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네마, 어디까지 왔나? 2005년 한국 디지털 시네마 전망
[필름 2.0 2005-01-31 13:40]

디지털 시네마는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세계적인 이슈다. 세계 각국 모두 표준화를 위한 연구와 작업에 돌입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언젠간 영화가 극장에 전자적으로 배급될 것이다."

앨버트 에이브럼슨, 1952년 자신의 저서<History of Motion Picture> 중에서.

"우리는 다시는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릭 매컬럼, <스타 워즈> 시리즈 프로듀서

한국의 2004년은 그야말로 디지털 시네마의 원년이었다. 작년 초 신촌 아트레온이 NEC사의 DLP 프로젝터로 <브라더 베어>를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동향을 관망하고 있던 멀티플렉스 체인 메가박스와 CGV, 롯데시네마도 차례로 DLP 프로젝터를 도입, 상영에 들어갔다. 특히 블록버스터 <투모로우>와 3D 애니메이션 <슈렉 2>가 상상 이상의 화질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람 체험을 선사했다. 한국 영화들의 디지털 상영도 줄을 이었는데 과거 <원더풀 데이즈>가 디지털 상영된 후 올해 <어깨동무>와 <우리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DI(Digital Intermediate, 디지털 색보정) 작업 후 서버를 거쳐 DLP 프로젝터로 상영됐다. 물론 아직 디지털 촬영이 일반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필름으로 촬영을 마친 뒤 디지털 마스터링을 거친 영화들이다. 반면, 필름 없이 국내 최초로 파나소닉 HD 카메라로 촬영해 필름으로 키네코한 <시실리 2km>는 <아 유 레디?>와 <욕망>에 이어 국내 디지털 시네마의 모범을 마련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디지털 프로젝터의 도입과 상영이 더욱 급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상영에 있어 무엇보다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통해 디지털 시네마의 포문을 열었던 이 시리즈의 신작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드디어 올해 5월 개봉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네마 따라잡기

디지털 시네마에 관한 핵심적인 사안과 전망은 이미 작년 초 FILM2.0 기사 '미래의 영화관이 열린다. 필름이여 안녕!을 통해 다룬 적이 있다.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디지털 시네마는 필름 촬영을 한 뒤 텔레시네를 하거나 HD 마스터링을 거친 뒤 디지털 영사하는 과정과, 촬영부터 최종 상영까지 전 과정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두 분야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런 두 분야의 과정을 거쳐 디지털 파일 형태로 극장에 배급(고정 저장 장치로 배달, 혹은 인공위성 등을 통한 전송)하고, 디지털 프로젝터에 의해 상영되는 영화를 말한다. 기존의 필름 방식보다 더 선명한 화질과 사운드 제공이 가능하고, 상영 횟수가 늘어나도 최초의 화질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디지털 시네마의 시작은 바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1>(1999)이었다. DLP라 불리는 디지털 시네마 제작 방식을 통해 필름 대신 HD 카메라로 촬영돼 디지털 데이터로 제작됐고, 위성 등의 유통망을 통해 배급된 뒤 DLP 프로젝터라 불리는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된 최초의 DLP 시네마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디지털 기기 전문 제조업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이하 'TI')와 휴즈-JVC가 설립한 시네콤(Cinecomm)의 축적된 기술, 그리고 차세대 영화 기술을 선점하려는 루카스의 원대한 꿈이 결합된 시도였다. DLP란 'Digital Light Processing' 약자로 현재 디지털 시네마 기술에서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는 핵심 원천 기술이다. 이러한 DLP 시스템을 본격적인 영화 상영 전문 시스템으로 개발한 것을 'DLP 시네마'라고 부른다. 현재 극장용 DLP 프로젝터는 바코(Barco), 크리스티(Christie), NEC 3개사가 생산하고 있는데, 모두 TI 인증을 받아 DMD 기술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디지털 시네마'와 'DLP 시네마'의 차이점이다. 보통 같은 용어로 취급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디지털 프로젝터가 DLP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DLP 프로젝터보다 훨씬 우수한 디지털 프로젝터가 얼마든지 있다. 다만 DLP 프로젝션 기술이 현재로선 할리우드 메이저 7개 스튜디오의 인정을 받은 세계 유일의 극장용 디지털 시네마 기술이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DLP 시네마보다 디지털 시네마 혹은 'D-Cinema'라고 표현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지난해 12월 15일 남양주 종합촬영소 시네극장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주최로 제1회 '디지털 시네마 포럼'이 성황리에 열렸다. 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이자 영화사 한맥영화의 대표이기도 한 김형준 한국디지털시네마포럼(KDCF) 위원장 역시 예상을 웃도는 수의 사람들이 참석해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디지털 영화의 현황과 전망, 동영상 압축 기술과 디지털 마스터링 기술 등에 관한 활발한 발제와 토론이 이뤄졌고 바코, 크리스티, NEC, 파나소닉, 소니 5개사가 세계 최초로 공동으로 한 곳에서 디지털 프로젝터 시연 및 프리젠테이션을 가진 뜻깊은 자리였다. 일본 디지털 컨텐츠 협회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양국간 협의를 진전시킴과 더불어, 국내 극장 체인 관계자들이 참여해 기기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쇼케이스 자리이기도 했다. 이것은 점점 더 디지털 시네마의 장점에 대한 공감대가 대세로 형성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진위 박창인 영상기획팀장은 "전세계 상영관(11만 개 기준)이 모두 디지털로 전환되면 110억 달러의 교체 비용이 들지만 프린트 제작과 운송, 배급 비용 등 해마다 20억 달러를 줄일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1,300개 스크린을 기준으로 완전 전환될 경우 약 63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제작에 있어 디지털화의 장점은 필름 비용의 절감 이 외에, 다매체 시대에 대한 대응 수월, 촬영 중 영상 확인의 편리함, 제작 기간 절감 등을 들 수 있다. 배급에 있어서도 디지털 시네마는 핫 이슈인데 장차 극장이 모두 디지털화된다면 프린트를 각 극장으로 운송, 배급할 필요 없이 중앙에서 위성으로 전세계 각 극장으로 데이터를 전송, 영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불법 복제의 우려 이전에 전세계 동시 개봉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네마의 세계 현황과 한국

현재 전세계에 503개의 스크린이 디지털로 전환됐다. 국가별로 보자면 미국 176개, 인도 70개, 중국 70개, 브라질 33개, 일본 25개, 싱가포르 21개, 영국 16개, 한국 8개 등이다. 물론 전세계 스크린 수를 12만 개 정도로 봤을 때 이것은 무척 미약한 숫자다.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1> 이후 2002년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이 개봉되기까지 일시에 붐을 형성하는 듯했던 디지털화는 비교적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999년 이후 거의 5년 동안의 보급율이 1% 정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준화 논의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를 원년으로 삼는다면 2005년부터 본격적인 전환이 시작되리라 예상된다. 영진위 최남식 디지털영상팀장은 "과거 15년 간의 변화는 지난 50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 컸다. 앞으로 닥쳐올 3년 간의 변화도 지난 15년 간의 변화보다 클 것"이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가장 무서운 속도로 변화가 일고 있는 곳은 바로 중국이다. '활용도'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진행이 이뤄지고 있다. TV 보급 확대에 따라 영화 산업의 하강세가 지속되고 있으나 영상 산업의 부흥과 중국영화의 근대화를 목표로 약 300억 원에 가까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2003년에만 50개의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디지털 시네마를 설치했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최고 수치이다. 2004년 말까지 166개, 수년 내 1,000개에 도달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5년 이내에 2,500개 이상 보급을 목표로 삼고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입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박창인 팀장에 따르면 "중국은 디지털 시네마의 보급과 더불어 컨텐츠 수급 또한 중요하기에, 100편의 고전영화를 디지털로 전환하여 2006년까지 매년 50편의 영화를 전국 디지털 상영관에 배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속한 디지털 프린트 제작을 위해 매우 효율적인 디지털 프로세싱 파이프 라인을 구축한 인도, 이미 2003년 11월 영국과 제휴하여 옥외 스크린 1개와 20개 스크린을 디지털로 전환한 싱가포르, 그리고 2001년부터 산-관-학 영화 관계자들로 구성된 디지털 시네마 컨소시엄을 가동한 일본과 비교해볼 때 현재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국가들 중 디지털 시네마에 관한 한 많이 뒤쳐져 있는 수준이다.

디지털 시네마 표준화 열풍

2004년은 디지털 시네마에 관한 표준화 논의가 촉발됐던 해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배급과 상영이 가능할 것을 전제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점에 직면해 있다. 현재까지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할리우드 모델과 유럽, 아시아 지역 세 곳을 중심으로 표준화 및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먼저 미국의 DCI(Digital Cinema Initiative)는 2002년 3월 디즈니, 폭스, MGM, 파라마운트, 소니, 유니버셜, 워너브러더스 등 7개 메이저 스튜디오가 디지털 시네마의 다양한 기술 양상 속에서 적합한 합의를 구하기 위해 투자한 협력 기구다. 그동안 각 영화사들은 미국에서만 연간 10억 달러인 영화 배급 비용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시네마 상영 시스템의 보급을 추진해 왔다. 극장 측 역시 고화질 DVD 등 홈 엔터테인먼트 기기 출현으로 영화 관람객들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디지털 시네마 상영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금껏 DCI는 각 스튜디오 회원사와 모든 프로덕션 업계가 환영할 만한 단일 규격을 결정하고 국제 표준화를 위한 기초 작업을 맡아왔다. DCI의 작업 사양은 기술 표준을 위해 산업계의 대표 주체로 설립된 SMPTE(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작업과 유사하게 일치하고 있는데, 과거 버전 3.0의 디지털 영화 규격을 SMPTE에 제안했고 지난 12월 6일에는 최종적으로 버전 4.3을 발표했다. DCI는 2002년 3월에 2년을 기한으로 활동하다가, 당초 기한을 6개월간 연장하여 올 9월에 끝나도록 돼 있었으나 최근 추가로 12개월을 연장하여 기술 명세와 시스템 구조를 상술하고, 호환성 테스트 등을 통해 산업 표준의 공식화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영화관 내 영화 파일 무단 복제를 차단하는 방식 등 일부 사항은 아직 미결 상태지만, JPEG 2000 비디오 포맷을 기반으로 한 기본적인 기술 사양은 이미 정해졌다. 그러니까 기술 명세의 최종판이 될 것으로 선전해온 5.0 버전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셈이다.

유럽의 경우 EDCF(Europe Digital Cinema Forum)를 설립하여 비할리우드적인 기술적 모델을 모색 중이며, 특히 영국에서는 BFI(British Film Council)에 국가적 차원의 테스트 베드(시험대)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극장 리모델링에 거의 2천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250개 디지털 상영관 배급망 구축 계획은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할 최고의 품질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한정된 영화의 대량 배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DCC(Digital Cinema Consortium), 중국의 전영과학기술연구소(CRIFST) 모두 자국 내에 적합한 시스템 규격 및 포맷을 결정하기 위한 연구,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술 문제 이 외의 완전한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공정한 비즈니스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문제는 경제적 이익과 주도권에 관련된 정치적 문제인 만큼 여러 가지 혼선을 거듭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적인 장애가 제거돼도 영화사와 극장 측은 디지털 상영 시스템의 설치 비용을 놓고 갈등을 빚을 것이 뻔하다. 영화사는 새로운 상영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관객이 감소할 극장 측에서 설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극장 측은 배급 비용 절감 효과가 큰 영화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지연에 대해 박창인 팀장은 "스튜디오들이 결합하여 공개적으로 DCI를 지원하는 한편에는 현재 기술이 발전해 나가길 바라는 기술 지향형 '실용주의자'와 중대한 영상 품질의 진보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길 바라는 품질 지향형 '이상론자' 사이의 불일치가 존재하면서 지연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걸음마를 떼어야 할 시기

디지털 시네마와 관련된 국내의 상황은 아직 초보적 단계다.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 DLP 프로젝터의 보급 지연, 제작사의 디지털 시네마 제작 기피 등 디지털 시네마는 아직 '대세'라기보다 '대안'적 위치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현재 국내에는 디지털 프로젝터가 CGV용산, 메가박스, 일산 라페스타 롯데시네마, 신촌 아트레온, 경주 엑스포, 성북구 시네센타, 셋방현상소, 서울현상소, 이렇게 8개관에 도입돼 있다. 2000년 서울극장에서 최초로 바코의 DLP 프로젝터로 <다이너소어>를 상영한 바 있지만 일종의 '대여' 형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004년 초 신촌 아트레온에서 <브라더 베어>를 디지털 상영한 것이 그 시초로 할 것이다. 이후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들인 CGV와 메가박스가 디지털 시네마 장비를 들여왔다. 각각 CJ 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와 연결돼 있어 배급사와 극장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우리나라는 디지털 시네마 도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배급사가 직접 극장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에 보급된 디지털 상영관들은 각기 파일 방식이 다른 서버를 쓰고 있다. 아트레온은 MPEG-2 계열의 아비카(Avica) 서버를, CGV는 아울렛 방식의 큐빗(QuBit) 서버를, 메가박스는 MPEG-2 계열의 GDC 서버를, 롯데시네마는 메가박스와 같은 방식의 서버를 쓰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 컨텐츠를 호환할 수 없기에, 이들 모두에게 디지털 데이터를 주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파일을 보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디지털 시네마에 관한 국내 표준을 마련하기 위해 '코리아디지털시네마 포럼'(KDCF)을 지난해 9월 초에 결성했다. 한맥영화의 김형준 대표를 위원장으로 영상 압축 기술의 권위자인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의 정제창 교수, 메가박스의 장영욱 영사실장, 아비드 코리아의 오병규 지사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KDCF는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기술적인 테스트를 시연할 수 있는 공간 마련과 기술 분석, 디지털 시네마의 빠른 보급을 위한 전략 수립, DCI의 관계 설정, 한중일 3국의 공동체 마련을 위한 교류협력 증진 방안 등을 논의해 나가고 있다. 정체창 교수는 "국제표준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유와 상품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차세대 신성장 동력의 하나인 디지털 컨텐츠 분야의 국가 경쟁력 제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내의 앞서가는 정보 통신 기술에 비해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대비와 적응력이 뒤쳐져 있다는 데서 나온 지적이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디지털 시네마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급 문제가 중요하다. 1895년 탄생한 이래 영화는 기술 진보와 더불어 끝없는 변화를 겪었지만, 오직 배급 형태만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지난해 8월 중순경 미국 전역의 50개 영화관은 이틀에 걸쳐 생중계로 잼 밴드인 피시의 고별 공연을 상영했다. 디지털 배급 방식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스포츠 이벤트, 콘서트, 연극 등의 컨텐츠를 전세계에 동시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과거 TV에 의해 공격받았던 영화가 역으로 다시 TV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디지털 시네마가 지닌 배급의 용이성은 바꿔 말해, 위성을 이용할 경우 국내 자동차 극장까지 실시간으로 할리우드영화가 개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최남식 팀장은 "위성을 사용한 디지털 배급을 통해 미국이 변함 없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 시네마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배급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영화 관련 기업이 아닌 우주 항공 기업인 보잉사라는 점이다. 보잉사는 앞선 위성 정보 통신 기술을 가지고 이 미디어 배급 사업을 이끌고 있다. <아치와 시팍> <우리형> 등의 디지털 마스터링을 진행했던 벤허코퍼레이션의 허은 대표는 "디지털화된 콘텐츠는 네트워크를 통해 배급되고 IT 기술과 접목해 관리돼야 한다.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한 암호화 처리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네트워크나 암호화에 앞서 있는 IT 기술을 이용해 세계화에 대비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견해를 보인다. 비록 우리가 디지털 시네마에 관한 후발 주자지만 업계를 선도할 그 가능성은 노력 여하에 따라 활짝 열려 있다는 말이다. 영진위의 김혜준 사무국장 역시 "디지털 시네마는 특정하고 단일한 기술이라기보다 프로젝터, 서버, 망을 통한 공급, 보안 시스템 문제 등 여러가지 기술들이 동원돼야 하는 기술집약형 사업이다. 우리가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기술의 장점이 발휘될 여지는 많다"고 말한다. 이제 디지털 시네마는 눈앞의 현실이 됐다. 과거의 막연한 핑크빛 전망을 걷어내고 뚜렷한 기술과 비전을 가지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정부의 지원과 영화 관련 업체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관객·수용자 네트워크의 능동적인 관심 또한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국 디지털 시네마, 지금이 호기다

김형준(디지털시네마 포럼 위원장, 한맥영화 대표)

어떻게 디지털 시네마에 관심을 갖게 됐나?

몇년 전 칸영화제에서 위성으로 전송된 동영상을 상영하는 시연회를 봤다. 굉장히 놀라웠고 재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가 만든 영화를 할리우드 배급업자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관심은 컸지만 당시 크게 상용화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잉사에 아는 분이 있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보잉사는 프로젝터나 서버 같은 기기가 아니라 디지털 위성을 통한 호출 등의 기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특별한 기술 없이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실리 2km>를 HD 영화로 제작한 것도 그런 관심에서 비롯됐나?

앞으로 필름이 없어지는 시대가 온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컨텐츠로서의 원 소스다. 그래서 그 일환으로 <시실리 2km>를 HD영화로 제작했다. 감독 누구보다 그쪽 분야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니까 내 앞에서 헛소리 못할 거란 생각도 있었고.(웃음) 당시에도 반발은 많았지만 꿋꿋이 감독과 촬영감독을 설득했다. 결국 그들을 일본으로 보내서 일주일 동안 연수받고 오게 했다. 갔다 오더니 두 사람 다 무조건 하겠다며 빨리 하자고 했다.(웃음) 다행히 영화도 성공했고 HD에 관한 지식도 많이 축적했다. 앞으로도 될 수 있는 한 거의 모든 영화를 HD영화로 제작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한국디지털시네마포럼'의 목표는 뭔가?

디지털 시네마 포럼은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국내에서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을 정착,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시네마를 거부할 수 없는 미래라고 생각할 때 빨리 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중국을 봐도 좀 떨어지는 시스템이지만 활성화되고 있고 유럽, 남미, 필리핀, 인도까지 광범위하게 그 연구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빨리 연구해서 적합한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DCI 표준이 우리에게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시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영진위를 통해 이런 포럼을 만들게 됐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데다 HD영화를 직접 제작한 점 때문에 위원장을 맡게 됐다.

한국에 맞는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은 뭐라고 보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스탠더드가 무엇이냐의 문제, 그리고 비용을 누가 대느냐, 하는 문제다. 비용을 극장, 배급업자, 제작자 누가 될지 정부의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나라도 급속도로 변화될 거라고 본다. 사실 비용 문제가 기술적 문제보다 크다. 우리나라가 IT 기술 쪽으로는 굉장히 빠른데 그것과 과히 멀다고 할 수 없는 디지털 시네마 분야는 너무 느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저가 시스템으로 구축해서 고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관객 만족과 가격 안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거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베타 버전이 있듯이 차근차근 진행해 가는 거다. 지금이 호기라고 생각한다.

2008년까지 500개 스크린이 목표다

다나카 세이이치('일본 디지털 컨텐츠 협회'(DCAj) 사업개발 본부장)

'디지털 시네마 추진 포럼'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DCAj(Digital Cinema Association of Japan)가 주축이 돼서 일본 내 영화 제작, 배급, 흥업 관련 기업, 그리고 그들을 서포트하는 메이커, 관계 부처가 단결하여 디지털 시네마의 보급과 촉진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됐다. 2004년 6월 15일에 1회 총회를 가졌는데 '2008년에 디지털 시네마를 500편 스크린한다'는 목표가 제안됐다. 그리고 9월에 있었던 2회 총회 때는 '디지털 시네마 보급을 향한 12개의 제언'이 이루어졌다.

'12개의 제언'은 대략 어떤 내용들인가?

저가격의 간단한 상영 시스템을 검토하고, 디지털 시네마 상영관에 의한 지역 활성화 효과를 조사하며, 네트워크를 이용한 새로운 유통 형태를 검토하고자 한다. 디지털 시네마 제작에 관한 매뉴얼의 작성과 디지털 시네마 전문 교육 기관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외 전국 공공시설 등을 조사해서 상영 장소를 확대하고 아시아 여러 국가들과의 정보 교환 또한 그 목적으로 한다.

NEC, 파나소닉 등 디지털 프로젝터 업체들이 여럿 있기에 일본은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에 관한 한 앞서갈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보기 쉽지만 좀 다르다.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여전히 필름으로 만든 것만이 영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영화의 전성기부터 필름 영화가 일본영화의 오랜 부분을 차지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전통이 오랜 만큼 그런 높은 분들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디지털 시네마 사업을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두 번째 문제는 디지털 시네마로 영화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은 신호로 전환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술이 개선돼야 하고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지금은 그런 기술적, 품질적 문제에 대해선 별로 우려하지 않고 있지만 다만 비용이 비싸다는 게 문제다. 세 번째로 권리와 저작권 문제가 있다.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의 경우 권리가 잘 보호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만약에 필름으로 찍었을 경우 필름을 갖고 영화관에 가서 상영하고 계약이 끝나면 필름을 회수해 오기 때문에 자연스레 저작권이 지켜진다. 그런데 디지털 시네마는 신호로 가기 때문에 회수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저작권 보호 문제가 마지막 문제다. 정말 중요한 문제다.

2008년까지 500개의 스크린을 예상한다고 했는데 그 목표는 희망적인가?

일본의 영화사들이 디지털화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지는 않다. 아직 받아들일 자세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꼭 실현하고 싶다. 그리고 실현될 거라고 희망적으로 본다. 앞으로 4년 정도 남았는데 내부적으로는 너무 늦다, 오히려 시기를 앞당기자는 사람들이 더 많다.(웃음)

사진 김춘호 기자


주성철 기자

by 100명 2005. 6. 10.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