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공포…’ 두달새 1년치 판매량 넘어

기사입력 2008-06-13 20:56 |최종수정2008-06-14 00:36


[한겨레] ‘촛불’ 정국에 활활 타오른 책들…

광우병 관련 숨겨진 논란거리 담아

‘육식의 종말’ ‘도살장’ 등 관심 끌어

‘집회 생중계’ 진중권 저작도 인기


광우병에 얽힌 각종 논란을 추적하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고려원북스), 미국산 육류의 위험성을 들춰낸 <도살장>(시공사), 쇠고기뿐만 아니라 미국산 곡류와 육류, 콜라 등 가공식품의 생산과 유통 문제를 광범위하게 고발하는 <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랜덤하우스코리아), 광우병 쇠고기나 육류 처리·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육식 자체를 문제 삼는 <육식의 종말>(시공사)과 <죽음의 밥상>(산책자) 등.

‘쇠고기 정국’을 맞아 최근 두 달 동안 특별한 관심을 받은 책들이다. 시기를 잘 타고나 출간되자마자 주목받은 <도살장> <독소> <죽음의 밥상> 같은 책도 있지만 5~10년 전에 출간돼 먼지 속에 묻혀 있다가 새롭게 주목받은 책들도 있다.


지난해 출간된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는 최근 두 달 동안 지난 1년간 판매된 것보다 더 많은 양이 팔리면서 사회과학 서적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얼굴 없는…>은 미국의 생화학자인 콤 켈러허가 2003년 미국 내 광우병 발병을 계기로 광우병과 관련된 숨겨진 논란거리들을 추적하고 밝힌 책이다. 책에는 “유전적으로 전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8~13%는 인간광우병일 수 있다” “미국산 광우, 살코기도 안전하지 않다” 등 얼마 전까지 광우병 쇠고기 관련 논란의 중심이 됐던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2002년 출간된 <육식의 종말>은 미국의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1993년에 쓴 책이다. 서구 문명에 나타난 육식의 역사부터 현대적인 축산 단지와 전세계 쇠고기 문화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검토하며 “인류의 음식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이뤄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고 주장한다. 책을 낸 시공사 유영균 기획출판팀장은 “<육식의 종말>은 애초에 스테디셀러이기도 했지만 최근 한 달 동안 평상시보다 10배 이상 주문이 늘면서 신간 수준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꽤 두껍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마냥 쉬운 내용이 아닌데도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되고 전문가들도 이 책을 자주 인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광우병’이나 ‘쇠고기’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도 촛불 파도를 타고 갑자기 판매량이 요동치는 책들도 있다. 진보신당 인터넷방송 <칼라 티브이>에서 촛불시위를 생중계해 수많은 누리꾼들의 지지를 얻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책들이다. 무려 10년 전에 출간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와 2002년에 출간된 <폭력과 상스러움-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푸른숲), 지난해 출간된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등이 최근 갑자기 사회과학 서적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는 “사회과학 서적은 원래 이슈가 사라지면 판매가 급감하기 때문에 <네 무덤에…>는 사실상 죽은 책이었는데 5월 말부터 갑자기 주문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출판사 쪽은 ‘쇠고기 정국’을 맞아 토론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지난 5월27일 어느 누리꾼이 올린 글이 판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진중권의 시위중계를 보며…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디가 ‘Ingee’인 누리꾼이 올린 글에는 시위를 생중계하는 진 교수를 지지하는 내용과 함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보면서 진중권이 미치도록 좋아졌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글은 현재 조회수가 27만건을 훌쩍 넘었다. 글이 화제가 된 뒤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주문이 쏟아져 2주 남짓 사이에 1000부가 팔렸다고 한다. <폭력과 상스러움…>도 평소보다 판매가 세 배 이상 늘어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1000부가 팔렸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시위현장 이론적 설명서도 덩달아 인기


‘직접행동’ ‘비폭력’ ‘시민불복종’ 등

‘직접행동’ ‘비폭력’ ‘시민 불복종’.

‘촛불 정국’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열쇳말이 들어간 책들도 출간 시기와 상관없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 책들은 주로 시위 관련 논평이나 칼럼에 자주 인용되면서, 현장을 설명하는 이론적 해석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권위 있는 정치이론가인 에이프릴 카터가 쓴 <직접행동-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교양인)는 대의 민주주의 아래에서 지배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을 때 시민들이 각종 시위와 농성으로 정책 변화를 이끌어낸 양상을 짚어보며 “민주주의의 미래는 직접행동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평화학자 마이클 네이글러가 폭력보다 막강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위대함을 역설한 <폭력 없는 미래>(두레)도 시위 현장에서 “비폭력!”을 외치는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책이다.

“개인이 아니고서는 어떤 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며 개인의 힘, 소수자의 힘, 혁명의 힘을 믿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도 21세기 촛불시위판에 넘실대는 개성과 변화의 기운을 설명하는 좋은 이론적 도구가 되고 있다.
by 100명 2008. 6. 14.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