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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때문에 한국 영화 망칠라 |
투자자들, 스크린 채우기 위해 다작 요구 … 시설·전문인력 부족, 흥행 부담 ‘이중고’ |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영화사들의 M&A가 얼마나 무리하게 이뤄졌던지, 영화 두 편 찍은 영세 영화사에도 15억~16억원대를 보장하는 합병 제의가 들어오곤 했다”고 말한다. 충무로에 대기업이 진출해 자본이 투입된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뭉칫돈이 한국 영화 제작에 투입됐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영화계로 새로 들어오는 돈의 특징은 ‘무조건 많은 편수를 찍을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1500개 가까운 스크린을 채워야 하고, DMB 채널에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장한 영화사들은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매출’을 내야 한다는 절박한 사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빈껍데기 상장사가 영화사와의 M&A를 통해 1년 동안 전국 100만 명 동원 영화 5편을 만들었다면, 금세 200억원대 매출 회사가 된다. 순익이 없거나 손해를 봤더라도 회사 규모는 커지므로, 주연배우가 아무리 많은 개런티를 요구해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M&A로 상장했거나 대기업에 인수된 영화사들은 대부분 지난해보다 2배 정도 많은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영화사들이 갑자기 영화 제작 편수를 두 배로 늘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제작시설과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다. 세트장이나 촬영장비는 CF 등 다른 업계에서 빌려온다고 해도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와 촬영, 조명기사 등 전문인력까지 몽땅 빌려올 수는 없다. 인력 발굴과 실습 기회는 많아져 영화계가 신인 감독을 선호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올해는 특히 제작 편수의 절대적 증가 덕분에 신인 ‘입봉의 해’라고 할 정도다. 1~5월에 개봉된 41편 중 감독 데뷔작이 25편, 신인 감독의 2번째와 3번째 작품이 6편에 달했다. 나머지도 신인들의 공동 연출작이거나 외국 감독의 작품들이어서, 현재 개봉 중인 한국 영화 대부분이 감독들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촬영기사나 조명기사로 입봉하는 기술 스태프도 많이 늘고 있다. 싸이더스FNH의 신경호 부장은 “촬영과 조명에서 ‘퍼스트’하던 사람이 ‘기사’로 많이 입봉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을 직접 받쳐줄 수 있는 경험 많은 ‘허리’ 인력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싱글즈’를 쓴 시나리오 작가 노혜영 씨는 “요즘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작가 소개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특이한 건 영화사에서 신인 작가를 선호한다는 점이에요. 제작 속도를 높이고 작가료는 줄이기 위해 검증된 책이나 만화, 연극을 신인에게 맡겨 초고를 만들게 하고, 기성 작가에게 윤색만 맡기는 것이 일반화된 듯해요.” 영화계에 소리 없이 ‘일류(日流)’가 불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제작 편수는 늘어난 데 반해 소재와 시나리오는 빈곤해, 일본 만화와 드라마 등을 원작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면 시나리오 가격이나 스태프 처우에 변화가 있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촬영 스태프는 “제작비는 느는데 흥행은 안 되는 형편을 다 아니까 제작사에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신 스케줄을 잘 짜서 1편 일하던 걸 2, 3편 동시에 한다”고 말했다. 영화사에 소속된 프로듀서들도 전에 비해 업무량이 늘고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커졌다고 한다. ‘비열한 거리’의 최선중 PD는 “위기감을 느낀다. 관객 수는 정해져 있는데, 한두 편 흥행이 될 뿐 나머지는 전멸이다. 중간급 흥행이란 게 사라졌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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