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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영화, 선택이 아니라 대세 e충무로 시대 개막 3 | ||
[필름 2.0 2005-09-23 15:20] | ||
올해를 기점으로 충무로는 HD영화 빅뱅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HD영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이제 구체적인 대안이 돼가고 있다. 낙관과 비관 모두를 양분 삼아 HD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다. 어느덧 HD 영화는 영화계의 선명한 대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조지 루카스의 선구적 제안 이후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들이 모두 소니의 HD 카메라로 촬영됐다는 것, 역시 HD 카메라로 촬영된 100% 세트 영화인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가 아카데미 위원회의 근본주의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향후 몇 년 안에 모든 필름 배급을 중단하고 디지털 방식으로만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 상영하겠다는 디즈니의 청사진 등 최근 세계영화계가 보여 준 디지털로의 이행과정은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이제 다소 식상할 정도다. 모토히로 카츠유키 감독의 <춤추는 대수사선2>(2003)와 마이클 만 감독의 <콜래트럴>(2004) 등 HD영화의 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자본의 주도로 전개되던 이러한 모습들이 이제는 인디와 메이저 모두를 아우르는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모호한 혁명을 넘어 실질적인 대안이 돼가고 있다. HD영화 바람은 이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2002)의 촬영 장비이기도 했던 소니의 HDW F-900으로 <욕망>(2002), <아 유 레디?>(2002)를 완성하며 그 시작을 알렸던 국내 HD 장편영화의 역사는 최근 새롭게 쓰여 지고 있다. 현재 국내 디지털시네마 분과위원장이기도 한 김형준 대표의 한맥영화에서 만들어진 <시실리 2km>(2004)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고, 같은 해 9월 KBS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함께 저예산 HD TV영화 제작계획을 발표했다. 공모를 거쳐 선발된 총 5편의 프로젝트에 각각 3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완성된 유상욱 감독의 <종려나무 숲> 등은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작년 뱅쿠버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채기 감독의 <빛나는 거짓>은 국내 최초 HD 독립장편영화로 역시 개봉을 기다리고 있으며, CJ-CGV 디지털 장편 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CJIP)으로 선정됐던 이진우 감독의 HD영화 <8월의 일요일들>은 최근 촬영을 끝내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한편, 작년 9월 MBC 역시 싸이더스와 함께 10억 원의 예산으로 HD영화를 공동으로 2편 제작하기로 발표했다. 그 사이 OCN은 자체적으로 HD 전용 영화인 봉만대 감독의 <동상이몽>을 제작, 방영했고 또다시 공수창 총감독의 지휘 아래 HD 호러 프로젝트 <코마>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통신 업체 KT의 지원으로 제작되고 있는 세 편의 단편영화인 곽재용 감독의 <기억이 들린다>, 김태균 감독의 <I'm OK>, 정윤철 감독의 <폭풍의 언덕>도 애초의 제작 조건이 HD로 출발하지 않았음에도 현재 감독들 모두 HD영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상의 프로젝트들이 당초 방송가와의 연합 혹은 홈페이지에서의 상영 등을 목표로 시작된 것이라면, 지난 6월 CJ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한 HD 장편영화 프로젝트는 이러한 흐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할 만하다. 11월경 크랭크인할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시작으로 박찬욱, 허진호, 유하, 류승완 감독 등 8명의 감독이 참여할 예정이며 25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이처럼 최근 1, 2년간의 HD영화 제작, 기획 붐은 앞서의 5년, 10년 사이의 변화를 훌쩍 뛰어넘는다. 충무로와 여의도의 HD 동맹
올해는 성지혜 감독의 <여름이 가기 전에>(엠엔에프씨),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청년필름), 심광진 감독의 <이대근, 이댁은>(영화사윤앤준), 김진성 감독의 <즐거운 나의 집>(에그필름), KBS 드라마2팀 김영조 PD의 <자각몽> 등 5편이 선정됐다. 이처럼 차세대 영상이라 불리는 고화질 영상(HD) 영화제작 붐은 방송사의 조력으로 가속도가 붙고 있다. KBS와 영진위의 HD 영화 프로젝트를 애초에 입안한 것도 KBS의 이관형 PD였다. “충무로 인프라와 방송 인프라가 서로 호환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것은 아마도 차세대 미디어의 변화 때문이다. 현재 가정의 주요 영상매체인 TV는 아날로그 방식이 사라지고 디지털 HD TV로 급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미 소니의 경우 아날로그 TV 생산 중단을 천명한 상태다. 또한 국내 지상파 방송들도 본격적인 HD 방송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HD 영상으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TV 방송 및 DVD 등 부가 영상 판매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에 수출되는 국내 영화의 상당수가 외국 수입사에서 TV 방송을 위한 HD 소스를 요청해 오고 있어 별도의 HD 영상 변환 작업을 거치고 있다. 이처럼 HD영화 제작 붐은 변화에 부응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방송가와 영화계의 윈-윈 전략으로 보인다. 영진위 국내진흥부의 이경철 과장은 “KBS는 선투자 개념으로 양질의 영화를 미리 확보하자는 취지가 있다. 영진위도 시장이 변해가는 추세라고 한다면 우리가 선도적으로 기술을 축적해 적극적으로 영화계에 돌려줘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비교할 순 없겠지만 HD 영상 측면에서 방송 쪽이 앞서가고 있고, 그러한 인력 교류를 통해 앞선 HD 기술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년 첫 회의 교류가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예산이 부족했다. 편당 3억 원이 지원됐는데 현금이 1.6억, 현물이 1.4억이었다. “제작사 측에서 현물 1.4억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면 기존에 거래하던 후반 작업 업체와 저렴하게 계약할 수 있으니 예산 자체가 늘어날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는 게 이경철 과장의 얘기다. 이러한 의견을 수렴해 올해 지원작들은 현물 없이 3억 원 전액을 현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기존의 방송 영상물과 필름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었다. <욕망>에 기술감독으로 참여했고 <종려나무숲>에서 촬영을 맡았던 구재모 촬영감독은 “애초에 CG 등 후반작업에 관한 한 KBS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방송과 영화 매체의 사이의 어쩔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CG 등 후반 작업을 결국 그 작업실에서는 할 수 없었다. 매체에 대한 이해가 지속적으로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작년 선정작들은 관객들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 유상욱 감독의 <종려나무숲>, 여균동 감독의 <비단구두 사가지고>는 현재 완성됐으며 <영화감독이 되는 법>에서 제목을 바꾼 남선호 감독의 <모두들, 괜찮아요?>는 촬영을 종료하고 11월에 개봉한다. KBS 김의수 PD의 <피아노 포르테>는 9월경 크랭크인 예정이며 김태용, 민규동, 조근식 감독의 <아이 엠 쏘리>가 제작을 취하해 합류할 수 있었던 예비 1순위 전계수 감독의 <밤의 유랑극단>도 10월 초 크랭크인한다. 비용 절감이라는 신기루
HD 카메라가 지닌 기동성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 중 하나다. 기동성으로 인한 시간 절약 역시 비용 절감에 큰 기여를 한다. 가령, 대니 보일의 <28일 후...>의 도입부에서 런던이 텅 비어버린 장면은 10여 대의 캐논의 HD 카메라 XL1이 사용됐다. 스탭들이 무선으로 통신하며 수분 내에 카메라 세팅이 완료됐고 경찰이 1, 2분 정도만 지정된 구역을 통제하는 가운데 뚝딱 촬영됐다. 카메라 바깥에는 수천 명의 출근 인파가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HD영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저예산의 신화는 현재 HD영화를 촬영하고 계획하는 현장 스탭들에게 큰 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마> 중 2개 에피소드의 촬영을 맡은 이강민 촬영감독은 “아직까지는 국내에 장비도 적고 HD에 익숙한 스탭들이 드물다. 그러다 보니 낯설다, 익숙하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라 촬영 과정 자체가 필름으로 작업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용 자체가 절감되는지에 대해 의문이다. 오히려 필름 작업할 때의 예산을 그대로 가져오면 유리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경험과 기술이 쌓여가는 단계”라고 말한다. 구재모 촬영감독 역시 “HD영화 작업이 기동성이라는 말로 대표될 정도로 생각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제작비가 더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다반사”라고 지적한다. 현장 시스템이 바뀐다
HD영화가 여전히 낯설다는 것은 바꿔 말해 그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져 가는 증거로도 보인다. CJ엔터테인먼트의 HD 장편영화 프로젝트 중 하나로 다른 감독들보다 먼저 액션영화 <짝패>를 준비하고 있는 류승완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HD 엔지니어의 몫이 촬영감독만큼이나 커져가는 것 같다. 계속 현장이 바뀌어간다는 얘기다. 아마도 본격적인 HD영화 시대가 도래하면 현재의 모니터 환경도 바뀔 거다. 후반 작업실이 아닌 현장에서 최종 결과물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날 테니 사소하게는 모니터용 차양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구재모 촬영감독은 “스탭 구조가 분명 변할 것 같다. 미국에는 DIT(Digital Image Technician)이라는 단체가 있다. HD영화의 경우 대부분의 작업이 카메라 자체적으로 컨트롤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프로덕션 단계에 깊숙이 참여한다.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수요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로서는 국내 HD영화 현장에서 전문가인 촬영감독이 있다고 쳤을 때 현장에서 고된 1인 2역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촬영감독이 촬영과 기술적인 측면 두 가지 모두를 책임진다고 가정할 때 촬영감독은 미장센 등 미학적인 측면만 고심하고, 전문 엔지니어가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만들고 또 만들자
현재 HD영화를 준비 중인 한 촬영감독은 “혹자는 시행착오가 많을 거란 우려들도 하는데 사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계속 만들어나가면서 결과를 지켜보고 싶다”고 지적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올해의 붐을 지나 내년쯤이면 결과물의 확인과 함께 이러한 대세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진단한다. 긍정과 비판의 목소리 모두 존재하지만 HD영화가 결국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목소리가 없다. 현재 완성, 혹은 준비되고 있는 작품들의 결과가 하나둘 고개를 들 때쯤 우리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큰 변화의 물결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장밋빛 희망이 서서히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주성철 기자 “산업적 변화가 미학 변화 이끌 것” 박기웅 촬영감독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교수, 디지털 비전위원회 위원, <욕망>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촬영)
필름이건 뭐건 간에 새로운 매체를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하는 건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본다. 이제 단순히 필름에 비해 돈이 적게 드니까 HD로 한다, 그 수준은 넘어섰다고 본다. 다행히 HD영화 제작에 메이저급 회사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어떤 작업의 과정 같은 것이 일정 부분 표준화돼 가고, 좀 더 산업적으로 검증이 돼가고 있는 단계라 보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그런 작업들이 발판이 돼서 프로젝트별로 고스란히 시행착오를 겪고 서로 줄여나간다면, 본격적으로 HD로 만드는 환경이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싶다. HD 워크숍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변화는 어떤가? 구체적인 욕구가 있다. 산업적인 경향이 본격적으로 소니 HDW F-900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자기들의 당면 문제가 된 거다. 그들이 향후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작업하게 될 때는 이미 좋건 싫건 HD가 대세가 될 거라는 걸 파악하고 있다. 관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갈수록 적극적으로 변한다. <욕망>을 작업할 때만 해도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굉장히 하이엔드급의 다양한 방식들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막연히 비용 절감을 기대하는 경우가 아직은 많은 것 같은데? 필름의 경우를 보면 블록버스터가 있고 저예산 영화도 있다. 그것은 디지털시네마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내용과 프로덕션에 따라 예산이 집행되는 거지 단지 HD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절감되는 건 아닐 거다. HD영화라고 스타들이 개런티를 반만 받을 거도 아니지 않나.(웃음) 그렇게 따지면 고감도 필름을 가지고 노 라이트로 슈퍼 16mm로 작업하면 더 크게 예산 절감이 될지도 모른다. 매체 차이를 떠나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가 없으면 필름이나 디지털이나 별 차이가 없을 거라 본다. 다만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필름 작업 방식이 합리화, 조직화가 다소 느렸다면 디지털은 매체 특성상 그런 부분들이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접근의 용이성으로 인해 작업환경이 민주화될 수도 있을 거다. 그건 한국영화 산업의 전체적인 변화와 맥을 함께할 거다. 소위 필름 룩, 디지털 룩, HD 룩이라고 말할 때의 핵심은 뭘까? 필름도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왔다. 그 사이 저온 프로세서와 고온 프로세서 등 색감의 변화도 있었고. 하지만 너무나도 굵직한 변화가 아니고서야 후자 같은 경우는 전문가들이나 알지 일반 관객들은 알 수 없다. 가령 <씬 시티>의 컬러 소스는 엄청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걸 보고서 ‘저건 HD로 찍어서 필름보다 이렇다 저렇다’ 정확하게 지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를테면 마이클 윈터바텀의 <인 디스 월드>나 고레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본 누군가가 과연 어떻게 알까.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를 두고 ‘디지털 말고 필름으로 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라고 누가 지적할 수 있을까. 오히려 최근에는 디지털 영사로 상영된 영화의 화질이 필름을 능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제 ‘때깔’ 때문에 필름으로 찍어야 겠다, 하는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미학적인 선택의 유무를 떠나 이제는 산업적인 환경 변화 쪽이 더 먼저일 것 같다. 그러자면 HD영화가 대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게 저항할 수 없는 영화의 운명이기도 하다. 국내는 IT, 인터넷 강국이라고들 하는데 그에 비하면 HD영화는 계속 답보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너무 뒤늦은 고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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