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 공포 이젠 해외로 확산
[파이낸셜뉴스 2005-08-18 17:33]
외국 정보기관이나 통신업체들이 국제자동로밍을 이용하는 한국인의 휴대폰 통화내용을 속속들이 도·감청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글로벌 도·감청 공포’가 나라 밖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외국 이동통신사들은 교환기에 감청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국제자동로밍 휴대폰을 사용하는 한국인의 통화내용을 얼마든지 엿들 수 있다. 이와 달리 국내 이통사의 교환기에는 공식적으로 감청기능이 설치돼 있지 않다.

■글로벌 도·감청 가능성 인정

정보통신부는 국제로밍을 통한 해외에서의 휴대폰 도·감청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정통부 프로젝트매니저(PM)인 조동호 박사는 “우리나라는 이통사 교환기에 감청장비를 설치하지 않아 국내인의 감청조차 어렵지만 일부 외국은 이통 교환기에 감청장비를 설치해 얼마든지 도·감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외국 정보기관마저도 우리 휴대폰 이용자를 쉽게 도·감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통부가 처음 인정한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도·감청에 노출된 국제로밍 휴대폰은 종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폰은 물론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단말기까지 예외가 아니어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 정보기관이 정부 주요인사를 비롯해 기업인까지 국제로밍 휴대폰을 통해 고스란히 도·감청하면 국익에 상당한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도·감청 가능국가 날로 확대

‘글로벌 도·감청’의 도구로 지목된 국제자동로밍은 CDMA와 WCDMA 지역을 중심으로 날로 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국제로밍 국가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해외 기관에 의한 도·감청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데 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지난 2001년부터 미국, 중국, 일본, 태국, 홍콩, 대만, 호주, 뉴질랜드, 괌, 사이판, 캐나다 등 15개국에 국제자동로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누적기준으로 SK텔레콤의 국제자동로밍 이용자는 351만명이다.

일본을 대상으로 휴대폰 국제자동로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KTF도 지난 7월 말 누적기준 9만9000여명이 이용했다.

■국산 감청가능 통신장비 수출 ‘부메랑’ 되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래전부터 감청기능이 포함된 CDMA 통신장비를 해외에 수출해온 것으로 밝혀져 국제로밍을 통한 도·감청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표참조>

삼성전자는 그동안 미국(푸에리토리코), 중국, 호주,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 총 8억1000만달러어치 이상의 통신장비를 수출했다.

LG전자도 지금껏 베트남, 네팔,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등 국가에 1억달러어치가량의 통신장비를 수출했다.

국회 산자위 소속 김기현 의원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휴대폰 감청 관련 기술을 3건이나 특허등록했다. 현재도 KT와 LG전자는 5건의 각종 통신감청 기술과 장비를 개발해 특허청에 특허출원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내 정보기관 외에는 감청장비를 개발할 이유나 능력이 없다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내 업체가 수출한 통신장비가 우리 휴대폰 이용자의 통화내용을 엿듣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감청기능이 포함된 통신장비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등 해외 국가가 이동통신장비에 감청기능 설치를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정통부 김동수 통신진흥국장은 “미국의 경우 칼레아법을 만들어 감청기능이 제공되지 않은 기존 통신사 설비에 감청기술을 넣을 때에는 국가가 예산을 보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둥이폰 이용 글로벌 도·감청 공포

휴대폰 불법복제를 통한 ‘글로벌 도·감청’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자동로밍 휴대폰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외국 불순조직이나 정보기관이 한국 주요인사의 휴대폰을 똑같이 복제한 ‘쌍둥이폰’을 만든 뒤 수시로 통화내용을 엿듣는다면 속수무책일 수 있다.

통신업계는 국내 가입자의 휴대폰을 복제한 쌍둥이폰으로 해외에서 도·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몰래 통화까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업체의 고위관계자는 “오히려 여러 국가가 글로벌 유무선망으로 얽힌 국제로밍 휴대폰은 도·감청이 훨씬 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자동로밍 이용자, “불안해 못쓰겠다”

국제자동로밍을 통한 해외 기관의 도·감청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해외 방문이 잦은 국제로밍 사용자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 SK텔레콤 가입자는 “해외 정보기관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휴대폰 도·감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앞으로는 해외에 나가서도 마음놓고 전화통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KTF 가입자는 “국제로밍 휴대폰이 도청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도·감청 공포에 떨고 있는 휴대폰 사용자들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hwyang@fnnews.com 양형욱기자
by 100명 2005. 8. 18.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