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배우들, 영화 제작·투자·연출 러시

기사입력 2008-06-14 23:01 |최종수정2008-06-15 01:34

[사진=MBC]


[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영화배우들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연기 외에도 직접 작품을 연출하거나 제작·투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것.

영화 제작에 강한 열정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배우는 정준호다. 정준호는 2003년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제작한 주머니필름의 실질적인 경영자로 이 작품에서 제작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다.

주머니필름은 현재 7월 초부터 두 번째 영화 '유감도'를 제작할 계획이다. '투사부일체'의 김동원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 김상중 등 '두사부일체' 시리즈 1, 2편 주요 출연진이 다시 뭉친다.

주머니필름은 당초 '두사부일체'의 3편을 제작하려 했으나 출연진이 전원 교체된 '상사부일체'로 인해 '유감도'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배우들이 출연료로 제작비에 투자하는 일도 많아졌다. 영화 '괴물'의 송강호는 출연료 전액을 투자해 2배의 수익을 얻었다.

송강호는 인터뷰를 통해 "제작 초반 자금 압박이 심한 때 부담을 나눠 갖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작비 투자를 받기 어려운 작품에 배우가 출연료를 투자해 초기 제작비 부담을 나눠 가진다는 이야기다.

이는 영화 흥행에 따라 추가로 돈을 받는 러닝개런티나 수익을 분배하는 목적으로 제작사 지분 확보와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할 경우 출연료보다 적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이병헌, 정우성과 함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도 출연료 일부를 투자할 뜻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놈놈놈'을 제작한 바른손의 최재원 대표는 아시아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제작비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당시 세 배우가 자진해서 출연료 중 일부를 모아 투자할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투자가 원활히 이뤄져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어 "흥행이 불투명한 제작 초기에 출연료를 제작비에 투자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강한 애정이 없다면 매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 출연 중인 배우 소지섭과 강지환도 이 영화에 일정 금액을 투자해 눈길을 끌었다. 평소 출연료보다 적은 금액의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저예산영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제작비를 일부 투자한 것.

이 영화의 제작사 스폰지 관계자는 "투자보다는 십시일반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들이 감독으로 진출하는 일도 점점 늘고 있다.

스타 배우들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현상이 일반적인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 영화계에는 배우가 직접 장편 상업영화를 연출하는 일이 흔치 않다.


멀게는 하명중, 최은희, 진유영, 최무룡, 심형래 등이 있지만 최근 10년간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는 '오로라 공주'의 방은진 감독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배우 유지태와 정우성이 가세했다.

유지태는 연극 제작과 뮤직비디오 연출에 이어 세 번째 단편 '나도 모르게'로 장편 감독 데뷔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이 작품은 오는 26일 개막하는 7회 미쟝센단편영화제와 6월 열리는 일본 도쿄단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유지태는 '나도 모르게' 기자간담회에서 "단편영화 제작지원 같은 제도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기관의 문을 두드린 적도 있지만 유지태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서류가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다"며 투자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어 그는 "'돈이 많아 취미로 영화를 만든다'는 주위의 편견과 '허영심 때문에 감독을 하려 한다'는 조롱 때문에 힘들었지만 외제차와 큰 집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제가 원하는 진정한 목표를 위해 사비를 들여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룹 god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등 연출 수업을 쌓은 정우성은 현재 장편 데뷔를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영화 '남극일기' '뚝방전설' 등을 제작한 임희철 프로듀서가 정우성과 함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임희철 PD는 아시아경제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정우성이 당초 영화 '놈놈놈' 직후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촬영 도중 생긴 오른팔 부상과 칸영화제 초청 등으로 인해 현재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시나리오 초고는 연말쯤 완성될 것 같다"고 밝혔다. 정우성이 직접 차린 영화사가 제작을 맡을 예정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한 영화 관계자는 "배우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제작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거나 과도한 지분을 요구하는 등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반대로 투자나 제작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제작 편수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배우들이 제작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일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고 평했다.
by 100명 2008. 6. 15. 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