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촛불집회까지..격동기 샐러리맨의 하루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청계천 부근 대기업에 다니는 홍모(45) 부장은 최근 출근길이 괴롭다. 일산에 사는 그는 매일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대규모로 예정된 날의 경우 버스가 광화문까지 오지 못하고 서울역에 서는 탓에 서울역부터 종각역까지 걸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은 퇴근할 때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그는 또 시청 광장 일대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기 어려워 지면서 회사 근처나 집에 가기 편한 신촌 일대 보다는 강남 등지에서 만나는 약속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대기업에 다니는 올해 40줄에 들어선 이 모 부장. 그는 광우병 논란과 이로 인해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회식 문화를 바꿔놓았다고 전했다.

"일단 회식메뉴 선정에서 소 관련 음식은 배제됩니다. 소를 먹고 싶어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게 그의 이야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광우병 논란과 함께 촉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대규모 촛불 집회가 고유가, 고물가와 더불어 직장인들의 생활상을 바꿔놓고 있다.

◇ 촛불집회로 조기퇴근..사우나도 인기 = 광화문 외교통상부 청사 바로 앞에 위한 현대그룹은 최대 촛불시위 인파가 몰렸던 10일의 경우 오후 4시에 조기 퇴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이 오전부터 컨테이너로 광화문을 막고 현대그룹 사옥 부문도 청와대로 가는 길이라 봉쇄함에 따라 사측에서는 부득이하게 조기 퇴근하라고 직원들에게 긴급 지시를 내린 것. 이에 선적 화물 등을 체크하던 현대상선 직원들이 부득이하게 일손을 놓고 건물 밖으로 나가야하는 등 업무에 지장이 있었다.

또한 아침에 통근버스마저 광화문에 막혀 1시간 정도 정체됐으며 업무 시간에 도로 봉쇄로 택배 또는 퀵서비스가 불가능해서 필요한 서류를 빨리 보내는데도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광화문에 사옥이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근 잇따른 촛불 시위 집회 때 사옥 화장실을 개방해 네티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물론 전경들까지도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좀더 청소에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이 됐지만 시민들의 불편을 감안해 평소처럼 화장실을 개방하기로 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또 대규모 촛불 시위가 열렸던 지난 10일 교통난을 우려해 직원들에게 야근을 하지말고 정시퇴근하도록 독려하는 등 광화문 근처 대기업에서는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청계천 부근에 사옥이 있는 한 대기업은 퇴근후 촛불 집회에 참석한 뒤 사우나에서 새우잠을 자고 출근하는 직원들도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다른 회사의 경우도 집회에 참석하는 샐러리맨들이 상당 수 있을 것"이라며 "퇴근길 교통이 혼잡하고 출근길도 쉽지 않아 아예 사우나에서 잠을 청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및 인근 계열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요즘 시내에서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사무실 근무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이동에 불편함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혹시 촛불 집회나 시위로 인해 귀가하지 못하고 발이 묶일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주차 때문에 출근할 때 자가용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집회가 있는 날에는 차를 아예 가져오지 않는다.

◇ '회식 메뉴는 돼지고기' = 광우병 논란이 불거지면서 삼겹살이 금(金)겹살로 불릴 정도로 값이 뛰었고, 돼지고기의 다른 부위를 찾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또 촛불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에서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가 주 메뉴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신세계 이마트에 따르면 삼겹살값이 매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며 100g당 2천200원 안팎으로까지 치솟자 목살, 앞다리살, 뒷다리살 등 그동안 삼겹살에 가려져있던 다른 부위 매출도 급증했다.

◇ '카풀과 대중교통으로 고유가 극복' = 유류비 절약을 위해 '카풀'을 하거나 대중교통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인 엠코가 최근 임직원 4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출퇴근 교통수단은 어떻게 달라졌나'는 질문에 평소 승용차로 출근하는 임직원의 41% 중 각각 절반 가량이 '동료직원과 카풀을 한다'거나 '회사 셔틀버스나 대중교통(버스, 지하철)으로 아예 바꿨다'고 응답했다.

백화점 쇼핑객들도 최근 고유가의 영향으로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은 6월 들어 본점의 하루 평균 입차수가 1-5월 대비 5% 가량 줄었다.

본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포의 일평균 입차대수도 비슷한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으나 같은 기간 일평균 매장 방문객수는 감소하지 않았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유가 상승의 영향 때문에 백화점에 차를 몰고 오는 고객이 확연히 줄었고 특히 본점의 경우 최근 촛불집회에 따른 교통통제로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는 또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어디서 기름을 넣는지 동료들 사이에 정보를 공유하며 저렴하고, 같은 값이라도 사은품이 푸짐한 주유소가 어딘지 알아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by 100명 2008. 6. 15. 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