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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상장시대 [2] | |||||
수익성이라는 단순복잡한 문제이상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상장은 충무로에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다. 멀티플렉스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계열사가 틀어쥐고 있는 투자·배급 시장이 다변화돼 다종다양한 영화가 생산될 수 있으며, 제작사는 안정적인 제작기반을 확보하게 되고, 매니지먼트사는 영화, 드라마 제작이나 투자 등을 통해 고질적인 적자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다. 하지만 증권가와 충무로 일각의 전망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우회등록한 영화사 또는 엔터테인먼트로 급작스레 업종을 바꾸며 영화사 지분을 인수한 기존 상장사들이 현재의 사업모델로는 증권시장에서 장기적으로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기반한다. 장영수 동부증권 리서치팀장(인터넷/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주식시장에서 유지하려면 수익이 나야 한다. 영화제작사나 드라마제작사가 제대로 된 수익구조를 갖고 있나. 제작비에 대한 룰이 없는 드라마제작사보다는 그나마 영화제작사가 좀 낫지만, 수익성이 항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불안요소”라고 주장한다. 제작이라는 분야는 흥행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수익성이 출렁이게 되고, 수익성 자체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수년 전 명필름이 제작사로서 독자적인 상장을 추진하다가 심사에서 2차례 떨어진 것만 봐도 증권가에서 바라보는 제작사의 지위는 짐작이 간다. 매니지먼트의 경우, “매니지먼트사가 배우에게 지급하는 계약금이나 배우가 받는 출연료 등이 모두 매출액으로 계산돼 그나마 낫다”(최재원 대표)는 시각도 있지만, “큰 스타의 경우 전체 수익 중 매니지먼트사 몫이 20% 또는 10%, 심지어 0%까지 되는 탓에 수익구조는 제작사보다 더 나쁘다”(장영수 팀장)는 의견도 존재한다. 튜브픽쳐스나 팝콘필름이 1년 제작편수를 4∼5편으로 늘리고, 다양한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나 매니지먼트 업체들이 영화제작을 고민하는 것은 모두 수익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증권가는 수익성이라는 문제가 그리 쉽게 해소될 것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대신증권 김병국 연구원은 “주식시장이라는 곳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듯 보이지만 이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며 “어떤 분야 주가가 비이성적으로 오를 때는 수익성 등이 다 무시되다가도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수익을 보여줘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엔터테인먼트 주식은 올해 상반기 동안 고전할 것으로 본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더 나아가 “상장기업은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동차 제조사처럼 연 20% 성장한다거나 해야 주주들이 가치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매입하지, 수익이 조금 나더라도 성장하지 않는다면 메리트는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상장 과정이나 주가 관리 단계에서 발생했을 수 있는 무리한 시도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주식교환 과정에서 지나치게 높은 액수로 가치평가를 받아 기존 주주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연예인 주식 보유를 내세워 주가를 급등시킨 사례가 빈번한 탓에 엔터테인먼트 계열 우회상장사들을 주시하고 있다. 윤권택 코스닥시장본부 공시총괄팀 부장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이 분야를 신경써서 보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심각한 우려는 영화인들이 금융권의 전문가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실익은 얻지 못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진짜 ‘선수’들은 거래를 만들어 주가를 단기간에 급작스레 띄워서 엄청난 차익을 얻어 떠나고 남은 영화인들이 뒷감당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비단 최재원 대표만의 것이 아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주식교환 등으로 최대주주가 된 경우 2년 동안 매매할 수 없다는 보호예수 규정 때문에 자칫하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상장 열기는 서서히 식고 있다. 증권시장의 침체와 감독당국의 관리강화 방침뿐 아니라 ‘선수’들이 더이상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 큰 ‘물건’들은 남아 있다. 이주열 도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이 터진 날, 이영애가 뉴보텍의 발표를 부인하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자 “기사, 봤습니다. 그러면 저희와 하시죠”라고 말하는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현재 도어엔터테인먼트와 배용준의 BOF, 이나영, 수애 등의 스타제이엔터테인먼트는 여전히 상장 후보로 지목된다. 하지만 BOF는 독자상장 방침을 굳히고 있고, 스타제이엔터테인먼트와 도어엔터테인먼트 또한 제작, 투자 등 역량이 될 때 상장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정영범 스타제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요즘 매니저들 만나면 주식 얘기만 하던데, 배우를 어떻게 발굴하고 키워나갈 것인가라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요즘 추세와 달리 배우에게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항간에서는 그 대신 전체 수익 중 회사가 받는 비율이 10%나 0%라고 주장하는데, 실제로는 최소한 30%를 받는다. 그것은 내 일에 대한 가치라고 생각하며, 그러면 회사가 적자날 일도 없다”고 말한다. 상장, 기업화·대형화를 위한 통과의례그렇다고 상장 그 자체를 애써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한국 영화산업의 다음 스텝이 기업화, 대형화라고 한다면 상장은 결국 겪어야 할 일로 보인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내년 상반기쯤이면 3분의 1 이상이 시장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그 치열한 경쟁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만큼 좋은 체력을
확보한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들 상장기업들은 다시 인수와 합병의 길을 통해 재편되겠지만, “2000년 정보통신 열풍 당시 200∼300개 기업이 시장에 들어왔다가 대다수가 무너졌지만, 결국엔 NHN이나 다음 같은 우량기업을 낳지 않았냐”(장영수 팀장)는 설명처럼 모두가 치열하게 노력한다면 충무로의 생산력, 경쟁력, 투명성은 놀랍게 좋아질 수도 있다. 충무로 상장시대는 위기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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