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VIP 대실망

움직이는 지역에 가깝다는 이유로 메가박스 코엑스점을 '꽤' 즐겨 이용하는 편인데, 올해에는 메가박스 VIP에 선정됐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그나마 메일이 온 줄도 모르다가, 우연히 스팸 메일함에 처박혀 있던 것을 끄집어냈습니다. 읽어보니 '영화 조낸 봐줬으니 1년동안 VIP 카드 내 주마~ 그러니 카드 받으러 오렴'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관객을 잘 대해준다고 해봐야 뭐 화질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의자가 커지는 것도 아닌데, 해주긴 뭘 해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메가박스 코엑스점에는 매표고 반대쪽 구석에 전용 발권창구가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용 발권 창구라고 해서 무슨 표에 금칠을 해주는 것도 아닐테고, 사람이 몰리면 안 기다릴 수도 없을텐데 뭐가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일단 오프라인으로 카드를 수령하라길래 영화를 볼 것도 아닌 날에 굳이 전용 발권창구에 찾아갔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일반 발권 창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로 찾으러 오라고 써있어서 갔더니 다시 반대쪽 끝에 있는 전용 발권창구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안내를 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한참 걸어 반대쪽 끝에 있는 전용 발권창구에 갔더니, 한산한 바깥과는 정 반대로 열 그룹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나마 카드 발급과 일반 발권을 구분하지 않아 대기시간은 더 길었습니다. 이럴 거면 그냥 일반 발권 창구에서 안 기다리고 발급 받는 쪽이 낫겠습니다.

좀 오래돼서 너덜너덜해졌다는 점을 빼면 그럭저럭 괜찮은 시커먼 카드를 가져가더니 한 눈에 싼티가 팍팍 나는 시퍼런 카드로 바꿔줍니다. 쪽팔려서 카드 꺼내질 못하겠습니다. 여튼 기존 카드는 이미 파기했다고 하니 별 수 없이 시퍼런 카드를 손에 쥐고 뒤돌아서려니 쿠폰북을 준답니다. 그럴사한 비싼 종이에 포장된 종이뭉치를 받아 들고, '재발급이 안 되니 분실에 주의하라'는 말을 등 뒤에 들으며 사람이 미어 터지는 전용 발권 창구를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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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북을 살펴봤는데, 쿠폰북 전체가 퍼즐을 짜맞추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무슨 햄버거 가게에서 가끔 주던 쿠폰북하고도 비슷한데, 여러 가지 발생하기 쉬운 사용할 수 없는 조건들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꽤 그럴싸한 쿠폰들은 여러 가지 사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간신히 비켜서야 사용할 수 있었고, 덜 까다로운 쿠폰들은 혜택이 그저 그렇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쿠폰들은 온라인 예매에는 적용되질 않습니다. 온라인 예매에서는 좌석까지 내맘대로 설정하고 무인발권기에 가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간편하게 발권을 하면 되는데, 이 쿠폰북은 그 편리함을 모두 부정해 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쿵푸팬더를 보는데 쿠폰을 사용해 보기로 하고, 평일초대권을 사용할 작정으로 전용 발권창구에 갔습니다. 써있기는 원스톱이라고 써있지만 결국 저는 카드 제시, 신분증 제시, 매우 조악한 장부에 개인정보 제시, 평일초대권 발권, 티켓으로 교환 등의 절차를 거처야만 했고, 일반 발권창구에서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으로 좌석을 지정할 수 있는 기기는 어따 팔아먹고 사람들이 하도 찍어대 지문이 다닥다닥 붙은 유리판 아래에 감춰진 구닥다리 모니터에 나타난 잘 보이지도 않는 좌석표시를 읽어 내 입으로 불러줘야만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같은 영화관을 많이 가게 됐는데, 그에 대한 혜택이 이따위라면 굳이 같은 영화관을 고집할 이유가 별로 없겠단 생각이 들며 기분이 상했습니다. 대강 코엑스에 놀러가면 팝콘 쿠폰이나 좀 써먹고 나서는 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에 가야겠습니다.

by 100명 2008. 6. 13. 09:17