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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상장시대 [5] | |
제작편수의 증가가 가져올 영향시장에 감도는 긴장감 때문인지 기존 메이저들도 의욕적인 라인업을 준비했다. 지난해 각각 3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는 20편 내외의 한국영화를 라인업에 포진시켰다. CJ엔터테인먼트는 올해 모기업 CJ로 복귀하여 비상장법인으로 돌아가고 반대로 쇼박스는 4월 모기업 미디어플렉스의 상장을 앞둔 상황이다. 한국영화 투자배급 2년차 롯데엔터테인먼트는 “2천만 관객 동원을 목표로” 13편의 한국영화를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며 모기업 롯데쇼핑은 최근 런던과 한국 증시에 동시 상장됐다. <왕의 남자>로 선전한 시네마서비스도 한국영화 14편을 내놓을 계획이다. 우회상장 등으로 자금이 풍부해진 개별 제작사들의 직접 투자 등을 통한 제작도 투자·배급시장의 다변화에 작지만 한축을 담당할 전망이다. 최근 증시에 입성한 제작사들은 한목소리로 “연간 제작편수의 확대”를 천명하고 있어 충무로에는 “올해 제작되는 영화만 어림잡아 100편”이라는 풍문이 떠돈다. 일부 상장사의 경우, 매출과 순익을 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설익은 기획을 필름화할 공산도 존재한다. 시네마서비스 김인수 대표는 “2002년에 82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된 것이 최근 가장 높은 수치였다. 2000년을 기점으로 조성된 펀드들에서 자금이 대거 유입된 결과였다. 하지만 어떤 시기의 어떤 새로운 자본도 작위적으로 제작편수를 급격하게 늘리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제작편수의 급증은 단기적으로는 시나리오 개발과 캐스팅을 포함한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경쟁이 좀더 치열해지고 스크린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자금 유입으로 제작사의 경상 관리와 신규 프로젝트 착수 자체는 용이해졌지만 이를 상영까지 연결시키는 통로는 지금보다 훨씬 좁아질 것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전체 편수가 빠르게 늘어난다면 전반적인 비용 상승이나 전체 수익률의 저하의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투자·배급사간의 유망한 제작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영화사 봄처럼 인수합병과 우회상장의 러시에서 한발 물러선 유력 제작사는 이때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자리매김할 공산이 크다. 메이저 업체는 상장을 통해 독립적 노선을 선택한 제작사의 공백을 빨리 메우려 할 것이고, 신규 투자·배급사 또한 라인업 확충을 위해 제작사의 확보에 매진하며 경쟁할 것이다. 이노츠와 싸이더스FNH가 배급시장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2007년에는 이러한 경쟁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진정한 생존경쟁은 이제 시작이다한편, 투자·배급시장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끼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대한 변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미디어와 플랫폼간의 컨버전스(융합)다. 이는 통신 자본이 영화산업에 참여한 근본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한 충무로 관계자는 “올해 이동통신 자본이 영화시장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주체가 될 것인가 아니면 플랫폼을 극대화하기 위해 콘텐츠를 활용하는 태도를 취할지 입장을 정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모바일과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방송과 미디어로 확장을 꾀하는 SKT는 전자에 가깝고, 유선통신망과 초고속통신망 사업자로 하드웨어적 기반의 KT는 후자에 근접해 있다. 2005년 IHQ가 YTN미디어 지분 51.42%를 176억원에 인수하고 신규 방송사업 진출을 발표한 사건은 SKT의 미디어 통합을 향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 싸이더스를 전문 콘텐츠 기업으로 지원하면서 IP-TV, 와이브로 사업에 확보된 콘텐츠를 활용하려는 KT의 방향 설정은 하드웨어 플랫폼 중심의 구상이다. 케이블시장에서 35%의 점유율을 가진 온미디어를 영화산업의 윈도로 활용하는 쇼박스, CJ인터넷과 CJ미디어를 우군으로 가진 CJ도 거시적으로는 이동통신사의 이러한 사업방향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영화산업 내의 개별기업의 실적과 매출을 근거한 옥석가리기가 마무리되는 순간, 현재 규모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거대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간의 인수합병이나 시장구조의 변경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가설을 암시한다. 상장 열풍과 이동통신 자본의 본격적인 개입은 영화산업 혹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질서 재편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다.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의 증권시장 진입은 ‘끝물’이라고 하지만, 영화산업의 주역을 가리기 위한 진정한 생존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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