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디지털세상을위하여] (상) `디지털 한류` 세계속으로

손연기 정보문화진흥원장

서울 산동네의 허름한 옥탑방 등이 `한류(韓流)' 관광상품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 집으로 나왔던 춘천의 단독주택이 일본인 관광객의 `순례성지'가 되었듯이 `아름다운 날들' 등 각종 드라마에 등장했던 서울의 달동네 집 등 10여 곳이 한국 드라마 오타쿠(마니아)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고 있다 하니 새삼 `체험 관광'의 위력을 되새기게 된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로마나 피렌체만 관광지가 되란 법은 없다. 밀라노의 두오모(대성당) 앞에서 "스고이(멋지네)"라고 탄성을 질렀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서울 달동네에서 "스고이"를 연발하는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한류 바람에 실린 일본인들의 "스고이"가 마냥 즐겁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씁쓸함이 더 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류 열풍으로 우리가 `푼돈'을 벌면서 즐거워하는 사이, 정작 실속을 챙기는 것은 일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4년 오락산업 총매출 실적을 조사한 결과, 영상업계 매출은 2274억 엔(약 2조원)에 달해 과거 최고 기록이었던 2001년 2043억 엔을 넘어섰다. 극장 입장객 수도 총 1억4257명으로, 경제산업성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75년 이래 3번째로 많은 관람객 기록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일본 영상업계의 호황에 기여한 일등공신은 다름아닌 한국 드라마와 영화이다.

일본 영상업계는 `한류 붐'을 일본 연예산업 전반의 활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파악, 이같은 붐을 이어가기 위해 다각적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한류를 활용하는 셈이다.

`겨울연가'만 보더라도 KBS는 일본에서 약 2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나, 일본 NHK는 약 40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의 한류가 무늬만 한국산이지, 실질적으로는 한국산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닌 듯 싶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김종학 PD가 "지금 한류는 위기상황"이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말쯤이면 한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난 4월 KOTRA가 한국의 수출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류의 영향 및 활용방안'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한류가 얼마나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5%가 `4년 내 멈출 것'으로, 35.9%는 `2년 내 종식'될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한류가 이렇듯 스러져서는 물론 안된다. 월드컵 4강 만큼이나 우리들을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한류가 언제까지라도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한류의 수명에 대한 논의가 잦아지는 등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장기적 먹거리 재료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옳다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류를 계속 이어나갈 방안을 모색하는 것과 동시에 대체재로서의 `신 성장동력'을 발굴해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한류 브랜드가 있다. `디지털 한류(Korean Digital Waves)'가 바로 그것이다.

`디지털 한류'란 무엇인가. 한류 처럼 이미 세계적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의 디지털 제품ㆍ기술ㆍ서비스가 바로 `디지털 한류'다. 또한 이를 외국인이 보고, 느끼고, 좋아하고, 이용하고, 구입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한류'의 전략이다.

우리는 현재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문에서 우리를 먹여 살릴 신성장동력의 `푸른 바다'를 찾아야만 한다. 우리가 가장 잘 하고 있는 디지털 제품ㆍ기술ㆍ서비스에서 역동적인 국가 브랜드를 발굴해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봐도 그렇다. 일본은 최근 `Made in Japan'으로는 국제경쟁력에 한계가 있다고 자인하고, `네오 재패니스크(Neo Japanesqueㆍ신일본양식)'라는 새 전략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한국과 중국의 급속한 기술발전과 추격으로 인해 더 이상 `Made in Japan'이라는 브랜드로 계속 밀고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깔고 있다.

기존의 치밀하고 정교한 일본제품 이미지에 일본 전통공예의 장점을 가미한 `신일본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일본의 이같은 민ㆍ학ㆍ관 연대의 국가 브랜드 전략은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디지털 제품ㆍ기술ㆍ서비스, 즉 `디지털 한류'는 새로운 국가브랜드 전략이자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만 하다.

그렇다면 `디지털 한류'와 한류의 차이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첫째, 한류는 사람 중심이지만, `디지털 한류'는 제품ㆍ기술ㆍ서비스가 중심에 서있다.

한류는 몇몇 스타 중심의 현상이요, 스타의 인기에 의존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그렇기에 수익의 안정성이 지속적으로 담보되기 어렵다. 드라마가 바뀌면 스타의 인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즉 일시적 유행이라는 속성이 강해서는 지속적인 트렌드와 수익 모델을 만들기 가 쉽지 않다.

반면, 디지털 한류는 마케팅 측면에서 훨씬 안정적이다. 좋아하는 스타는 쉽게 바꿀 수 있고 쉽게 바뀌지만, 제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번 좋아하는 제품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과거 1980∼1990년대의 소니 워크맨을 떠올려보자. 제품과 기술, 서비스는 하나가 효과를 발휘하면 잇따라 붐이 일어나는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매출로 이어지는 것도 훨씬 용이하다.

둘째, 한류는 아시아 중심이지만, 디지털 한류는 지구촌 전체가 무대다. 한류 인기는 아시아적 정서와 가치관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한류는 지역적 감성과 가치관에 지배될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슬람 교도들도 음악은 들어야 하며, 텔레비전은 봐야 한다. 음식도 해먹어야 하고 에어컨도 필요하다. 제품ㆍ기술ㆍ서비스는 사용의 대상이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좋으면 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시장의 범위부터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셋째, 한류는 대중문화 중심이지만, 디지털 한류는 인프라와 가전제품 중심이다. 단적으로 말해 대중문화는 없어도 산다. 일본 도쿄의 노숙자가 `겨울연가'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보아의 노래를 모른다고 해서 못사는 일은 결코 없다. 갈수록 `소프트 파워'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대중문화 자체가 삶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그러나 인프라는 사정이 다르다. 없으면 못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는 세상을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인프라와 통신, 방송, 가전제품 중심의 디지털 한류는 훨씬 근원적이요 효용적이다.

넷째, 앞서 `겨울연가'의 예에서 언급했듯이 한류의 수익구조는 덜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디지털 한류의 수익구조는 비합리적 요소가 끼어 들 여지가 훨씬 적다. 삼성전자 플래시 메모리는 영업이익률이 무려 60%에 이른다. 1억 원 어치를 팔면 6000만원을 남길 정도로 놀랄만한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다섯째, 한류는 출발의 계기가 우연적이지만, 디지털 한류는 시작부터 전략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7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52회 세계반도체학회(ISSCC) 총회에서 동양인, 그리고 정책결정자로서는 최초로 개막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진 장관은 한국의 IT839 전략을 소개해 전 세계 4000여 명의 반도체 전문가와 CEO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IT839 전략은 서비스―인프라―제조업으로 연결되는 IT산업의 가치사슬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IT산업의 선순환 발전 전략이다.

지난해 말 노무현 대통령의 유럽 3개국 순방 때도 각국 경제장관들은 IT839정책에 대해 찬탄과 부러움을 쏟아낸 바 있다. 진 장관은 오는 9월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EU IT정책당국자 전략회의 `i2010 콘퍼런스'에도 기조 발제자로 초청돼 IT839전략 수립의 배경과 향후 정책 방향 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콘퍼런스는 EU가 향후 5개년 IT정책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세부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다. 진 장관 초청은 EU집행위측이 먼저 관심을 표명해 이뤄진 것으로, 비EU회원국 발제자로는 진 장관이 유일하다. IT839정책은 디지털 한류를 이끄는 나침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디지털 한류의 파워를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자. 이는 국가경쟁력 제고는 물론 한국민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떨치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

by 100명 2005. 8. 17.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