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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때문에 한국 영화 망칠라 |
투자자들, 스크린 채우기 위해 다작 요구 … 시설·전문인력 부족, 흥행 부담 ‘이중고’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
얼마 전 한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 몇몇 영화담당 기자들과 영화평론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쓴 입맛을 다셨다. “저런 정도의 시나리오에 수십 억원을 쏟아붓다니, 제작자는 돈도 많네.” “기획이 졸속으로 이뤄지니 영화가 이렇죠. 문제는 한두 편이 아니라는 겁니다.” “매번 판에 박은 신인 감독들의 소감을 들어주는 것도 못할 일이네요.” “영화판이 미쳐 돌아간다잖아요.” 요즘 한국 영화, 외형적으로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고, 제작비도 넘쳐난다고 한다. 예전엔 단독 주연이 될 수 없었던 배우들도 ‘전작에서 조연을 맡아 관객 몇 백만 명을 동원했다’는 말로 주연 데뷔작 펀딩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결과로 나온 한국 영화들은 흥행에서도, 비평에서도 결코 ‘성공적’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외형 2006년에 들어와 5월 말까지 한국 영화 41편이 개봉했는데, 관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가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올해보다 훨씬 적은 29편이 개봉한 점과 ‘왕의 남자’가 올해 5월 말까지 전체 한국 영화 관객 수의 약 40%를 차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머지 한국 영화들의 성적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올해 정부는 “한국 영화 점유율이 59%에 이르니 문제없다”며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를 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5월 ‘미션임파서블 3’과 ‘다빈치 코드’ 단 두 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한국 영화 점유율은 33%로 내려앉았고, 월드컵이 열린 6월의 점유율은 20%로 떨어졌다. 올해 초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하고, 올해 한국 영화 제작 예상 편수가 90편(2005년 72편)에 이를 것으로 알려지자,‘한국 영화 바람이 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스크린쿼터 축소에도 끄떡없을 것처럼 보였다. 지금 한국 영화 제작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기획은 연초 90편에서 더 늘어나 100여 편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남양주촬영소(흔히 ‘양수리 세트장’이라고 한다)는 지난해 말에 벌써 1년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촬영소 김유형 과장은 “예년엔 2~3개월 전에 예약하면 됐는데, 올해는 11월까지 6개 스튜디오가 꽉 찼다”고 말한다. 주요 영화제작사인 싸이더스FNH 측은 “‘뚝방전설’ 등 2편의 영화는 세트장이 없어 CF 세트장과 사설 세트장에서 찍었다. 이들은 양수리보다 훨씬 비싸서 제작비 부담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세트장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카메라, 조명, 오디오 등 모든 제작 파트가 마찬가지다. 한 카메라 스태프는 “CF 제작사에서 빌려오기도 하지만 촬영 스케줄에 못 맞추면 메인 카메라 한 대로 찍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영화 제작 편수가 늘어난 것은 영화 제작에 투입된 돈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영화 제작에 들어온 돈은 대규모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는 CJ(CGV)와 오리온(메가박스), 롯데쇼핑(롯데시네마) 등 대재벌의 투자액과 벤처투자조합에서 운영하는 영상펀드 250억원, KT와 SKT가 영화사 인수를 통해 투입한 500억원, 지난해 붐을 이룬 영화사들의 우회 상장에 따라 조성된 최소 1000억원대 각종 펀드 등을 합쳐 40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2000년 처음 조성됐던 영상펀드가 2005년에 만기를 맞으면서 영화계의 ‘돈가뭄’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크린 수 늘리기로 무한경쟁에 나선 대기업과 DMB 실용화로 콘텐츠 확보에 혈안이 된 통신사, 그리고 상장한 영화사들이 제작 편수를 늘림으로써 한국 영화계가 ‘돈벼락을 맞았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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