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택 / 전자신문 정보가전부장


디지털시대가 전개됨에 따라 사업모델간에도 융ㆍ복합화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에따라 비즈니스 컨버전스의 개념은 향휴 기술 및 제품이 궁극적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기술적으로는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실현된 상태이다. 이에따라 기업들 사이에서는 비즈니스 컨버전스에 대한 장미빛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비즈니스 컨버전스란 무엇이며, 현재 어떻게 전개되고 있고, 어떤 변화가 일고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례 3가지

<사례1> 국내 유일의 복합전자상가인 테크노마트가 가전과 컴퓨터층의 업종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인터넷과 컴퓨터 기능을 동시에 갖춘 디지털 가전이나, 컴퓨터에 가까운 PDA 등 정보단말기의 경우 컴퓨터는 물론, 가전매장에서도 서로 판매하려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급기야 테크노마트 관리단과 상우회, 프라임개발 대표자로 위원회를 구성해, 각층의 판매제품을 엄격히 구분하고 이를 지키지않은 매장에게는 '영업정지'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리고 있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고있다.
<사례2> 사이버아파트 전문업체 테크노빌리지와 스마트카드시스템 전문업체 한국심트라는 금융결제원과 협약을 맺고, 서울 화곡동 대우그랜드월드 아파트에 입주자용 스마트카드를 시범 도입했다. 이번에 도입되는 K캐시 기반의 입주자카드는 기본적인 출입통제 기능에 인근 상가와 관리비·통신비·공과금의 통합 지불수단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우리신용카드와 우리은행이 각각 발급기관으로 참여했고, 우리카드는 스마트카드 사업에 처음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사례3> 휴대폰이 온라인게임의 주요 결제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엔씨소프트·그라비티·나코인터렉티브 등 주요 온라인게임 서비스업체가 최근 한달간 이용요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 이용자중 휴대폰으로 요금을 결제하는 비율이 40~60%에 달해 신용카드와 무통장입금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통신 3사들이 앞다퉈 휴대폰 결제서비스를 내놓고 이를 홍보하는데,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휴대폰 결제를 늘리는 큰 요인이다.

비즈니스 컨버전스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게임

'접속'의 패러다임 컨버전스가 21세기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사랑의 확인과 완성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결론이 도출되듯, 디지털 기술과 제품이 '접속'하면 새로운 시장과 사업기회가 창출된다.
지금까지는 영역이나 업종 파괴의 시대였다. 온라인기업이 전통기업의 땅을 잠식하고 전자회사가 보험업에 진출해 밥그릇을 내놓으라고 으르렁 거렸다. 이같은 퇴행적·배타적 비즈니스 경계 허물기는 갈등을 야기시킨다. 기득권을 놓지않으려는 집단과 이에 도전하는 세력간의 무한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즈니스 컨버전스, 디지털 컨버전스는 다르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게임이다. 컨버전스는 말그대로 복합화이다. 혹 경영기술 단어인 컨버전스가 어렵다면, 퓨전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섞는다'는 것이다. 각종 야채와 쌀밥이 어우러져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비빔밥이 탄생하듯, 기술과 제품을 한데 섞으면 시장을 창조한다.
컨버전스는 파괴의 패러다임이 아닌 상생의 패러다임이다. SK텔레콤이 카드회사나 증권사와 연계한 모바일서비스를 제공하고 휴대폰결제시스템을 강화한다고 증권사나 카드사, 은행이 망하지는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기존의 영역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고 시장이 생겨난다. 양쪽의 사업은 더 잘된다.
건설업체와 통신·콘텐츠·유통업체가 모이면, 사이버아파트라는 절묘한 비즈니스를 만든다. 자동차 회사와 전자·통신기업이 힘을 합치면, 자동차는 달리는 정보단말기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가전이 아닌 네트워크업체'라고 강조하는 소니의 목소리는,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네트워크로 묶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물론 비즈니스 컨버전스가 이전에 없는 신사업이니만큼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대한 경쟁과 견제는 엄존한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도전은 비즈니스의 불안감을 동반한다. 전세계의 내로라 하는 우량기업들은 약속이나 한듯, 비즈니스 컨버전스나 디지털 컨버전스를 외친다. 신경제 이후 세계경제 질서를 관통할 핵심으로 간주하고 기업역량을 집중한다.

새로운 가치창조는 기업과 경영자의 몫

그렇다면 왜 컨버전스인가 한번 따져보자. 거창한 경영학 이론을 들먹일 것 없이 기업은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방법은 둘중의 하나이다. 혁신적인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를 유혹하거나 스스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100년이 넘도록 지속된 산업사회가 디지털 정보사회로 전환된 동력은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디지털과 네트워크이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신경제, 즉 IT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경제는 그 기술적 진보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했다가 빠르게 정체되고 있다. 요즈음에는 하늘아래 처음은 거의 없다. 마치 인간이 발명하고 만들어낼 모든 제품이 이미 선보인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기술과 제품, 시장이 포화상태이고 뚜렷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와 인터넷 같은 혁명적 제품이 단기간에 등장할 것 같지도 않다. 기업으로서는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눈을 돌릴 일이다. 기존에 진행된 기술혁명의 결과물을 적절히 섞어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그 가능성은 누구도 점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네트워크로 엮인 사회에서 '접속'하는 순간, 그 규모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기반은 그래서 비즈니스 컨버전스의 밑바탕이 된다. 유달리 전자 정보통신을 매개로 한 컨버전스가 득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로 가는 문은 여전히 디지털과 인터넷이다.
문제는 섞어도 제대로 섞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과 어떤 제품을 혼합해야 비즈니스가 가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그것은 기업과 경영자의 몫이다. 이 선택에 실패하는 기업은 세계규모의 고강도 경쟁체제속에서 퇴출이라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반대로 컨버전스를 통한 비즈니스의 질적 전환에 성공하는 기업은 '영화'가 보장된다.
컨버전스는 일단 제품 차원에서 가장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MP3플레이어와 디지털카메라를 혼합한 상품을 개발했고, LG전자는 인터넷냉장고를 선보여 이를 가정내 홈서버로 이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히다치는 인터넷이나 CATV프로그램을 녹화할 때는 하드디스크에, 이를 영구 저장할 때에는 DVD를 활용하는 HDD+DVD제품을 등장시켰다. 소니는 메모리스틱이라는 독자 메모리를 매개로 PC·DVD·카메라 심지어 음향기기까지 네트워크로 묶어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으로 유명하다.
컨버전스 제품이 기존시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비즈니스 컨버전스는 아예 신규시장을 만들어낸다. 도요타자동차는 미쓰비시상사, 일본IBM 등과 손잡고 전자결제, 정보송신사업을 추진한다. 소위 텔레매틱스 비즈니스로 불리는데 자동차회사와 IT업체, GPS(위치측정시스템)라는 위성이 가세한다. SK텔레콤, KT 등 한국 통신사업자들은 카드·증권·건설·금융·콘텐츠업체와 제휴해 모든 전자상거래를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는 체제를 만들고 있다. 주식거래에서 쇼핑, 사이버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거래를 해결해준다.
샤프는 디스플레이 최고기업으로서의 강점을 이용한다. 자사 PDA 구입고객에게 스포츠잡지 기사를 송신하는 서비스를 시작으로, 문자와 화상을 결합한 소설이나 어학교재 내용까지 송신한다. 이른바 e-북(전자책) 시장을 만들고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고객 데이터가 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의 관건

보다 근본적인 산업질서 변혁을 초래하는 예도 있다. 가전업계와 IT업계가 맹렬히 추진하는 정보단말의 패권싸움이 그것이다. 가전업계는 TV로 상징되는 사용 친화력을 앞세우고 여기에 인터넷을 덧붙여, 21세기에도 '안방 맹주' 자리를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컴퓨터나 휴대폰제조 업계는 정보처리와 휴대성이라는 고기능을 장점으로 활용, 모든 가전제품을 엮어내 '안방 마님' 자리를 노리고 있다. 물론 어떤 경우이건 인터넷과 네트워크가 기반이 된다.
결국 비즈니스 컨버전스는 각 분야에서 일정한 세력과 기득권을 확보한 기업이,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신규 영역에 도전하는 일종의 개척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라는 대표선수를 대입해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라는 운용체계를 축으로 모든 기술과 제품을 컨버전스한다. 컴퓨터·가전·휴대폰 심지어 게임기까지 묶어낸다.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상식을 비웃는다. 소프트웨어,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운용체계(OS)를 지배하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컨버전스 제품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용체계가 담겨있다.
소니는 가전제품과 정보기기를 과감히 결합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하고 이 경우 엄청난 시너지 효과와 신규 비즈니스가 창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소니는 TV·PC·휴대폰·게임기를 관문으로, 이를 하나로 연결하는 홈네트워킹에 승부를 건다. 하드웨어의 개념을 바꾸면 활용도는 p제곱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소니의 도전은 이미 PS2라는 게임기에서 증명된다.
PS2를 전통적 게임기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어지간한 PC보다 정보처리 성능이 훨씬 뛰어나고 인터넷에 물리면 못하는 것이 없다. 게다가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사용하고 미래 소비의 주역인 10대에게는 가장 친숙한 미디어가 게임이다. MS가 똑같은 성격의 X-박스로 맞대응하는 것만 봐도 소니의 컨버전스 전략은 '최고수'의 반열이다.
사정이 이쯤되면, 기반 인프라(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통신사업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기초가 단단한 판에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더구나 통신사업자들은 완벽하게 분석된 수백만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고객 데이터를 갖고있다. 이를 발판으로 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한결 높다.

재창조의 예술 컨버전스는 기회인 동시에 위협요소

위에서 열거한 비즈니스 차원의 컨버전스를 가장 활발하게 진척시키고 있는 것도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업자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비즈니스 컨버전스는 가입자 기반이다. 전자결제가 그렇고 사이버아파트가 그렇고 물류나 텔레매틱스, 위치확인서비스도 모두 어딘가에 가입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시장의 향배는 가늠하기 어려워도, 비즈니스 컨버전스의 앞날은 통신사업자의 전략을 눈여겨 보면, 어느정도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컨버전스는 기업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위협요소가 된다. 신규 수요를 촉발하고 여타업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신사업에 참여하며, 이 과정에서 자체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기회이다.
하지만 실패는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공동의 이해를 위해 이 업종간, 심지어는 경쟁사간 제휴가 요구되는 비즈니스 컨버전스의 속성상 갈등 가능성은 상존한다. 휴대폰 결제시스템을 둘러싸고 통신사업자와 금융권이 벌이는 주도권 다툼이 대표적이다.
기업내부의 교통정리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테크노마트의 상점들이 다투듯 복합·융합화 제품과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내부조직간 경쟁과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한다. 우선은 '우리부서'의 영역과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신업체의 경우, 고객정보라는 독점적 지배력을 여타부문으로 전이·확산시키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비록 전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수익을 얻는다 해도, 그 과실에서 소외되는 집단에게는 통신업체의 가입자 기반 비즈니스가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버전스는 거스를 수 없는 산업 트렌드가 됐다. 먼저 눈을 뜨고 준비하는 기업만이 미래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쥘 수 있다. 우리경제의 도약에도 절대적 기초가 된다. 컨버전스의 시대를 뒷받침하려면, 정부의 역할도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디지털 기반에 관한한 세계최고 수준의 지원과 제도를 갖고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비즈니스가 속속 출현한다. 그렇다면 이를 규제적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지원육성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창조'만이 선(善)은 아니다. 기존의 제품과 기술을 컨버전스를 통해 재창조하는 것이 더욱 값질 수도 있다. 발상을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by 100명 2005. 7. 26. 2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