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민족주의’ 바람… 문제없나
스크린 ‘한반도’이어 TV 고구려·발해 경쟁
강연곤기자 kyg@munhwa.com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민족주의가 유행처럼 넘쳐나고 있다.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가리지 않고 영웅을 불러내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과의 갈등상황을 통해 관객이나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게 특징이다. 13일 개봉된 영화 ‘한반도’와 지상파 방송사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고구려 배경의 사극들이 그런 사례로 꼽힌다.

이같은 경향엔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린다. 역사의 이면에 숨은 사실을 재조명해 역사의식을 살린다는 의미가 크다는 의견도 있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보다는 단순히 상업적으로 민족주의라는 흥행코드를 활용할 뿐이라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영화 ‘한반도’는 관객의 민족감정을 건드린다는 흥행전략에 충실한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 경의선 철도 건설을 두고 일본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영화에서 일본은 ‘절대악’. 대한민국의 이익과 번영을 가로막는 존재다. ‘단순명쾌’한 민족주의적 시각이다. 강우석 감독도 “영화를 통해 일본을 들이받고 싶었다”고 말했을 정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대통령(안성기)에 국가정보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 재야 사학자 최민재(조재현)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절대선’인 민족과 국가를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미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에 대해 “모처럼 시원스럽게 할말을 하는 영화를 봤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단순한 흑백논리로 관객들을 자극하는 방식이 거슬린다는 지적이 먼저 나왔다.

방송사들의 고구려 사극도 민족주의라는 점에선 농도가 덜하지 않다. 지난 5월15일 MBC의 ‘주몽’을 시작으로 SBS가 지난 8일부터 ‘연개소문’을 내보내고 있고, KBS는 9월부터 발해 건국자인 대조영을 다룬 대하극 ‘대조영’을 방송할 예정이다. 100억원대의 제작비를 투입된 대작 ‘태왕사신기’도 내년초 MBC에서 방송된다. 이 드라마 역시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을 다룬다.

이들 드라마는 하나같이 ‘찬란한 한민족의 역사 복원’, ‘민족의 저력과 웅지를 잘 대변했던 초강대국 고구려의 재발견’ 등을 제작의도로 들고 있다.

난세의 영웅을 등장시켜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을 노리고 있는 것도 특징.공들여 찍은 전투장면과 역사적 고증 등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물론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활발한 역사토론이 일어나고 있는 등 성과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목적을 위해 달려가다 보니 “허구가 역사적 사실을 뒤덮고 있다”, “우리 조상의 힘과 기개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작품이 힘든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팍팍한 현실이 역사속 영웅들을 다시 불러냈다는 것. 그러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가진 ‘상품적 매력’에만 집중할 경우 작품 자체의 재미와 의의를 해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성동규(신문방송학) 중앙대 교수는 “최근 독도사태나 ‘동북공정’ 등 주변국들과의 외교갈등 때문에 언론보도나 TV 드라마들의 민족주의가 용인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사극의 경우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우선 면밀한 역사적 사실과 인식에 바탕을 둔 제작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by 100명 2006. 7. 29.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