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맞은 영화계, 위기감 고조

2006.07.02/박혜영 기자

2006년 하반기를 맞는 한국 영화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당장 7월 1일부터 극장들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가 기존 146일에서 73일로 축소 시행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같은 날 전국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이동통신사의 멤버십 할인 서비스가 일제히 중단됐다. 영화계 내부에선 사상 처음으로 노조와 제작가협회간의 단체 교섭이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영화가 최근의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쿼터 축소 여파, 예상보다 빠르다"
당장 한국영화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스크린쿼터 축소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영화진흥법 개정안의 시행 시기가 7월 1일부터인 것을 감안해 상반기는 기존의 한국 영화의무 상영일수를 적용하고, 7월부터 연말까지는 변경된 스크린쿼터 일수를 적용해 2006년 전체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총 109일이라는 지침을 극장들에 통보했다. 정부의 이같은 지침에 대해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의 양기환 대변인은 “상반기 <왕의 남자>의 흥행으로 극장들이 변경된 스크린쿼터 일수인 73일을 거의 채운 상황에서 하반기 한국 영화 상영 일수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하반기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떨어질 경우 쿼터 축소로 인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73일에서 109일로 계산한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올 하반기 극장들이 한국영화를 틀어야 할 일수는 사실상 109일에서 73일을 뺀 36일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하반기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버티고 있어 쿼터 축소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양기환 대변인은 그러나 “쿼터 축소로 인한 여파가 예상보다 빨리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증거로 “<미션 임파서블 3><다빈치 코드> 등이 극장의 85%를 장악한 반면 동시에 개봉됐던 한국 영화 네 편이 호평에도 불구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던 상황”을 꼽았다.

"한국영화 관객수 하락 뻔하다"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이 장기적으로 총체적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비단 영화 현장에서뿐만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미현 정책 연구팀장은 쿼터 축소가 한국 영화 산업의 취약점과 맞물리는 지점에 주목한다. 김 팀장은 “영화계에 2004년부터 우회상장을 통한 기업화 과정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며 “우회 상장한 기업의 경우 외형을 키워 수익을 내야한다는 압박감으로 많은 편수의 영화를 기획 개발해 왔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한국영화에 실망하는 관객들이 조금씩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김미현 팀장은 “쿼터 축소라는 변수가 작용할 경우, 관객수 하락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극장들이 한국 영화의 흥행 파워를 외화보다 낮게 평가해왔던 관행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개봉 초기의 스크린 점유율이 한국 영화보다 외화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흥행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극장들이 외화를 더 선호해 왔다는 증거인 셈. 김미현 팀장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에 대해 식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데다 극장 측이 외화보다 한국 영화의 흥행파워를 더 낮게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쿼터 축소라는 변수는 한국영화의 안전핀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양극화 해소 등 한국영화 체질 개선도 절실"
쿼터 문제 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체질 개선 작업도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각각 노 측과 사용자 측을 대변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노사간 단체 교섭을 시작했다. 이날 최진욱 노조 위원장은 "지금 현장에서 신음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라고 말해, 스탭들의 생존권 문제가 한국영화계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기환 영화인대책위 대변인 역시 “영화 스탭들의 생존권 문제와 양극화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며 “영화 노조를 배제하면서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해나간다면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김형준 대표는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걱정을 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며 “영화 산업의 체질 개선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 자기 이익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조금씩 양보해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한국 영화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안팎으로 중대한 시점을 통과하고 있는 한국영화계는 관객수 하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큰 이통사들의 멤버십 할인 서비스 중단이라는 악재까지 맞아 녹록치 않은 하반기를 보낼 전망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 역시 한국영화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미현 영진위 정책연구팀장은 “불합리한 구조가 전제돼 유지되는 산업이라면 유지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면서 "합리적인 관행을 만드는 근본적인 재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by 100명 2006. 7. 3. 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