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 ''대기업'' 키워야"


[세계일보 2005-11-09]


"영화 제작·배급·상영의 (수직)통합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력 갖춘 문화콘텐츠 대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소회실서 ''수직계열화, 문화콘텐츠 산업의 득인가 실인가''란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휴종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은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휴종 교수는 "영화산업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콘텐츠 산업은 급속한 융합이 이뤄지면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문화 콘텐츠 산업의 수직 통합이 ''기술의 경제''나 ''거래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막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의 경제나 거래의 경제란 철강 산업에서 철강 생산과 철판 생산이 한 기업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내부 거래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기업들이 수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김교수는 "일부 의욕적이고 욕심 많은 기업들이 나서서 수직 통합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가 일어날 수 있지만 (수직 통합을 통해) 합리적인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며 "수직 통합을 인정해주고, 불순한 의도가 발생하면 법을 통해 규제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직통합 강제로 막아선 안돼"

김교수는 미국의 영화 산업의 예를 들어 수직 통합의 당위성을 뒷받침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지난 1938년 미국 법무부는 8개 메이저 스튜디오를 상대로 ''거래 제한과 독점 시도''에 대해 불공정 행위로 기소했다. 일명 ''파라마운트 소송''이라고 불리는 10년간의 지루한 법리 공방은 1948년 독점금지법(셔먼법, Sherman Act)에 위반된다고 최종 판결하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제작·배급·상영의 각 영화 부문이 해체되면서 일부서 ''부정적인 영향''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상영 부분의 경우 수직통합 해체 이후 영화 제작편수가 감소하면서 개봉편수가 감소하고, 결국 극장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극장 사업자들은 오히려 독점 문제를 제기한 자신들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법무부에 "수직통합 체계로 복귀하겠다"는 의견을 내 놓는 아이러니까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이 밖에 제작 부문에서 수직통합 해체 효과는 미비했으며,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도 영화의 질이 다소 개선됐을 뿐 관람료 상승이라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해외 메이저 대응 위해 문화 대기업 필요"

김교수는 "당시 메이저 영화 스튜디오들의 기업가치가 평가 하락하면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점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 영화산업은 돈을 벌지 못한다''라며 산업 전체의 가치가 전체적으로 하락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김휴종 교수는 "막강한 자본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해외 영화 제작사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 ''대기업들''이 필요하다"며 "(업계서 자율적으로) 수직 통합을 한다면 규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누가 메이저 업체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꼭 자본이 메이저의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도 영화산업 메이저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유인택 대표는 "예전에 개혁적인 젊은 영화인들이 정부에 건의했던 것이 ''3대 영화 메이저 육성론''이었다"며 "개인적으로 CJ 등 메이저 업체들도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KT나 SKT처럼 다른 영역의 대자본이 들어오는 것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유인택 대표는 "최근 CJ에서 ''태풍''이란 영화에 순 제작비만 150억을 넘게 투자하면서 할리우드 영화 평균 제작비(200~300억)에 근접하고 있다"며 "중소 제작사들이 엄두도 못내는 이 일은 메이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영화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 대형 상업 영화들이 상영관을 대거 점령하면서 불공정 행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CJ가 ''친절한 금자씨''를, 오리온이 ''웰컴투 동막골''을 1주 간격으로 개봉하면서 전국 1300여개 스크린 중 900여개를 점령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며 "심지어 업계에서는 CGV가 ''…동막골''을 메가박스는 ''…금자씨''를 상영하면서 불공정 상영 행위를 했다는 소문도 떠돌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콘텐츠 대기업 긍정적·부정적 효과 공존"

유대표는 "일부에서 수직 계열화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창의력이나 창작 과정에서 작품 외적인 요구나 간섭을 받을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며 "대형 자본의 입김이 들어간 일상적 기준의 영화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80~90년대 홍콩영화처럼 경쟁력을 잃고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주성 CJ엔터테인먼트 상무는 "수직계열화의 문제점을 떠나 문화콘텐츠 시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극장들과의 관계가 밀접한 문화콘텐츠 대기업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공정 행위 규제''에 대해서는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미리 짐작해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이와 달리 수직적 통합서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 행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유창서 영화인회의 사무처장은 "앞서 김휴종 교수는 ''수직적 통합을 허용하면서 불공정 거래를 막으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공정 거래 없이 수직적 통합 이뤄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지금 현재 이러한 논리가 적용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수직적 통합엔 불공정 거래 뒤따라"

유창서 사무처장은 "가장 큰 문제는 배급과 상영이 계열화되면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특히 배급사와 특별 관계가 없는 극장들은 시장 진입 등 어려운 경우가 많아 사실상 수직 계열화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수직적 합병을 하는 까닭은 제작 유통·상영 등의 통합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며 수직 통합의 진행 방식을 풀이했다.

다만 그는 "''해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직적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드시 옳다고 보지 않는다"며 "오히려 음반업계가 점점 쇠퇴하는 이유는 전문성 없이 마구 통합하면서 리스크가 커져 그나마 잘 되던 유통까지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계속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연매출 18조인 SK텔레콤이 최근 서울음반을 단돈 150억에 인수한 것도 음원 시장서 경쟁력을 갖춰야겠다는 의도로 진행된 독점적 수직통합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김영석 벅스 이사는 "(수직통합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토론하기 곤란한 주제다"며 예정되어 있던 토론자 명단서 빠져 아쉬움을 남겼다.

◆문화 콘텐츠 산업의 수직통합(Vertical Integration, 수직계열화) = 수직 통합이란 상류와 하류에 존재하는 두 개의 기업을 동시에 소유하는 한 기업이 하류 기업의 생산물로 상류 기업의 생산물 전체 혹은 일부를 구성하는 종적인 결합을 뜻한다.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우 최근 수직통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한 회사가 독차지하는 것이나, 연예인 매니지먼트 회사가 음반의 제작 및 유통 사업자를 흡수 통합하는 것, 또는 이동통신사회사가 음악콘텐츠 업체를 인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by 100명 2006. 6. 30.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