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전스 시대의 문화콘텐츠

노준석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정책개발팀

오늘날 컨버전스는 기술 경제적 법칙(rule)에서 사회 문화적 가치(value)로 일상화되고 있다. 클래식과 랩, 오페라와 팝이 접목된 `크로스'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문학에서는 순수소설에 SF기법을 동원하거나 시에 그림 등을 결합시킨 판화시나 그림시 등이 새로운 출판양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TV방송은 교양과 오락, 드라마와 코미디가 융합된 탈 장르화가 심화되고 있고, 미술에서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처럼 평면과 입체를 결합하거나 미술적 요소와 비 미술적 요소를 결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화에서도 내용과 형식을 파괴한 컨버전스 작품이 연일 히트하고 있다. 음식에서도 동서양의 음식을 뒤섞은 퓨전 푸드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미디어는 대표적인 컨버전스 사례로 기업, 산업, 서비스 측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첫째 헐리우드의 종가 디즈니는 최근 스티브 잡스(애플컴퓨터 CEO)가 소유한 픽사(CG 애니메이션제작사)를 인수해 실리우드(헐리우드+실리콘밸리)를 건설하고 있다.

에디슨이 세운 제조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도 NBC 유니버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우리도 전통적인 제조기업(CJ그룹ㆍ오리온그룹ㆍ대성그룹) 뿐만 아니라 IT기업들(KTㆍKTFㆍKTHㆍSKTㆍSK커뮤니케이션즈ㆍSKC&C)에 이르기까지 M&A나 제휴 등을 통해 복합 미디어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둘째 음악시장은 음반에서 음원으로, 만화시장은 단행본에서 웹툰으로, 캐릭터시장은 아바타로, 영화시장은 홈씨어터로, 방송시장은 모바일 방송으로 새롭게 시장이 형성되는 등 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포드나 아이튠즈(온라인 음악), 디지털 시네마(디지털 영화), DMB나 IPTV(차세대 방송) 등은 장르보다 기능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 전통적인 문화콘텐츠 산업을 재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셋째 미디어 서비스는 단순 엔터테인먼트에서 감동적인 체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류 현상을 보더라도 문화콘텐츠는 지리, 언어, 인종의 장벽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다.

`겨울연가'(배용준의 향수와 동경), `대장금'(이영애의 신의와 열정), `왕의 남자'(이준기의 금기와 풍자) 등의 인기비결은 하이컨셉 하이터치(high concept, high touch)라는 감성융합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그것의 스타일과 이야기, 경험과 감성을 산다"는 젠슨(Rolf Jensen)의 말처럼, 백문이불여일견(見) 시대를 지나 백견이불여일행(行)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처럼 컨버전스는 트렌드에서 패러다임으로 이 시대의 과학철학이 되고 있다. 그러나 통합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과잉추구하면 자칫 순수 문화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고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문화적 다양성을 생산하는 기업과 소비하는 수용자, 그리고 환경을 제공하는 정부 모두의 선택과 결과에 달려 있다. 문화적 주체성을 상징하는 디버전스(Divergence)는 그래서 필요하다.
by 100명 2006. 3. 3.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