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감동’ 상영하는 ‘작은 극장’들

기사입력 2008-06-13 21:36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예술영화 <아임 낫 데어>가 5월29일부터 상영되고 있다. 성수기를 맞고 있는 여름 극장가는 쏟아져나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이에 맞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경쟁으로 오랜만에 성황을 이루고 있다.<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쿵푸 팬더> <섹스 앤 더 시티> <걸스카우트> <인크레더블 헐크> <강철중 : 공공의적 1-1> 등이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 대기 중이다.주류 영화들이 멀티플렉스를 무대로 억 소리 나는 대규모 흥행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조용하고 잔잔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이 있다.예술영화전용관으로 불리는 ‘작은 극장’들이다.

‘스폰지하우스(중앙·광화문·압구정)’ ‘씨네큐브’ ‘하이퍼텍 나다’ ‘미로 스페이스’ ‘시네마 상상마당’ ‘허리우드 클래식’ 등이 서울에 있고, 지방에서도 인천의 ‘영화공간 주안’, 대전의 ‘대전아트시네마’, 부산의 ‘국도예술관’, 대구의 ‘동성아트홀’ 등이 예술영화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 단관 극장으로 멀티플렉스처럼 다수의 상영관을 확보하지도 않았고 스크린의 크기나 좌석 수에서도 소규모다.그러다 보니 관객을 압도하는 스펙터클한 영상이나 입체적인 사운드를 제공하지 못한다.자연히 ‘작은 극장’에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아니, 애초부터 상영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완성도 있는 대중 영화도 상영해 호평

‘작은 극장’들은 저예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을 주로 상영한다.하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이라고 해서 어렵고 딱딱한 예술영화만을 상영하는 것은 아니다.대중 영화라도 작지만 완성도 있는 소품들은 ‘작은 극장’에서 환영을 받는다.재개관작으로 <벤허>를 선정한 ‘허리우드 클래식’은 아예 고전 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탈바꿈했다.작은 극장들이 제공하는 다양성 영화들은 팝콘 무비에 지친 영화 관객들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준다.단기 흥행을 노리는 와이드 개봉이 확산되면서 멀티플렉스에서는 잠깐의 시기를 놓치면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없지만 ‘작은 극장’은 장기 상영을 위주로 하고 있어 관심만 조금 기울이면 보고 싶은 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원스>(위)와 <메종 드 히미코>(아래)는 지난해 작은 영화 열풍을 일으켰다. 2007년은 <원스> <메종 드 히미코> 등의 작품들이 메가 히트를 거두면서 작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반 관객에게까지 넓힌 한 해였다.일반적으로 작은 영화의 흥행 기준을 1만 관객으로 잡는 것을 감안하면 20만 관객을 동원한 <원스>는 주류 영화로 따질 때 1천만 관객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었다.올해는 아직까지 <원스>와 같은 흥행작이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역대 최악이라는 침체된 영화계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 <식코> <잠수종과 나비> <비투스> <아임 낫 데어> 등이 좋은 성적을 내며 지난해의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중에서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위험성을 고발하고 있는 <식코>는 민영 의료보험 도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식코> 보기’ 캠페인의 영향으로 6만 관객을 넘어섰고, 밥 딜런이 등장하지 않는 밥 딜런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는 평단의 극찬에 힘입어 현재 폭발적인 흥행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스폰지하우스’의 윤범석 과장은 “올해의 성적이 지난해보다는 못하다.하지만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여러 작품이 고르게 흥행을 거두면서 내실은 더욱 탄탄해졌다.현재의 과도기를 지나면 더욱 안정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작은 극장’의 대표 격인 ‘스폰지하우스(영화사 스폰지)’ ‘씨네큐브(영화사 백두대간)’ ‘하이퍼텍 나다(영화사 진진)’는 모두 수입배급사가 직접 운영을 맡고 있다.이들은 자신의 극장에 알맞은 작품들을 직접 선별해서 국내로 들여온다.<원스>도 하이퍼텍 나다를 운영하는 영화사 진진이 직접 수입했다.스폰지하우스의 윤과장은 “작은 영화는 1~2개관에서 개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배급에 어려움이 있다.작은 영화들이 적절한 시기에 개봉할 수 있으려면 배급력 확보가 중요하다”라고 수입 배급사와 극장이 연계된 이유를 밝혔다.

영화제와 기획전, 특별전은 ‘작은 극장’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수단이다.영화사 진진의 김수경씨는 “상영관이 적기 때문에 여러 영화를 상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영화제와 기획전은 극장 회원들과 일반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라고 말했다.

극장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한 영화제는 자기 극장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성격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멀티플렉스가 런칭한 예술영화관을 제외한 작은 극장들은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스폰지하우스는 감독 라이브러리와 일본 영화에 강점을 보이고, 씨네큐브는 차분하고 예술적인 유럽 작품들을 주로 소개하며, 하이퍼텍 나다는 다큐멘터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전국 23개 극장 네트워크 형성…공적 지원도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는 6월5일부터 11일까지 제9회 서울국제영화제가 벌어지고 있다.‘상상을 나누고 변화를 즐기는 영화愛의 초대’를 모토로 시네마 부문과 넷 부문에서 총 34개국 1백35편을 상영한다.개막작인 <최고의 날들>의 러시아 감독 스베틀라나 프로슈리나 특별전과 ‘칠레 영화 특별전’ ‘프랑스 영화 특별전’이 주목할 만하다.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매주 수요일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다큐플러스 인 나다’를 진행하고 있다.6월11일에는 공미연 감독의 <전장에서 나는>, 18일에는 김재영 감독의 <천막>, 25일에는 임은희 감독의 <섬이 되다>를 상영한다.

시네마 상상마당에서는 6월12일부터 25일까지 ‘존 카메론 미첼 특별전’이 열린다.존 카메론 미첼은 뮤지컬과 영화로 잘 알려진 <헤드윅>의 주연이자 감독으로 특별전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 뮤직 비디오 등을 포함한 11편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작은 극장’들의 영화제와 특별전을 찾다 보면 감독과의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서울국제영화제에서는 스베틀라나 프로슈리나 감독이 내한해서 관객을 직접 만나고, ‘다큐플러스 인 나다’의 모든 상영 뒤에는 감독과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다.6월16일에는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존 카메론 미첼이 직접 시네마 상상마당의 라이브홀 무대에 선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2003년 영화관객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다양성 영화들을 상영하는 전용 극장들을 지원하는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이하 아트플러스)’를 만들었다.아트플러스는 연중 60% 이상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고 그중의 70일 이상은 한국의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좌석 수 8%(서울), 6%(지방)에 해당하는 관객 입장 수익을 지원하고 있다.민간이 운영하기에는 수익성 부담이 너무 큰 예술영화관의 어려움을 공적 차원에서 감당해주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현재 아트플러스에는 전국 23개 극장, 29개 상영관이 ‘작은 극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극장에 대한 재정적 지원 외에도 홈페이지(http://www.artpluscn.or.kr)를 통해 극장 소식, 상영 영화 정보 등을 제공한다.
by 100명 2008. 6. 14. 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