾸며 촬영장을 오가고 있다. 이들은 연간 100여편의 영화를 쏟아내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약자의 위치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의 강 약자 그룹은 힘을 모아 미국과 정부를 상대로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 시위를 벌여왔다. 서로간 갈등 구조는 충분했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그 환부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에 이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7월 중순부터 극장가를 장악하면서 입장 차이가 확연히 밝혀지고 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올 초 흥행 신기록을 세우는 순간, “내 영화가 잘되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해 스크린쿼터 축소의 명분을 줄까봐 걱정”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일부터 스크린쿼터 축소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시작된 이번 ‘괴물’의 흥행 대박은 영화인들의 적전 분열을 불러왔다.

‘괴물’의 스크린 수는 620개. 개봉 첫 주말 200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플라이 대디’ ‘각설탕’ ‘스승의 은혜’ ‘다세포 소녀’ 등 ‘괴물’의 흥행 시기에 맞춰 줄줄이 개봉하는 한국 영화들에게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독점적 배급력은 할리우드보다 더 무서울 따름이다. ‘한반도’ 또한 530여개 스크린으로 출발했고 아직까지 상당수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다. 두 영화에만 전체 스크린 수의 50% 정도가 할애됐다.

지금까지 영화인들은 ‘할리우드 거대 자본의 무차별 난입으로부터 문화로서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지키려면 스크린쿼터라는 최소한의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스타들의 1인 시위, 한미FTA 체결 반대 그룹과의 연대, 146일 철야 농성 등으로 강경 투쟁을 했다.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곱지않았음은 물론이다. 한국 영화가 강세를 보이는 현재 구도와 영화계 내부의 부익부 빈익빈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은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란 거부반응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담보로 한 스크린쿼터 제도가 실제로는 내부 제작사 및 배급사의 파워에 따라 갈리고 있다는 점을 영화계 내부에서도 확실히 인식하는 계기를 ‘한반도’와 ‘괴물’이 제공한 것이다. UIP나 콜롬비아, 20세기 폭스, 워너 등 외국 직배사들도 강한 한국영화는 피하가기 바쁘고 3대 배급사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3일 개봉한 ‘플라이 대디’의 이문식은 기자와의 인터뷰 때 “괴물은 좋은 영화다. 그렇지만 스크린 수를 620개씩 가져가면 나머지 한국영화들은 힘들 수 밖에 없다”며 “이래서는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 운동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겠나”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나마 이문식은 스타급 연기자로 성공한 케이스고 ‘플라이 대디’의 스크린 수도 270개로 적지않다.

어렵게 연명하는 군소 영화사들과 스탭, 단역급 배우들의 속내는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스크린을 확보하려면 스타를 끌어들여야하고 1급 배우 두명을 캐스팅하면 10억이 깨진다. 나머지 돈으로 얼기설기 영화를 제작하다보면 연기력 탄탄한 조연, 단역 기용이 어려워지고 결국 내용 자체가 부실해진다. 관객들은 "왜 허섭스레기 영화를 찍냐'고 돌을 던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특급배우 개런티가 조정돼고 거대 배급사, 제작사들의 소모적 세싸움이 줄어들지 않는 한 한국영화계의 분열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by 100명 2006. 8. 7.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