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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디지털 시대에서 기업이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발 출시 (First-to-Market)에 집중하고 그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이 우수한 경영성과를 달성하는 방법은 장기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제품을 많이 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장기간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누릴 수 있는 제품을 다수 확보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최근 IT 분야에서는 디지털화가 급진전되는 가운데 기업 간 기술 격차 축소, 고객 니즈의 개인화/다양화 심화, 제품 수명주기의 단축 등으로 인해 시장변화에 대한 발 빠른 대응 능력이 과거에 비해 한층 중요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선발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Mass Market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사업 성공의 최대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선발 출시의 필요성 증대
선·후발 제품 중 어느 것이 유리하냐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선발자 이점(First Mover’s Advantage)을 주장하는 진영은 유리한 포지셔닝 선점, 선도기업으로서의 이미지와 평판, 기술/원가 측면의 진입장벽 형성, 유통망 선점 등을 선발자가 유리한 요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시장 개척 및 소비자 학습 비용 절감, 선발자 경험으로부터의 학습, 잠재력 없는 제품 회피의 기회 등을 이유로 후발 기업들이 유리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현재로서는 선·후발 제품의 이점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힘들고 제품/사업 부문의 특징, 해당 선·후발 사업자의 역량, 시장 전략 등에 따라 선·후발 진입의 효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발 진입의 성공 가능성이 높든 아니든 간에 디지털 시대에서 선발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빠른 기술/제품 혁신으로 제품 라이프싸이클이 축소되면서 하나의 제품을 통해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제품의 성능은 끊임없이 개선되는 반면 가격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신제품이 가격 프리미엄을 누리는 기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의 Fast Follower(빠른 추종자)는 더 이상 생존하기 힘들게 되었으며, 차별적 제품을 경쟁사보다 앞서 지속적으로 선 개발/출시할 수 있는 소수의 기업만이 이익을 누리는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둘째, 디지털 제품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타 제품과 연관성을 가지는 네트워크 제품이 많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제품의 경우 제품 간 호환성 문제로 소비자들이 제품을 바꿀 경우 교체 비용(Switching Cost)이 들게 된다. 이에 네트워크 제품 분야의 선발 제품은 소비자들에 대한 Lock-in(속박)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OS를 바꿀 경우 OS뿐만 아니라 이와 호환되는 여러 가지 응용 S/W도 교체해야 하는 불편이 있어 사용자들은 제품 변경을 꺼린다. 셋째, 하이테크 중심인 디지털 제품의 경우 First-to-Market(선발 출시)을 통해 기술 선도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킬 수 있다. 기업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일반 소비자들이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해당 기술/제품을 개발/상용화한 시점이다. 따라서 제품을 남보다 먼저 개발/출시한 기업의 기술력에 대해 소비자들은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인상은 뇌리에 강렬히 남게 된다.
이상을 통해 볼 때 디지털 시대에서 기업이 차별화된 경쟁우위와 우수한 경영성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First-to-Market에 집중하고 그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판단된다.
디지털 시대 선발 제품의 성공 포인트
선발 제품이 이점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선발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후발 제품에 대해 실질적인 성과 면에서 우위를 누리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선발 제품의 성공 및 실패 사례에서 나타나는 선발 제품의 5가지 성공 요인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해보기로 한다.
1. 명확한 Target 시장을 설정하라
선발 제품이 유리한 요인 중 하나로 시장 포지셔닝이 자유롭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무주공산에 진입하는 선발자는 가장 매력적인 Target 시장에 자사 제품을 포지셔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점이 치명적 약점이 될 수도 있다. Target 시장이 불분명하거나 잘못 설정되었을 경우에는 선발자의 실패에 대한 학습을 통해 Target 시장을 수정/공략하는 후발 제품에 시장을 고스란히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PDA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초의 PDA 제품은 93년 8월 애플이 개발한 ‘Newton MessagePad110’이었다. 다년간의 연구개발과 대대적인 홍보 속에 출시된 뉴턴은 예상과는 달리 초기 시장 형성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애플은 다수의 뉴턴 모델을 잇따라 개발/출시했고 IBM, 소니, 모토롤라, HP, 샤프, 카시오 등 많은 IT 기업들이 다양한 PDA 제품들을 출시했으나 모두 Mass Market 창출에는 실패했다. 이러한 PDA 시장에서 대중화에 성공한 제품은 팜 파일럿이다. 1996년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팜 파일럿은 이듬해 판매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선 이후, 2000년에는 560만대 정도가 판매되어 PDA 시장의 50% 정도를 점유하기도 했다. 선발 제품인 애플의 뉴턴이 다양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부에서는 비싼 가격, PC와의 호환성 부족, 미약한 통신 및 필체인식 기능 등을 그 요인으로 꼽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Target 시장이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PDA는 PC의 대체재라기보다는 보완재로서의 성격이 강한 제품이다. PDA를 PC의 보완재로 사용하려는 고객들은 간단한 컴퓨팅 기능과 셔츠 주머니나 양복 안주머니에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기를 원했다. 애플의 뉴턴이나 다른 PDA들은 기능이 복잡했고 무게가 400∼600g 정도로 다소 무거웠으며, 주머니에 넣기에는 큰 사이즈를 지니고 있었다. 팜 파일럿은 포켓사이즈 PC라는 명칭에 걸맞게 150∼200g 정도로 크기/무게가 크게 줄었고, 사용 방법도 훨씬 간편해졌다.
2. 주변 기업들을 우군으로 확보하라
디지털 제품 분야의 경우 해당 제품의 제조회사뿐만 아니라 H/W 부품, S/W, 미디어·컨텐츠 등의 다양한 기업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혼자 힘으로는 시장을 개척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산업내 기업뿐만 아니라 전후방 관련 회사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VCR의 표준 경쟁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선발 제품인 소니의 베타방식이 후발 제품인 JVC의 VHS와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은 바로 폐쇄적인 기술 전략에서 비롯된 바 크다. 즉 소니가 베타 방식의 라이센스를 독점하고 있었던 반면, JVC는 라이센스를 개방하여 VCR 제조회사뿐만 아니라 S/W 기업, 유통 회사 등을 우군으로 확보하였다. 이러한 관련 기업들과의 제휴가 베타방식을 표준으로 자리잡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소니-필립스 연합의 MMCD(Multi-Media Compact Disc)와 도시바 주도의 SD(Super Density) 방식이 대결한 DVD 표준 경쟁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결국 두 진영의 방식을 통합한 규격이 표준으로 채택되었으나 후발로 참여한 SD 방식이 중심이 되었고 선발인 MMCD 방식은 부분적으로 채용되는 데 그쳤다. SD 방식이 힘을 얻게 된 결정적 이유는 2시간 내외의 영화 한 편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을 확보함으로써 주요 컨텐츠 배급자인 헐리우드의 지원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시장 개척이나 학습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의 경우 홀로 시장을 개척하고 시장을 독점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적당한 수준에서 경쟁자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시장 파이를 키우고 시장 개척이나 학습 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차세대 DVD 제품을 선발 출시한 소니의 경우 차세대 DVD 규격인 블루레이를 개발/상용화하는 데 있어, BDF(Blu-ray Disk Forum)를 구성하여 필립스, 마쓰시타, LG, 삼성 등을 같은 진영으로 끌어들였다. HD DVD 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도시바 진영(도시바, NEC)에 효과적으로 맞서고 리스크를 분담하기 위해 독자적인 사업 추진보다는 공존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3. 컨버전스를 활용한 아이디어 상품에 주목하라
디지털 컨버전스가 IT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컨버전스 영역에서 다양한 사업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의 융합인 카메라폰, VCR과 DVD 플레이어의 융합인 DVD 콤보, 노트북에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장착한 VAIO 등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컨버전스 제품들이다.
컨버전스 제품들은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도 있으나, 기존에 상용화된 기술/제품을 융합하여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공략한 아이디어 제품이 더 많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대규모의 자원 투입 없이, 고객 니즈의 파악 및 기존 디지털 기술들의 합리적 조합 등 상품화 역량을 발휘하여 쉽게 선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컨버전스의 기회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4. 다세대 상품기획을 활용하라
도입기 시장에서는, 특히 디지털 관련 제품의 경우 Technology Push 제품이 많다. 즉 소비자들의 니즈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기술 개발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기 때문에 소비자 니즈 수준을 뛰어넘거나 못 미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발 제품이 곧바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시장이나 기술 변화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면 고객의 니즈를 제품 세대별로 구분하여 단계적으로 제품을 업그레이드시켜 개발/출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세대 제품은 첨단 기술 이미지를 부각과 시장성 타진을 목적으로, 2세대 제품은 고객 니즈를 감지하는 용으로, 3세대 제품은 1,2세대에서 파악된 고객 니즈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시장 공략용으로 설정하여 제품을 단계적으로 수정하여 개발/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노키아의 경우 1995년 스마트폰 Nokia9000시리즈를 최초 개발/출시한 이후 매년 성능과 Form Factor를 조금씩 업그레이드한 신제품을 개발/출시하고 있다. 아직 그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기 힘드나, 노키아가 이를 통해 기술 선도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고객 니즈 변화를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5. 선발 제품의 유형별로 접근 방식을 차별화하라
선발 제품이라도 제품 유형별로 그 시장 특성이 상이하기 때문에 자사가 선발 진입하는 제품 분야가 어떠한 유형인지에 따라 리스크가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선발 제품의 유형별로 접근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선발 제품은 크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혁신적 제품으로 기존 시장에 유사한 기능/효용을 제공하는 제품이 없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제품이다. TV, PC, PDA, 휴대폰, VCR, 워크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시장 개척 비용이 많이 들지만 성공적인 시장 창출시 누릴 수 있는 이익도 큰 제품 유형이다. 둘째, 대체형 제품으로 기술 발전이나 편의성 향상 등을 통해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제품이다. 컬러 TV, 디지털 TV, CD플레이어, LCD 모니터, MP3 플레이어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셋째, 업그레이드형 제품으로 기존 제품의 성능/기능, 디자인 등을 개선한 것이다. 기존 제품을 대체할 수도 있으나 기존 시장을 세분화하여 확대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카메라폰의 화소수 증대를 통한 제품 업그레이드, PC의 CPU 속도 향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혁신적 제품 분야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선발 진입에 따른 리스크가 큰 편이다. 따라서 고객 니즈의 존재 여부와 더불어 관련 인프라나 주변 여건의 성숙도 등을 면밀히 파악한 후 진입을 결정해야 한다. 특히 혁신적 제품 분야의 경우 명확한 Target 시장 설정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건이라 할 수 있다. 대체형 제품 분야의 경우 기존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면 전면전을 회피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경쟁자가 기존 제품 시장을 사수하거나 대체형 제품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항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틈새 시장 공략으로 우회하거나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업그레이드 제품 분야는 우선적으로 First-to-Market을 추진해야 할 유형이다. 단 고객 니즈를 뛰어넘는 과도한 수준의 기능/성능 향상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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