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 더 달라…더 튀게…'충무로 아우성'
[동아일보]《# 장면 1엔터테인먼트 기업 ‘KM 컬쳐'의 심영 이사는 요즘 매일같이 김혜수 전지현 황정민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더스HQ로 출근한다. 영화 캐스팅 때문. 몇 달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여배우 A가 답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 이사는 A의 매니저에게 ‘시나리오를 꼭 읽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어김없이 박성혜 본부장의 방에 들른다. 오늘도 박 본부장의 책상에는 시나리오가 수북이 쌓여 있다.

“시나리오가 너무 많아서 읽기도 힘들어요. 이게 오늘 읽을 것들. 업무의 80%는 거절이죠.”(박 본부장)# 장면 2지난달 29일 오후 7시 홍익대 앞, 영화 ‘다세포 소녀' 관계자들이 회의 중이다. 영화 홍보를 위한 ‘흔들녀' 선발대회를 클럽에서 진행하는 날이다. 이 영화는 배우 김옥빈의 흔들녀 춤 동영상으로 온라인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오늘 행사도 저번처럼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해야 하는데….” “내일 편집해서 월요일에 올리자. 바로 ‘흔들녀2' 나가는 거야!” 이날 행사에는 2000만 원이 들었다.

오후 8시, 초조한 표정이던 홍보담당 이윤정 실장이 클럽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더니 폴짝 뛰어오른다. “아싸! 영화 뜨는 거야!” 다음 날 이 영화의 홈페이지는 다운됐다.》올여름 한국영화가 반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 지난해 83편이 개봉됐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48편, 하반기까지 합치면 100∼110편이 개봉된다. ‘한국영화끼리의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흥행도 호조세다. 멀티플렉스 체인 CGV에 따르면 서울 기준 6월에 26.8%였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한반도' ‘괴물' 등의 흥행에 힘입어 7월에 49.4%가 됐다. 한 해 100편 이상 한국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되는 시대, 그 시끌벅적한 현장을 들여다봤다.

▽스크린 사수 대작전=10일 동시에 개봉하는 각 영화의 관계자에게 물었다.

“‘각설탕'이 스크린 400개 잡는다는데요?”(기자) “아 그거 뻥카(허풍)야, 뻥카.”“‘다세포 소녀' 걱정 안 돼요?”(기자) “아무래도 CJ가 롯데보다 배급력이 강하니까.”100편 시대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스크린 수 경쟁. 영화의 질만큼이나 스크린 수가 흥행을 좌우한다. CGV 수급팀의 노성규 대리. 각 배급사와 협의해 영화마다 관을 배정하는 ‘관 짜는 남자'다. 1일 회의에서는 ‘괴물'의 주말 관객 폭주가 단연 화제. ‘(관객들이) 월드컵 때 거리응원 나오듯 한다' ‘한 극장의 8개관에서 다 상영해도 매진된다'는 등의 얘기가 오갔다.

2일 오전, 그는 ‘괴물'의 배급사에 필름을 더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거절. 지금도 스크린 수(620개)가 많아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들은 극장에 관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작년만 해도 블록버스터도 400개면 진짜 많다고 했는데 이젠 400개 이상이 트렌드가 됐어요.”(노 대리)4일 스크린 수는 ‘괴물' 620개, ‘한반도' 260개, ‘플라이대디' 293개, ‘스승의 은혜' 174개. 여기에 외화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이 189개다. 일주일에 두 편 이상씩 개봉되는 한국영화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마케팅도 튀어야 산다=1일 오후 경기 과천시 경마공원. ‘다세포 소녀'와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각설탕'은 6만 명 야외 시사회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초대형 스크린 설치에만 3000만 원. 오후 8시부터지만 5시부터 경마공원 주변은 김밥과 과자를 들고 놀러 나온 가족들로 북적인다. 영화 촬영 장소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행사다.

100편 시대의 마케팅은 기발한 아이디어 전쟁이기도 하다. ‘스승의 은혜'처럼 순제작비 23억 원에 2억 원짜리 예고편을 만들거나 ‘예의 없는 것들'처럼 장소마다 카피를 달리한 광고를 만드는 등 튀어야 산다는 분위기가 지배적. MK 픽쳐스 정금자 마케팅 실장은 “황당을 넘어 ‘퐝당(황당)'한 마케팅만이 기억된다”고 말했다.

▽캐스팅은 ‘별'따기, 촬영소는 북적북적=주연급 배우가 남녀 합쳐 30명 안팎인데 좁은 바닥에서 영화가 100편 이상 만들어지니 캐스팅 경쟁이 살인적이다. 톱스타 없이 성공한 ‘왕의 남자'에서 보듯 스타 파워는 다소 약해졌지만 개런티는 3년 전보다 2배가량 올랐다. 톱스타가 아닌 주연급도 4억∼5억 원이란 얘기가 나돈다.

2일 경기 남양주시 종합촬영소. ‘좋지 아니한家'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조폭마누라3' ‘가문의 부활'의 촬영이나 미술작업이 진행 중이며 다음 날 들어오는 영화도 두 개다.

오후 3시 ‘좋지 아니한家' 촬영장. “하루만 늦게 들어오면 안 되겠니?” 무사이필름 백경숙 PD가 ‘그놈 목소리'의 제작진과 통화 중이다. 촬영을 연장하기 위해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

요즘 영화 세트장은 5, 6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예약이 빽빽하게 차 하루라도 일정이 늦어지면 다음 팀에 영향을 준다. 백 PD는 2월부터 촬영 준비에 들어갔지만 기자재를 구하고 스태프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영화 제작 편수가 증가한 이유는 시중의 투자 자금이 영화로 몰렸기 때문. 한 영화인이 말했다. “영화판에 돈이 날아다녀요. 손해 보는 게 훨씬 많은데, 한 방 터지면 대박이라는 거죠. 로또예요, 로또.”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벌써 500만…‘괴물' 개봉 9일만에 대기록▼영화 ‘괴물'이 개봉 9일 만인 4일에 500만 관객을 넘겼다.

배급사인 쇼박스에 따르면 이는 역대 최단기간에 500만 명을 돌파한 기록. ‘태극기 휘날리며'는 개봉 후 13일, ‘실미도'는 19일, ‘왕의 남자'는 개봉 20일 만에 500만 명을 넘겼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15∼20일 1000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나온다.

올해 들어 관객 500만을 넘긴 영화는 3편. ‘괴물'은 지난해 말 개봉한 ‘왕의 남자'(1230만 명)와 올해 초 선보인 ‘투사부일체'(610만 명)의 뒤를 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습 이후 맥을 못 추던 영화계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괴물'의 신기록 행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치만은 않다. 소수 영화의 스크린 독점과 이에 따른 관객의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 때문. 이 영화가 ‘반미'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배우 이문식은 한 인터뷰에서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는 현실 속에서 ‘괴물'의 선전은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한 영화가 스크린 620개를 잡으면 작은 영화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황영미 씨는 “괴물이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작은 영화에도 상영 기회를 주기 위해 멀티플렉스 내에서 한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을 제한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6. 8. 7. 0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