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교과서에 인용될 만큼 잘나가는 거대 기업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다. 사실 어떤 기업이라도 성공 보다는 실패를 더 자주 경험한다. 아마도 훌륭한 기업은 실패를 덜 하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잘 활용하는 기업일 것이다.

지금까지 경영학은 대부분 성공사례를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성공보다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곤 한다. 최근 ‘비즈니스2.0’이란 미국 경제잡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아둔한 101가지 장면’(101 dumbest moments in business) 이란 특집 기사를 실었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들의 실패 사례와 함께 어떤 교훈을 주는지 살펴보자.


-품질 하자는 백약이 무효


‘크립토나이트’는 미국에서 유명한 열쇠 제작업체인데 이 회사 광고 카피는 ‘험한 세상의 강력한 안전장치’ 정도로 번역되는 ‘tough world, tough locks’다. 그런데 진짜로 ‘험한’ 일이 이 회사에 생겼다. 이 회사가 만든 U자형 자물쇠가 볼펜으로 쉽게 열리는 등 제품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네티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블로거들이 직접 볼펜으로 열쇠를 따봤고 이를 비디오로 녹화해 인터넷에 올리자 삽시간에 미국 전역이 들끓었다.

한참 소란이 생겼지만 회사측은 부인으로 일관했다. 며칠 뒤 회사 대변인이 자사 자물쇠가 “그래도 절도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면서도 ‘볼펜으로 안 열리는 자물쇠’(?)를 최대한 빨리 출시하겠다고 말했다.

회사의 이런 대응에 만족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블로거들은 계속 ‘회사를 욕했고(railed at the company)’ 마침내 회사는 옛날 열쇠를 모두 새 것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이 비용만 적어도 1천만달러라고 한다. 게다가 딜러들이 이 회사 열쇠를 납품받길 꺼려해 6백만달러의 피해를 봤다고 한다. 더 큰 손실은 돈으로 계산하기조차 힘든 이미지 실추다.

인터넷 시대에는 품질에 사소한 하자가 있거나, 하자 보수와 관련한 서비스 하나만 소홀히 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정보가 퍼져나가기 때문에 옛날처럼 적당히 묻어두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품질 관리, 비즈니스의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인사검증…멀고도 험한 길?


한국에서도 유효일 국방차관의 5?18당시 전력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매번 개각을 할 때마다 부실 검증이 문제되는 걸 보면 인력과 재원을 투입하더라도 완벽한 인사 검증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기업의 경우 정부보다는 비교적 인재 등용의 폭이 자유롭다. 하지만 기업들도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권총으로 유명한 ‘스미스&웨슨’사는 미국 2위의 총기류 제조업체로 미국내에선 꽤 잘 알려진 기업이다. 이 회사의 제임스 조셉 마인더 전 회장은 무려 15년이나 복역했던 사실이 신문 보도로 드러났다. 물론 그는 곧바로 회장직을 사임했다. 죄명도 무시무시하다. ‘일련의 무장 강도 및 탈옥미수(a string of armed robberies and an attempted prison escape)’였다. 하필 총기류 회사인지라, “자사 제품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회장에 앉힌 것 아니냐”는 조롱까지 받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수지김을 살해하고 수지김이 간첩이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했던 국졸 학력의 윤태식씨가 촉망받는 벤처기업가로 변신, 테헤란밸리를 누비고 다녔지만 그의 전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통령까지 유망 벤처기업이라며 이 회사에 방문했을 정도였으니,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보다.


-주먹구구식 대응은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해본 사람들은 리얼플레이어란 소프트웨어를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소프트웨어를 만든 회사가 리얼네트웍스다. 한 때 촉망받는 기업이었는데, 최근 실적이 영 신통치 않다. 특히 온라인 음악 시장에선 애플이 ‘아이팟’ 이란 mp3플레이어와, ‘아이튠스’란 음악판매 사이트를 기반으로 시장의 70%이상을 장악하면서 리얼네트웍스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지난해 리얼네트웍스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친 진지한 시도를 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경쟁자를 깨지 못하겠거든 함께하라?

리얼네트웍스의 랍 글레이저 사장은 자신의 온라인 음악판매 사이트가 애플의 아이팟과 호환이 되지 않아 고전하자, 스티브 잡스 애플 CEO에게 e메일을 보냈다. 아이튠스 이외의 다른 음악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음악파일을 아이팟에서도 재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e메일 내용은 곧바로 뉴욕타임스에 보도됐고 깜짝 놀란 글레이저는 “스트브 잡스가 (호환해주면 시장을 빼앗길까봐)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다”고 대응했다. 굳이 애플 입장에선 도와줄 이유가 없는데다 감정까지 자극했으니 결과는 보나마나다. 호환 요구는 거절당했다.


2.경쟁자를 깨지도 못하고, 함께하지도 못한다면 고객이 경쟁사에게 불만을 터뜨리도록 유도하라?

애플사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데 잔뜩 ‘약이 오른(peeved) ’ 글레이저는 애플사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인터넷 페이지를 만들었다. 네티즌들의 힘을 빌어 애플사가 다른 회사의 음악파일도 재생하도록 간접적 압박을 넣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인터넷 페이지에는 애플사를 옹호하는 글이 홍수를 이뤘다. 이 전략도 실패했다.


3.경쟁자를 깨지도 못하고 함께 할 수도 없고, 고객들이 경쟁사에 불만을 터뜨리도록 하지도 못한다면…잠재고객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반쪽짜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라?

‘굴복할 수 없었던(Not backing down,)’ 글레이저는 리얼네트웍스에서 구입한 음악 파일을 아이팟으로 재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당연히 애플은 발끈했다. 애플은 다음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할 때 리얼네트웍스에서 산 음악파일을 재생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리얼네트웍스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구동해보니 광고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등 기술적 문제까지 있다는 불평이 계속 나왔다. 그리고 애플사는 약속대로 작년 11월 리얼네트웍스 음악파일을 재생하지 못하도록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했다.


아직까지도 온라인 음악시장에서 애플과 반 애플진영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애플은 특유의 폐쇄적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과의 호환을 막자 마이크로소프트(MS)등을 중심으로 반 애플진영이 서서히 결집하고 있는 양상이다. 아직까지 애플의 시장 지배력이 워낙 커 반애플 진영이 힘겨워 보이지만 이런 양상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란 보장은 물론 없다.

리얼네트웍스의 사례는 즉자적이고 주먹구구식인 대응이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비즈니스는 우연의 게임이 아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혹은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는 승산이 없다. 치밀한 전략과 고도의 두뇌플레이가 필요한 곳이다. 애플의 전략이 호환성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호환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로 세웠다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어야 옳다. e메일 한 번 보냈다가 다시 상대방을 비난하고, 고객들을 동원해서 압력을 넣으려 한다면 누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겠는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반 애플 진영에 서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던가, 아니면 다른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던가 하는 게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by 100명 2005. 7. 26. 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