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블록버스터 10년 발자취①]'쉬리'부터 '놈놈놈'까지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등 일명 작가주의 감독의 작품이 주로 초청됐던 칸영화제에 올해는 예외적으로 한국의 상업 영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놈놈놈'이 초청돼 화제가 됐다.

1999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인 '쉬리'가 관객과 조우한지 10년이 되기도 전에 2006년 '괴물'에 이어 또다시 '놈놈놈'이 세계적인 영화제인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됨으로써, 한국 블록버스터는 눈부신 성장을 보여줬다.

비록 블록버스터의 원조인 할리우드에 한참 못미치는 규모로 만들어지지만 또 그렇기에 할리우드와 다른 색깔을 지닌 그야말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쉬리'부터 '놈놈놈'이 나오기까지 한국 블록버스터가 지나온 10년의 발자취와 그 속에서 겪었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앞으로 한국 블록버스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짚어보자.

한국형 블록버스터 싹 트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폭탄의 이름에서 따온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에서 처음 탄생된 용어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급속한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궁지에 몰린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새롭게 도입한 제작시스템이다.

대규모 자본투자와 신속한 회수를 원칙으로 하는 이 시스템은 텔레비전 시리즈가 보여주지 못하는 스펙터클한 화면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을 열광시켰고, 의상·장난감·책 등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이 수반됐다.

충무로에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강제규 감독의 '쉬리'였다.

그 전에도 '귀천도' '퇴마록' '은행나무침대' '구미호' 등 당시로서는 높은 제작비와 한국영화에서는 드물었던 CG 작업 등으로 블록버스터의 태동을 잉태시킨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들 작품들의 실패와 성공을 거울삼아 마침내 1999년 '쉬리'가 탄생한다.

'은행나무침대'로 가능성을 보여줬던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쉬리'는 24억원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작비를 투입, 6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흥행역사를 다시 썼다.



당시 21세기 문턱에서 출연한 '쉬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최초의 작품이라는 것과 기존 한국 영화에서 금기시됐던 남북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한국영화 중흥기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는 것이 쉬리가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발점이 됐던 이유다.
by 100명 2008. 6. 16. 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