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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문자혁명 "우린 엄지로 통해요" | ||
[중앙일보 2005-08-18 06:06] | ||
[중앙일보 박방주.김필규] 바야흐로 엄지족 세상이다. 지하철.버스 안에서부터 길거리에까지 엄지족들이 넘쳐난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3700만 명을 넘어서고, 전화 거는 것보다 문자메시지(SMS)를 보내는 게 더 자연스러워지면서 생겨난 2005년 한국의 풍경이다. 휴대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문자 보내기에 여념이 없는 여중생부터 여자 친구가 보내온 문자를 보며 혼자 키득거리는 대학생까지. 또 손자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느라 돋보기 초점을 맞춰가며 더듬더듬 자판을 누르는 할아버지까지 곳곳에서 소리 없는 대화가 전파를 타고 쉴새 없이 날아 다닌다. 지금 이 시간에도 두 엄지 손가락만 가지고 깨알 같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엄지족들. 그들은 과연 무슨 메시지를 나누고 있을까. #10대:"자판은 모하러 보삼?" 서울 대명중 2학년 정혜영(13)양은 얼마 전 휴대전화 요금제를 '문자메시지 무제한'으로 바꿨다. 일반요금제를 사용한 지난달 음성통화료는 5000원에 불과했지만 문자메시지 요금이 3만원을 넘었던 것이다. 주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지만 그 내용은 특별한 게 없다. 'ㅋㅋ'' 0 ''배불러-ㅅ-;' 등. 웬만큼 간단한 문자를 보낼 때는 아예 자판을 볼 필요도 없다. 정양은 "남들 몰래 책상 밑에 휴대전화기를 놓고 문자를 보내려면 자판을 외워야 한다"며 "이젠 컴퓨터 키보드 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하루에 쓰는 문자량은 어마어마하다. 최근 통신전문 리서치 회사 마케팅인사이트가 연령대별 문자 이용량을 조사한 결과 10대 응답자들 중 '한 달에 300건 이상 사용한다'는 경우가 60.2%나 됐다. #20대:"문자는 사랑의 윤활유" 2년차 직장인인 유하나(26.여)씨에게 문자메시지는 '사랑의 메신저'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사귄 남자 친구로부터 오는 문자가 하루 평균 15건. 아직 대학원생인 남자 친구는 야근이 잦은 유씨를 격려하기 위해 원색적인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말로는 하기 힘든 표현도 문자로는 쉽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여자 친구를 '관리'하려는 목적도 있다. 업무 중에 자꾸 전화를 걸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에 통화보다 문자가 유용하다. 다투고 난 뒤에도 문자가 좋다.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돼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지만 문자는 한번 더 생각하고 보내기 때문에 실수의 염려가 적다. 유씨는 "심하게 다툰 뒤에도 애교 섞인 문자 한번 받고 나면 화가 싹 풀린다"고 말했다. 마케팅인사이트의 조사 결과 20대의 문자메시지 대상은 주로 동성 친구(26.8%)나 이성 친구(22.9%)였다. 40대의 경우 배우자(18.5%), 10대의 경우 부모님(16%)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30, 40대:"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문자는 필수" C대리운전 업체 김승욱(36)대표는 매일 오후 6시쯤 되면 어김없이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퇴근 후 술 자리에 가는 직장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대리운전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면 번호를 외우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김씨는 "간혹 스팸 문자라고 불쾌해하는 고객도 있지만 문자를 보냈을 때와 안 보냈을 때 매출이 10%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SMS는 훌륭한 홍보 수단"이라고 말했다. #50대 이상:"문자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은 아니라우"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공사윤(71)옹은 7명의 손자.손녀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다. 1997년 대형 크레인 제조업체에서 정년퇴임한 공씨는 손자들이 초등학교에 하나 둘 입학하면서 문자 보내는 법을 배웠다. 맞벌이하는 자녀 대신 손자들에게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랑한다. 우리 손녀딸~♥'이라고 특수문자까지 넣어 보내면 '나도 할부지 사랑*▶▶*'하며 금세 답신이 돌아온다. 공 옹은 "마음 같아선 매일 전화 통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문자로 대신한다"며 "손자들 답신이 오기까지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물론 50, 60대의 SMS 이용 건수는 아직 전체의 1~3%에 불과하다(SK텔레콤 6월 집계).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김필규 기자 - '나와 세상이 통하는 곳'ⓒ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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