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한다

[브레이크뉴스 2005-07-01 21:44]


지난 28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영제협)는 기자회견을 통해 소위 '스타권력'이 한국 영화를 망치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고, 이내 최민식, 송강호 역시 기자회견을 자청,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강우석 감독의 재빠른 사과로 영화계 내홍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제작참여로 인한 지분 요구 등 스타권력에 의해 영화시장이 침몰하고 있다는 영제협측과 이를 반박하며 개런티 등은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배우측의 입장이 '마침내' 대립한 이번 사건은, 결국 왜곡된 영화 시장을 살리고 구조적인 모순을 바로 세워 건강한 한국 영화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동일한 논리를 펴면서도 '나무만 보고 숲 전체를 간과'하고 있는 '스타'와 '영화제작자'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 셈이다.

한국영화계는 현재 얼마 전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영화 위기설'을 액면 그대로 맞고 있다. 올해 전반기에 등장한 블록버스터 한국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더욱 거세게 일고 있는 이같은 불안감은, 사실상 한국 영화제작 시스템의 모순점과 딜레마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영화계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온 의견이기에 그 심각성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데, 이 '한국영화 위기설'의 주체가 이번에 불거진 '스타권력'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강우석 파문'이 일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가장 큰 위기는 '스타권력'이 아닌 '거대자본의 영화시장 잠식'라는 점에 무게가 실려 있었던 것. 그리고 이 같은 지적은 상당부분 수긍이 가는 분석이기도 하다. 자본의 논리에 묻혀 허덕이는 현재 영화 시장의 '공공의 적'은 이미 수직구조화(투자·제작·배급·상영)에 성공한 일부 영화 대기업이라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달리 말해 한 나라의 문화이자 정신이 바로 영화인 것이다.

한국 영화 1,000만 관객 시대가 도래했을 때, 일각에서는 한국 영화의 눈부신 성장이라며 부추겨 세웠다. 그러나 한국 영화가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이 당시에도, 현장 인력들의 처우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화려함 속에 빈곤을 겪고 있었다. 즉, 양·질적 성장이 동시에 진행되지 못하고 양적인 측면만 비대해지는 기형적 성장을 거듭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은 브레이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의 문제점을 홍콩 영화의 몰락을 예로 들며 "과거 이소룡이나 성룡 등의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었나. 그러나 이는 소재빈곤의 문제로 이어지며 문제가 드러났고, 곧바로 홍콩 영화의 경쟁력 하강으로 이어지고 말았다"면서 "투자ㆍ제작ㆍ배급ㆍ상영의 수직계열화가 결국 영화의 경쟁력과 질적인 면을 떨어지게 만들며, 이는 영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은 CJ,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동양) 등 빅 3가 투자·제작·상영 등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반영화 제작자들은 이 빅3에 줄을 대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전 의원은 "배급과 상영을 공유한 기업들의 시장지배력 강화는 영화 상영관 점유율이나 상영일수를 왜곡할 수 있다"며 "일반영화제작자들은 안정적 배급과 상영일수를 보장받기 위해 이른 바 빅 3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이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해 11월 영화인회의 등 6개 관련단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영화산업 독과점과 관련, 답변서를 제출했다. 답변서의 주된 내용을 보자.

○2003년 까지 한국 영화산업의 제작 및 배급 부문은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의 업계 1~2위를 다투는 양강구도 하에서 쇼박스(메가박스 계열), 청어람 등의 중소배급사의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함.

○2003년 까지 한국 영화산업의 상영부분의 경우 CJ엔터의 자회사 CGV가 독보적인 선두를 유지하며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2위 그룹을 유지하고 다수의 비체인 상영관이 경쟁하는 구도였으나, 시네마서비스가 극장체인 사업을 시작하며 4가의 멀티플렉스 체인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

○이러한 상황에서 CJ엔터의 플레너스(시네마서비스, 프리머스)인수는 제작, 배급, 상영 모든 부문에서 CJ엔터를 절대적 강자의 지위에 올려놓으며, 시장에서 경쟁자와의 극복할 수 없는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 놓았음. 제작, 배급에 있어 CJ가 업계 2위인 시네마서비스의 40%지분을 확보하고 상영 부문에 있어, 2004년 CGV의 뒤를 바짝 추격할 멀티플렉스체인인 프리머스의 인수 결과로 한국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 부문에 있어 CJ의 실질적인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은 영화산업을 조금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임.

이러한 불공정행위에 대해 미국의 경우, 1948년 파라마운트 반트러스트 판결로 투자·제작·배급·상영의 수직통합의 한 고리를 이루던 상영사업이 분리된 상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투자·제작·배급·상영의 수직구조화가 거대 자본과 힘의 논리하에 자행되고 있다.

물론, 이번에 도마에 오르게 된 '스타권력' 역시 상당부분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방식'에 대해 대안이 등장해야 하는 사안이지, 전면적으로 스타의 제작참여를 비난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이에 대해 헐리우드의 예를 들어보자. 1996년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출연한 세계적 스타 톰 크루즈의 경우, 제작에 참여하는 대신 출연료를 받지 않고, 영화 개봉 시 수익배분(Benifit Share)를 택했다. 제작사는 당시 2000만 달러를 호가하던 크루즈의 출연료를 절약하는 대신 이를 영화에 재투자해 좋은 효과를 얻어냈고, <미션 임파서블>은 당시 톰 크루즈 출연 영화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린 대히트작이 되었다. 이처럼, '스타급 배우'의 제작 참여는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좋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는 '스타권력'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한 강우석의 경우, 영화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자신이 바로 시네마서비스를 운영하며 제작, 배급의 수직구조화를 이룩해놓은 장본인 아닌가.

만약 이번 사태의 '주인공'들이 원만한 합의를 거쳐 미국의 SAG처럼 표준계약서를 만든다고 치자. 이것만 해결되면 한국 영화 시장의 문제점이 사라질 수 있을까. 과연 한국영화계는 '스타권력'만 해결되면 원활히 움직여질 수 있는가. 거대배급사를 안고 있지 못한 소규모 제작사의 성공가능성 있는 영화들, 의미있는 영화들은 '스타권력'이 제어되었다 해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영화계는 하루빨리 지엽적인 문제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현재의 왜곡된 체계를 지닌 영화계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조만간 실력있고 의식있는 감독과 배우들은 사라지고 말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 영화의 눈부신 성과는 영화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땀과 눈물의 산물이다. 이제 그 산물을 제대로 지탱해줄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스타'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영화계의 기획력과 제작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을 시기에 등장하는 것이다. 수직통합의 영화산업구조로는 이같은 '컨텐츠의 개혁'이 어렵다. 영화제작자들은 한국영화의 위기에 대해, 제발 자신을 돌아보는 정도의 노력은 기울이고 난 뒤에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바란다.
by 100명 2006. 6. 30.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