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한국 정부, '암묵적' 거래 있었나
국가신용등급·SKT 올려주면서 삼성전자는 그대로…왜?
입력 : 2005.07.30 10:13 50'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왜 서둘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렸을까.

S&P가 정부와의 연례협의를 불과 보름정도 남겨놓고 신용등급을 올린 것에 대한 궁금증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국가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 경제적 안정성이 이전보다 나아졌을 때 올라가는 것이지만 조정은 일반적으로 당사국과 연례협의후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SK텔레콤 등급을 올려주면서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의 등급은 그대로 둔 배경도 관심의 대상이다.

◇ 무디스와는 너무 달랐던 S&P, 무엇을 노렸나

S&P는 지난 27일 `돌연`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지난 2002년 7월 이후 3년만에 상향조정했다. 내달 10~13일 정부와 연례협의를 앞두고 있지만 방문도 하기 전에 등급부터 올렸다. 특히 등급전망이 `안정적`이었는데 이를 `긍정적`으로 수정하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등급 자체를 상승시켰다.

다른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나 무디스의 행보와는 사뭇 달랐다. 피치는 바로 전날인 26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고 무디스는 지난 15일 북핵문제가 진전돼야 국가등급을 올릴 수 있다며 조기 상향조정설을 간접 부인했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자체는 이미 예견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 S&P는 한국 이전에 중국의 등급을 A- 반열에 올려놨고 홍콩을 AA로 상향조정했다. 대만과 싱가포르도 이미 한국보다 등급이 높아 "다음은 한국차례"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국제투자은행 칼리옹(Calyon)은 "신용등급을 상향할 만큼 북핵 이슈가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다소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신용평가 전문가는 "거시적인 변수로 봤을 때 솔직히 지금은 상향조정을 하기 힘들다"며 "매년 성장률 떨어지고 무역흑자가 줄고 있고 국가재정이 안좋아지려고 하는데 만약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라면 누가 등급을 올려 주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더구나 등급전망이 `안정적`이었는데 이를 조정하는 절차도 없이 올린 것은 다소 공격적으로 준 것으로 정치적 판단이 들어갔을 수 있다"며 "경제 펀더멘털만 봤다면 당연히 등급전망부터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신용평가사 사정에 정통한 장영규 우리투신 채권운용본부장은 "국가신용등급을 조정할 상황이 아니다"며 펀더멘털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전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극히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신용평가사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펀더멘털 추세가 바뀌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위안화 절상 이후 아시아권의 재편과정에서 한국에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면접도 보기전 합격 통보?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일 바로 다음날, 정부와의 연례협의가 있기 2주전에 등급 상향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다른 국제신용평가기관 관계자는 "연례협의를 앞두고 등급을 올리는 것은 반칙"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P의 홍보대행사인 에델만코리아측은 "종전에는 연례협의를 앞두고 등급조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면서도 "등급조정이 항상 연례협의를 거친 것은 아니며 평상시 계속해서 한국 정부와 연락을 하고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어 언제든 조정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또 "이번엔 이례적으로 실사 직전에 됐을 뿐"이라며 "6자회담 재개가 등급조정의 실질적인 이벤트가 됐지만 금융시스템 개선 등 펀더멘털 변화가 반영된 조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원론적인 답변일 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사이전에 등급을 상향조정 한 것은 시험 면접도 보기 전에 합격통보부터 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도 "실사를 한 후 인터뷰를 하고 등급 조정을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며 "전에는 정부를 닥달하고 한국은행까지 방문해 요모 조모 뒤지던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올렸다"고 말했다.

6자회담과 관련해 S&P가 뭔가 고급정보를 미리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 앞서 익명의 전문가는 "워낙 강한 정보망을 갖고 있고 사실 6자회담 성패가 미국에 달려 있으니 미리 언질을 줬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의 신용등급이 올라갈 때는 늘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와의 암묵적 거래설에 무게를 두는 해석도 있다. 최근 국내 신용평가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정부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염불보다 잿밥 노림수 아닌가

현재 무디스는 한국신용평가의 지분 50%+1주를 보유한 대주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디스코리아`로의 사명변경이 가능한 상태다. 반면 S&P와 피치는 최소자본금 50억원과 신용평가 전문요원 30명 이상이란 설립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며 완화를 강력이 요청해 왔다.

이와 관련 채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덕수 장관이 지난 5월 미국에 국가설명회(IR)에 갔을 때 평가사들로부터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이후 국내 신용평가 시장 개방 추진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6일 재정경제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세부 전략`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의 국내진출을 위해 50억원-30명 이상의 설립요건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말에는 스테판 조인트 피치 CEO가 방한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한국 현지법인 설립 의사를 전달하면서 외국계에 한해 설립요건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재정경제부는 최근 시행령을 개정해 전문요원 30명을 20명으로 낮추고 S&P 등 세계 5대 평가사에게는 10명만으로 설립이 가능하도록 방침을 세운 것으로 밝혀져 신용평가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by 100명 2005. 7. 31. 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